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남 편지 ( 제 12 신 )
옥이 당신에게
  일전에 보내 온 의평에서 쓴 편지의 답장이 이틀 늦었군. 미안-그 동안 잘 있었겠지, 시화랑 미애랑 외가에 다녀와서 잘 놀지? (병을) 한 통씩 했다니 완전히 치룬건지, 사후 경과는 어떤지 궁금해요. 그리고 아버님은 완쾌 되셨는지.

  4월도 하순에 접어들었으니 봄이 한창이겠군. 봄은 오는 듯 하면 곧 초여름이 되어 솟쩍새 울고, 못자리에 모가 물 위로 뾰족이 나오니까.

  난 그동안 잘 있었고, 둔한 머리로 S-3를 한다고 허둥지둥 했지. 지금 이 편지를 쓰는 순간부터는 업무에 골치 아픈 S-3가 아니라 책임과 부하를 생각해야 하는 중대장이야. 오늘 갑자기 중대장에 임명되었어. 내일 아침에 출동할 작전을 앞두고 말야.

  여보! 내겐 아내로서 당신 한 사람이 있고, 자식으로는 시화, 미애 둘이 있지. 그렇지만 이 순간부터는 내게 자식이 백 수십명이 된거야. 당신이 또 내가 시화, 미애를 사랑스러워 하듯이 앞으로 난 이들을 그렇게 해야 하고, 임무를 끝낸 후 무사히 그들의 부모, 처자식에게 돌려 보낼 임무를 받은거야.

  여보! 당신이 나의 건강과 무사함을 빌려거든 이들의 그것도 함께 걱정해 줄 책무가 당신에게도 부여되었는 지도 몰라.
  여보! 열심히 잘 해 볼게. 당신이 걱정 해 주는 대로 내게 무운이 따르리라고 믿고 남은 것은 오직 내 자신의 노력이라고 생각해.

  내일 작전은 월남의 넓은 고보이 들판이야 당신이 알게 뭐야. 고보이평야를-.
(우리나라) 호남평야는 아무것도 아니야. 다만 폐허가 되고 땅이 거칠어 대나무와 선인장이 무성한 곳이야.

  여보! 시골 당신의 고향에는 다녀왔나? 벼랑길 몇 십리인가를 걸어서, 지우대 말야. 난 안 가 봤으니 당신이 늘 어린시절을 얘기하면서 눈동자 속에 그려보던 그걸로 짐작만 하고 있지. 강 가에도 나가 봤나? 조용하고 한적하겠지 뭐. 강 가 바위에, 모래밭에 앉아 “산은 옛 산이로되 물은 옛 물이 아니로다--” 하면서 한 곡조 중얼 거렸겠지?
  여보! 내년에는 나도 당신과 시화, 미애 손잡고 가 볼 수 있겠지?

  농사일 차차 바빠질 텐데 힘들지 않아? 봄이 됐으니 병아리들이 옹기종기 모여 다니겠군. 아직 이를까? 물건너 논에 일하시는 할아버지 점심 잡수시라고 시화가 부르곤 하겠군. 앞산이 꽉 막혀 답답하지? 그렇지만 난 그 산을 보면서 잔 뼈가 굵어졌기 때문에, 또 그 오른쪽 선산날맹이 쪽으로 은하수가 기울어지면 쌀밥을 먹게 된다는 어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커 왔기 때문에 지금 내 머리 속에는
(앞산과 선산날맹이가) 환히 새겨져 있다구.

  자- 오늘은 이만 쓸래. 곤히 잠든 새로 생긴 자식들은 둘러 보고 내일의 레슬링
(작전)을 위해 나도 자야지.
  그럼 안녕
월남에서 당신의 영으로부터
고국 편지 ('69. 5. 6)
영 당신에게
  어제는 비가 내리더니 오늘은 청명한 날씨에 상쾌한 아침이군요. 푸르른 초목들은 비를 맞아 더 한층 푸르러 보이고, 앞 논에는 못자리 갈이에 바쁘군요.

