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남 편지 ( 제 3 신 )
玉이 당신에게
  오늘이 구정인가봐. 이미 우리들에겐 무의미한 명절이 되었지만 그래도 시골서 자라는 아이들에게는 한없이 즐겁기만 한 명절이 아닐 수 없지. 기억에 살아 있는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몇자 적고 있는 거야.
  여기 월남 사람들은 설이 연중 최고의 명절이래. 전쟁에 시달려 웃음은 사라진 지 이미 오래지만 그래도 새 옷들을 갈아입고 이 마을 저 마을을 다니는군. 물론 아녀자들이 제일 좋은가 봐. 우리 대대는 영내로
(주민들이 다니는) 길이 나 있어서 낮에는 민간인들이 자유로이 (지나) 다니니까 이런 (민간인들) 구경도 할 수 있지.

  그긴 오늘도 꽤 춥던가 아니면 봄 날씨 같이 따뜻하다고 할거야. 그러나 여긴 달라졌어. 이제 우기가 -우기라야 내가 여기 온 후로 비는 한 번도 안 왔지만- 끝나고 건기로 접어드는 모양이야. 아침 햇살이 나면서부터 한 여름이야. 그래도 바다를 눈 앞에 바라보는 위치라 바다 바람의 덕을 톡톡히 보는지 이따금씩 시원한 바람이 불어주는군. 상황실 빵카 안은 선풍기도 냉장고도 없지만 모래 마대로 두껍게 싼 굴 속이라 참 시원한 편이야. 점점 더워진다는데 걱정이군. 전기불이 갈려고 하니
(나머지는) 내일 써야겠군.

엊저녁은 여기 이야기만 한 것 같은데---. 늦었지만 아버님 어머님 무사하시고, 새해에 복 많이 받으셨겠지. 그리고 당신도-. 시화, 미애도 올 해는 더 재롱을 피우겠지.시화는 이제 점점 더 개구장이가 될 거고.

  참 미애 첫돌이 곧 다가 오는 것 같은데 어떻게 돌떡이라도 좀 하나? 돌 사진이라도 하나 찍어 주고- 이 다음 커서 불평 듣지 말고. 그러고 보니 내 생일도 곧 닥쳐오는데? 여기야 생일잔치가 있나. C레이숀 아니면 K레이숀이 고작이니. 옛날에 안남미 밥을 먹어 본 적이야 있지만 이제 신물이 나도록 먹겠어. 누가 콩나물국 두부국이 신물이 난다면
(이제) 안남미 밥에 깡통(통조림) 고깃국으로 밥 먹어 보라고 그래-. 시큼한 총각김치 생각은 입맛이 없을 때 해 보지만. 이 다음에 당신이 지어준 밥에는 반찬 투정 안 할게.

  송금표를 쓰라고 하는 것을 보니 월말에는 근무수당이 나오는 모양이야. 오면서 받은 것이 있고 해서 몇 푼 되지 않은 모양인데 여가 와 보니 국내 송금액 중에 30%를 의무적으로 상은 용산지점으로 예금하게 되는 모양이야. 나와봐야 알겠지만 35-40$ 쯤 되는 모양인데 시계도 사야겠고, 그 외 필요한 일용품도 사야겠고 해서 60$ 집으로 송금하겠다고 써 냈으니까 3월 15일께 도착할거야. 우체국은 김천으로 했으니까 김천 가서 찾는 데로 알려줘. 액수가 적으니까 적금을 하던지 임시로 예금을 하던지 맘대로 해. 그 외에도 좋은 방법이 있으면
(당신이) 택하고-. 단 돈놀이는 하지 마. 시골서는 그렇지 않겠지만 도시에는 파월가족을 등쳐먹는 친구들이 많다는군. 현명한 당신이야 아무데 가도 넘어가지 않겠지만 말야.

  앞으로 S-3 근무하는 동안은 가정으로 100$ 정도 밖에 못 갈 것 같애. 전 번 편지에도 간단히 비쳤지만 아무래도
(파월 근무를) 6개월 연장 해야 될 것 같애. 이유야 많지---.

  첫째 본국에서보다 중대장 근무가 쉬우니 끝내고 가야겠고,
  둘째로 귀국 후의 문제인데 내년에 있을 행사
(?, 진급)에 나 같이 둔한 주제에 통 자신이 없어. 그러니 되던 안되던 여기서 치루고 가야겠어. 여기도 마찬가지겠지만. 그래도 그 때쯤은 고참(?)이 되고 하니 텃세 부릴 때쯤 되지 않나. 행사를 앞두고 움직이는 것은 금물로 되어 있으니까 말야.

  그렇지만 당신의 의사를 무시하는 건 아냐. 당신이 절대로 안 된다면 할 수 없지. 계획대로 일년만 마치고 갈게. 물론 지내봐야 알 일이지만 몇 달 안에 휴전이 성립되고 보따리 싸서 돌아가야 될 지도 모르는 일 아냐?

  당신이 동의 한다면 적금도 1년 6개월 짜리로 골라봐. 3월 수당부터 하는 게 좋겠어. 만약 1년 만에 귀국하는 경우라도 상은 용산지점에서 15만원 정도 찾을 테니까 그것으로 부어 나가면 되겠지 뭐.

  월남에 오는 동기도 사람마다 모두 다르듯이 와서 근무하는 태도도 각양각색이야. 난 중대장 경력 얻고, 행사 치루고, 전투 경험을 얻는 거야. 그 다음 돈은 내게 주는 땀의 대가는 착실히 해야지. 3월부터 호봉이 오르는데 국내 봉급 남은 분은 3개월(분기) 별로 보내주는 모양이야. 1호봉 기껏 올라야 8-9백원 이지만-.

