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남 편지 ( 제 6 신 )
미애 엄마에게
  오늘도 무척 기다렸는데 또 하루가 기다림으로 끝났군. 작전에 수고했다고 중대장들과 참모들이 대대장님과 함께 안쾅 해변에서 영계백숙 한 마리씩 뜯었지. 맑은 바다와 바닷바람, 설탕가루처럼 부드러운 모래, 야자수 드문드문 선 해안에서 수영도 하고, 맥주도 마시고 몸을 좀 태웠더니 지금은 온 몸이 후꾼거리는군.

  안쾅이란 이름을 당신은 기억할는지 몰라.
(특별)보수반 시험공부 하면서도 저녁 9시면 (라디오)Dial을 MBC로 맞추어 귀를 기울이던 연속극 '달아 달아 밝은 달아'에 나오는 곳 말야. 안쾅국민학교는 교실이 4개인 조그만 학교가 있는데 (여주인공) 슈엔이 교사로 있던 안쾅직업학교는 없어. 아마 작가가 만들어 넣었겠지. (육사20기) 이규완대위도 왔는데 파월 고참이 돼서 온 몸이 새까맣게 탔더군.

  비호20호 작전에 나가서 찍은 사진인데 역시 스냅이라 고약한 인상을 쓰고 있군.
(본국서 올 때)수영복을 가지고 온다는 것이 깜빡 있었군. 여기서도 살 수는 있는데 나갈 시간이 있어야지.

  전쟁이란 얼른 보기에 어른들의 장난 같기도 하지만 아침에 멀쩡하던 사람이 저녁에는 없어지는 판이니 군인은 운명론자가 안 될 수가 없는 모양이야. 어떻게 생각하면 재미도 있고-.

  자, 오늘은 이만 간단히 쓰고 내일을 또 기다려 봐야지. 당신의 편지를-. 그럼 안녕.

월남에서 미애 아빠가
고국 편지 ('69. 3. 24)
보고싶은 당신에게
  봄볕이 따스하게 내려 쪼입니다. 먼 산 음지에는 잔설이 겨울의 미련을 남기고 있는가 봐요.
  어젠 시화가 나물 캐는 아이들을 따라 다니며 저도 뜯었다고 손에 흙을 잔뜩 묻혀 가지고 왔군요. 잘 놉니다. 미애도 옥이도 잘 있고요. 아버님도 병원에 입원하셨다 퇴원해 김천에서 쉬셨다 어제 막차로 도착하셨는데 경과는 좋은가 봐요. 어머님도 병환 간호에 고생하셨지만 아무 일 없으시고요. 다른 식구들도 다 무사하죠.

  이원은 아직 안 갔어요. 이제 어른들께서도 집에 오셨으니 한 번 가 봐야겠군요. 지금 제 생각엔 말경에나 가 볼까 생각해요. 한 보름 있다 올려고 하는데.

  여보! 여긴 아무 걱정 안 하셔도 돼요. 아이들도 할머니 할아버지가 계시니까 말이에요. 항상 걱정인 것은 당신의 건강-
  어젠 당신의 5신을 받았고, 그제는 6신을 먼저 받았어요. 당신의 까만 모습의 사진도 마른 것 같아 가슴 아팠어요. 고생은 물론이겠지만---. 어떻든 무사히 작전을 끝마치고 오셨다니 다행이에요. 이때까지 편지가 안 들어 갔다니 안타깝군요.

  여보! 당신의 편지가 늦거나 한 것은 무서운 작전이나 고달픈 일들에 시달리기에 늦겠지요. 제
(편지)가 늦은 것은 한가하다 고나 할까요. 당신이 저녁이면 귀여운 미애, 시화, 옥이를 생각하고 그리워 하듯이 옥이 역시도 마찬가지에요. 사진을 바라보며 말이에요.

  지금쯤(월남의 낮과 고국의 낮과는 틀리겠지만-시차를 말함) 이런 낮이면 더 바쁠는지 밤이면 더 바쁠런지요? S-3
(작전장교)란 밤낮이 없을 줄 알지만 예부터 S-3에 시달린 당신이기에 누구보다 잘 해내리라고 믿지만---. 입맛을 잃지 않았다니 참 다행이에요.

  어제 당신의 편지가 오니까 시화는 "아빠 온데?"하고 묻네요. 아빠가 보고싶은가 봐요. 작전 나가 찍은 사진을 보면서 "아빠 권총 찼다"고 하면서 밥도 먹지 않고 턱을 받치며 묻는군요. 2달도 안 되었는데 아빠를 기다리네요.
  미애는 재롱이 아주 늘었어요. 종알대기도 잘하고, "엄마-"소리도 제법 잘 하고, 사진 보고 "빠, 빠'하기도 하고요. 아주 재롱동이군요.

  당신이 있는 곳이 안쾅이라고요? 그럴 줄 알았으면 지리적으로 어떤 곳인가 좀 알게 그 때 좀 잘 들을걸. 잠 때문에 잘 듣지도 못했지요.

  그리고 당신이 부친 돈은 60$
(16,926원) 16,000원은 예금했어요. 다음달 오는 것 봐 가지고 할려고요. 안내서를 보니까 1년 반짜리 적금은 월부금이 25,100원에 찾는 금액이 534,000원인 것이 있던데 그것을 할까, 또 15개월짜리 30,700원에 찾는 금액이 514,200원인 것도 있으니 둘 중에 한가지 할려고 합니다.

  혹 돈에 구애되어 돈 때문에 오래 있는다거나 그런 생각은 마세요. 정말로 돈보단 당신이 몇 천 배 더 보고싶으니까요.

  미애 돌사진 찍었어요. 잘 되지가 않았군요. 돈 찾을 때
(김천에)나가 찍고 들어왔더니 (고모가)그냥 찾아 들여 보냈는데 놀란 토끼 같군요. 입을 딱 벌리고. 한 장 보냅니다.

  옆에서 미애가 못쓰게 야단이군요. 다음에 또 쓸께요. 여보! 오늘도 안녕히.

고국에서 당신의 옥이가 3.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