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민족과 애환을 함께 한 ‘나무 중의 으뜸 나무’

소나무(松)

 

소나무(赤松)

 

우리나라 산이면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소나무는 그렇게 흔한 만큼이나 우리민족과 애환을 함께 해 온 나무다.

 

① 애기가 태어나면 금줄에 솔가지를 달고,

② 소나무로 지은 너와집에서 살면서

③ 소나무장작으로 불을 지피고,

④ 송화가루 다식, 솔방울 술, 솔잎 송편을 만들어 먹거나 흉년 들어 소나무 껍질의 송기떡으로 부황(浮黃)을 이겨냈다.   그 뿐인가

⑤ 늙어서 죽으면 소나무 관 속에 들어가 소나무가 둘러 싼 산등성이에 묻힌다.

 

그래서 옛 말에딸이 나면 오동나무를 심고, 아들이 나면 소나무를 심는다’ 하였다.

 

오동나무는 십 수년이면 장롱을 짤 수 있는 재목이 되기 때문에 혼수해서 시집 보낼려는 것이고, 소나무는 60년쯤 되면 관을 짤 수 있는 재목으로 자라기 때문에 좋은 관에 들어가 명산에 묻혀 집안의 융성을 도우라는 뜻이다.

 

소나무는 원래솔나무’가 발음하기 좋도록 변음 된 것인데, ‘솔’은 우리말로 ‘으뜸’, ‘맨 위’, ‘우두머리’란 뜻의 ‘수리’가 ‘’로 되고, 또 ‘’이 ‘’로 변음 한 것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그러니까 소나무는 ‘나무 중에 으뜸나무’란 뜻이다.

 

중국의 전국시대에 천하를 통일한 진(秦)나라 시황제가 태산에 올라 하늘에 제사를 지내려 할 때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져 미쳐 피할 방법이 없었는데 마침 인근에 소나무 한 그루가 있어서 그 밑에서 비를 피하고 무사히 제사를 마친 후 그 소나무에게 고마운 마음을 표시하여 공작(公爵) 작위(爵位)와 대부(大夫) 가자(加資)를 내렸다고 한다.( 加資는 '서기관', '이사관' 등 오늘날의 직급 호칭과 같이 조선시대 관직의 품계에 붙여지는 호칭, 정1품-종4품의 문관, 종친, 의빈의 품계에 2-3개의 '--大夫' 호칭이 붙는다: 이성영의 홈페이지>보학이야기>관직 참조)

 

그때부터 소나무를나무(木)의 공작(公)’이란 뜻의 목공(木公) 또는 공목(公木)이 한 글자로 합쳐져 송(松)또는 송(公아래木: 松의 옛글자) 자가 되었고, 이 소나무를 대부송(大夫松)이라 하여 ‘영광스런 일’을 지칭하는 말이 되었다고 한다.

 

조선 세종 때 성삼문 등과 10여년 집현전 학자로 있던 이석형(李石亨)이 세조2년에 전라도 관찰사로서 익산을 순시 중에  옛 친구들인 사육신이 처형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次益山東軒韻(차익산동헌운: 익산동헌의 운에 따라 짓다)’이란 짤막한 시를 지었는데 얼마 안 되어서 이 시가 사육신을 동정한 내용이라 하여 고변당하고 체포되어 세조가 친국하는 국문장에 끌려 나와 큰 화를 입을 뻔 했는데 이 시에 대부송(大夫松)이 나온다.

 

시의 내용을 보면

虞時二女竹(우시이녀죽) 순임금 때는 이녀죽의 슬픈 일이 있었고

秦日大夫松(진일대부송) 진나라 때는 대부송의 영화로운 일이 있었네

縱是哀榮異(종시애영이) 이들은 슬픔과 영화로움이 다를 뿐이니

寧爲冷熱容(영위냉열용) 어찌 냉대하고, 열렬히 환대할 수 있으리

 

소나무가 우리나라에 있게 된 기록으로는성주풀이’에 나오는 것이 가장 오래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천상천궁에 있던 성주님이 죄를 짓고 땅으로 내려와 경상도 안동 땅 제비원에 거처하면서 제비들에게 솔 씨를 나누어주어 전국 이산 저 산에 뿌려서 집 지을 재목으로 키워 냈다’내용이다.

