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남 편지 ( 제 14 신 )
옥이 당신에게
  펜을 든 지가 한 열흘쯤 되나 봐. 이유야 여하튼 미안 하이. 그렇게 기다리는 편지 한 장을 매일 받게 해 주지 못하는군.
  그 동안 잘 있었다니 다행이야. 시화, 미애가 봄볕에 까맣게 끌었다 했지? 짜식들- 노래 한답시고 주척거리는 모습들이 눈에 선 하군. 당신 모습도 마찬가지고---

  지금 이 편지는 안꽝서 쓰는거야. 한 열흘 고보이 들판에서, 키손산의 낮은 정글 속에서 빠지고, 헤매느라고 머리는 꼭 비틀즈 같다고나 할까. 아이들
(중대원들) 몰골이 산도적 같이 된 걸 보고 (대대장께서) 좀 쉬어라면서 휴양을 들어 온 거야.
  오늘 막 돌아왔지. 맥주 몇 깡씩 따 놓고 물 한 방울이 피 한 방울과 맞먹는 갈증, 가시 없는 나무와 풀이 없는 월남의 전형적인 낮은 정글을 뚫던 생각은 깨끗이 잊고 다음의 임무수행을 위하여 중대가 휴식도 하고, 한 바탕 오락회도 벌렸지.

  천진난만하게 잘 들 놀더구만. 아담하게 육지를 뚫고 들어 온
(안꽝만) 바닷물의 잔잔한 파도소리를 들으며 모래밭에서 나 중대장으로부터 일등병까지 노래 부르며 흥을 냈지. 야자수 드문 드문 달빛에 그림자 드리우고, 가난한 고깃배의 등불들을 보면서---. 당신 이 풍경을 상상해 보라고.

  그래도 S-3는 작전 나가더라도 편지를 쓸 마음의 여유가 있었는데 중대장이란 직책은 또 좀 다른 점이 있군. 병아리들
(병사들)이 나가는 앞을 주시해 보며 적의 저격, 아니면 부비추랩, 이 두가지에 신경을 전부 쏟아야 해. 이것은 한 생명 아니 몇 명이 될지 모르는 생명에 관련된 문제니까-

  작전에 들어가니까 당신 한테는 미안하지만 당신도, 미애도, 시화도 까맣게 잊게 되는군. 하루의 수색작전이 끝나고
(밤에) 매복을 서게 되면 급조한 개인호 속에 우의를 깔고, 하늘을 이불 삼아 두 다리를 길게 펼 때면 그때서야 갖가지 생각들이 머리 속에 떠 오르곤 해. 하지만 적과 대치하고 있는 만치 그렇게 한가한 생각 속에만 잠겨 있게 하지 않는군.

  적막을 뚫고 크레이모아가 터지고, 수류탄이 날으고, 파이프 뽑는
(소총 쏘는) 소리가 나게되면 앵무새(무전기)는 바빠 지는거야. 우선 “병아리들(병사들) 이상없나?”가 무전기를 통해 날아가는 (나의) 첫마디가 되는 게 중대장이란 직책인가 봐. 그런데 여보! 너무 걱정을랑 하지 마. 허약한 적보다 우리가 훨씬 강하니까. 염려 없어.

  여기가 안쾅이라니까 당신이 걱정될까 봐 오히려 걱정되네. 슈엔이란 여자는 드라마 작가의 손에서 만들어 진 (가상)여자이고, 여기엔 그런 사람 없어. 퀴논이나 사이공쯤 가면 있을런지 모르지. 그러니까 안심하라고.그런데 4월 23일에 쓴 편지에 이원과 고향(지우대) 얘기가 빠졌는데---

  4월분 송금도 90$ 부쳤어. 쥐꼬리 만큼 되는 돈 가지고 당신에게 너무 신경을 쓰게 하고 부담을 주는 것 같애서 미안해.

  당신은 뭐 랄지 모르지만 난 월남을 참 잘 온 것 같애. ‘전장에서 부하를 지휘하는 멋’은 곧 군인만이 갖는 멋인 것 같애. 무전기 하나로 백 수 십 명이 손발처럼 움직이는 모습을 보는 통쾌감-, 그러나 참을 수 없도록 슬픈 일도, 분통 터지는 일도 있겠지. 그렇지만 내게는 그런 일은 없을거야. 당신이 멀리서 아니 항상 가까이서 걱정해 주고, 빌어주니까 말야.

  우리 중대는 한 5일 여기 안쾅휴양소에서 쉰 다음 또 적을 찾아 나서게 되겠지. 틈과 시간과 마음의 여유가 있을 때마다 펜을 들기로 하고 오늘은 이만 쓸게. 아무렇게나 갈겨 써서 미안. 이런 글씨로 마구 쓴 것이 뭘 그렇게 보고싶은지 알 수 없군.
  자- 그럼 잘 자
월남에서 당신의 永으로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