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닥터지바고’연상시키는 숲속의 귀족(貴族). 가인(佳人)

자작나무

 

 

 

 

 

 

 

 

 

 

 

 

 


중국 연길에서 백두산으로 가는 길목의 마지막 마을 이도백하(二道白河)에서 장백폭포 쪽이나 서백두

쪽이나를 막론하고 길이 가르는 틈새만 있을 뿐 양 옆은 차창으로 하늘을 볼 수 없도록 쭉쭉 뻗은 원시림

의 나무들이 시야를 가린다.

 

백두산의 원시림 속에 들어섰는가 싶으면 누가 먼저 라 할 것도 없이 이구동성으로 영화 ‘영화 닥터지바고’를 입에 올린다. 차이코프스키 음악이 은은하게 깔리고 여인의 하얀 종아리처럼 미끈하게 뻗은 자작나무 숲길에 두 연인을 태운 마차가 뽀얀 먼지를 남기며 달리는 풍경! 감수성이 예민한 나이에 본 영화라서 그런지 몰라도 그 장면이 사십 여년이 지난 지금도 기억 속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숲 속의 귀족(貴族), 숲 속의 가인(佳人), 나무의 여왕(女王) 등 온갖 찬사가 다 붙은 자작나무는 이렇게 영화예술작품에도 큰 몫을 하고 있는 것이다.

 

자작나무는 한자로 (樺) 또는 화(華)라고 쓴다. 우리가 결혼하는 것을 ‘화촉(華燭)을 밝힌다’고 하는 것은 전깃불은 물론 양초도 귀한 시절에 자작나무 껍질에 불을 붙여 신방을 밝혀 신혼부부의 행복을 기원한데서 온 말이다. 또 백두산 장백폭포 입구의 집단관광시설지구에 중국 호텔 이름에 ‘악화빈관(岳樺賓館)’이 있는데 이는 이 곳에 많이 자라며 주인노릇을 하는 자작나무를 주제로 한 이름이다.

 

자작나무 수피(樹皮)의 겉면은 흰색의 기름기 많은 밀납 가루 같은 것으로 덮여 있고 안쪽은 갈색으로 종잇장처럼 얇게 벗겨지며 불에 잘 타고 습기에 강하여 쓰임새가 많다. 자작나무 껍질은 옛날에 종이 역할을 하였다. 우리나라, 중국, 일본 등지에서 자작나무 껍질에 부처의 모습을 그리거나 불경을 적어 후세까지 전했다고 한다. 또 자작나무 껍질을 태워 그 숯으로 그림을 그렸기 때문에 백서(白書)라 했고, 가죽을 까맣게 염색하는데도 썼다. 그래서 그림도구나 염료를 파는 가개를 화피전(樺皮廛)이라 했다.

 

백두산 근처에 많은 너와집은 대개 통나무집에 자작나무 껍질로 지붕을 덮고 바람에 날리지 않도록 돌을 얹었는데 자작나무 껍질이 오래도록 썩지 않기 때문이다.

 

간혹 죽어서 넘어진 자작나무를 밟았다가 보기에 멀쩡한 나무가 황당하게 부러지는 경우를 당하는데 그것은 나무 속은 이미 썩어버렸지만 껍질은 온전히 남아서 멀쩡하게 보인 것이다. 또 태평양전쟁 때 만주를 침략한 일본 군인들이 군화 뒤창의 보급이 잘 안될 때 자작나무 껍질로 대용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자작나무 숲이 많은 북부지방 사람들이 자작나무를 ‘보티나무’라고도 하면서 ‘보티나무 집에서 태어나, 보티나무로 살고, 보티나무에 죽는다’는 말을 하는데 그것은 자작나무 껍질로 이은 너와집에서 태어나, 자작나무 장작으로 불을 지피고, 자작나무 껍질로 불을 밝히며 살다가, 죽어서 관 대신 자작나무 껍질에 쌓여, 자작나무 숲속에 묻힌다는 뜻이다. 마치 소나무가 많은 남쪽 사람들이 소나무와 맺고 있는 관계와 같다.

 

자작나무는 박달나무와 형제인 만큼 목재가 아주 단단하고 조직이 치밀하여 좀이 슬지 않고 변질되지 않아서 건축재, 조각재 등으로 많이 이용된다. 해인사 팔만대장경판의 일부도 자작나무이고, 도산서원에 있는 목판 재료도 자작나무이며 경주 천마총에서 출토된 그림도 자작나무에 그린 것이라 한다.

 

고로쇠나무나 거제수나무처럼 자작나무도 곡우(穀雨: 일년 24절기의 하나, 청명 다음, 음력 3월 초, 양력 4월 20일 경) 때 수액을 채취하는 나무다. 이 수액은 보통 약으로 마시지만 북한에서는 이 수액으로 술을 담그는데 아무리 많이 마셔도 1시간이면 깨끗하게 술이 깨는 명주라고 한다. 또 사우나의 본고장 핀랜드에서는 사우나탕 안에 자작나무 가지를 놓아두고 이것으로 팔다리와 어깨를 두드리면 혈액순환이 좋아진다고 한다.

 

자작나무는 북쪽지방에 적응한 나무로서 남한에는 조경수로 개발하여 공원, 아파트단지 등에 심은 것 외에 자생하는 것은 없다. 자작나무는 공기가 맑고 깨끗한 것을 좋아하는 속성이 있어 공해가 심한 대도시 근처에 심은 것은 성장이 왕성하지 못하다.

 

자작나무가 깊고 호젓한 산중을 좋아하는 속성과 연관된 서양의 전설이 있다.

 

옛날 징기스칸이 유럽 전역을 휩쓸고 있을 때 유럽 어느 왕국에 왕의 미움을 사서 왕세자가 되지 못하고 쫓겨나 그 정체를 숨기고 살다가 징기스칸 편에 붙어 유럽군에 결정적으로 불리하게 도와준 왕자가 있었다.

 

전쟁이 끝난 후 이 사실을 알게 된 유럽의 각 왕들은 이 왕자를 잡으러 나섰다. 왕자는 이를 피하여 북쪽으로 도망치다가 더 이상 도망갈 수 없음을 알았다.  왕자는 땅에 큰 구덩이를 파고 흰 명주로 자신의 몸을 친친 동여 맨 다음 구덩이에 몸을 던져 죽고 말았다.

 

이듬해 봄에 왕자가 묻힌 곳에서 한 그루의 나무가 돋아 났는데 몸(줄기)에는 벗겨도 계속 벗겨지는 흰 비단 껍질을 겹겹이 둘렀는데 사람들은 이를 자작나무라 불렀다.

 

그래서 자작나무는 왕자의 넋이 나무가 되었기 때문에 사람의 눈에 띄지 않는 깊은 산 속에서 조용히 살고싶어 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