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남 편지 ( 제 8 호 )
玉이 당신에게
  낮에는 그렇게 야단스럽던 '신에게 버림 받은 대지'가 (밤이 되니) 이젠 조용하군. 이따금씩 임무를 마치고 돌아가는 제트기 폭음이, 그리고 이따금씩 저 멀리서 터지는 포탄 소리가 전장의 여운을 남기고 있어. 30도를 넘던 더위도, 정글을 뒤지던 물고기('병사'를 말하는 은어) 들은 이제 땅거미('매복'을 말하는 은어)를 하느라고 이따금씩 '이상유무'를 보고 하느라고 앵무새('무전기'를 말하는 은어)에 '후후'부는 소리가 들리곤 하는군.

  여기는 작전을 벌리는 전술지휘소 상황실이야. 산꼭대기지만 기갑연대
(맹호사단 기갑연대) 7중대 전술기지 안에 와 있어. (야영에 비하면) 모든 것이 편리하군. 마침 (이 중대의) 부중대장이 (육사)22기생으로 무척 반가워 하는군.(1966년 광주 육군보병학교에 전입하여 첫 보직으로 육사22기 OBC-초등군사반-구대장을 맡아 그들과 인연을 맺은 적이 있음, 누구인지는 기억이 안 남)

  어제 여기 오기 전에
(동생)정영이 한테서 편지를 받아 아버님이 병원에 갔다 오셔서 경과가 좋다니 멀리 떠나온 나도 걱정이 되더니 한층 안심이 되는군. 당신이 정성껏 돌봐드려서 쉽게 완쾌될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당신이 고생이 많아.

  시화, 미애 요즈음은 어떻게 놀고, 뭘 하는지 퍽 궁금하고, 겨울이 지나가 봄볕이 따스해지니 아마 마당에 나와 놀겠지. 미애도 예쁜 신발이라도 하나 사 주지 그래. 당신이 알아서 하겠지. 봄이 되거든
(시골에 가 있는)이런 기회에 (전에 말했던)당신 생각대로 병아리도 키워보고, 돼지도 길러보고, 한번 재미나게 가축을 길러봐. 일 철이 되면 바쁘겠지만 그런대로 가축에 재미를 붙이면 무료한 시간을 보내는 데는 안성맞춤이니까.

  아버님 입원으로 인해서 아마 당신이 이원
(친정)에는 못 갔을런 지도 모르겠군. 그런데 요새 당신 편지가 첫 장 오고는 통 안 오는군. 중간에서 없어지는 거겠지? 당신은 열심히 써 보낼 텐데. 정영이가 집에 와 있는 모양인데 상경했나? 공장이 제대로 안 돌아가면 딴 데를 찾아 보아야 안되겠나?

  내게 교육관 자리를 물려준 반대위
(육사18기 동기생 반준석)는 어제 떠났는데 내일쯤 배를 타게 되니 늦어도 열흘 후면 집 문을 두드리겠군. 늦차로 온 덕택에 아직도 아득한 훗날 난 그렇게 되겠지. 하지만 여기 와서 많은 것을 배우고, 깨닫고 한 것 같아. 헛된 고생이 되지 않도록 열심히 배우고 노력하고 또 직책과 임무에 착실해야지. 이것 만이 만리 이국에 온 보람을 찾을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자- 그럼 내일은 레슬링
('작전'을 말하는 은어)위해서 이제 잠 좀 자야지. 안녕.

월남 정글에서 영
고국 편지 ('69. 4. 17)
시화 아빠!
  당신이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이곳엔 어제 하루 종일 내린 눈으로 들과 산이 하얗게 덮여 있군요. 봄날씨 치곤 좀 추운 날씨나 하얀 눈은 봄볕에 맥없이 녹아버리는군요. 진달래꽃이 한창이고, 때를 만난 병아리들이 삐약 삐약 하며 엄마 품에 기어드는군요. 여보! 당신이 월남 날씨와 같이 고국을 생각하듯이 옥이 역시도 마찬가지군요.

  이원에서 4월 14일에 집에 왔습니다. 이원도 다 무고하고요 집에 오니 역시 집에도 아무일 없습니다. 당신 편지도 옥이를 기다리고, 큰 도련님은 서울에 가서 취직을 하겠다고 3월말께 올라갔는데 요사이 편지에 인천중공업에 말을 하고 있는데 아직 확실한 결정은 모르겠군요.걱정은 되나 올해는 어떻게 결정이 나겠지요. 대구 큰아가씨들도 다 잘 있는가 봐요. 어린애는 계집애인데 잘 크는가 봅니다.

