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화 복원된 월맹정규군과 첫 만남
박마산 밤불꽃놀이
沙月 李盛永(2009. 10. 1)
  1969년 초 나는 나의 진로에 있어서 디렘마에 빠져 있었다. 보병 직업군인에게는 치명적인 전투중대장 경력의 기회를 놓치고 있었기 대문이다. 전방 전투중대장은 이미 한 참 후배들이 하고 있는데 뒤늦게 그 속에 끼어들어 경쟁을 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월남에서의 전투중대장 경력을 이수하는 것이었다. 기후가 체질에 맞지 않고, 전장터라는 위험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시골 농촌 출신으로 체질은 남보다 강하다고 자부하기 때문에 기후에 적응하는 것도 큰 문제가 없을 것 같고, 전장에서의 위험을 겁낸다면 직업군인을 그만 두어야 한다는 것이 나의 소신이었기 때문에 아내를 설득하여 월남을 가기로 한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월남에 도착해서 이곳에서도 전투중대장 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소총중대장, 수색중대장을 하겠다는 장교가 줄을 서 있기 때문이었다. 하는 수 없이 약 6개월 기다리면 중대장 자리가 난다고 해서 수도사단(맹호) 제1연대(비호) 2대대 작전장교를 맞게 되었다. 마침 동기생 반준석대위가 그 대대작전장교를 하고 있었는데 귀국 날짜가 얼마 남지 않아 그와 인계인수 한 것이다. 이 때가 1969년 2월 7일이었다.

  1주일간은 대대OP를 시작으로 5,6,7,8중대 베이스와 지원 나와 있는 포병 B포대, 그리고 지역 내 안꽝항에 있는 맹호사단 휴양소까지 둘러보았다.
나는 월남에 와서 처음 헬기를 탔다.(UH-1)

  다음 1주일간은 전임자와 작전사항 전반에 관한 현황과 파악하고, 월남에서의 작전 절차와 작전장교로서의 대대장을 보좌하는 요령 등을 배웠다. 대대작전장교는 1965년에 중위로서 이미 한 직책이지만 실전상황에서 월남이라는 환경과 분위기 때문에 새로 배울 것이 많았다.
  이렇게 2주쯤 지난 다음 연대 작전에 참여하게 되었다. 작전지역은 우리 1연대와 기갑연대 경계지역이고, 행정구역으로는 푸캇군과 타이손군의 지경이었다.

  이 지역을 대표하는 큰 산 이름이 ‘박마산’인데 이 산은 푸캇비행장과 1연대(비호) 본부를 위협할 수 있는 멀지 않는 곳에 위치하거니와 지역내 중요한 두 병참선인 1번도로와 19번도로를 위협할 수 있는 전술적으로, 전략적으로 중요한 지형이었다.

  이번 작전의 목적은 풋캇비행장 안전을 위한 위험요소 제거였다. 이 지역에서 미군측의 특별관리정보(Spacial Agent)가 많이 나왔기 때문에 이를 확인하기 위한 가벼운 수색작전이었다.
  연대작전이기 때문에 분명 ‘비호-xx호 작전’ 이었을 텐데 작전명을 기억하지 못하겠다.
부대주둔지역과 작전지역 박마산 위치
  그러니까 적이 있다는 명확한 정보도 아니고, 통신정보, 스누피(냄새)정보 등으로 적이 은거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사전 예방차원에서 벌인 작전이다.
  그러니 좁은 지역에 집중수색이 아니라 광범한 지역에 대대 또는 중대 단위로 적의 흔적을 찾는 참으로 목표가 막연한 작전이었다. 그래서 대대별로 작전구역을 할당하고 대대장 책임하에 작전계획을 세워 연대에 보고하고 시행하는 분산된 작전이었다.