 

집 터를 닦아 다질 때 지금은 포크레인이 왔다갔다하면서 다지지만 옛날에는 온 동네 사람들이 다 모여 모닥불을 피워놓고 농주 한 사발씩 들이킨 다음지신밟기’를 하는데 이 때 이 성주풀이를 읊으면서 여러 사람이 이 곡조에 맞추어 집터를 밟아 다진다. “--경상도 안동땅(후렴), 제비원에 솔 씨 받아(후렴), 이산 저산 뿌렸더니(후렴), 황장목이 되었네(후렴), 앞집에 김대목(후렴), 뒷집에 박대목(후렴), 나무 내러 가자세야(후렴)—“

 

탄소연대 측정 등 과학적인 근거에 의거 소나무가 우리나라에 있었던 역사는 약 6,000년으로 거슬러 올라가고, 3,000년 전부터는 전국적으로 많이 퍼져 자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소나무의 역사가 이렇게 길고 또 사람과 친근하게 지낸 만큼 자연히 사람들이 고유의 우리소나무, 이른바 조선솔에 붙여 준 별칭도 적송, 미인송 또는 여송, 육송, 금강송 또는 강송, 춘양목, 황장목 등 매우 많다.

 

적송(赤松): 소나무가 높게 자라면 윗 부분이 붉은 빛으로 윤기가 나기 때문에 붙인 별칭.

 

미인송(美人松) 또는 여송(女松): 여인의 자태처럼 미끈하고 아름답게 생겼다는 뜻으로 붙인 별칭.

 

육송(陸松): 물기를 좋아하지 않아서 바닷가나 강가보다는 내륙의 산에서 잘 자라기 때문에 해송과 상대적으로 내륙에서 자란다는 뜻의 별칭.

 

금강송(金剛松) 또는 강송(剛松): 금강산을 중심으로 강원도 일원에 자라는 곧게 뻗은 소나무가 가장 질이 좋아서 얻은 별칭.

 

춘양목(春陽木): 일제 때 철도가 생기면서 태백산 남쪽의 봉 화, 울진 등지의 질 좋은 강송을 춘양역(경북 봉화 춘양면)에 집결하여 기차로 전국 수요지로 실어 날은 데서 온 별칭.


춘양역에서 화차에 실려 전국 방방곡곡으로 운반된 강송 즉 춘양목은 유별나게 소나무를 좋아하던 우리 선조들에게 사랑은 받아 인기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눈치 빠르고 돈 버는데는 눈이 벌겋게 충혈되어 있던 당시 목상(木商)들은 아무데서 건 벌목해온 소나무를 ‘춘양목’이라 억지를 부리고 높은 가격을 받았다. 여기서 ‘억지춘양’이라는 고사성어가 생겨났다.

 

황장목(黃腸木): 나라에서 궁궐을 짓거나 왕의 관을 만드는 질 좋은 소나무는 말려서 켜면 속(창자, 腸)이 누런 빛깔이 나기 때문에 ‘누런 내장(속)을 한 소나무’뜻으로 붙여진 별칭.


황장목이 밀집한 지역에 벌목을 금하는 황장봉산(黃腸封山) 봉하고, 황장금표(黃腸禁標)를 설치하였는데 지금도 치악산 구룡사와 문경의 황장산에는 금표석이 남아 있으며 지리산 등 전국에 황장산이란 이름이 붙은 산은 모두 이렇게 해서 얻게 된 산이름이다.

