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남 편지 ( 제 8 신 )
玉이 당신에게
  여보! 당신은 편지를 한 번 밖엔 쓸 줄 모르는 모양이지? 난 매일 받고 싶은데. 오늘이 정월 스무 여드레쯤 되겠군. 그렇다면 고국엔 아직 겨울이겠는데 아니 이제 봄볕이 제법 따스하게 비치겠군. 순 여름 속에서만 사니까 계절 감각이 전연 마비된 것 같애. 거기도 모기장 치고 마루에 나와 잘 것만 같은 착각이 드는군.

  영화 구경을 자주 하게 되는군. 방화도 많이 가져와 오늘 저녁은 '에밀레종'을 봤지. 종 하나를 만들기 위해서 일생을 바치는 젊은이와 지아비를 구하기 위해 귀여운 애기를 바치는 지어미의 심정을 알 것 같아. 그리고 몸부림치는 모성애.

 
(지금 사진을 놓고) 깜찍스런 미애를 쳐다봤다, 의젓한 시화를 쳐다보다 그리고 당신을 쳐다 보면서 써 내려가고 있는 거야.

  오늘 낮에는 사람도 살지 않는 곳에 VC 20명이 나타났다고 Gunship
(건슆)이 출동하곤 했지. Gunship이란 무잘 헬리콥터야. 당신도 영화에서 봤잖아. (영화)'그린베레'에서. 무섭게 사격하는 헬리콥터를 말야. 확인차 헬리콥터로 날아갔다가 해변에서 어부 한 사람과 조그마한 아이 하나를 잡았지.
  심문을 해 보니 별 혐의가 없는 가난한 고기잡이인가 봐. 그런데 그 아이는 12살 이라는데 참 똑똑하고 잘 생겼어. 월남 사람들은 하나같이 약하고 못생겼다고 생각했는데 가난하고 전쟁에 시달리고 해서 그렇지 똑똑한 사람도 있나 봐. 그 아이를 보면서 무영이가 생각나더군. 학교에서 뛰 놀 나이에 고기 잡으러 갔다가---
(그래도) 운 좋게 산 거야.

  그 지역은 민간인이 들어갈 수 없는 곳이야. 우리도 갔다가 공중에서 그냥 사살하고 오려고 했었지. 안 된다는 조종사를 억지로 구슬러
(땅에)앉아서 그냥 잡아 오기를 잘했지.
  전쟁에는 원래 억울한 혼령도 많이 생기는 법이지. 더군다나 여기 전쟁은 엉망이야. 흑백을 가리기가 극히 힘드는군. '백 명의 VC를 잡는 것보다 한 명의 양민을 보호한다'는 것이 십자군
(파월 한국군을 말함)의 구호인 만치 더욱 힘드는군.

  월남전에서는 대전술가, 대전략가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조그마한 머리가 필요한 곳이야. 이렇게도 해 보고, 저렇게도 해 보고, 있는 머리를 모두 짜내 보지만 잘 안 되는군. 꾸준히 노력하면 성공할 날이 있겠지. 밤이슬 젖어가며, 갈증을 참아가며, 담배도 참으면서 VC의 길목에 나가 지키며 뜬 눈으로 이 밤을 새는 따이한의 아들들은 결코 실패하지 않을 꺼야.

  3월분 송금표를 작성하라는군. 45$을 의무적으로 중앙경리단에서 예금하는 모양이니 여기서 쓸 돈 조금 남기면 90$ 밖에 못 부치겠는데. 앞으로도 이것 밖에 안될 것 같아. 그렇게 알고 처리 해 줘.아마 4월 중순께나 20일께 당신에게 들어가겠지. 받는 즉시 알려줘. 중간에 착오가 적지 않는 모양이니 말야. 지난 2월분 60$은 어떻게 받았나?

  그리고 호봉이 승급되었는데 추가되는 국내 봉급은 분기별로 당신에게 송금될꺼야.(기존 호붕으로 1년분치를 출국 전에 이미 받았음) 3월 1일부니까 3달씩 부쳐준데. 한 달에 한 8-9백원 쯤 되겠지.