  당시는 우리 1연대 지역에는 월맹 정규군이 흔적을 감춘 때였다. 2년여 전에 맹호 1연대가 풋캇군지역을 작전지역으로 맡아 진입할 때는 월맹군 정예부대인 3사단이 진을 치고 전역을 장악하고 있었다고 한다. 푸캇군 서부의 산악지역은 물론 동부의 중심인 풋캇산(Nui Ba)도 월맹군이 장악하고 있는데 맹호1연대가 투입되면서 푸캇산과 고보이평야 등을 놓고 치열한 쟁탈전이 거의 1년여 벌어져 결국 월맹군 3사단은 흔적을 감추었다.
  전해오는 말에 따르면 월맹정규군 3사단의 지휘부가 와해되고, 예하부대들도 많은 피해를 입어 와해 직전에 몰려 부득이 부대복원을 위해 캄보디아 국경지역으로 철수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부대복원을 하여 다시 이곳에 나타날 수 있는 기간을 빠르면 6개월로 보고 있다고 하는데 지금이 그때라는 것이다.

  사실 작전을 지시한 사단장이나 연대장은 공식적으로 말하지는 않았지만 이번 작전을 ‘미군측의 특별관리 정보의 실체가 바로 부대복원을 마치고 돌아 온 월맹 정규군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을 확인하기 위한 의도가 내포되어 있었던 것 같다.

  우리 2대대는 박마산 동쪽 와지선에서 좀 물러난 평야지대에 야영지를 정하고, 대대 전체 또는 중대별로 일일 작전지역을 할당하여 수색작전을 실시했다.
  그러나 계획된 작전 기간 1주일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월맹정규군이건 베트콩이건 접적은 커녕 흔적을 발견하지 못했다. 그러니 몹시 지루한 작전이 되었다. 전장에서는 교전도 있고, 전과도 나오고, 피해도 생겨야 지휘관이나 병사나 간에 잔뜩 긴장하기 마련인데 이렇게 며칠 동안이나 3개대대 모두 이런 것들이 감감 무소식이니 긴장이 풀리고, 마음이 해이해 질 수밖에 없었다.

  월남에서 작전을 벌려 놓으면 접적할 때까지는 상급지휘관과 정보참모가 초조해 하고, 일단 접적이 이루어지면 하급지휘관과 작전참모가 초조해 하게 마련이다. 그것은 접적이 되지 않으면 '적도 없는데 공연히 작전을 벌려 병사들만 고생시킨다'는 평을 듣게 되니 작전을 지시한 상급지휘관과 적이 있다고 정보를 내놓은 정보참모가 책임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일단 접적이 되면 이제는 작전 시행을 책임지는 하급지휘관과 작전참모가 '발견된 적도 잡지 못하느냐?'고 핀잔을 맞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 작전은 그럴 필요도 없이 상하급지휘관이나 정보, 작전참모 모두가 가벼운 마음으로 벌이는 작전이었다.

  5일 째는 전 부대 정비의 날로 정했다. 쉬는 날이다. 4일간이라지만 힘겹게 작전한 것도 없으니 휴식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지도 않았다.
  대대장은 저녁 회의 때 내일 1일 휴식을 지시하면서 그 동안 브로킹 임무로 산에도 올라가지 않고 와지선에 매복을 해 왔던 6중대를 지명하면서 1년여 전에 이곳에서 작전하면서 박마산 동쪽 깊숙한 계곡에서 적의 병기창고(적이 무기를 은밀히 감추어 둔 장소)를 찾아내서 큰 재미를 본 곳이 있는데 그곳을 확인해 보라 하였다.

  그러니까 6중대는 그 동안 많이 쉬었으니 내일은 등산(?)을 좀 하고 오라는 뜻이었다.
  5,7,8중대는 개울가에 적당한 거리로 휴식장소를 잡아 목욕도 하고, 낮잠도 자고 하면서 쉬었고, 6중대는 대대장이 그려준 코스를 따라 옛날 적의 병기고 지역으로 수색해 올라 갔다.