 

 

 

 

 

 

 

 

 

 

 

 

 

 


우리나라의 산에 자라고 있는 고유의 우리소나무(조선솔) 외에 도 몇 가지 종류가 있다.

 

반송(盤松): 키가 크지 않고 옆으로 퍼지는 성격 때문에 정원용 조경수로 각광을 받는 소나무.

 

백송(白松): 줄기의 표피가 흰색과 윤기가 나고, 솔잎이 매우억센 소나무.

 

 

 

 

 

 

 

 

 

 

 

 

 

 


해송(海松): 일명 곰솔이라고도 하며 물기를 좋아하여 염분기 많은 바닷가에서도 잘 자라는 소나무.

 

오엽송(五葉松): 일명 섬잣나무라고 하며 솔잎이 짧고 잣나무처럼 한 자리에서 다섯 개의 잎이 돋아나는 조경수.

 

 

 

 

 

 

 

 

 

 

 

 


금송(金松): 온 세계에서 오직 일본의 고야산에만 자생하는 솔잎이 굵고 길며, 수형이 정제하여 마치 조각품 같은 느낌을 주는 소나무. 조경수로 개발 보급하여 지금은 세계 3대 고급 조경수.

 

금송(錦松): 솔잎이 길고 부드러우며 수피가 두꺼워 마차 노거수처럼 보여 분재 소재로 인기가 높은 조경수. 삽목이나, 접목이 어려워 전량 일본에서 수입하여 보급.

 

 

 

 

 

 

 

 

 

 

 

 

 


리끼다송(일본솔): 낙엽송(일본입갈나무)와 함께 속성(速成)의 특징을 이용하여 사방(砂防)과 조기 산림녹화를 위하여 일제  때와 해방 후 묘목을 도입하여 민둥산에 많이 심었던 소나무.


국가에서 지정하는 천연기념물 식물분야에 소나무가 31점으로 가장 많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소나무 (31점)

구분

소재지

비고

적송

(赤松)

(12)

강원 속초시 설악동 산20-5

   명주군 연곡면 삼산리 116

   영월군 남몀 광천리 67-1(청령포)

충북 보은군 외속리면 서원리 49-4

   보은군 내속리면 상판리 17-3

   괴산군 청천면 삼송이

전북 고창군 아산면 삼인리 68

전남 장흥군 관산읍 옥당리 166-1

경북 청도군 매전면 동산리 146-1

   청도군 운문면 신왕리 1769-1

경남 의령군 정곡면 성황리 산34-1

 “ 합천군 묘산면 화양리 835

 

 

관음송(觀音松)

정부인송(貞夫人松)

정이품송(正二品松)

백송

(白松)

(8)

서울 종로구 통의동 35-5

   종로구 제동 35

   종로구 수송동 44

   용산구 원효로 4가 87-2

경기 고양시 송포동 산 207

   이천군 백사면 신대리

충북 보은군 보은읍 이암리 산16

충남 예산군 신암면 용궁리 산73-28

 

반송

(盤松)

(4)

전북 무주군 설천면 삼공리 31

경북 선산군 선산읍 독동리 539

   상주군 화서면 상현리 150-1

 “ 문경군 용암면 화산리 942

 

해송

(해송)

(곰솔)

(6)

부산 남구 수영동 229-1

충남 서천군 서천읍 신송리 262-3

전북 전주시 완주구 삼청동 44-1

   익산군 망성면 신작리 518

전남 무안군 망운면 송현리 290

제주 제주시 아라동 3755-1

 

구송(球松)(1)

경남 함양군 휴천면 목현리 854

 

 

천연기념물로 지정되거나 오래된 소나무에는 전설이 따르는 것이 많다.

보은의 정이품송(正二品松, 천연기념물제103호)은 지금 충청북도의 상징물이 된 소나무인데, 조선 7대 임금 세조가 피부병 치료 차 속리산 복천사에 행차할 때 타고 가던 연(輦)이 가지에 걸리려 하자 스스로 가지를 들어 올려 무사히 지나가게 해 주어 세조가 탄복하고 정2품(판서급)을 내렸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붙여진 이름이다. 이 지방 사람들은 ‘연거랑이소나무’라고도 한다.

