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거수 쉼터 주고, 마을 안녕 주는 수호신 

느티나무

 

 

 

 

 

 

 

 

 

 

 


누구나 고향을 생각할 때면 고향마을 어귀에 짙은 그늘을 드리우고 서 있는 거구의 정자목(亭子木)을 떠올릴 것이다. 또 물 좋고 바위 좋은 명승지에 산뜻하게 지은 정자 곁에는 거의 예외 없이 큼직한 나무가 그늘을 드리우고 있게 마련이다. 이런 정자목이 간혹 낯선 나무도 있지만 십 중 팔구는 느티나무다. 그래서 보통 사람들에게 느티나무는 정자나무로 더 많이 불려진다.

 

느티나무의 한자어 이름은 규목(槻木)인데 보통 느티나무를 괴목(槐木)이라 하는 것은 홰나무를 잘못 알고 말하는 것이다. 느티나무 중에서  

잎이 길죽한 것을 긴잎느티나무라 하고,

느릅나무처럼 둥근 것을 둥근느티나무라 한다.

 

느티나무는 장수목(長壽木)이다. 그래서 오래된 마을이면 대부분 느티나무 정자목을 볼 수 있는 것이다. 또 마을 정자나무에는 청홍색 천 조각을 매 단 금줄이 감겨져 있고, 한 해의 동네 안녕을 기원하는 동제(洞祭)를 이 곳에서 지내는 곳이 많다. 이렇게 느티나무가 장수를 누릴 수 있었던 것은 나무 자체도 장수목이고, 정자나무에는 으레‘가지를 꺾거나 자르면 화를 입는다’는 전설이 있거나 그러한 생각이 우리 조상들에게 뿌리깊게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에 인재(人災)를 입지 않고 오래 살 수 있었다고 생각된다.

 

유교적 상제례(喪祭禮)에서 사람이 죽은 후에 지내는 제사를 열거하면 발인제(發引祭), 개토제(開土祭), 평토제(平土祭), 우제(虞祭: 初虞, 再虞, 三虞), 졸곡제(卒哭祭), 소상제(小祥祭), 대상제(大祥祭), 기제(忌祭), 묘제(墓祭), 담제(禫祭), 동제(洞祭) 등이 있다.

 

그 중에 동제(洞祭)는 성씨와 관계없이 온 동네 사람이 모여 마을 전체의 안녕을 기원하는 제사이다. 마을의 수호신이며, 동네 쉼터를 주는 정자나무 아래서 옛날 이 동네에 살다가 죽어서 이 동네 주변에 묻힌 모든 신들에게 제사를 올리는 것이다.

 

느티나무 목재는 우리나라에서 제일로 쳐 왔다. 무늬와 색상이 아름답고 중후하여 가구를 만들면 고급스런 맛이 난다. 그래서 조선시대에는 소나무와 느티나무를 비교한 말이 있다. ‘서민은 소나무로 지은 집에 소나무 가구를 놓고 살다가 죽어서 소나무 관속에 들어가 묻힌다. 그러나 양반은 느티나무로 지은 집에 느티나무 가구를 놓고 살다가 느티나무 관속에 들어가 묻힌다’하였다.

 

소나무는 서민의 삶과 직결되고 느티나무는 귀족의 삶과 직결된다는 뜻이며 한마디로 느티나무는 목재로서 고급이라는 말이다. 이를 입증하는 몇 가지 예를 들어 보면

  - 신라 천마총이나 가야 고분에서 나온 관이 느티나무이고,

  - 유명한 고궁이나 사찰의 기둥도 느티나무이며,

  - 지금도 호화주택 시비가 이는 데는 내장재로 느티나무를 쓴 것이 많다.

 

느티나무가 국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것은 13점으로 소나무(31), 은행나무(19)에 이어 세 번째이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느티나무는 다음과 같다.

경기도 양주 남면 황방리 느티나무(제   278호)(수령 850년)

강원도 원주 흥업면 대안리 느티나무(제   호)

강원도 삼척 도계읍 도계리 느티나무(제95호)

전북 남원 보절면 진기리 느티나무(제281호)(수령 600년)  

전북 김제 봉남면 행촌리 느티나무(제280호)(수령 600년)  

전남 담양 대전면 대치리 느티나무(제284호)(수령 600년)  

전남 해남 서면 월골리 느티나무(제   호)

경북 안동 녹전면 사신리 느티나무(제275호)(수령 700년)  

경북 청송 파천면 신기리 느티나무(제192호)(수령 550년)  

경북 영주 안정면 단촌리 느티나무(제273호)(수령500년) 

경북 순흥면 태장리 느티나무(제274호)(수령 450년)

경남 남해 고현면 갈화리 느티나무(제276호)(수령 500년)