  6중대가 출발한 지 2시간 쯤 되었을까 싶은데 갑자기 사격 총성이 울렸다. 6중대가 투입된 지역이었다. 이어서 다급한 6중대장의 목소리가 무전기에서 울렸다.
  정글 속을 뚫고 수색해서 올라가는 중에 적의 사격을 받아 소대장 1명과 병사 1명이 즉사하고 2명이 부상했으니 다스톱(환자후송헬기)를 요청하는 것이다. 착륙지점이 없고 수목이 높아서 공중에서 인양해야 하기 때문에 자켓을 필히 장착해 올 것을 덧붙였다.
  그리고 적이 급경사면 위에 있어서 아군이 전개해서 공격하기가 힘들어 50-100m 거리에서 엄폐하여 적과 대치하고 있는데, 적은 10여명 정도 되는 것 같다고 하였다.

  대대장도 무리하게 공격하지 말고, 현위치에서 사주경계하도록 병력을 분산배치하고 적과 접촉을 유지하면서 전사자와 부상자를 처리에 최선을 다하라고 지시하였다.
2대대장과 중대장 및 참모들이
상황파악과 대책을 논의하는 대대지휘소 풍경
맨 왼쪽이 대대장(안교덕중령,육사11기),
다음 지휘봉으로 가르치는 장교가 8중대장(이규원대위,육사20기,
옛날 적 병기고를 발견했던 장소를 가리키고 있다)
그 오른쪽이 5중대장(이현부대위,육사20기),
무전교신중인 장교가 대대작전장교 나(이성영대위,육사18기, 방탄복도 받지 못했다)
왼쪽 대대장 앞에 7중대장은 가려서 조금만 보인다.
  약 30분 후에 다스톱이 건쉽(공격헬기) 두 대를 앞세우고 날아왔다. 그 중 건쉽 한대가 대대지휘소 부근에 내렸는데 작전지역과 상황을 잘 아는 장교 1명이 탑승해 달라는 것이다. 이 지역을 잘 알기로는 대대장 뿐인데 그럴 수는 없고 내가 대대망 무전기 한 대를 들고 헬기에 올랐다.

  사실 월남 땅에 도착 한지도 3주 밖에 안됐고, 대대작전장교를 맡아 첫 작전에 나왔기 때문에 동,서,남,북 지형도 이번 작전 같지도 않은 작전을 위해서 지도를 놓고 훓더본 것 뿐이다. 더구나 이 지역은 우리 대대 주둔지에서는 멀리 떠나온 지역이니 모든 것이 생소한 지역이었다.

  장교로 임관한지 7년이 되었지만 나는 헬기를 타 본 적이 없다. 나는 이번에 대대작전장교로 부임해서 대대OP와 각 중대 기지를 순회할 때 범용헬기(UH-1)를 타 보았을 뿐 수송헬기(CH-47)도, 더구나 코브라공격헬기(AH-1)를 타 본 경험이 없다. 그러나 이 상황에서 나의 경험은 고려대상이 될 수 없었다.

  건쉽이 뜨고 6중대장과 무전이 통했다.
  “지금 귀소쪽으로 오뚜기(헬기) 3대가 떴는데 보이는가. 이상”
  “보인다. 이상”
  “귀소 맨 앞에 있는 물고기(병사)에게 노랑 스모크(연막탄) 한 방 까라고 해라. 이상”
  “알았다. 이상”


  한 참 후에야 정글 나무 꼭대기 위로 희미한 노랑색 연기가 보일 듯 말 듯 피어 오른다. 나무가 워낙 높고, 빽빽이 들어찼기 때문에 연기가 쉽게 공중으로 피어 오르지 못하고 숲 속으로 퍼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연기로는 정확한 아군의 선두를 가름하기가 힘들었다.

  물론 건쉽이 다스톱을 호위하면서 처음부터 사격을 실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조그만 적의 징후나 위협이 있을 경우 가차없이 사격을 가하기 때문에 아군의 위치를 정확히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만약 아군이 건쉽으로부터 오인사격을 받는다면 그것은 적으로부터 사격을 받는 것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피해가 클 수 있다. 적의 화력은 미미하지만 건쉽의 화력은 막강하기 때문이다.

