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남 편지 ( 제 11 신 )
옥이 당신에게
  이번엔 내가 사과해야겠군. 편지가 늦었다고 말야. 안그래도 산 꼭대기에서는 한 열흘 동안 당신의 파랑새(편지를 말하는 은어)를 무척 기다렸지.

  파랑새를 기다리고, 받으면 좋아하곤 하는 건 계급의 고하가 없고, 나이의 차이가 없나 봐. 특히 이국 만리 와서, 그것도 작전이 벌어지고 있는 산 속 정글에서 이마에 흐르는 땀으로 편짓장을 적셔가면서 읽는 맛- 그게 계급의 고하를, 나이의 다소를 잊게 하나 봐. 대대장님께서도 보따리
(보급을 말하는 은어) 오뚜기(헬기를 말하는 은어)가 왔다 갈 때 마다 파랑새를 찾는 걸 보면-

  난 작전 열흘 동안 그 때 마다 시무룩하곤 했지. 그것도 열 번이나 말야. 오늘 내려와 보니 서랍에 2장이나 들어 있잖아. 엊그제와 오늘 왔다고 계원이 무척 강조하는 것을 보니 작전지역으로 올리지 못한 것이 무척 미안한가 봐. 기다림이 컸으니 반가움 또한 클 수 밖에---

  작전지역에서도 시간이 한가한 때면
(편지를) 쓸 수도 있어. 그렇지만 혼자 앵무새(무전기를 말하는 은어) 붙잡고 혼자 Viet cong(베트콩) 잡는 척 하자니 쓸 틈이 있나?

  이번 작전에서도 난 물론 물고기들
(병사들을 말하는 은어)이 무사히 돌아 온 걸 내가 잘 해서 그런 줄 알았는데 (기지에) 와 보니 그게 아니군. 당신처럼 멀리 고국에서 걱정해 주고, 무운을 빌어주는 부모, 처자들의 염원인 것 같아. 당신이 톡톡히 전쟁을 치루는가 봐.

  여보! 아무래도 시골이 힘들지? 부모님 안녕하시고, 시화, 미애 잘 논다는 구절만 있으면 내겐 됐어. 시화, 미애가 노는 모습이 눈에 보이는 듯 하구먼- 재롱을 부리고, 이뻐지고, 약아지고---

  이원에 가서도 미애가 이뻤다고 하더랬지? 내 새끼라서 그렇다고? 천만에 당신 새끼니까 그렇지. 새 신 신고 잘 뛰어 다니나? 시화는 할머니, 할아버지한테 너무 응석을 부리지 않는지 모르겠다. 미리부터 머리가 깨도록 잘 가르쳐 봐. 물론 당신도 힘들고 피곤하겠지만---

  여보! 이원에 가서는 고향에 다녀왔나? 참, 오랜만이었겠군. 당신이 내개 온 이후론 처음 아냐? 나야 아직 기권이 하고 종권이 말고는 생면부지간이지만- 말들 많이 했겠군. 군인 신랑을 얻어서 고향에도 자주 못 온다고 말야---

  당신은 신문이나 라디오 뉴-스에 크게 관심을 쓰는 모양인데 그건 귀로 흘려버려요. 전장이라지만 아무것도 아니니까- 그런데 V.C
(베트콩) 잡기도 참 힘들어. 아주 없는 건 아닐텐데 만나야지 잡든지 하지 뭐. 그래도 전쟁의 참 맛은 적을 만나 죽이고, 죽고, 부상당하고 하는데 있나 봐. 전쟁영화를 보면서 이런 장면을 보면서 통쾌하게 생각하는 것이 사람이니 잔인성 때문일까? 모기가 자꾸 공격하는구만- 편지장에도 모기약이 묻어버렸네---

  작전이 끝났다고 흔한 삐루
(맥주) 깡 기우리며 소리(노래) 한마디씩 하는 물고기(병사) 들이 내일은 잊고 오늘에 사는 현실주의자들이지. 군인의 생각이, 성격이 단순하고 한 것은 전쟁이 만들어 주는 제2의 천성인가 봐.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등에 90파운드가 넘는 배낭을 지고 땀에 젖어 물에 빠진 생쥐처럼 해 가지고 생 정글을 뚫느라고 목에서 갈증이 나서 물을 찾던 그들의 목에서 저런 노래 소리가 나올 수 있으니 말야. 지난 것도 모두 잊고, 다음 것도 생각할 것 없이 지금 이 시간에 만족하는 순진한 맹호들이야.

