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남 편지 ( 제 7 신 )
玉이 당신에게
  어제는 편지 안 온다고 짜증낸 글씨를 띄웠는데 이렇게 오늘 받을 줄 알았으면 쓰지 말걸 그랬군. 첫 편지를 받을 때 되면 뱃멀미(비행기 멀미)가 가실 때라고 들 하더군. 하지만 이제는 후배 제대도 왔고, 의젓한 대대작전장교로서 동분서주하지만 작전이란 참 어려운 것이야. 본국에서도 이미 중위 때 한 직책이면서도 이렇게 어려운 것은 생과 사를 판가름 하는 실제 전장이라는 데서 그럴 거야.

  내일은 연예단들이 위문공연을 온다나? 그러나 나는 못 가. 왜냐구? 내일 또 1개 중대가 작전을 벌리기 때문이야. 어떻게 보면 토끼몰이 같기도 하지만 그 속에 적과 나의 상존할 수 없는 두 개의 힘이 부딪치는 순간이야.

  참, 사진이 참 잘 됐군. 난 원래 실물보담 잘 나오는 편이니까. 시화도 미애도 그리고 당신도 선명하게 잘 나왔군. 낮에 받아서 지금까지 몇 번 째 들여 다 보는지 몰라.

출국전 찍은 가족사진
  부모님도 평안하시다니 다행이야. 하지만 당신이 빨리 서둘러서 아버님 병환을 농사철 닥치기 전에 낫도록 치료하셔야지 않아?

  요사이 시화는 뭘 하고 노나? 당신이 편지 쓴 날이 이미 16일이 지났으니 지금쯤은 봄기운이 산과 들에 가득 찼겠지. 미애는 이쁜 고무신 하나 사 줬나? 넓은 마당에 뛰어다니게 말야. 기집애-

  내 생일 날은 작전을 나가지 않는 날이라서 알고 넘어갔지. 미애 돌 날도 알았어. 하지만 여기서 뭐가 있나 뭐. K-레이숀(김치, 마늘 장조림, 파래, 멸치볶음 등 통조림이 든 한국군에만 특별히 지급되는 부식) 아니면 C-레이숀인걸. 그저께 안쾅에서 한나절 수영도 하고 쉬었댔지. 어깨가 볕에 타서 몹시 쓰리군. 이미 팔뚝과 얼굴은 새까맣게 탔지. 몸도 빨리 태워서 고참 티가 나도록 해야지.

  '슈엔' 같은 여자 걱정을랑 하지마. 그 여자를 묘사한 작가에게 없는 거짓말 꾸며 대느라고 고생했다고 인사하고 싶어. 전쟁에 지친 월남 사람들은 골상미 밖엔 남은 게 없어. 당신 사진을 보는 순간 '내 아내가 이렇게 예뻤던가?' 싶었다구.

  난 월남에서 두고두고 다짐하는 게 있어. 그 하나는 돈을 못 벌어도 좋으니까 정신까지 월남전 같은 수렁 속에 빠져 더럽히지 말자고-. 또 지나면 모르지만 아직은 건재하다구.

  대구 남실이는 애기를 낳았다구 했잖아? 아들인가? 설에 와서 놀다 갔다니 평안한가 보지? 착실히 해서 잘 살아야지.

  기다림이 클수록 만나는 기쁨도 큰 법. 그날을 생각하며 굳세게 살자구. 닭도 키우고, 돼지도 기르고. 넓은 터에 뭐든지 해봐. 그게 낙이고 재미일테니까.

  자, 내일 일찍 일어 날려면 이제 그만 자야겠어. 사진을 머리 속에서 생각하면서 말야. 그럼 안녕.

월남에서 시화, 미애 아빠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