  건쉽 두 대가 주변을 기관총 사거리 범위 안에서 맴돌고, 다스톱이 현장으로 접근한다. 물론 착륙할 지점이 없기 때문에 나무 꼭대기 위에서 하버링 하면서 자켓을 내려야 한다.
  건쉽은 다스톱 주변을 맴돌면서 조용히 날지 않는다. 혹시 있을지 모르는 적의 대공사격을 피하기 위해 요동을 치며 난다.

  전투헬기 탑승에 익숙하지 못한 나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금방 하늘만 보이다가 금방 땅으로 쏟아질 것 같다. 하늘과 땅이 번갈아 눈에 보이면서 동서남북을 가릴 수가 없다.
  다행스러운 것은 6중대의 연막탄 표지가 초록 비단위에 한 점의 노란 물방을을 튀긴것 같이 선명하게 보이기 때문에 이를 놓지지 않았다.

  전사한 소대장과 병사와 부상자 1명이 픽업되고, 마지막 자켓이 내려갔을 때 갑자가 건쉽 두 때가 지금 다스톱이 픽업을 하고 있는 방향으로 기관총 사격을 가하는 것이다.
  나는 깜짝 놀라 그곳엔 아군이 있는 곳인데 왜 쏘느냐고 소리쳤다. 부조종사가 나를 돌아보며 기리켰다. 그곳은 다스톱이 떠 있는 그 위쪽이었다. 빤짝 빤짝 화염이 비치는데 그게 적이 우리(건쉽)을 보고 사격하는 것이란다.
  그러고 보니 옛날 생도 때 태능 기지거리사격장에서 감적호 근무를 한 기억이 난다. 총소리는 들리지 않고 ‘딱, 딱, 딱” 하는 탄착 소리만 들린다. 건쉽은 방탄이 되어 있기 때문에 소총탄에야 끄떡 없다.

  그러나 적과 건쉽이 교전을 하니 급해 진 것은 다스톱이다. 마지막 부상자를 차근차근 헬기 안으로 끌어 올릴 여유가 없다. 자켓이 정글의 나무 꼭대기 위로 올라왔다 싶을 때 다스톱은 기수를 왼쪽으로 돌리며 날아갔다.
  건쉽은 적방향으로 사격을 계속하다가 다스톱이 적의 사거리를 충분히 벗어났다 싶을 때 그 위치를 떠나면서 한대는 부상병이 자켓에 대롱대롱 매달린 채 날라가고 있는 다스톱을 바싹 뒤 따라가고, 한 대는 대대지휘소 위치로 와서 내렸다. 나를 내려놓고 가기 위해서였다.
  부상자를 매달고 간 헬기는 멀지 않은 거리의 안전지대에서 부상병을 헬기 안으로 끌어 올린 후에 헬기들은 모두 떠났다. 하늘은 조용해 졌다.

  날이 어두워지려 하자 대대장은 6중대를 철수 시켰다.
  일단 정비를 한 다음 내일이라도 작전을 벌릴 생각이었다. 모처럼 우리에게 대드는 적을 만났는데 그냥 갈 수는 없었다. 이 적이 월맹 정규군이라는 것을 확인한다면 4사람이나 피해를 본 좀 비싼 대가를 치른 셈이지만 더 큰 손실을 미연에 방지하고자 하는 작전 목적을 충분히 달성되었다고도 할 수 있다.
  대대본부와 각 중대는 사주경계를 하도록 야영지를 편성하고, 부대 안전을 위해서 전초와 경계를 세우고 밤을 지냈다.

  저녁 늦게 연대 작전계획이 무선으로 하달되었다. 우리 2대대는 박마산 동남쪽 계곡 입구를 브로킹하고, 1대대는 박마산 남쪽, 3대대는 동쪽 능선위로 공중기동 하여 위로부터 아래로 내리 훓더면서 수색을 한다는 것이다. 일종의 '모루-망치작전'이다.

