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남 편지 ( 제 10 신 )
玉이 당신에게
  당신 편지가 무척 오래 걸렸군. 20일이 넘어 걸렸으니까.아버님께서 병원에서 퇴원하셨다는 말은 (동생)정영이 편지에서 들었는데 그 후 경과가 어떠신지 궁금하군.

  시화, 미애가 잘 논다니 반갑고 또한 고맙군. 시화가 기대하는 만치 좋은 장난감을 사다 줘야 할 텐데. 뭘 사다 줄까 하고 생각을 많이 해 본다오. 반대위
(육사 동기생 반준석)는 뻿터리로 움직이는 비행기를 사가던데. 방향만 맞춰 놓고 스윗치만 넣으면 빨간 불이 켜졌다 꺼졌다 하면서 온 방을 돌아다니는 비행기야. 시화(에게)도 사다 줘야겠다고 생각했지. 물론 기차도 사다 줄게. 그런데 아직 멀었으니 (시화가)기다리다가 지칠 것만 같애.

  당신이 내 식사에 관해서는 걱정할 필요가 없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의외로 식사를 잘 한다오. C-레이숀은 아주 안성맞춤이야. 특히 작전에 나가서 나 뿐만 아니라 C-레이숀은 병사들의 전투력의 근원이야. 물론 당신의 정성어린 솜씨가 곁드린다면 더욱더 좋았겠지만. 큰소린 아니지만 지금 같은 상태로만 식성이 맞고 밥맛을 유지한다면 일년 후면
(올 때보다) 훨씬 건강에 자신 있는 몸으로 당신과 아이들을 만날 수 있을 것 같애.

  미애가 새 신을 신고 마당에 뛰어 다니는 것이 눈에 보이는 것 같군. 조그만 기집애가-. 내년이면 미애도 장난감을 사다 줘야지? 피아노식으로 된 실로폰을 반대위는 사가더군. 잘 살펴보면 더 멋있는 게 있을 거야.

  지원이 엄마
(처 고종사촌) 한테서 편지가 왔더군. 기수의 주소와 입대 소식을 전해왔더군. 조대위(?) 한테 즉시 편지를 띄웠는데 한 보름 걸리니 잘 될는지 몰라. 잘 될 꺼야. 만약 잘 안되면 원망 듣겠지? 하기는 내 손으로 이런걸 부탁하기는 처음이야. 부탁한데로 잘 되어야 할 텐데, 몰라. 통신병과로 해서 서울 근처 부대에 근무할 수 있게 해 달라고 그랬지. 3월 초순에 입대했나 봐. 3월 12일에 첫 편지를 받았다니까. 주소는 군우154-82 / 제6818부대 신교대 제5중대 1소대 / 군번 64005537 / 훈병 김기수
  당신도 편지해서 격려해 주라고. 환경이 갑자기 변했을 때 잘 적응해 나가야 될 텐데.

  먼저 편지에 말했는데 받아 봤는지 모르지만 송금은 중대장 나가기 전에는 90$ 밖에 안될 것 같애. 중앙경리단에 의무적으로 45$씩 저금을 하도록 되어 있으니까. 그러니까 당신이 알아서 해줘요. 국민은행 상호부금이라는 게 좋겠군. 15개월이면 꼭 맞겠어. 귀국 몇 달 전은 보통 송금을 않더군. 3월 분이 내일 송금 되겠군. 받는 데로 즉시 알려줘. 중간에 돈 독이 오른 친구들이 많은 모양이야. 90$ 밖에 못 붙였어.

  당신은 어째서 월남에 와 있는 나보다 월남 소식이 훨씬 빠르고 많군. 베트콩의 공세가 뭐 별거 있나? 비행장이나 탄약고 한 몇 군데 박격포 몇 발 쏘고 그걸 공세라고 신문에서 떠드는 모양인데 이 정도도 없어서야 어떻게 전장이라고 할 수 있나? 조그마한 대대 상황실에도 이런 첩보, 저런 정보가 수없이 들어 오지만 이젠 공세를 좀 취해 왔으면 싶군. (VC가) 하두 요리조리 잘 빠져 도망가니까 잡기가 무척 힘드는군. 내 머리가 부족한가 봐.

