우리 시골 감나무
沙月 李盛永(2003. 10. 21)
나의 살던 고향은 가을에 감이 익어가는 시골이다. 지금도 우리 내외는 부모님이 사시던 집을 개축해서 자주 오간다. 집 주위에 감나무가 여섯 그루 있는데 내가 어린 시절은 이 감나무들이 전부 남의 것이었다. 집터가 두 필지인데 동편의 한 필지는 아래 뜸 유산할배네 것이었고, 서편의 또 한 필지는 윗마을 다래실 문씨네 것이었다. 과일나무는 본래 땅 주인에게 소유되는 것이 법이라 그래서 감도 그 땅 주인들이 다 따간다.

여름에 감 꽃을 주워 모아 목걸이를 만들고, 아직 새파란 감은 주워 물에 담궈서 삭혀서 먹고, 홍시가 떨어지면 주워 먹는데 감을 따가고 나면 남는 것은 마당에 너절하게 떨어지는 감 잎 뿐이다.

부모님들이 그 땅들을 산 후로는 모두 우리 것이 되었다. 땡감도, 홍시도 다 우리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우리 감나무에 마음대로 올라 갈 수도 있게 되었다. 나이 이순의 반을 지난 지금도 나는 우리 감나무에는 잘 올라간다. 눈 감고서도 오를 수 있다.

초등학교 다닐 때 한 번, 고등학교 다닐 때 한 번, 나는 감나무에서 두 번 떨어진 적이 있다. 먼저 번은 왼 팔을 삐어 오래 동안 재실 지붕에 나는 돈나물 같이 생긴 풀(?)을 찧어 붙이고 오랫동안 팔을 목에 걸고 다녔고, 두 번째는 머리 정수리에 구멍이 나서 된장을 붙이기도 했다. 가까운 곳에 병원도 없었거니와 갈 필요도 없었다. 이렇게 해도 잘 나았으니까.

집터를 사면서 함께 딸려 온 시골집 감나무는 서편의 세 그루는 고목으로 죽어서 선친께서 접을 붙인 것이 50여년 지나 지금은 낙낙장송으로 커 있고, 동편의 고목 세 그루는 수령이 얼마나 되었는지도 모르는 고목이다. 가운데 것이 2000년도 집을 개축할 때 시멘트 물이 스며들었는지 지난 2년간은 감이 열지 않고 가지들이 말라버렸는데 올 해는 신통하게도 두 가지가 소생하여 감을 한 접(100개) 쯤 땄다.

감을 딸 때 마지막 한 두 개는 따지 않고 남겨 두는 것이 오랜 관습으로 전해져 내려 왔는데 이것을 '까치밥'이라 한다. 꼭 까치만 먹으라는 것이 아니라 늦가을부터 눈 내리는 겨울 동안 먹이가 부족할 때 뭇 새들이 나누어 먹으라는 자연을 위한 배려다. 들녘에서 점심이나 새참을 먹을 때 먼저 한 술 떠서 던지면서 "고시네-"하고 외치는 것도 자연을 위한 배려요 하늘에 대한 감사의 표시니 까치밥과 고시네는 같은 맥락인 것이다. 참으로 아름다운 우리 조상들의 마음이 스며있는 풍습이다.

감나무 예찬
감이 주렁주렁 열린 감나무는 보기도 좋지만 빨갛게 익은 홍시는 먹음직스럽고 실제로 맛도 좋다. 비록 홍시가 되지 않았더라고 불그스레 낯 빛이 돋아나고 서리를 맞고 반쯤 물러고 나면 생감도 맛이 좋다. 약간 입 안이 떱덜한 그 맛이 젊은 사람들은 홍시보다 더 선호한다. 외삼촌이 한창 젊었을 때 우리 집에 들리면 나지막한 삽작 감나무에서 땡감을 너댓 개 따서 주먹으로 깨어 어적어적 씹어 먹던 기억이 생생하다.

또 생감의 그 떱덜한 맛은 타닌이라는 성분 때문인데 이는 도토리에 떫은 성분과 같다. 도토리의 타닌성분이 인체에 축적된 중금속 해독하는 기능이 있다는 학계의 연구결과 발표도 있었다.가을이 되면 생감 속의 타닌이 굳어지기 시작하여 마치 주근깨 같은 갈색 반점이 되고 떫은 맛이 단 맛으로 변하여 익은 감 즉 홍시나 침담근 감이 달게 된다고 한다.

