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남 편지 ( 제 13 신 )
玉이 당신에게
  보낸 편지도 꺼꾸로 들어 간 모양이지? 받는 편지도 마찬가지야. 당신이 이원서 보낸 편지는 며칠 전 중대장으로 임명되던 날 작전 나가면서 답장을 썼는데 이원에 가기 전에 쓴 편지와 미애 돌 사진을 이제야 받았으니 말야.
미애 돌사진
  겁을 잔뜩 먹고 놀랜 토끼 마냥 서 있지만 그래도 참 이쁘군. 내 딸이니까 그럴까? 어쨌던 깜찍하게 이뻐. 시화가 나물 뜯는다고 들에 나가 논다면서? 그러다가 아주 촌놈 될라. 할머니, 할아버지 한테 귀찮게 땡깡 부리지는 않나?

  참, 당신은 이원서 돌아왔는지 모르겠군. 고향
(지우대)에도 (모두) 무사하시겠지? 시화, 미애가 거기서도 인기를 얻었나?

  월남에는 한가지 선풍이 부는군. 1년 이상 된 장교는 귀국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는가 봐. 난 중대장을 2달 반 늦게 나왔으니 자칫하면 중대장도 1년 못 채우고 귀국해야 될런지도 몰라. 그렇게야 안 되겠지. 중대장은 끝내야지---

  중대원들은 모두 잘 해. 요 며칠 동안 좋은 성과가 없어서 사기가 좋은 편은 아니지만 잘 싸울 수 있는 소질들 가지고 있는 것 같애. 모래 또 작전에 들어가니 이번에는 좋은 성과를 올려 사기 백배 하도록 해야 할텐데--- 잘 될는지 모르겠어.

  요사이는 적을 만나기가
(하늘에) 별 따기야. 적이 (그만치) 적어졌다는 이유도 있고, 남은 놈들이 미꾸라지처럼 잘 빠져 나가는 묘한 놈들만 남은 것 같애. 나무가 많아 숨기 좋고, 항상 여름이니 먹을 것 구하기 쉽고, 입을 것, 잘 것 걱정 없으니- 월남의 고민이 바로 여기에서 생긴 것 같애.

  어제 수색작전에서는
(민간인 출입금지 구역에서) 수상한 꽁가이(처녀)를 하나 잡았지만 V.C라는 증거가 없어 그냥 돌려보내줬지. '백 명의 V,C를 놓치는 한이 있더라도 한 명의 양민을 보호한다'는게 자유의 십자군(파월 한국군을 말함)의 구호니까. 또 속는 셈 치고---

  참 어제는 한명숙 등 연예인단의 쇼를 구경했지. 꾸미고 단장했지만 월남 꽁가이에 비해 너무 늘씬 해.

  편지 쓰다 말고 관망대 무전기 앞에서 초조하게 애꿎은 담배만 태우다가 이제 돌아왔어. 왜냐구? 병아리들
(병사들)이 땀에 흠뻑 젖었지만 이상없이 다 돌아왔군. 밤 늦게 매복지역에 들어갔다가 지금 밤 열 두시에 돌아 오는 거야. 등골에서 식은 땀이 흘러 온 몸이 젖어 있군. 이렇게 하지 않으면 적을 잡을 수 없도록 월남전은 발전한 거야.

  여보! 전 번 편지에도 말했지만 이젠 당신은 월남에 와 있는 중대장의 아내야. 남편의 건강과 안녕이 바래지거든 백 수십 명의 중대원들의 건강과 안녕도 빌어줘야 할 의무를 당신도 받은 거야.

  시화, 미애가 보고싶군. 물론 당신도. 더 반갑게 만나는 날을 위해서, 또 내가 아내와 자식을 보고파 하듯 우리 병아리들
(병사들)도 마찬가지 아니겠어?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그리워 하는 사람들을 반갑게 만날 수 있도록 해 주기 위해서 최선의 노력을 해야지. 그 방법은 (부대)마크 그대로 맹호를 만들어서 부디치면 이기는 강한 부대를 만드는 거야. 이것만이 (후에)그들이 그리워하는 사람들을 반갑게 만날 수 있게 하는 길이라 확신해.

  아버님 수술 후로 경과가 어떠신지 궁금하군. 어머님과 당신의 정성이 깃들였으니 좋으리라고 믿지만-

  내일 작전회의에 참석해야 하니 또 자고 모래부터 한 바탕 졍글 속을, 들판 대나무 숲 밑을 찾고 파 헤쳐 봐야지. 그럼 오늘은 이만, 안녕
월남에서 당신의 영으로부터
고국 편지 ('69. 5. 16)
그리운 당신에게
  당신의 근무수당을 찾으러 김천에 시화와 함께 나왔어요. 한 달 만에 나왔는데 철이 바뀌니 많이 변한 것 같군요. 산골에 있다가 이렇게 나오니 촌놈 된 것 같은 기분---

  오래 만에 김천에 나왔더니 시화가 좋아서 “엄마, 나 과자 사 주지 말고 총 사 줘”하며 장난감 가게에서 한참 졸라서 겨우 물총 15원 짜리로 낙찰, 지금은 편지 쓰는 뒤에서 물장난 하기에 바쁘군요. 검기는 하지만 튼튼한 몸으로 잘 노니 참 대견스러워요. 가끔 일을 하다가 시화, 미애를 바라보며 내 새끼인가 하고 생각하면 귀여운 생각이 와락 더 하군요. 당신 생각도 더하고요. 이렇게 크는 아이들을 보고 싶어서
(어떻게 지내죠?) 당신이 (돌아) 올 땐 많이 클테지---

  집엔 이제 누에가 나오기 시작했고, 곧 풀 벨 시기인 것 같아요. 정희아가씨는 대구에 놀러 갔고, 김천 학생들은 다 학교에 가고 없고 해서 라면 사다가 시화와 삶아 먹고 펜을 들었어요. 이제 1시 50분 차
(버스)로 집에 들어가 귀여운 우리 미애한테 젖을 줘야지. 젖을 떼고 싶으나 집에서(부모님) 걱정하시니 아직은 못 떼겠군요. 이제 가을에나 떼어야 할란가 봐요.

  아직 큰 도련님은 그런 상태로 있는데 최근 소식에 의하면 (취직이)되기는 되는 것 같은데- 되고 봐야 알 일---

  그런데 시화가 양쪽 오금에 습진인지 피부가 물러 오늘 데리고 나와 약을 샀어요. 그리 대단하지 않으니 안심하세요. 요사이 상추가 나오니 좋아하는 당신 생각이 간절하군요.

  며칠 전 그리도 기다리던 당신의 편지가 14일 만에
(먼저 편지 받고) 도착해서 얼마나 반가웠는지 몰라요. 병이 날 뻔- 얼마나 기다렸다구요. 작전을 나간다는데 모든 병사들과 무사히 귀영하였는지요. 정말 당신 걱정도 되지만 당신이 거느리는 병사들에게 무운을 빌어야 하겠군요.

  여보! 이제 부항 버스 탈 시간이 가까워 온 것 같으니 간단히 쓰고 다음에 또 쓰지요. 돈은 90$로 25,542원 왔군요. 모자라는 것은 1회 때 예금한 것으로 보충하여 2회 째 넣었군요.

  여보! 일찍 귀국 할 수 있다니 나에게는 더 반가울 게 없는 것 같아요. 내 욕심인지 몰라도- 빨리 만날 수 있다는 것 밖엔 지금 아무 생각이 없어요.

  곧 시간이 된 것 같아 버스 타러 갑니다. 여보! 안녕히---
당신의 옥이가 5.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