  이번에 나가는 작전에서는 결코 좋은 성과를 얻고 돌아 와야 할텐데. 전쟁터에서는 이기는 것만이 지상이야. 작전의 성과라는 것이 모든 것을 좌우하니까.

 
(육사18기 동기생) 박용원대위가 사단 G-3에 왔다는군. 심심하니까 (육사18기 동기생) 문대위(문영대)가 사단에 잡아 놓은 것 같애. 내가 왔을 때도 중대장만 했더라면 사단에 잡히는 거야. 거기도 힘드는 곳이야. 그렇지만 (박대위는) 잘 해 낼 거야.아직 전화도 한 번 못 통해봤지.

  자 이만 쓸래. 상황근무니까. 내려 가 봐야지. 참 김천에도 명찰집이 있던가? 기회 있거든 보병 뺏지하고 계급장 한 다섯 개 씩 만 보내줘. 국방색 베에다 수놓은 것 말야.
  그럼 안녕.

월남에서 미애, 시화 아빠 씀
고국 편지 ('69. 4. 22)
그려보는 당신에게
  오늘도 기다림으로 하루가 갔습니다. 점심 때 되기를 고대하고 기다렸는데 우체부는 그냥 지나가는군요. 아침에 일어나면 항상 점심 때 되기를 기다리는 것이 그 전에 우리들이 살림 할 때 저녁 때 당신 오기를(퇴근) 기다리듯이 기다린답니다. 여보! 왜 편지가 늦어지는지 모르겠군요. 바빠서 그럴까요. 부쳤는데도 그럴는지?

  이곳 집엔 무사합니다. 큰 도련님은 21일 우체국에 이력서 등 구비서류를 해 가지고 올라 갔습니다. 월곡 외삼촌 동서 되는 이가 영등포 우체국에 있는데 좀 간부급에 들어가는가 봐요. 그래 그곳에 취직이 될 것 같다고 하는데 아직 올라가 소식이 없군요. 아마 돈이 들어가는가 보더군요. 약 5만원 정도 들어간다고 얻어 갔습니다. 우리 돈은 건드리지 않고 말입니다.

  아버님께서 너희는 너희대로 하고, 나는 나대로 빚이 지더라도 할 테니 그리 알라고 하시어 당신이 부친 돈은 예금(상호부금)을 했습니다. 먼저 번 편지에도 썼지만---

  시화는 지금 라디오유치원 시간을 듣더니 유치원에 언제 가느냐고 물으며 바싹 붙어가며 묻는군요. 아빠가 오면 간다고 했더니 좋아서 싱글벙글하며 신이 나는 모양인데 빨리 세월이 흘러야 할 텐데---

  미애도 시화가 하는 노래를 따라 하겠다고 소리지르며 옆에서 제법 잘 노는군요. 아이들은 봄볕에 끄을리기는 했지만 잘 놉니다. 여보! 아이들 보고싶지요? 옥이, 시화, 미애도 역시 당신이 보고싶답니다. 까맣게 끈 얼굴과 튼튼한 모습이 말입니다.

  산과 들은 하루하루 커가는 초목들로 푸르러 갑니다. 그에 따라 농사일도 바뻐 저녁이면 피곤함이 찾아들기 마련. 여보! 당신도 바쁘겠지요. 옥이도 한 일은 없이 바쁘군요.

  밖에서 미애가 바둑알을 가지고 재미있게 주워 담으며 놀고 있군요. 여보! 간단히라도 편지 좀 자주 해요. 날마다 기다리는 것이 당신 편지인데- 멀리서 얼굴은 보지 못하지만 편지라도 자주 받으면 마음의 위로라도 될 텐데---

  펜을 들기 전엔 하고싶은 말도 많고 했는데 이렇게 펜을 들고 보니 다 도망갔나 봐요. 참, 계급장, 병과 뺏지는 김천에서 할 수 있을는지 모르겠군요. 김천에서 못하면 서울 큰 도련님께 부탁해서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또 다음에 쓸께요. 그 동안 안녕히.

한국에서 당신의 옥이가 4. 23
* 10신까지 받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