  안쾅에 나가서 태운 몸이 이제 온 몸이 껍질이 벗어지는군. 몇 번 반복하는 가운데 깜둥이처럼 되고 파월 고참이 되겠지.

 
(육사18기 동기생) 박용원대위는 지난 제대에 안 왔나 봐. 한 쪽 구석에 쳐 박혀 더구나 S-3는 상황실에 박혀 무전기와 전화기와 악만 쓰니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겠고. 곧 2제대가 올 테니까 그 쯤에 올려는가 봐.

 
(육사18기 동기생) 조용수대위가 주월사에 왔을 텐데. 사이공과 여긴 아주 딴 세계니까 알 수가 있나. (육사18기 동기생) 반대위(반준석)가 귀국 전에 베푸는 사이공관광 여행 갔으니 돌아오면 소식을 들을 수 있겠지.

 
(육사18기 동기생)문대위(문영대)는 사단에서 근무하는데 거기도 복잡하고 골치 아플 꺼야. 그렇지만 전쟁하는 참 맛은 모를 꺼야.

  작전에서 전과란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좋은 것이고, 실패 즉 피해란 이유를 막론하고 나쁜 거야. 전과와 피해가 곧 부대의 분위기를 좌우하는 것이 전장 속의 특유한 기상도니까.

  오늘은 이만 쓸래. 좀 더 VC를 잡을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해야지. 그럼 안녕.

월남에서 미애 아빠 씀
고국 편지 ('69. 3. 27)
우리 미애, 시화 아빠에게
  여보! 제8신을 받았어요. 한 달 전에 한 편지를 받았다는 회답이 이제 오는군요. 받았다니 다행입니다. 8신을 받고 보니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기분이군요. 왜냐구요? 한번 밖에 쓸 줄 모르느냐고 하기에 말입니다. 그 땐 좀 늦었어요. 며칠간. 노는 때라고 사람들이 밤중까지 놀다 가고 하기에 늦었다고 하면 당신은 거짓이라고 할는지? 옥인 당신에게 항상 솔직했다고 생각하는데-

  여보! 지금 이곳은 따뜻한 봄입니다. 보리 싹도 제법 파릇파릇 하고 보리밭
(김)맨다고 야단들이군요. 우리도 오늘 정희 아가씨가 밭을 맨다고 나갔어요. 난 빨래와 미애를 데리고 하루가 가고요. 우리들이 덮는 요를 깨끗이 빨아 놓았어요. 당신이 오면 덮으려고요. 시화는 할머니 할아버지와 월곡 외갓집에 자매계가 있다고 갔다 왔어요.
  요사이 미애와 시화는 작은임
(어린이 전염병 일종)이라나요. 시화는 벌써 앓고 일어났고, 미애는 요사이 앓고 이제 막 나았습니다.
  당신이 까맣게 타듯이 미애, 시화, 옥이 모두가 까맣게 당신을 닮아가나 봐요. 당신도 까맣게 태워 건강한 몸이 되어 주세요.옥이도 건강에 물론 조심하겠어요.

  이제 곧 이원
(친정)을 다녀 올까 합니다. 벌써 편지하고 아직 편지를 안 해 궁금해 하겠군요. 빨리 가서 뵈야겠군요.
  당신도 편지 했는지 모르겠군요. 내 편지 보단 당신 편지를 더 기다릴 텐데- 육체적으로 도회
(도시)보단 시골이 힘들군요. 예상은 했지만- 그러나 당신의 편지를 받는 순간 피로와 짜증도 깨끗이 사라지니 약과도 같다고나 할까?

