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R>
월남 편지 ( 제 1 신 )
玉이 당신에게
  난 무사히 도착했소만 당신이 애들 데리고 (시골집으로)내려가느라고 고생이었겠어. 난 아직 補職(보직)이 결정되지 않아 (맹호사단)사령부에서 하룻밤을 지냈지만 곧 연대로 내려가 결정 될 거야.

  참 오래 전부터 생각하던 월남인데 요즈음 기후 탓인지 실감이 나지 않는군. 엊저녁만해도 퀴논에서의 첫날밤인데 내의를 껴입지 않고는 잘 수가 없을 정도로 서늘하고 바람이 많이 부는군. 물론 요즈음 우기라서 기온이 낮고 요 며칠 간은 이상 기온이라는군. 내의와 야전잠바의 필요성을 이제 인식할 것만 같애. 어떻게 생각하면 꿈같기도 하군.

  김포에서는 옷깃에 어름이 조롱조롱 매달리던 추위, 비율빈 크라크비행장에서는 훈풍이 불어오는 초여름, 사이공에서는
(건기)폭서의 여름, 이곳 퀴논에서는 마치 초봄의 꽃샘 바람이 부는 날씨 같으니 기후의 변동에 따라 몸에 이상이 생길 것만 같아 퍽 조심하고 있지. 괜찮을 거야. 이곳에 와 보니 소총중대장이 인기 직책이구먼. 서로들 할려고 밀려 있는 부대도 많은가 봐.

  그래도 가는 곳마다 동기생이 최고야. 사이공에서는 포병의 최용대위가 잘 안내해주고 반갑게 맞아주더군. 여기
(맹호)사단 사령부에는 문영대 대위가 혼자 밖에 없다가 무척 반가워 하는군. 잠자리, 보직을 걱정해주고 활약해 주니 먼 낯선 곳에서 참 고맙지 뭐야. 곧 어느 연대로 갈는지 결정되겠지만 (본국)거기서 생각하던 것과는 상황이 좀 달라.

  전쟁하는 나라 치고는 아니 전장터 치고는 참 한가해. 예하대 내려가면 달라질지 모르지만 여기 사령부에는 식사도 한국식이 많아. 고추장, 김치, 다 있고, 밥을 먹는데 물론 이곳 쌀이라 밥맛은 다르지만 이정도면 식성 때문에 큰 고생은 안 할 것 같애. 비행기에서부터 여기 도착할 때까지 한 이틀 꼬박 치즈, 빠다 냄새가 입에서 계속 나더군. 그러다가 비행기에 흔들리니 크라크비행장 도착과 퀴논비행장 도착시 속이 뒤틀려 혼났어. 하지만 배로 오고 있을 동료들에 비하면 퍽이나 다행이지 뭐.

  서울 고모님 댁에 너무 폐를 끼쳐서 미안하군. 보직이 결정되어 완전한 주소가 결정되는 데로 편지 쓰겠지만 당신도 편지 쓰구려.

  맹호부대에 동기생이 약 10명쯤 되는데 당신이 아는 사람으로는 고재만, 나영호대위가 각각 중대장을 하고 있어. 모두 잘 한다는군. 난 너무 늦게 온 것 같애. 2년 후배들이 벌써 중대장을 하고 있어.
(보병학교 교수부)통제실에 같이 있던 (육사20기) 이규완대위가 중대장을 하고 있고, (육사19기) 고재전(고바우약방)대위가 역시 중대장을 하고 있어. (보병학교 학생)연대 3과장이던 (13기) 김태원소령님이 (1연대)연대 민사주임으로 있군. 아직 전화는 못 걸었는데 그 연대로 갈 확률이 크구만.

  곧 또 편지 할게. 주소가 확정되는 데로. 산골에서 답답하겠지만 몸조심해요. 아이들도 내버려 두진 않을 테고, 취미로 닭이나 좀 길러봐. 곧 해동하면 시작해 보구려.
  그럼 오늘은 이만. 그럼 안녕.

  참 사진은 어떻게 잘 나왔나? 다음 편지 받는 데로 한 장 보내 주구려.
월남에서 당신의 영으로부터.
父親前 上書
  無事히 임지에 到着했습니다. 時和 母의 이야기를 들으셔서 아시겠지만 運이 좋아서 비행기로 오게 되어 지금도 망망한 바다 위에서 파도에 시달릴 동료들을 생각하면 多幸한 일입니다.

  아직 補職을 받지 않아 무슨 職責을 맡을지 모르겠습니다 만 우선 월남 땅에 올라 이곳 퀴논 근교에 있는 맹호부대 사령부에서 이틀째 밤을 맞아 생각과는 달리 초가을처럼 서늘한 일기에 감기나 걸릴까 봐 내의를 껴 입었습니다.

  제가 집을 떠나고 또 고국을 떠날 때 느꼈던 낯선 이국 땅에 간다는 외로움 보다 지금은 마치 고향 땅에 그대로 있는 것만 같이 낯설지 않습니다. 선후배 동창들이 반갑게 맞아 주고 특히 가는 곳마다 먼저 온 동기생들이 따스하게 맞아주니까요.

  여기 있던 동료들도 오늘 저녁은 의외로 서늘하다고 합니다. 앞으로 1년간 있을 곳의 첫날이 이렇게 생각과는 다르다고 느낄 정도입니다. 식사도 집에서 보다는 못하지만 식성에 맞도록 김치도 있고, 고추장도 있습니다.모든 조건이 집에서 생각하던 것보다는 낫습니다.

  전쟁을 하는 나라 치고는 너무 태평스럽군요. 이곳의 농사는 1년에 3-4모작을 한다면서 한쪽에서는 모를 심고 한쪽에서는 나락
(벼)을 벤답니다.

  비행기 여행이라 시간에 쫓기는 바람에 자세히 구경을 못했습니다 만 비율빈이란 나라도 더웁기는 하지만 살기 좋은 나라라고 생각됩니다. 이 나라 월남의 서울 사이공은 전화(戰禍)의 흔적이 약간 보일 뿐 전쟁을 치루고 있는 나라 같지가 않습니다. 서울에 비하면 고층 건물도 적고 거리가 퍽 지저분합니다.

  더운 나라니 만치 의, 식, 주에 대한 걱정이 없으니까 이에 대한 관심도 적은 것 같습니다. 화려하게 몸치장 할 줄도 모르고 이민족의 습성인지 서양 풍습의 유행이라는 것을 찾아보기 힘드는 것 같습니다.

  고향에 앉아서 생각하는 것보다 모든 조건이 좋으니 너무 걱정 마시기 바랍니다. 직책을 받고 본격적인 근무를 시작하는 데로 또 쓰기로 하고 오늘은 이만 월남에 온 인상을 간단히 적어 봅니다.

월남에서 소자 성영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