 

 

 

 

 

 

 

 

 

 

 

 

 


 

보호중인 정2품송

 

영월의 관음송(觀音松, 천연기념물제349호) 조선 6대 임금 단종이 열 두 살에 왕위에 올랐다가 숙부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이를 복위하려던 사육신의 모의가 탄로 난 직후 노산군으로 강등되어 귀양간 영월의 최초 유배지 청령포에 있는 소나무인데 가슴 높이에 두 갈래로 갈라진 가지 위에 걸터앉은 단종의 애틋한 모습을 보고(觀), 울부짖는 소리(音)를 들으며 자란 나무라는 뜻으로 지은 이름이다. 545년이 지난 지금은 끝을 보기 힘들게 낙낙장송으로 자라 있다.

 

 

 

 

 

 

 

 

 

 

 

 

 

 

 

령포의 관음송(觀音松:赤松)

 

예천에 있는 석송령(石松靈)이라는 600살 된 반송은 천 여 평의 땅을 소유하고 있어 지금도 종합토지세를 내는 부자 소나무다. 높이 10m, 줄기 둘레 4.2m로 우산을 편 듯 옆으로 길게 퍼져 동서 폭이 32m, 남북 22m나 된다.

송령 소나무

 

조선 초기에 큰 홍수 때 석평마을 앞 석간천에 떠내려 와 걸린 어린 소나무를 한 마을사람이 건져서 심은 것인데 1920년대 말 자식이 없던 이 마을 이수목이란 노인이 이 나무를 ‘석평마을의 영험 있는 소나무’란 뜻으로 ‘석송령’이란 이름을 지어주고, 소유 한 땅 1,191평을 이 나무에게 상속하고 죽자 마을 사람들이 석송계(石松契)를 조직하여 이 나무와 재산을 관리하면서 매년 제사를 지내주고, 종합토지세도 납부하고 있다는 것이다.

 

▲ 조선조에 소나무를 가장 사랑하고 아낀 임금은 정조대왕이라 한다. 수원 남쪽 융릉(장조: 사도세자)과 건릉(정조)의 노송들은 지금부터 200년 전에 정조가 심고 보호한 소나무들이다.

 

백성들이 이 소나무를 땔감으로 자꾸 베어가자 정조 임금은 나무에다 돈을 달아 놓고이 돈을 가져가 땔감을 살지언정 이 나무는 베지 말라’고 써 붙이니 백성들이 정조의 지극한 나무사랑에 감동하여 이후로는 나무를 베어 가는 일이 없었다고 한다.

 

또 어느 해에 송충이가 극성을 부려 이들 소나무가 다 죽게 되었을 때 정조가 송충이 몇 마리를 잡아서 입에 넣고 질겅질겅 씹자 어디서인가 수 만 마리의 까치와 까마귀가 몰려와 순식간에 송충이를 다 잡아 먹었다고 한다. 하늘도 정조임금의 나무사랑에 감동한 것이다.

 

이렇듯 우리 조상들은 소나무와 뗄레야 뗄 수 없는 소나무를 으뜸나무로 취급해 왔지만 정작 남들은 인정해 주지 않고 있다. 왜냐하면 서양 사람들은 소나무과 소나무속에 속하는 나무들 즉 소나무, 잣나무, 리기다소나무(일본소나무), 백송, 해송(곰솔) 등을 모두 파인(Pine)이라 하고, 우리 고유의 소나무 ‘조선솔’을 그들은 제퍼니즈 레드 파인(Japanese red pine: 일본적송)이라 부르는데 약삭바른 일본 식물학자가 학계에 등록하면서 그렇게 이름을 붙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정말 얄미운 짓만 하는 족속들이 아닌가.