옛 사람들은 잘 익은 감을 바라보며 '色勝金玉衣 甘分玉液淸(색승금옥의 감붕옥액청)'이라 하였다. '감의 색은 금빛 옷보다 더 아름답고, 그 맛은 맑은 옥액에 단맛은 더한 듯 하다'는 뜻이다. 과실에게 주는 찬사로 이보다 더한 것이 있을까?

또 감나무를 두고 '赤赫炎官張火傘 然雲燒樹大實변(적혁염관장화산 연운소수대실변)'라고도 읊고 있다. 즉 '붉디 붉게 타 올라 마치 불의 신이 불 우산을 펴는 듯 하고, 구름처럼 일어 나무를 태우는 듯 굵은 감이 온 나무를 덮었도다' 라는 뜻이다.

유양잡조(酉陽雜俎)라는 책에는 감나무를 두고 칠절(七絶: 일곱 가지 뛰어난 것)이라 하였는데
① 오래 살고 ② 좋은 그늘은 만들고 ③ 새가 집을 짓지 않고(까치?) ④ 벌레가 안 끼고 ⑤ 단풍이 아름답고 ⑥ 열매가 먹음직스럽고 ⑦ 잎이 큼직하여 글씨를 쓸 수 있다.

감나무를 두고 문무충효절(文武忠孝節) 오상(五常)이라고도 불렀다.
① 감나무 잎에 글씨를 쓰니 문(文)이 있고
  * 중국 당(唐)나라 현종 때 벼슬이 광문관박사(廣文館博士)에 이른 두보(杜甫)의 친구 정건(鄭虔)이 시(詩), 서(書), 화(畵)에 모두 능하여 광문삼절(廣文三節)이라 칭송되었으나 집은 항상 가난하여 먹을 것이 부족하고, 종이가 없어 감나무 잎에 글씨 연습을 했다는 고사에서 유래된 말.
② 감나무가 단단하여 화살촉에 쓰이니 무(武)가 있고
③ 감은 겉과 속이 똑 같이 붉어 표리부동(表裏不同)하지 않아 충(忠)이 있고
④ 감 홍시는 이빨이 없는 노인도 먹을 수 있으니 효(孝)가 있고
⑤ 감 홍시는 서리가 내린 늦가을에도 나무에 매달려 있으니 오상고절(傲霜孤節)의 절(節)이 있다고 찬양하였다.


또 감나무의 색깔을 놓고 흑녹황홍백(黑綠黃紅白) 오색(五色)이라 하였다.
① 나무의 심재(心材)가 검으니 흑(黑)이요 ② 잎이 푸르니 녹(綠)이요 ③꽃이 누르니 황(黃)이요 ④ 열매 즉 감이 붉으니 홍(紅)이요 ⑤ 곶감분이 하야니 백(白)이라 하여 다섯 가지 색갈을 찬양하였다.

서양에서도 동양에 못지 않게 감을 두고 예찬 하고 있다. 감나무의 학명이 디오스피로스(Diospros)인데 디오스는 신(神)이란 뜻이고, 피로스는 과실이란 뜻이니 감을 두고 '과실의 신'이라 한 것이니 최고의 찬사가 아닌가?.

감나무 종류와 용도
감나무는 감나무과에 속하는 낙엽성 교목인데 세계적으로 감나무 종류는 200여 종에 가깝다고 하는데 대부분 아열대지방에서 자라고 우리나라처럼 온대지방에서 자라는 감나무는 많지 않다.

우리 시골에도 내가 어릴 적에는 감나무가 여러 가지 있었다. 먹감(墨枾), 왕감(大枾), 조홍감(早紅枾), 따발이감(따뱅이감: 납작한 감), 단감, 털피감, 꼬감, 돌감, 고욤 등으로 기억된다. 그러나 지금은 다른 것들은 다 사라졌거나 겨우 명맥만 유지하고 온 동네가 먹감 일색이다. 왕감이, 조홍감, 따발이감, 단감 등이 납작한 편인데 비해 먹감은 미인의 갸름한 얼굴처럼 약간 길쭉한 편이다.