제주도 남제주 표선면 성읍리 느티나무((제161호)(수령 1,000년) 등이다

 

- 삼척 도계읍의 느티나무는1962년에 맨 먼저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긴잎느티나무 서낭당 나무로서 마을의 안녕과 번영, 개안의 행운을 기원하는 대상이 되어 왔다. 고려 말에 많은 선비들이 조정에서의 화를 피하여 이 나무로 피신한 적이 있다고 전하며, 조선조 때에는 과거를 보러 가는 사람이 이 나무에 빌고 가서 급제하였다는 전설이 있어 요즈음에도 입시 철이면 많은 학부모들이 찾아온다. 어느 해인가 이 나무가 학교 교정에 있어 치성 드리기가 불편하다 하여 마을 사람들이 서낭나무를 다른 나무로 바꾸려 하자 나무가 노하여 천둥 번개가 쳐서 중지하였다고 한다.

 

- 남원 보절면의 느티나무는 조선 세조 때 우공이라는 무장이 어린 시절에 뒷산에서 맨손으로 큰 나무를 뽑아 와서 마을 앞에 심어 놓고 ‘잘 보호하지 않으면 가만 두지 않겠다’ 말을 남기고 어디로인가 떠났는데 그 뒤 우공은 이 나무의 공덕으로 수군절도사에 올랐다 한다. 후손들은 지금도 극진히 보호하고 있으며 사당을 지어 매년 한식날에 제사를 올린다고 한다.

 

- 김제 봉남면의 느티나무는 약 5m 높이에 가지가 부러지고 밑둥치에 큰 구멍이 있으며 옆에 큰 바위가 놓여 있는데 이 바위가 조금만 더 높았어도 이 마을에서 역적이 태어날 뻔했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동네사람들이 이 나무를 당산이라 부르며 신목으로 숭상하고 정월 대보름에는 줄기에 동아줄을 매고 온 동네사람들이 당기면서 화합을 다진다고 한다.

 

- 남해 고현면 느티나무는 500년 전에 이 마을 부농 유동지란 사람이 심은 것인데 그 동안 정자나무로서, 마을의 안녕을 지켜주는 신목으로서 정월 보름에 동제를 올려 왔고 요즈음은 마을 사람들이 동네 일을 의논하는 민주광장도 되고 경로잔치도 벌리는 장소를 제공해 주고 있다.

 

천연기념물의 1, 2위 자리는 소나무와 은행나무에 빼앗겼지만 그냥 보호되고 있는 노거수는 단연 느티나무가 단연 1위다. 웬만한 동네 어귀에는 하다 못해 동네 이장(里長) 담당으로라도 지정된 보호수라는 안내 간판이 세워져 있다. 또 우리나라에 1,000년 이상 된 나무가 총 64 그루로 집계되고 있는데 그 중 25 그루가 느티나무로 1위이다.

 

- 전주에서 남원으로 가는 도중에 있는 임실군 오수면 소재지인 오수(獒樹)라는 마을의 이름과 충직한 개와 느티나무가 관련된 이야기가 고려시대 최자의 보한집(補閑集)에 실려 전해져 오고 있다.

 

옛날 이 고을에 개를 자식처럼 사랑하는 한 노인이 살았다. 어느 봄날 개와 함께 장에 갔다 오다가 장터에서 마신 술이 취하고 먼 길을 걸었기 때문에 피곤하여 좀 쉬어가려고 잔디밭에 누었는데 그만 잠이 들고 말았다.

 

그러나 공교롭게 그 시간에 인근에서 산불이 나서 봄바람을 타고 노인이 잠든 잔디밭으로 건너 붙었다. 개는 근처 물웅덩이에서 몸에 물을 묻혀 와서 불이 노인에게로 번지지 않도록 주변을 뒹굴기를 수 십 번, 수 백 번을 반복하여 불은 막았으나 개는 탈진하여 그 자리에서 죽고 말았다.

 

잠에서 깨어난 노인은 개가 자기를 구하고 죽게 된 것을 알고 개를 양지바른 곳에 고이 묻어주고 자기가 짚고 있던 지팡이를 개 무덤에 꽂아 주었다. 얼마 후 이 지팡이가 뿌리를 내리고 싹이 터서 큰 나무로 자랐는데 사람들은 이 나무를‘개나무’라고 불렀는데 이를 한자어로‘오수(獒樹)’라 하였다.

 

이 아름다운 이야기가 널리 퍼져나가 자연히 이 마을 이름이 ‘오수(獒樹)’가 되었다. 그리고 이 전설이 전해지는 그 자리(개의 무덤)에는 지금 큰 느티나무가 서 있고, '오수의 개'를 기리는 의견비(義犬碑)가 세워져 있다.

