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명 고작 하루의 꽃이 여름부터 가을까지 무궁무진 피고 지는

무궁화(無窮花)

 

 

 

 

 

 

 

 

 

 

 

 

 

 

 


한 여름이 지나고 가을 기운이 돈다 싶으면 우리나라 삼천리 방방곡곡에 우리나라 꽃 무궁화가 피지만 정작 무궁화에 대하여 알고 있는 것은 별로 없다. 꽃을 오래 동안 볼 수 있어서 배롱나무를 백일홍(百日紅)이라 한 것처럼 무궁화(無窮花)도 오래 동안 꽃을 볼 수 있기 때문에 얻은 이름이다.

 

성삼문의 시조에 백일홍 꽃 한 송이가 하루 지나면 떨어진다고 읊고 있듯이 무궁화도 꽃 한 송이의 수명은 고작 하루이다. 아침에 꽃을 피웠다가 저녁 때 꽃 잎을 말아 닫고는 곧 져버린다. 이렇게 피고지고를 여름에 시작하여 가을까지 이어지니 그 끈기가 우리나라 꽃으로 삼게 만든 것이다.

 

무궁화가 지금은 우리 나라꽃으로 대접을 받아 국기봉도 무궁화 봉오리, 정부와 국회의 표장이 무궁화로 하고 있지만 우리 민족의 역사 만큼이나 수난을 많이 당한 꽃이다. 특히 일제의 우리민족말살 정책의 일환으로 무궁화도 함께 말살하려 했던 것이다. 일제 이전에 그 어느 때도 무궁화를 우리 나라꽃으로 정한 바는 없는데 일제는 관공서나 학교는 물론 보이는 대로 무궁화를 뽑아 불태웠다.

 

이도 부족해서 ‘무궁화의 꽃가루가 눈에 들어가 눈병이 나고, 살에 닿으면 부스럼이 나는 부스럼꽃나무’라는 헛소문까지 퍼트려 사람들로 하여금 무궁화를 꺼리게 하여 나중에는 무궁화가 뒷간 울타리나 모퉁이에나 심는 천대 받은 꽃이 되었다 한다.

 

일제의 무궁화에 대한 박해를 빼고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무궁화는 좋은 인상을 주는 식물로 인식되어 왔다.

   중국: 군자의 기상을 나타내는데 으뜸인 꽃으로 칭송된다.

   서양: 그들의 이상인 ‘샤론의 장미’라 부르며 사랑한다.

   하와이: 주화(州花)로 지정되었으며(붉은 색 꽃술이 유난히 긴 꽃으로 원산지는 중국이다)

   조선조: 다홍, 노랑, 보라색의 무궁화로 과거에 급제한 사람의 머리(모자)에 꽂아주는 어사화(御史花)로 삼았으며, 궁중에 잔치가 있는 경사스런 날에는 모든 신하들이 무궁화를 꽂았는데 이를 진찬화(珍饌花)라 불렀다 한다.

 

중국에서는 무궁화에 얽힌 슬픈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고 한다.

옛날 중국의 어느 마을에 앞을 못 보는 남편을 극진히 사랑하고 보살피며 살아가는 아름다운 여인이 있었는데 이 여인의 미색에 반한 이 고을 성주가 여러 번 꾀었으나 넘어가지 않자 여인을 강제 납치하여 청을 들어 줄 것을 강요하였으나 거절하자 화가 난 성주는 여인을 죽여버렸다.

 

이 여인을 불쌍하게 여긴 마을 사람들은 여인의 유언대로 자기집 마당에 묻어주었는데 그 자리에서 나무가 나서 자라 꽃이 피고, 점점 번성하여 그 집을 둘러싸 버렸다. 사람들은 그 여인이 남편을 보호하기 위해 울타리를 친 것이라 하면서 ‘번리화(藩籬花)’즉 ‘울타리 꽃’이라 부르고, 이 꽃의 속이 한결같이 붉은 것은 그녀의 일편단심(一片丹心)을 나타내는 것이라 하였다.

 

그러나 근래에 와서 무궁화가 우리 나라꽃으로 적합한지 여부에 대한 논란이 있는데 적합하지 않다고 주장하는 측의 이유는

전국적으로 분포하지 않는다는 것

자생지가 인도로 밝혀진 외래종이라는 것

진딧물이 많이 끼고, 꽃이 단명 한다는 것

봄에 싹이 늦게 트고, 휴면기간이 긴 태만한 식물이라는 것

꽃이 시들어 떨어지면 추하다는 것 등을 들고 있다고 한다.