  3대대는 특이한 사항 없이 공중기동이 진행되었다. 그런데 1대대 공중기동 제1편대 1번기가 착륙을 하지 못하고 지상에서 3m 정도에 공중에 뜬 상태로 병사 2명이 양쪽 문으로 띄어 내렸을 때 적이 갑자가 저편 봉우리에서 기관총 사격을 가해왔다.

  예기치 못한 헬기 조종사는 공중으로 떠 올랐다. 적들은 사격을 계속했다. 위로 뜬 헬기는 급히 지역을 벗어나 불시착했다. 적 사격에 맞아 기관에 이상이 생겼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리고 병사 두 명이 적 지역에 떨어진 상태가 되었다. 그 병사들은 M1소총과 실탄80발 정도, 배낭에 C-레이션 1일분쯤 휴대하고 있었다. 무전기를 가지지 않았으니 살았는지 죽었는지 확인할 방법도 없고, 연락 방법도 없다.

  상황 파악 하랴, 대책을 세우랴, 우물쭈물 하다 보니 날은 어두워졌다. 야간에 산악지역에서 그것도 적이 있다는 것이 확인된 지역에서 야간기동을 한다는 것은 적어도 월남에서는 생각할 수 없는 방안이다.

  날이 어두워졌으나 달은 휘영청 밝았다.
  무전기 P-25 라우드스피커에서는 연대장과 1대대장(이범천중령, 육사11기), 3대대장(노태우중령, 육사11기, 재구대대장) 그리고 우리 2대대장(안교덕중령, 육사11기) 간에 작전 방안에 대한 숙의가 이어졌다.

  1대대장은 병사를 구출하기 위해서는 야간에 특공조를 편성해서 올려 보내겠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연대장의 결론은 야음에서 기동은 곤란하니 명일 새벽 예명에 1대대는 도보로 원 계획된 작전지역에 투입하여 이탈된 병사를 구출하고, 계획된 박마산 동남쪽 계곡의 남측사면을 수색한다.

  3대대는 현재 공중기동한 상태에서 동쪽 능선을 따라 그물을 치고, 명일 1대대가 도보기동하여 그물은 칠 때까지 기다렸다가 동시에 박마산 동남쪽 계곡의 북측사면을 수색한다.
  제2대대는 박마산계곡의 동남쪽 계곡을 완전히 차단하여 브로킹 한다. 대략 이런 내용들이었다.

  얼마 안 있어 항공조명기가 날아왔다. 월남에서 항공조명기는 C-46 수송기를 개조하여 공중에서 항공조명탄을 투하하는데 작전지역을 계속 돌면서 먼저 투하한 조명탄에 꺼지기 전에 다음 조명탄에 터지도록 한치의 오차도 없이 조명을 한다. 한 번 출격하면 한 시간을 계속하고, 1번기가 끝나고 떠나면 곧이어 다음 항공기가 와서 동일한 요령으로 조명을 한다.

  2번인가 3번인가 조명기가 오더니 다음은 다른 상황을 연출한다. 즉 ‘스푸키’라 불리는 항공기다. 역시 C-46인가에 20mm발칸포를 장착하여 목표지역에 지역기총소사를 하는 것이다. 스푸키는 야간에는 자체 조명을 투하하면서 사격을 가한다.

  자정을 넘었을까 하는 시간에는 소리도 시끄러운 항공방송기가 날아왔다. O-2기에 밑으로 확성기 장치가 되어있어 적이나 아군을 향해 방송을 하는 심리전 장비이다.
  “000병장, xxx상병, 귀관들은 마음을 굳게 먹고, 적을 피해 은폐 해 있어라. 날이 밝아지면 귀관들을 구출하기 위해 대대적인 작전을 벌릴 것이니 그때까지 참고 견디어 살아 남아라” 뭐 이런 내용들이었는데 다른 할 말이 없기 때문에 똑 같은 내용을 반복하거나 용기를 북돋우는 군가를 불렀다.