  밤이 깊었습니다. 12시 15분 전이군요. 이런 때도 당신은 작전계획에 여념이 없는지요? 물론 항상 바쁠것이라는 것을 생각하지만 당신의 두 뺨에
(말라서)없어질 살을 생각하니 안타깝군요.
  빨래를 해다 놓고 조용히 앉아 당신의 편지와 사진을 보며 당신을 그리워 했죠. 사진을 보면 볼수록 그립습니다. 당신의 야문 팔에 꼭 안기고도 싶었고요. 여보! 당신이 말 한대로 기다림이 크면 클수록 만나는 기쁨도 크겠지요.

  그리고 당신이 말하는 여러 가지는
(돈 문제나 모든 것) 다 준수할 테니까요. 여보! 이젠 편지 자주 할게 혼내지 말아요. 당신도 마찬가지로 자주 해 주시고요.
  그럼 다음에 또 쓸께요. 잠이 오지를 않는군요. 당신을 그리며- 누워야겠군요. 여보- 이 밤도 안녕히-
당신을 그리며 옥이 드림 3. 27

  * 월남에서 오는 돈은 15일께 옵니다. 김천우체국에서 부항으로 보내니까 부항우체국에서 찾게 됩니다. 아주 직접 부항으로 부치기 바랍니다. 29일 이원에 갈 것 같습니다. 많이 있어야 15일이겠죠. 그 동안 집에 오는 편지를 못 봐 오래 못 있을 것 같아요.

고국 편지 ('69. 4. 2, 이원에서)
보고싶은 당신에게
  당신의 편지는 받지 못해도 이 곳의 소식이라도 전하려 펜을 들었어요. 집에는 편지가 왔을 줄 알지만 보지 못하니 안타깝군요. 그런 생각을 하니 빨리 가고 싶지만 또 바로 왔다 빨리 갈 수도 없는 형편.

  여보! 지금은 무엇을 할런지요? 물론 S-3란 바쁜 곳이라고 알고 있지만. 요사이는 신문, 라디오를 못 듣고, 보지 못하니 월남의 근황을 알 수가 없군요. 이 곳 어머니 한테도 틈이 있으면 편지나 해 주세요. 이곳에도 당신의 편지가 전번에 한번 왔다고 하더군요. 답도 했다고 하고요.

  이곳은 옛날이나 마찬가지로 무고들 합니다. 옥이 역시 편안히 아랫목에 누워 있고요. 미애, 시화도 귀여움을 받으며 잘 놀지요. 집
(김천)에도 아무일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옥인 오랜만에 지우대나 한번 가 볼까 합니다. 김천에서 올 땐 이원이나 왔다 갈려고 생각했는데 기권이가 와서 아이들 데리고 가기가 좋을 것 같군요. 당신이 귀국하면 같이 가서 놀다 올까 생각했는데- 당신이 오면 또 가기로 하고 갔다 올께요.

  고향엔 고속도로가 난다고 공사하기에 바쁜가 봐요. 그런 산골에 그런 도로가 나려니 생각은 누구도 못했는데. 당신이 오면 넓고 긴 고속도로가 기다릴 꺼에요. 나의 고향에 가기 위해서---

  여보! 먼저 편지에 호봉 오른 것 이야기 하셨는데 아직 아무런 소식이 없습니다.(집에서 오기 전. 3월29일 현재)

  지금 밖에서 시화가 아이들과 놀며 떠드는 소리가 들려요. 미애는 외할머니 등어리에서 재롱을 부리며 신이 나는 모양, 무어라 재잘대는군요. 시화는 까맣게 끌어 정말 시골티가 나는군요. 미애는 아주 깍쟁이에요. 시화보단 아주 깍쟁이가 될려는가 봐요. 시화는 지금 다른 아이들과 우리 아빤 월남에서 기차. 권총, 장난감 많이 사 온다고 자랑을 하며 신이나 소리를 지르는군요. 그럴 땐 아빠가 보고싶은가 보죠?

  여보! 보고싶어요. 당신의 까맣게 탄 피부와 개선장군 같이 돌아 올 당신의 모습이 말이에요. 다음에 또 쓸께요.
  여보, 안녕---

고국에서 당신의 옥이가 4. 2

  * 4월 10일 경엔 집에 갈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