  여보! 작전은 무사히 끝났는지요. 모든 병사들은 무사히 귀영했고요? 12신을 받고 당신이 중대장으로 나갔다는 소식을 알았어요. S-3에 있을 때 보단 더 조심 해야겠지요. 먼저 있던데 보다 멀리 있는지는 모르지만 정말 조심 조심-

  여보! 어제는 저녁 때 날이 개이기에 고사리 꺾으러 가 봤어요. 산 꼭대기에 올라가니 참 경치도 좋고, 마음이 상쾌하니 마냥 오르고 싶더군요. 당신과 같이 오른다면 더 좋았을 텐데---

  찍 해야 뒷산 꼭대기. 문학에 소질이 있었다면 무엇이 나올 법도 하지만 원체 석두라 할 수 없더군요. 그리고 산 오르기도 힘들더군요. 맨 몸으로 힘들더라고 하면 당신은 우습겠죠? 그러지 않아도 전쟁터의 군인들을 생각했답니다. 더구나 당신을 따르는 병사들을-

  어제 저녁에는 정화
-국민학교 교장 次子-가 와서 월남 이야기를 들었군요. 기자가 인터뷰를 다듯이 꼬치 꼬치 물었어요. 맹호가 아니라 지리적으론 잘 모르지만 고보이평야 이야기를 하더군요. 산보다는 그래도 작전이 수월할 것이라 하지만 누가 알 수 있겟어요. 가 보지 않고, 해 보지 않는 한---

  어머님은 지례 이모가 내려 오라고 해서 가셨는데 속리산 구경을 가셨다고요. 마침 날씨가 좋아서 구경하시기에는 안성맞춤이군요.

  우리 집엔 예쁜 병아리를 18마리 깠어요. 미애는 병아리 뒤를 쫓아다니며 제법 잘 놀아요.시화, 미애는 결핵, 우두 예방주사도 마쳤어요. 그래서 그런지 며칠은 좀 보채더니 이젠 좀 가라 앉은 모양입니다. 미애가 아주 깍쟁이 같이 아이들 한테도 맞지 않고 덤비고 지지 않는군요. 아버님 병환은 이젠 나은 것 같군요. 모든 일을 다 하십니다.

  편지를 쓰고 있으니까
(미애가) “아빠한테 장난감 많이 사오라고 해”하고 부탁을 하는 것이 아주 제법이군요. 혼자 한바탕 웃었습니다. 귀엽기도 하고, 예뻐서 안아 줬죠.

  먼저 번 주소로 쓴 편지들도 받을 수 있을런지요. 받을 줄 알고 있는데- 모자리 논에 개구리가 제법 울고 있군요. 옥인 항상 집안 일에 열심히 하고 있답니다.

  여보! 또 쓸께요. 안녕히! 그리고 당신의 병사들에게도-

고국에서 당신의 옥이가 5. 9
고국 편지 ('69. 5. 13)
  오늘 오겠지. 당신의 편지 말이에요. 여보! 12신을 받은 지가 13일 째로 접어들었군요. 몹시 궁금해 못견디겠어요.

  이 곳엔 무사합니다. 시화 잘 놀고요. 하루 하루 재롱이 늘어가는 미애도 얄밉도록 잘 놀고요. 지금 곧 점심 할 시간도 되었고, 바쁘긴 하지만 몇 자 적어 보내지 않곤 못 견디겠기에 펜을 들었습니다.

  보리도 이젠 패기 시작했고, 모심기 준비에 차츰 차츰 바빠지나 봐요. 곧 풀
(보리밭에 거름되게 깔 풀)도 벤다고 하는군요.

  이곳은 아무 일 없이 지내지만 당신이 중대장으로 옮기고 작전도 나간다고 했는데 정말 그 동안의 소식이 국금해서 죽겠단 말이에요. 물론 당신과 중대원들은 모두 무사하리라 믿고 믿지만-

  라디오를 통해 사이공 중앙우체국이 V.C 테러들로부터 파괴되어 일을 못하다가 새로 가설된 곳에서 일을 시작했다는데 편지가 오지 않는 것이 그 곳 때문이라고 위안을 해 볼까요?

  저녁에 또 쓰고 이만- 곧 나가 봐야겠어요. 밖에선 누에 기른다고 방 수리며 하고 있는데 이렇게 방에서 있기가 좀 민망스러워서 말이에요.
  여보! 보고싶은 맘 꾹 참고 기다릴게. 안녕히-

  고국에서 당신의 옥이가 5.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