  우리 집에 미애, 시화도 잘 놀고요. 시화는 개구쟁이라 까맣게 탄데다가 흙에 굴러다니며 잘 놀기는 합니다. 이젠 말도 잘 안 듣고, 떼도 쓰고. 아마 그것이 크는 것인지 모르겠군요. 그러나 건강하기를 빌죠. 미애도 제법 잘 걸어 다니며, 장난도 하고, 잘 놉니다. 시화는 아빠가 장난감 많이 사다 준다고 편지 왔다니까 아주 좋아하는군요.

  참, 여기 말만 잔뜩 늘어 놓았군요. 여보! 당신은 지금쯤은 어떻게 지내는지? 편지는 받았으나 약 20일 전의 소식이고 보면 그 후가 궁금하군요.너무 편지가 오래 걸리는 것 같군요. 하긴 몇 만리 밖이라 하지만-. 두 장의 사진에 그래도 당신이 건강한 몸으로 찍혀 있는 것으로 보니 반갑고, 만나보는 기분이군요.

  여보! 사진 속의 당신을 자꾸만 봅니다. 수영하다 찍은 사진에 보니 끄으런 자리가 표가 나는군요. 어깨는 하얗지만 손목으론 까맣게 타 있군요. 아직까지 수영 빤스는 안 산 모양이군요. 안 산 것이 아니라 못샀겠지요. 당신이 들고 있는 고기도 탐스럽고 크군요. 고기가 많은가 보군요.

  그곳도 신문이 가는지 모르지만 요사이 국내 소식은 시끄러운 모양 같군요. 15일에 미국 정찰기를 북한에서 추락시켰는 모양인데 작년의 푸에블로 사건 때와 같이 시끄러운 모양. 국민들의 공포심을 자아내게 하는군요. 이럴 때면 군인인 우리들이 걱정이 되는군요. 누구나 마찬가지지만 국민의 한 사람으로 모든 일에 단단한 각오가 필요하겠죠. 나라가 편해야 국민이 편한 것인데---

  여보! 당신의 식욕이 그리 나쁘지 않다고 하니 다행입니다. 빨리 세월이 흘러 당신의 튼튼한 모습을 보고싶군요. 그리고 기구건 말입니다. 이원에 가서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삼촌이 기수를 2번 정도 만나 봤는데 아마 교섭을 했나 봐요. 그래서 대전 통신학교에 있는가 봐요. 서울 부근으로 갈 것 같다는 이야기 입니다. 당신의 덕인지 삼촌의 덕인지는 자세히 본인에게 듣지 않아잘 모르지만 다행입니다.

  당신의 근무수당이 도착했습니다. 오늘은 우체국으로 찾으러 갔다가 돈이 모자란다고 오늘 못주겠다고 하여 못 찾고 왔습니다. 김천으로 부친 것이 부항우체국으로 고쳐 오는군요. 이제 우체국에 부탁해서 김천에서 찾게 해야겠습니다. 물어 봤더니 김천에서 찾게끔 할 수 있다고 하니까요. 먼저 번에 부항우체국으로 부치라고 했는데 그대로 김천으로 하세요. 우체국에 이야기 해서 김천에서 찾겠으니까요.
  90$(25, 470원)이더군요. 당신도 말 했듯이 국민은행에 상호부금 15개월짜리 한 달에 30,700원, 계약금액 50만원, 이것으로 할려고 합니다. 내일이라도 찾으면 빨리 계약을 해야겠습니다. 모자라는 것은 먼저 예금액에서 보태야 하겠습니다.

  여보! 그러면 오늘은 이만. 이 밤도 안녕히--- 여보!

고국에서 옥이가 당신을 그리며. 4. 17
안쾅 휴양소에서 망중한
뒷줄 왼쪽: 대대 군수장교, 앞줄 왼쪽: 6중대장(전사), 오른 쪽: 7중대장
물고기를 들고 있는 사진
밀물 때 대대베이스 앞 만에 들어 왔다 잡힌 물고기. 왼쪽에 같이 서 있는 장교는 대대정보장교, 이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