  2005년 7월 2일자 조선일보에 걱정스러운 환경칼럼 한 편이 실렸다. 이미 사라져 간 '서천 신송리 곰솔', '보은의 백송'과 관리 부주의로 이미 옛 모습을 잃은 '전주의 곰솔', 보은의 '정이품송', '정부인송', 문경의 '대하리 소나무' 등의 예를 들고, 더욱 심각한 것은 전체 천연기념물의 10%에 해당하는 소나무가 한번 감염되면 소생이 불가능한 것으로 알려진 재선충병의 위험 앞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 전문을 옮겨 놓는다.

[환경칼럼] 사라져가는 명품 소나무들 (전영우·국민대교수 산림자원학)
  북어 한 마리. 소주 한 병. 얼마 전 가봤던 강릉 소금강 초입의 천연기념물 350호 ‘명주 삼산리 소나무’에 바쳐진 제물(祭物)은 조촐했다. 수백 년 동안 신목(神木)으로 받들어졌던 것을 생각하면 초라하다고도 할 수 있는 제물이지만, 그 애틋한 광경에 기뻤다.

  지난 2년 동안 41곳의 천연기념물 소나무를 찾아 강원도 설악동에서 제주도 산천단까지 방방곡곡을 누볐지만 이처럼 정겨운 광경은 어디에도 없었다. 소나무를 중심으로 말발굽처럼 둘러쳐진 야트막한 돌담. 높이가 두 자나 될까. 냇가의 자연석을 모아 병풍처럼 소나무 주변을 꾸민 솜씨가 소박하다. 소나무 바로 앞에 놓인 편평한 댓돌은 제단이다. 제단 아래엔 대여섯 개의 둥근 돌로 작은 단을 만들어 신격(神格)을 부여했다. 몇 개의 돌로 성(聖)과 속(俗)을 갈라놓은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금지와 권위를 내세우지 않는, 자연스럽고 평화로운 풍경이다.

  삼산리 소나무의 터전은 이 땅의 다른 천연기념물 소나무들과 아주 달랐다. 지난 수천 년 동안 사람과 나무 사이에 있어 왔던 정중한 관계는 찾아보기 힘든 게 다른 지역 소나무들이다. 보호라는 명분으로 사람으로부터 격리시켜 놓은 것이다. 나무 주변 높은 철책이 사람과 나무 사이를 가로막았고, 그 결과 사람과 나무는 자연스런 소통과 교감의 기회를 잃어가고 있다.

  그 전형적인 사례가 얼마 전 비참한 죽음을 맞은 천연기념물 353호 ‘서천 신송리 곰솔’이다. 이 땅의 곰솔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자태를 간직했던 이 나무는 3년 전에 낙뢰(落雷) 피해로 한쪽 가지가 먼저 죽고, 지난해에는 나머지 가지도 말라 완전히 고사(枯死)했다. 서천군은 이 곰솔을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고자 주변 부지를 정리하여 정자를 세우고 주차장을 새롭게 조성했다. 그러나 정작 나무의 안전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낙뢰 대비용 피뢰침을 세우는 것은 간과했다. 주인공인 곰솔이 사라지면, 주변 편의시설이 다 무슨 소용일까?

  더 안타까운 현실은 천연기념물 소나무들도 이 땅을 위협하는 생명경시와 물신주의(物神主義)의 거센 파고를 피해갈 수 없는 처지라는 것이다. 잘못된 관리와 부주의한 보호로 충북 보은의 백송은 이미 고사했고, 독극물의 주입으로 전북 전주의 곰솔은 겨우 명맥만 유지하고 있다. 또 보은의 정이품송과 정부인송, 경북 문경 대하리의 소나무는 지난해 폭설 피해로 예전의 아름답던 모습을 더 이상 볼 수 없는 실정이다. 설상가상으로 전체 천연기념물의 10%에 해당하는 소나무류는 한 번 감염되면 고사할 수밖에 없는 재선충병의 위험 앞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다.