 

- 광주 서석동에 있는 ‘효자느티나무’에도 효도와 관련된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옛날 착하고 부지런한 만석이라는 사람이 지극한 효성으로 늙은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아가고 있어 동네사람들의 칭송이 자자하였다. 그러던 중에 어머니가 병이 났는데 백방으로 약을 구해서 먹어도 백 약이 무효하였다.

 

이제 남은 것은 산삼을 구하는 일 뿐이라 만석이는 산삼을 구하러 나섰다. 무등산에 올라 100일이 넘도록 산을 헤매었으나 허탕만 치고 낙심하여 내려오는데 어디서인가 만석이를 부르는 소리가 나서 뒤를 돌아보니 크다란 느티나무에서 나는 소리였다. 만석이는 그 느티나무께로 가서 정중히 절하고 어머니를 살려달라고 간청하였다.

 

그러자 느티나무는 만석이에게 어머니의 병을 낫게 할 약을 줄 터이니 그의 두 눈알을 빼 달라는 것이다. 어머니의 병을 낫게 할 약을 준다는 소리에 그는 서슴치않고 두 눈알을 빼서 느티나무에게 바쳤다. 이를 지켜 본 느티나무는 감동하여 만석이의 눈알도 되돌려 주고, 스스로 나무 잎을 떨어뜨리면서 주워 다 다려서 어머니에게 먹이라는 것이다.

 

느티나무 잎을 달여먹고 어머니 병이 감쪽같이 나았다. 이 때부터 마을 사람들은 이 느티나무를‘효자나무’라 부르고 신령한 나무로 소중히 보호하여 지금까지 살아있다고 한다

 

이 외에도 장수목인 느티나무에는 갖가지 전설이 붙어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나무에게 득남을 기원하여 아들을 낳게 해 주는 느티나무

  밤에 광채를 내면 동네에 좋은 일이 생기는 느티나무

  동네에 나쁜 일이 생길 때마다 나무가 먼저 울어서 ‘운나무’란 별명을 얻은 느티나무

  가지가 울고 스스로 잘려나간 3일 후에 그 고을 원님(목사)이 죽었다는 홍성의 느티나무도 있다. 끝

 
<2004년 5월 13일 조선일보 李圭泰 코너- 느티나무>
  요즈음 솜을 날려 호흡기 질환을 유발하는 개량나무들을 느티나무로 바꿔심는 공사가 진행 중이라는 보도가 있었다. 우리나라 기후풍토에서 아무 데서나 잘 자라고 병들지 않으며, 가장 장수하는 나무가 느티나무요, 보호받고 있는 1만 4000그루의 보호수 가운데 절반인 7000그루가 느티나무이며, 그 중 1000년 이상 되는 노거수가 25그루나 된다. 한국 사람의 체형이나 체질, 그리고 사고방식이 한국풍토와 밀접하듯이 한국풍토에 적응한 느티나무는 한국인이다.

  다빈치의 명화 '수태고지(受胎告知)'만 보더라도 배경의 나무들이 마치 자로 재 그려 놓은 것처럼 좌우가 대칭이 돼 있으며, 사실 유럽 나무들이 그렇게 균제미가 있다. 레스피가 음악으로 그 수직감을 냈다는 로마의 소나무들은 늘씬하고 곧게 하늘을 찌른다. 이것이 아름답고 쓸모가 있다면 느티나무는 수형이 들쑥 날쑥 아름답지 못하고 가지가 밑둥 가까이부터 돋아나 늘씬하다는 것과 거리가 멀다. 장자는 재목으로 쓸만한 나무를 문목(文木), 쓸모없는 나무를 거목이라도 산목(散木)이라 했는데 느티나무는 산목이다.

  집을 직는다든지 배를 만드는 등 재목으로 부적합하지만 비중이 0.7로 여느 어떤 나무보다도 단단하도 치밀한데다가 목리(木理), 곧 무늬가 아름다워 일상생활의 목기나 가구로는 이보다 좋은 재목이 없다.

  큰 재간은 몰라도 잔 재간은 추종을 불허하는 한국인 느티나무다. 멕시코 유가단반도의 이민촌은 한국인을 비롯하여 일본인, 중국인으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밤송이 같은 낯설고 고약한 어저귀 농사에 가장 빨리 적응한 것이 한국인이요, 병원 나들이도 중국인이나 일본인에 비해 10명 중에 한 명꼴이었다는 보고가 있었다. 곧 부적하고 낯선 여건에도 잘 착근하여 자라고 병충해에도 강한 한국인은 느티나무다.

  많은 나무들이 다 집단이었을 때 잘 자라고, 고독할 때 발육이 지체된다던데, 느티나무는 독야청청이 적성이요, 그래서 정자나무로서 한 그루만으로 방풍림 구실을 하기에 그 쓸모가 많은 것으로 미루어 혼자여야 똑똑해지는 느티나무는 한국인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