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산준령에서 세월의 풍파 견디는 코리아나(Koreana)

구상나무

 

 

 

 

 

 

 

 


젓나무와 비슷하게 생겨서 쉽사리 구분되지 않는 나무가 구상나무다. 간단히 외양으로 구분한다면 젓나무가 키가 크고, 키에 비하여 가지들이 짧은 반면 구상나무는 키가 작은 편인데 가지들은 길어서 옆으로 퍼진 모양이다. 다 자란 구상나무는 보통 키 20미터, 폭 8미터 정도이다.

 

또 침엽의 잎 끝이 젓나무가 뾰족해서 살에 땋으면 아프게 찌르는데 비해 구상나무잎의 끝은 둥근 편이고 뒷면에 잎이 숨을 쉬는 기공조선(氣孔組線)이라는 하얀 줄이 있어서 멀리 서 보면 나무 전체가 은록색(銀綠色)으로 더 아름답게 보인다.

 

한라산, 지리산, 덕유산 등에서 해발 500m에서 2,000m까지 자생하고 있어 일반 야산이나 야지에서는 근래에 조경용으로 심은 것 외에 자생하는 것은 볼 수가 없다.  그래서 구상나무가 개나리, 잣나무와 함께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나무로 학계에 등록되어 있으면서도 정작 우리나라 사람들이 구상나무를 알아보는 사람은 많지 않다. 구상나무의 학명이 Abies koreana Wils이다.

 

구상나무도 원통형의 녹갈색 또는 자갈색의 구과를 맺는다. 구상나무를 구과의 색깔에 따라 푸른빛이 돌면 푸른구상나무, 흑자색이면 검은구상나무, 붉은 기운이 유난히 강하면 붉은구상나무로 품종을 구분한다.

 

 

 

 

 

 

 

 

 


구상나무의 구과는 중앙에 대가 없이 실편(實片) 끼리 붙어 있다가 가을에 종자를 퍼트리는 과정에서 구과의 실편은 조각조각 흩어져서 잣송이나 솔방울처럼 남지 않기 때문에 구상나무 밑에서 솔방울 같은 구과의 흔적도 볼 수 없이 분해 되 버린다. 

 

구과가 익으면 실편의 끝에 뾰족한 돌기가 나와 뒤로 젖혀지면서 실편 사이사이에서 달걀 모양의 종자가 튀어나간다. 이때 종자에 붙은 부채모양의 날개가 멀리 퍼트리는 역할을 한다.

 

구상나무는 우리나라 기후 같으면 높고, 낮고, 춥고, 더운 것을 크게 가리지 않지만 구상나무가 정상 가까운 높은 곳에서 군락을 이루며 잘 자라는 것은 햇볕을 많이 필요로 하는데 낮은 곳에서는 다른 속성수와 키 경쟁에 이길 수 없어서 햇볕을 많이 받을 수 없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조경수로 심어서 사람이 잘 돌보아 주게 되면 우리나라 어느 곳에서나 잘 자랄 수 있다.

 

구상나무가 가장 많이 자라고 있는 곳은 한라산이다. 해발 1,500m 쯤에서부터 정상까지 약 800만평의 넓은 면적에 분포되어 자라고 있다. 어느 해 인가 큰 눈과 심한 추위 피해로 큰 나무가 많이 죽어 하얀 고사목이 앙상하게 남은 자리에 한라산 특산인 털진달래가 무성하여 진달래꽃이 필 때면 서로 어우러져 장관을 이룬다고 한다.

 

지리산 세석평전의 대 철쭉 군락 사이에도 군데군데 구상나무가 섞여 있어 철쭉꽃이 피는 계절이면 한층 더 운치를 더해준다. 지리산 장터목 대피소에서 천왕봉으로 가는 중에 산 봉인지 평전인지 구분하기 힘든 구릉 같은 곳을 사람들은 옛날 하늘의 제석천(帝釋天)에게 제사를 지내던 제석단이 있던 곳이라 하여 제석봉이라 부른다.

 

이 제석봉 넓은 구역에 크고 작은 고사목이 서 있어 천왕봉 위로 뜨는 해와 함께 찍은 사진이 곧잘 사진 콘테스트에서 입상하곤 한다. 하얀 줄기와 좌우로 뻗은 하얀 가지에 막 솟아오른 달덩이 같은 붉은 해가 걸리거나 눈부신 햇살이 비치는 감동적인 풍경이다.

 

이 사진에 찍힌 고사목이 키가 큰 것은 젓나무, 좀 적은 것은 구상나무 고사목이다. 해발 1,800m의 높은 곳에 태어나서 제 수명을 다하고 죽어서 이렇게 고사목으로 서 있다면 오죽이나 멋있고 축복 받을 일이겠는가 마는 인간의 끝없는 욕심 때문에 비명황사(非命橫死)한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멋도 감동도 싹 살아지고 만다. 내력을 들어보면 이러하다.

 

자유당정권 말기 당시 농림부장관의 삼촌이라는 자가 제석단에 제재소를 차려 놓고 일대의 질 좋은 나무들을 도벌하여 하산하기 좋도록 제재하여 내려다 팔았는데 이것이 어떤 경로를 통하여 국회에서 말썽이 되고 조사단이 구성되자 증거인멸을 위하여 이곳에 고의로 불을 질러 엉뚱하게도 일대에 울창했던 구상나무와 젓나무가 전소하고 40년이 지난 지금까지 횡사목으로 앙상하게 서 있는 것이다.

 

지리산국립공원 관리공단 측은 제석봉에 간략하게 횡사목의 내력을 공시한 간판을 세우고, 다시 구상나무 묘목을 심고 목책을 설치하여 보호하면서 옛날을 회복하려 하지만 어느 세월에?--- 가녀린 묘목을 보고 있노라면 절로 한숨이 나오고,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제석봉 횡사목과 야생화 화원

1992년 여름 우리 내외가 내가 근무하던 국과연 산악회의 젊은 회원들 틈에 끼어 한라산을 올랐다. 어리목에서 윗세오름대피소에 이르러 기후 불순으로 정상에 오르는 것이 통제되어 그 곳에서 사진을 찍고 내려 온 적이 있다.

 

윗세오름대피소는 해발 1700m가 넘는 곳인데 주위에 싱싱하고 힘찬 구상나무가 무성하게 자라고 있어 그 아름다움 풍경은 10년이 지난 지금도 잊어지지 않는다.

 

 

 

 

 

 

 

 


한라산 윗세오름대피소 주변의 구상나무 군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