 

이에 대한 반론 즉 무궁화가 나라 꽃으로 적합하다고 주장하는 이유로는

우리 민족과 어려움을 함께 한 민족의 얼이 담긴 꽃이라는 것

은근하고 겸손하며 아침에 피어 저녁에 지는 것은 영고무상(榮枯無常: 흥하고 쇠함, 생과 사의 덧없음)한 인생의 원리를 깨우쳐 준다는 것

여름부터 가을까지 계속 피어 군자의 이상과 지칠 줄 모르는 우리 민족성을 잘 나타낸다는 것

진딧물이 많이 끼는 것은 육종으로도 가능하고, 실제 장미를 기르는 정성의 반만 기우려도 진딧물 문제는 깨끗이 해결할 수 있다는 것 등이다.

 

무궁화의 학명이 히비스커스 시리아쿠스(Hibiscus syriacus)로 이 학명대로하면 중동의 시리아 원산이고 이집트의 아름다운 신 ‘히비스’를 닮은 꽃을 피운다는 뜻이지만 정작 중동지방에서는 무궁화를 찾아 볼 수 없고 문헌상으로는 인도의 북부와 중국 북부지방에 걸쳐 자란다고 되어있다 한다.

 

우리나라에도 무궁화의 자생지라 할 수 있는 곳이 발견된 것은 없다고 한다. 그러나 무궁화가 우리나라와 관련된 기록으로

중국의 고전으로 지리와 풍속이 기록된 「산해경(山海經)」이란 책에 ‘동방에 있는 군자의 나라에는 사람들이 사양하기를 좋아하고, 다투기를 피하며 겸허한데 그 땅에 무궁화가 많아 아침에 피어 저녁에 진다’고 기록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를 이르는 별칭 하나인 근계(槿系)의 이름으로 槿花鄕(근화향),  槿原(근원),  槿域(근역),  槿邦(근방) 등으로 불려져 왔는데 이 모두 무궁화를 지칭하는 이름이다.

 우리나라의 가장 오래된 기록으로는 신라의 것으로 신라를 근화향(槿花鄕)’ 즉 ‘무궁화의 고장’이라 불렀다는 기록이다. 신라 때 외국(중국인 듯)에 보내는 문서에 신라 스스로를 근화향이라 하였으니 신라 때부터 무궁화를 나라꽃으로 삼은 것이 아닌가 하는 추정도 있다.

그 외에도 무궁화가 우리나라에 자란다는 기록은 고려 때(1168-1241) 학자이며 문장가인 이규보 문집에 무궁화가 한자로 ‘無窮花’냐, ‘無宮花’냐 하는 논란이 적혀 있다고 한다.

이 기록으로 보면 무궁화의 이름은 우리말 ‘무궁화’가 먼저 생기고 이에 적합한 한자어를 찾는 과정에서 두 가지 이름이 논란이 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무궁(無宮)이란 말은 중국 당나라 때 현종이 양귀비의 환심을 사려고 전국에 꽃나무 모아 궁안에 심어 꽃을 피웠는데 오직 이 꽃만 꽃을 피우지 않아서 화가 나 없애버려서 ‘궁 안에는 없다’고 하여 ‘무궁(無宮)’이라 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해왔다고 한다.

조선조에는 무궁화를 목근(木槿) 또는 순화(舜花)라 불렀다 한다.

 

무궁화가 전국적으로 퍼지고 나라꽃으로 관심이 많아지면서 100여종이 넘는 품종이 개발되었기 때문에 식물학 전문가들도 이들을 다 구별하기가 어려울 지경이 되어 이들 모두를 나라꽃이라 할 것인가 하는 논란이 일어 정부에서는 나라꽃이 될 수 있는 기본종의 유형을 규정하였다.

 

우리나라꽃 무궁화는 ‘홑 꽃으로 적단심(赤丹心) 즉 안쪽은 붉고, 꽃잎의 끝쪽 대부분은 연분홍에 연한 자주색이 섞여야 한다’고 설정하였다.

이렇게 설정한 우리나라꽃 무궁화의 의미는

중심부의 붉은 색은 정열과 사랑을 나타내고,

붉은 색이 꽃잎으로 퍼져 나가는 것은 나라의 발전과 번영을 상징하며,

연분홍 꽃잎은 순수와 정열 그리고 단일(單一)을 뜻한다.

 

개발된 많은 품종가운데 ‘화랑’, ‘영광’, ‘산처녀’, ‘새아침’, ‘설악’, ‘첫사랑’ 등의 꽃이 특히 아름다운데 생육이 좋고, 병충해에도 강하며 국립환경영구원 실험 결과 ‘산처녀’, ‘새아침’, ‘설악’등이 특히 공해에 강하다고 한다.

 

무궁화는 약용으로도 알려져 왔는데

고대 그리스어로 무궁화를 ‘약용장미’불렀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동의보감 등 많은 의서에 

-수피를 ‘목근피(木槿皮)’라 부르며 이질, 옴 등에 특효가 있고,    

-열매를 ‘목근자(木槿子)’라 부르며 담천, 해수, 편두통에 좋고,

   -꽃은 ‘목근화(木槿花)’라 부르며 역시 이질, 복통등에 좋고,

   -잎은 종기에 쓴다고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