  어떻게 하면 인간의 탐욕과 재해로부터 천연기념물 소나무를 지켜낼 수 있을까? 관람객의 출입을 오랫동안 금했던 경복궁 경회루가 최근 개방되었다. 사람의 체취가 목조 문화유산의 보존에 필요하다는 취지 때문이었다. 사람의 관심과 체취를 기다리는 것은 자연유산도 마찬가지다. 자원봉사제도로 운영 중인 ‘문화유산해설사’처럼, ‘자연유산해설사’를 양성하여 자연유산과의 관계복원은 물론, 그 보호에도 일익을 담당하게 하는 방안도 고려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정보혁명의 광풍이 숨가쁘게 몰아치는 오늘의 세태에 천연기념물 소나무를 지켜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명목(名木) 소나무가 자연과 인간을 조화롭게 이어주는 연결고리이고, 우리의 정신과 정서를 살찌우는 자양분이며, 오늘도 변함없이 우리 정체성의 코드를 간직한 생명문화유산이기 때문이다.


  月干山 2005년 3월호에 게재된 '한국의 명품 소나무' 영상

제 용송
흉고둘레 5m, 키 12m, 해금강 가는 천길 바다암벽에 붙어서 천년 세월을 견디어 온 해송으로 용이 꿈틀거리는 모습.

산의 왕소나무(천연기념물 제290호)
수령 600년, 흉고둘레 4.7m, 키 12.5m, 줄기의 모습이 용이 꿈틀거리는 듯 하여 '용송'이라고도 불리며, 성황제를 지내는 신목.

고개 소나무(강원도 보호수)
수령 280년, 흉고둘레 3.3m, 키 14m, 영월에서 시해된 단종이 태백산으로 가는 영혼을 배웅했다는 전설이 전하는 소나무.

주 화서면 반송(천연기념물 제293호)
수령400년, 흉고둘레 5m, 키 17m, 옛날 이무기가 이 나무에 살았다는 전설, 매년 제사를 지내는 신목.

악산 유선대 노송
설악산 금강굴 밑 유선대에 있는 소나무, 신선이 놀았다(遊仙)는 유선대(遊仙臺) 암반에 뿌리를 내린 노송, 사진 뒷편으로 보이는 골짜기가 천불동 계곡.

창 당산리 영송(靈松)(천연기념물 제410호)
수령 600년, 흉고둘레 4m, 키 14m, 한일합방, 6.25 등 나라에 큰 일이 있을 때마다 이나무가 미리 울었다고 전해짐.

진 소광리 금강송(천연기념물 제 410호)
수령 400년, 흉고둘레 4m, 키 20m, 살아있는 문화유산, 소광리 금강송 중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노송.

산 구룡송(천연기념물 제 289호)
수령 400년, 흉고둘레 5.5m, 키 18m, 껍질은 거북(龜)이 같고, 줄기는 용(龍) 같다 하여 구룡송(龜龍松).

악동 소나무(천연기념물 제351호)
수령 500년, 흉고둘레 5m, 키 16m, 이 나무 밑에 돌탑을 쌓으면 무병장수항다 하여 옛날에는 돌탑이 있었다 한다.

문사 처진소나무(천연기념물 제180호)
수령 500년, 흉고둘레 4m, 키 14m, 가지가 길게 뻗어나가 아래로 처졌다 하여 '처진소나무'라 부르며 운치가 있다. 매년 4월 운문사 비구니들이 막걸리를 12말 준다고 한다.


  중국 황산의 명품 소나무

객송(迎客松)
황산 옥병봉(玉屛峰) 암벽에 있는 소나무로 손님(客)을 맞이하는(迎) 듯 다소곳이 고개를 숙이고 있다. 뒤 봉우리는 황산 제2봉 천도봉

72지 소나무
가지가 72개로 벋어 황산의 72봉우리를 상징하는 소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