먹감(墨枾)이란 이름은 유독 이 감에만 검은(墨) 반점이 있기 때문에 얻은 이름이다. 우리 민족은 어린 아기가 태어나면서부터 엉덩이에 몽골리안임을 입증하는 몽고반점이 있는 것처럼 먹감도 빨갛게 인물이 나면 표면에 검은 반점이 생긴다.
우리 시골집 먹감


우리 시골에서 다른 감을 압도하고 먹감이 장수하고 있는 것은 먹감나무가 어떠한 악조건 하에서도 강인한 생존력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자만 무엇보다도 침시(沈枾), 홍시(紅枾), 백시(白枾) 등 감의 쓰임새가 많고 질이 좋아서 사람들이 고욤나무에다 먹감나무를 많이 접붙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감나무 뿌리에서 돋아난 줄기에는 고욤이 열리고 있다. 뒷골 큰감나무 아래는 올해도 고욤이 조롱조롱 많이 달렸지만 요즈음은 떠가는 사람도 없다. 옛날 같으면 따다가 작은 옹기 독에 넣어두면 한 겨울 긴긴 밤에 뜨뜻한 아래 목 이불 속에 발 넣고 둘러 앉아 이야기 꽃을 피울 때 심심풀이로는 그저 그만이었는데-

이제 불그스레하게 인물이 날라 하는 땡감(생감)을 따다가 소금을 약간 푼 뜨뜻한 물에 담그고 하루쯤 방 아래 목에 이불로 덮어 두면 떫은 맛이 단맛으로 변해있다. 우리시골서는 '삭혀 먹는다'고 하지만 표준말로는 '침담근다'고 하고, 한자어로는 침시(沈枾)라 한다.

감나무에서 자연적으로 빨갛고 말랑말랑하게 물렀거나 생감을 따서 며칠 두면 빨간 색깔과 함께 말랑말랑하게 된 것을 홍시(紅枾)라고 한다. 이빨이 전혀 없는 노인도 먹을 수 있고 은근히 달면서 맛이 좋다. 내게도 홍시라면 침이 꿀꺽 넘어가는 아름다운 옛 추억이 있다.

육사시절 겨울 방학을 맞아 시골에 가면 저녁 먹은 배가 꺼질 때쯤 되면 뒤주 안 나락(벼) 더미 위 잠박에 가지런히 늘어 놓은 썰렁하게 찬 감 홍시를 담아와서 며칠 전에 만들어 묘사(墓祀) 때 쓰고 남겨 놓은 시루떡과 인절미를 찍어 먹으며 그 동안 동네서 일어났던 이야기들을 들으며 긴 겨울 밤을 하얗게 지새우던 기억이다.

생감의 껍질을 칼로 엷게 깎아내고 한 뼘 반쯤 되는 골속(지금은 비닐 끈)의 양 끝에 두 개씩 짝지어 잡아 매어 햇볕이 잘 드는 처마 밑에 장대를 매고 걸어서 어지간히 말린 다음 모양 나게 손질해서 감 껍질 말린 것과 함께 옹기 독에 담아두면 표면에서 하얀 가루분이 생긴다. 이것을 '감에 내린 서리'라 하여 시상(枾霜: 보통 '곶감분'이라 한다>)이라 하고, 이렇게 시상이 뽀얗게 생긴 감을 백시(白枾)라 한다. 우리 말로는 곶감이다. 곶감은 그냥 먹어도 맛있지만 생강과 계피를 넣고 잣을 동동 띄운 수정과 한 사발이 일미다. 지금은 인스턴트 식품으로도 나오고 있지만 별로 감동을 주지 못한다. 맛보다 분위기 때문일 것이다.
곶감 말리기

잘 익은 홍시를 체에 걸러 쌀뜨물로 죽을 쑤어 꿀을 타거 마시면 홍시죽이 되고, 찹쌀과 곶감을 더 말려 가루로 만들어 대추를 삶아 으깨어 꿀과 섞은 뒤 밤, 대추, 계피, 잣가루를 섞어 떡으로 만든 것을 감기설떡이라 하였다. 생각만 해도 군침이 돈다.

생감이건 홍시건 간에 잘 씻어 입이 좁은 옹기에 채우고 천으로 아구리를 잡아매어 속에서 발효하여 마치 청포묵 같은 식초균이 생겨서 약간 누렇고 말간 감식초가 된다. 몸에 좋다지만 잘 안 먹게 되니 일부러 귀한 감으로 식초를 만들지는 못하고 감을 딸 때 잘못하여 떨어져 깨진 것으로 매년 조금씩 만든다.