  너무 얘기가 길었군. 또 쓸 거니까 오늘은 이만 쓰지. 새해에 당신과 아이들 복 많이 받기를 바라며 이만 안녕히.

월남에서 당신의 永 씀
고국 편지 ('69. 3. 5)
기다리는 당신에게
  이제 막 놀러 왔던 사람들이 가고, 식구들이 잠자리에 들기 시작하자 난 펜을 잡았습니다. 오른쪽엔 시화, 왼쪽엔 미애가 쌔근쌔근 거립니다. 라디오는 '파도를 넘어서'가 들려옵니다. 서로 주고 받는 라디오의 사연과 음악의 선물이군요. 당신이 그런 선물을 줄 사이도 없는 줄 알지만 당신과 같이 멀리에 있는 보내는 것이기에 혹시나 하며 다른 때(당신이 가기 전)와는 달리 들리는군요. 지금은 '가고파'가 들려옵니다.

  여보! 당신 편지 사이도 안녕히 계시겠지요?
  난 오늘 당신의 편지를 받고 얼마나 좋았는지 몰라요. 초저녁이면 맥을 못 춘 내가 12시가 되도록 잠들지 않았어요. 더욱이 조용히 당신을 그리며 펜을 들려고 말입니다.

  요사이 아버님은 대구 동산병원에 입원하여 수술 결과가 좋다고 합니다. 어머님도 가셨고 집엔 아이들과 고모, 삼촌이 있습니다. 입원한 지 일주일이 되었는데 앞으로 일주일 있으면 퇴원이 된다고 합니다. 거기에 대한 걱정은 마세요.

  일전에 쓴 편지와
(서울에서 찍은)사진도 받았는지요. 옥인 잘 있습니다. 너무 촌사람이 되어질까 두려우나 앞날에 당신과 우리 식구가 행복한 생활을 위해선 참는 수밖에---

  여기 지금 산 음지엔 하얀 눈이 아직 많으며 날씨도 아직 추웁니다. 시화는 벌써
(까맣게)끌어 까마귀가 되어 가고, 미애 역시 재롱을 피우며 잘 놉니다. 돌 날은 떡 좀 해먹고 조용히 보냈습니다. 당신이 말 한 미애 (돌)사진은 언제 (김천에)나가 찍어 줘야지요.

  시화는 오는 사람마다 우리 아빠는 월남에서 기차며 비행기며 많은 장난감을 사가지고 온다고 자랑이군요. 미애는 신을 하나 사 줬더니
(신을 신고)처음 땅을 디딘 날은 이상한지 땅이 꺼질세라 아주 조심조심 걷는군요.

  여보! 당신이 그리울 땐 시화와 미애를 꼭 안아 줬어요. 당신이
(내게) 주고 간 선물이기에요. 아이들을 볼 때마다 그리도 귀여워 해 주던 아빠를 멀리 두고 있는 우리 시화, 미애를 위해서도 빨리 이 해가 갔으면---

  여보! 늘 걱정이던 식사가 식성에 안 맞아 고생이신가 봐요. 여보! 여러 모로 몸조심 하세요. 내게는 더 이상 바랄 것이 무엇이겠어요? 출국 전 보다 더 즐겁고 기쁘게 해 드리지 못했던 것을 생각하니 아쉬워지는군요. 그러나 지금의 이 고난이 지나면 지난날의 못다한 즐거움을 되찾을 날을 약속하며 기다려야죠.
  여보! 당신을 빨리 보고싶지만 당신의 뜻이 그러하다면 6개월을 연장한다 해도 기다리는 수밖에 없겠죠. 그러나 무리는 하지 마세요. 돈 같은 것엔 신경 쓰지 마시고 제가 말하지 않아도 당신은 아실 줄 알아요. 그리고 무엇에나 용기와 자신을 가져 주세요. 모든 일은 자신과 용기를 가지고 해 나가야 삶의 뜻이 있지 않을런지요.

 
(비록)시골에 (와)있을지라도 너무 세상을 잃어 버릴까 봐 3월 1일부터는 신문이 옵니다. 누구보다 알차고 깨끗한 삶으로, 누구에게도 지지 않게 지내도록 노력하렵니다.

  당신이 말 한 적금은 돈이 오는 대로 보아가면서 하겠지만 국민은행 안내서에 보면 상호부금이 있는데 50만원 짜리가 매달 30,700원씩 15개월 내는 것이 있더군요. 100$이면 28,000원이 되는데 여기에 먼저
(국내)봉급에서 2만원을 집안 식구 몰래 둔 것이 있으니 그것을 같이 보태서 해 볼까 생각합니다.

  탈 때는 51만원이 좀 넘는가 봐요. 적금은 1년 짜리
(50만원)가 39,000원이 되더군요. 타는 금액은 52만원 정도인 것 같아요.

  여보! 시간 있는 대로 자주 편지 해 주세요. 월남에서 돈이 오는 대로 찾으러 은행에 갈 겸 이원
(친정)까지 갈까 합니다. 서울에 갔다 와서 한번도 가지않았어요. 아버님이 (퇴원하여)오셔야 가겠지요. 3월말경이 되지 않을는지 모르겠군요.
라디오에서 오늘부터 봄 날씨가 시작되었다는 소식이며, 월남 각 처에서 공세가 있다고 하니 걱정입니다. 지금 막 라디오에서 말하는군요.
  당신의 무운을 빌며--- 이 밤도 안녕히

옥이가 고국에서 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