  참 이번 작전에서 고재만대위의 목소리를 앵무새
(무전기)를 통해서 들었어. “창경원, 창경원, 당소 백마강 삼백(중대장) 이상”하는 목소리가 옛날과 똑 같더구먼. Wife는 아포(금릉군 아포면) 시골에 있는데 두 달 남았다니 부럽지 뭐야. 내게도 세월은 빨리 갈거야. 적과 당신을 생각하다 보니 벌써 두 달이 지나갔으니 말야.

  지난 날에 솔직했고 뭐고 다 집어 치우고 편지 자주 안 쓰는 쪽이 모든 잘못을 뒤집어 쓰기로 약속하자구.
(편지를)받고 답장 쓰겠다는 생각을 없애자구. 나도 틈만 있으면 쓸게. 아무거나 말야.

  자- 그럼 안녕
월남에서 미애, 시화 아빠 씀
고국 편지 ('69. 4. 29)
여보!
  무척 기다리던 11신도 받았군요. 작전을 나가서 그리 늦었다고요. 무사히 마쳤다니 반가워요. 그 동안도 안녕하셨는지요?

  여보! 편지, 무척-----기다렸다고요.
  지금 고국 고향엔 앞마당 감나무, 호두나무 등 나무 잎이 제법 나왔고, 보리도 이젠 얼마 안 있으면 패게 생겼답니다. 지금 집엔 미애와 옥이 둘 뿐. 조용히 당신의 곁으로 갑니다.

  시화는 할머니 따라 밭에 갔죠. 뒷밭 보리밭 매는데 갔나 보군요. 아주 어린양이 늘어서 어떤 때는 걱정이 돼 가끔 따끔하니 혼내주고 하니 그리 걱정 안 해도 돼요. 당신이 와 봐야 교육을 잘 시켰나 못시켰나 는 알겠지만---

  미애 계집애도 잘 놀아요. 시화 보단 깔끔하고 깍쟁이 같애요. 저희 또래에선 질려고도 않고 아주 앙칼을 부리는 것을 보면 우습군요. 사진을 보고 엄마, 아빠 하고 가르쳐 줬더니 “엄마”, “아빠” 하고 소리를 하면 손가락으로 사진을 가리키는군요.

  당신이 떠날 때는 그리도 춥고 많은 눈이 내렸는데--- 옥인 당신과 서울에서 아이들 데리고 다니며 미끄러운 거리를 기면서 다니다 넘어지고 한바탕 웃던 생각, 좀 더 재미롭게 지내지 못했던 후회 등 지나간 당신과 지냈던 생각을 머리 속에 들추며 혼자 웃곤 하며, 후회 되는 생각은 기다리는 훗날에 보충하기로 하고, 당신을 생각하며 희망 속에 산다면 당신도 기뻐 해 주겠지---

  좀 힘 들 때면 당신 생각, 귀여운 우리들의 시화, 미애를 바라보며 다 잃어버린답니다. 그러다가도 일년, 하면 가마득한 것 같고요.

  여보! 이렇게 펜을 들고 당신 곁으로 가니 더욱 더 당신이 보고싶군요. 보고싶지만 참는 수 밖에. 편지나 자주 오기를 기다릴 뿐---

  일 전 어머님은 동네 할머니들이 해인사 간다고 하니까 함께 갔다가 어제 저녁에 오셨어요. 아버님 병환은 이제 다 나았나 봐요. 이제 들 일도 하시고 하시니까요.

  큰 도련님은 전번 편지에도 이야기 했지만 우체국에 이력서를 냈다고 하는데 아직 보름쯤 기다려 보라고 한다는군요. 이젠 되겠지요.

  김천 학생들이나 대구 큰 고모네도 다들 여전한가 봅니다. 그런데 지례 이모님이 당신 편지가 안 온다고 좀 서운한 모양 같아요. 자준 못하더라도 한 번이라도 하세요.

  이원에선 아직 편지가 없군요. 다녀온 후 편지 했는데 답이 없군요. 여전히 잘 지내리라 믿습니다.

  여보! 고재만 대위는 이제 얼마 안 남았다죠. 부럽군요. 먼 훗날-1년 후- 우리도 있겠지만 성급한 마음에 그리 생각이 드는군요.

  여보! 미애가 지금 울며 매달리는군요. 곧 또 쓸께요. 그럼 안녕히---

고국에서 당신의 옥이가 4.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