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님의 부채 모양 열매, 세계 유일의 우리나라 특산

미선(尾扇)나무

 

 

 

 

 

 

 

 

 

 

 

 

 


왕을 가운데 두고 양 옆에 두 시녀가  자루가 긴 부채를 들고 섰는 연속극의 장면을 자주 접하는데 그 부채가 미선(尾扇)이다.
'미선(尾扇)'이란 '꼬리가 달린 부채'라는 뜻인데, 시녀가 잡고 있는 손잡이 부분을 꼬리(尾)로 표현한 것이다.
미선나무는 열매가 미선을 닮아서 얻은 재미있는 나무 이름이다.

 

미선나무는 우리나라에서만 있는 세계 유일(唯一)의 나무이고,  수수꽃다리속, 개나리속 등과 함께 물푸레나무과 미선나무속에 속하는 나무다. 다른 속에는 각각 여러 나무들이 있지만 미선나무속에는 오직 하나밖에 없는 또한 유일(唯一)한 나무다.

 

미선나무는 꽃 모양은 개나리꽃을 닮았지만 좀 작고, 네 개의 길쭉한 꽃잎은 하얀 색, 수술은 노란색으로 개나리보다 일찍 핀다. 그래서 서양 사람들은 미선나무 꽃 모양이 개나리꽃을 닮았다 하여 ‘하얀개나리’라고 부른다고 한다.

 

미선나무 꽃은 한마디에 적게는 세 개, 많게는 열 개 씩 모여 달리는데 이러한 꽃 무더기가 일정한 간격으로 층을 이루어 핀다. 미선나무 꽃은 화사하게 고울 뿐만 아니라 향기가 그윽하다.

 

미선나무는 기본적으로 흰 꽃이 피지만 조금씩 다르게 나타나는 것이 있기 때문에 따로 품종 이름을 붙여 놓았다.

      미선나무: 기본 종으로 흰색 꽃이 핀다.

    분홍미선: 꽃이 연분홍색.

    상아미선: 꽃이 상아색.

    푸른미선: 꽃받침이 푸른색.

 

꽃이 지면서 돋아나는 길이가 세끼손가락 만한 잎은 가자 양쪽으로 사이 좋게 마주보며 각각 일렬로 정렬하여 달리기 때문에 보기엔 마치 잎이 두 줄로 나란히 선 것 같다.

 

미선나무의 학명 아벨리오필럼 디스티쿰(Abeliophyllum distichum)의 종소명 디스티쿰은 ‘두 줄로 나란히’란 뜻을 가지고 있어 잎이 달리는 모양에서 비롯되었다.

 

우리나라에서 미선나무가 처음 발견된 것은 일제 때인 1919년인데 이미 유럽에는 1924년, 일본에는 1930년에 건너가 그 곳에서 아름다운 정원수로 평가받아 왔다고 한다.

 

옛날에는 미선나무를 ‘조선육도목(朝鮮六道木)’이라 하였던 것으로 보아 옛날에는 우리나라 8도 중 6개 도(道)에서 자랐던 것으로 추정하나 지금은 우리나라에서도 미선나무가 자라는 곳은 그리 많지 않다. 충북 진천군, 괴산군, 영동군 등으로 워낙 귀한 나무라서 자생지 자체를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괴산송덕리(147호): 1955년에 발견되어 1958년에 지정되었다.

   괴산추점리(220호): 급경사 산록에 넓게 자리잡고 있다.

   괴산율지리(221호): 마을에서 가까운 야산 중턱에 있다.

   영동읍 외곽 야산 용두봉(364호): 괴산의 미선나무보다 훨씬 상태가 좋고, 또 자생지의 가치가 인정되어 1990년에 지정되었다.

  전북 내변산 직소천 유역에 발견된 집단 자생지는 천연기념물 지정을 위한 심사에 올랐으나 자생지 여부에 관한 논란이 있어  지정되지 않고 있다가 부안 땜 만수위보다 35m나 아래라 수몰되고 말았다.

  진천의 초평리에도 일찍이 미선나무 자생지가 발견되어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여 보호수 간판을 세우자 관심도 없던 사람들이 갑자기 귀한 것이라는 바람에 캐다가 울타리도 만드는 등 마지막 남은 큰 나무까지 캐어가 나무는 모두 사라지고 천연기념물 표지판만 남았다가 결국 해제하고 말았다 한다.

  괴산의 군자산 자락에도 곳곳에 미선나무가 자랐는데 미선나무의 관상적 가치가 알려지면서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이 그루 당 10원씩에 사 모으는 바람에 씨를 말려 놓았다고 한다.

 

이렇게 나무에 대한 몰지각한 사람들만 있었다면 세계 유일의 미선나무 자생지의 나라에 미선나무는 벌써 사라졌을 것이다. 1975년 이창복교수가 자연보호협회의 도움을 받아 미선나무 종자를 구하여 싹을 틔우고, 삽목으로 많은 묘목을 생산하여 자생지 근처 초등학교마다 심어서 교육을 통한 계몽을 하는 한편 나무가 사라져 간 자생지에 다시 옮겨 심는 작업을 하는 등 각고의 노력 끝에 미선나무는 사라질 위기를 면하였다고 한다.

 

1980년에 들어와서는 특산식물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면서 괴산군 사람들은 미선나무보존회를 만들어 미선나무 자생지를 보호하는데 현지 주민이 앞장서게 되어 미선나무의 보존문제는 한시름 덜게 되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