  월남에서 나의 첫 전투는 이렇게 정신 없이 시작되었다. 전사하여 후송된 2명과 부상자 2명의 문제는 이미 과거지사가 되고, 이 밤은 적 지역에 떨어진 두 병사의 목숨에 온 신경이 집중된 밤을 넘겼다.

  지난 하루 밤낮은 내가 처음 전장에 서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하는 한 편, 항공조명탄, 스푸키의 조명과 동시에 살별(혜성)의 별무리처럼 뿌려지는 발칸포탄의 예광탄 섬광, 항공기에서 대지방송 하는 확성기 소리 등등 내게는 ‘박마산의 밤불꽃놀이’를 벌이고 있다는 착각을 하게 하는가 하면, 한편으로는 처량하기 그지없는 밤이기도 하였다.

  연대장이하 모든 지휘관과 한국군의 작전을 지원하는 미군이 두 병사의 생명을 구하려고 가용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는 눈물겨운 노력을 보면서 '인간의 생명을 중시'하는 인도주의를 실감하게 하였다. 오래 후에 나온 미국 영화지만 ‘라이언일병 구하기’ 처럼 ---

  또 내가 월남에 와서 '전장에서 적과 아군의 선명한 구분'을 처음으로 느꼈다. 그후 1년여 동안 전장인 월남의 정글을 누비면서 적군의 시체는 도로위에 비명횡사한 야생동물 정도로 보이지만 아군, 특히 부상당한 내 부하의 이마에 흘러내린 핏줄기를 보는 것은 나의 온 몸과 마음에 경련이 일 것 같은 충격으로 닥아온다. 오늘 그 첫 경험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배멀미(비행기멀미)도 가시기 전 초기에 말이다.

  1대대가 도보기동으로 작전을 시작한 지 두 시간쯤 지나 낭보가 무전기 라우드스피커를 울렸다. 두 병사 모두 살아 있었고, 구출작전에 나선 병력과 합류하였다는 것이다.

  이날 하루 동안 박마산 동남쪽 계곡에 대한 수색 작전을 폈지만 3개 대대 공히 접전사항이 없었다. 다만 1대대가 수색한 능선과 전망이 좋은 지형에 소규모 병력이 간이 진지를 만들어 관측활동을 하고 있었다는 것이 확인되었으며, 정보분석 결과 적은 월맹 정규군이고, 어제 6중대를 저격하고, 1대대 기동헬기를 사격한 적은 월맹군 전초였음이 분명해졌다. 이제부터 맹호의 전장터는 불붙을 조짐이었다.

  1년여 전에 패퇴해 캄보디아 국경으로 철수해간 월맹군이 조심스럽게 옛 작전지역인 타이손군, 푸캇군, 안녕군 쪽으로 조심스럽게 접근해 오면서 그 전초에 해당하는 부대가 이번에 우리대대 6중대와 부딛친 것이라고 판단하였는데, 후에 월남전 종전이 임박했을 때 안케패스의 맹호부대 기갑연대를 집요하게 공격했던 적이 이 때부터 이 지역에 들어왔던 적들이 아닌가 생각된다.

  후에 장병들이 붙인 이름이지만 ‘박마산 전투’는 이렇게 해서 끝났다.
  적이 분명 있는데 적에 관한 확실한 정보도 없이 연대급 대부대가 작전을 계속하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다. 보다 확실한 정보를 얻고, 분석해서 작전을 벌릴 필요가 있다고 생각되면 새로운 작전계획을 새워 작전을 전개하겠다는 뜻이다.
  연대장 이하 각급 지휘관, 참모들이 공연히 흥분하지 않고 냉정한 결단을 내린 것으로 생각된다. 그 당시 맹호부대 지역의 분위기는 사단장(윤필용)에서부터 말단 병사에 이르기 까지 '베트콩이건 월맹정규군이건 감히 맹호에게 덤비다니---' 였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