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에 하얀 눈 얹은 겨울나무, 크리스마스트리

젓나무

 

 

 

 

 

 

 

 

 

 

 

 

 

 

 

 


젓나무는 얼마 전까지도‘전나무’라 불렀다. 이 나무의 열매에서 나오는 하얀 액을 옛날부터 ‘젓’이라 하는데 잣이 열리는 나무를 ‘잣나무’라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젓이 나는 이 나무를 ‘젓나무’라 하는 것이 옳다 하여 바로 잡은 이름이다.

서울 대공원 젓나무 이름표

 

















젓나무도 여러 가지 별칭이 있다. 한자어로 종목(종木), 회목(檜木)이라 했고, 옆으로 뻗은 가지에 침엽의 잎이 촘촘히 달린 모양이 마치‘바람을 가르면서 갈기를 휘날리며 질주하는 역마(驛馬: 鋪馬) 같다’하여 포마송(鋪馬松)이라는 재미있는 이름도 얻었고, 수피가 흰빛이라 하여 백송(白松)이라고도 한 적이 있으나, 백송은 소나무의 일종에 백송이 있기 때문에 지금은 이렇게 부르지 않는다.

 

젓나무는 여름에도 쭉 뻗어 올라간 큰 키에 구과(球果: 솔방울과 같이 생긴 열매의 총칭)를 높이 치켜올려 맺은 열매를 보라는 듯 자랑하는 것 같기도 하고, 이 열매가 잘 영글게 해 달라고 하늘에 기원하는 듯 하기도 하다. 마치 아프리카 어느 종족이 아기가 태어나면 알몸의 갓난애를 하늘을 향해 높이 치켜드는 풍습과도 비교가 된다.

 

그러나 젓나무는 뭐니 뭐니 해도 겨울나무다. 온 산을 꽉 메웠던 참나무들이 잎을 다 떨어뜨리고 앙상한 가지만 남아 조용히 동면에 들어갔을 때 드문드문 자란 젓나무는 혈기 왕성하게 큰 키를 자랑하며 뽐내고 서 있다. 거기에 흰 눈이라도 내려 파란 가지에 하얀 눈송이를 얹고 있으면 정말 멋있고 낭만적이다.

 

젓나무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것은 없지만 절간, 성황당, 동네어귀 등 곳곳에 노거수의 단목(單木)이나 수풀을 이루고 있는 것을 많이 볼 수 있다.

오대산 월정사 젓나무 숲은 전국적으로 유명하고,

해인사의 학사대에 있는 젓나무는 신라 때 유학자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선생이 짚고 있던 지팡이를 꽂은 것이 살아서 자란 것이란 전설이 있고,

양양 명주사의 젓나무는 불공 드리러 온 불도들이 이 나무의 웅장함에 감복하여 부처보다 이 나무에 기도를 드린다고 한다.

전남 화순에는 신라 진흥왕 때 진각국사가 심은 것이라는 1,200살 난 젓나무가 있고,

고흥에 있는 젓나무는 치성을 드리면 영험이 있다고 알려져 임진왜란 때는 의병들이 출전할 때 이 나무에 승전을 빌고 출전하였다고 한다.

 

내 고향에도 대야동이라는 마을 입구에 어릴 때 보기에는 세상에서 제일 높은 나무 같이 생각되는 젓나무가 있었다. 어머니가 동네 아주머니들과 함께 큰 산에 산나물을 뜯으러 갈 때면 이 젓나무 밑까지 마중나가 여기서 나물 보따리를 받아 지게에 지고 오곤 하였다.

 

작년인가 집사람과 함께 드리이브 하며 가 보았더니 모진 세월과 풍파에 고사한 가지들을 단 채 힘겹게 서 있었다. 사람이 늙으면 꼬부라지듯 이 나무도 그 세월 속에 오그라진 듯도 하고, 내가 넓은 세상을 보았기 때문에 옛날보다 작아 보인 것 같기도 하다.

 

2000년 8월 초 내가 다닌 부항초등학교 동창회에서 교정에 선 여섯 그루의 젓나무가 토의 의제에 오른 적이 있었다. 내용인즉

 

젓나무가 교실 앞에 가까이 있어서 교실에 그늘을 드리워 겨울에 춥고, 난방비가 많이 들기 때문에 베어야겠다는 학교측 요구를 동창회에서 어떻게 답 할 것인가? 하는 문제였다.

 

교정의 젓나무는 나와 이 학교와 나이가 같은 오래된 나무들이다. 일제로부터 해방되기 6년전인 1939년 학교를 개교 할 때 심은 것이니 60년이 넘은 나무다.

 

웅성거리는 여론은 베는 쪽으로 기울어지는 듯 할 때 나는 자칫 더 볼 수 없을 지도 모르는 하늘 높이 치켜든 구과(球果)를 자꾸만 쳐다보았다. 젊은 층의 열 띈 반론으로 베지 않도록 된 것은 천만다행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 이후 동창회에 참석하지 못하고 2002년 겨울 어느날 휘림이와 둘째 휘수롤 데리고 고향에 온 아들 내외와 함께 할아버지의 모교를 보여 줄 생각에 학교에 들렸는데 교정에 서 있던 여섯 그루의 전나무는 보이지 않았다. 결국 베어버린 모양이다. 자연과 전통을 함께 모르는 학교에서 어린 학생들이 무엇을 배울 것인가?

 

젓나무를 크리스마스트리로 많이 쓰게 된 것은 그 모양이 수려하기도 하지만 독실한 기독교 민족인 켈트족이 젓나무를 신성시 한데서 유래된 아름다운 이야기가 있다.

 

옛날 북유럽 한 숲 가까이 나무꾼과 예쁘고 마음씨 착한  딸이 살았다. 딸은 숲을 몹시 좋아하여 늘 숲에 들어가서 숲 속의 요정들과 친구가 되어 놀았다. 추운 겨울이 와서 딸이 숲 속에 가지 못하게 되자 매일 숲 속의 요정들을 위하여 문밖 젓나무에 촛불을 켜 두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무꾼이 숲 속에서 길을 잃고, 날이 어두워져 헤매게 되었을 때 어느 젓나무에 불빛이 보여 그 불빛을 따라가니 그 불빛은 사라지고 더 멀리 있는 젓나무에 불빛이 나타나기를 반복해서 그 불빛을 계속 따라가니 결국 딸이 켜둔 문밖의 젓나무에 도착해서 위험을 면했다는 것이다.

 

숲 속 젓나무의 불빛은 딸의 친구인 요정들이 나무꾼을 안전하게 집으로 인도하기 위하여 켠 불빛이다. 그때부터 크리스마스 이브에 젓나무에 촛불과 함께 반짝이는 장식을 하여 새로 태어난 아기 예수를 영접한다는 뜻으로 삼았다 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