감의 용도 중에 다양한 먹거리 말고도 약용으로도 쓰인다. 감을 한자로 시(枾)라 하는데 제사상에 과일을 진열하는 순서가 집안에 따라 홍동백서(紅東白西: 붉은 것은 동쪽, 흰 것은 서쪽)를 따르는 집안도 있지만 대체로 조율시이(棗栗枾梨: 대추, 밤, 감, 배 순)을 따르는 집안이 많은데 여기에 시(枾)가 곧 감이다.

감나무 열매 즉 감을 시자(枾子), 감 꽃을 시화(枾花), 마른 감을 시병(枾餠), 감나무 껍질을 시목피(枾木皮)라 라며 모두 약용으로 쓰인다. 시자 특히 홍시는 술을 깨는데 효과가 있으며 술로 아픈 속을 다스려 주고 술로 인한 설사도 멎게 한다. 심한 딸꾹질에는 감꼭지를 감식초에 넣어 달여 먹으면 멈춘다고도 한다. 치질로 인한 출혈이 있을 때 떫은 생감을 갈아 즙을 내서 명반을 조금 섞어서 바르면 지혈 효과가 있다고 하며 감나무 잎은 고혈압에 좋다고 하니 감잎차를 마시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그러나 허준의 동의보감에는 술 마신 뒤에 연시를 먹으면 위통이 생길 수 있고 술도 더 취한다고 하였다. 설사에 감이 좋지만 변비가 있는 사람에게는 금물로 알려져 왔다. 임산부가 감을 피하게 하는 것도 이 변비를 걱정하는 때문인 것 같다.

제주도에서는 천에 감 물을 들여 갈옷을 만들어 입는데 윗저고리는 '갈적삼', 아래옷을 '갈증이' 또는 '갈굴증'이라 한다. 갈옷은 때도 덜 타고, 입은 채로 물에 들어가면 저절로 빨래가 된다 할 정도로 때가 잘 지며, 옷을 삭지 않게 하여 수명이 길어지고, 바람이 잘 통하여 시원하며, 물이 묻어도 잘 흡수되지 않아 옷아 잘 젖지 않는다.

감나무 심재(心材)는 굳고 탄력이 있으며 빛이 검어서 흑시(黑枾) 또는 오시목(烏枾木)이라 하며 옛날 양반 집안의 귀한 가구재로 많이 쓰였고, 화살촉목으로도 쓰였다고 한다. 지금도 인도네시아 등지에서 수입하는 목재 가운데 에보니 또는 흑단이란 목재는 감나무 종류에 속하며 고급 가구에 쓰인다. 또 예전에는 탄력이 좋고 단단한 감나무로 망치 머리를 만들었는데 지금은 쇠에 밀려 찾아볼 수 없고 이러한 점을 이용하여 얼마 전까지도 우드 골프채의 패이스(Face)를 감나무로 만들었지만 이것도 합성수지에 밀렸다가 지금은 첨단 과학의 메탈에게 밀려났다.

2003년 10월 13일-20일 간에 시골집에 가을겆이 가서 고구마도 캐고, 전번에 베어가 마당 가에 세워 둔 들깨도 떨고, 토란 뿌리도 캐어 저장하고, 배도 땄지만 단연 주력은 감을 따서 처리하는 것이었다. 꼬박 3일간 밤낮을 따고, 깎고, 걸고, 깨진 것은 유리 그릇에 담아 감식초를 안치고, 약간은 생감은 냉장고 냉동실에 넣고, 홍시는 가져와서 휘림이와 휘수가 맛있게 먹는 것을 지켜 보았다.  끝
감이 익어가는 동네 우리 고향 '사드래(沙月)' 시골 풍경 사진
(2003.10.13-20)
우리 시골 웃사드레(沙月) 풍경
고향집과 감나무
감이 주렁주렁 익은 감나무
까치집
까치밥
감이 주렁주렁 열린 감나무가지
몽고반점이 있는 먹감(墨枾)
꽂감이 걸린 시골집
내년을 기약하며 대덕산 넘으로 떨어지는 석양을 바라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