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남 편지 ( 제 16 신 )
옥이 당신에게
  약속한데로 중대 기지에 돌아왔으니 펜을 들어야지. 휴양소도 좋지만 기지에 오니까 꼭 고향 집에 온 것 같은 기분이구먼. 부임하던 날 하루 밤 자고 20일 만에 돌아 온 나도 그런데 병사들이야 말 할 것도 없겠지.

 
(중대장 숙소에서 내다 보는)눈 앞에는 육지 깊숙히 파고 들어 온 바다가 있고, 건너편에 (북에서) 남쪽으로 길게 뻗은 푸미반도가 반은 야자수, 반은 모래밭으로 펼쳐져 있군. 안꽝은 저 오른쪽 끝으로 가옥들이 다닥다닥 붙어있고, 그 앞바다에 영세 어민들의 생명줄인 조그만 배들이 마치 송아지 마냥 매어있어.

  그 동안 부모님들도 안녕하시고, 애들도 잘 놀겠지? 그리고 당신도 잘 있을꺼고- 난 잘 있어. 난 내가 잘해서 무사히 잘 있다고 생각했는데 당신의 편지를 받을 때마다 당신의 덕분이라고 고쳐 생각하곤 해.

  어제는 OBC #311기
(육사 22기생 보병학교 초등군사반)를 같이 맡았던 탁대위(탁재업)를 안쾅에서 만났는데 사단 본부중대장을 한다는구먼.
  먼저 번 편지에 말했듯이 월남에는 기이한 나무들도 많지만 목화나무라는 것이 있어. 농촌에서 자란 나에게는 신기하지 않을 수 없군. 그래서 그 씨를 모아 보내니 한 번 심어 보구려. 꼭 벽오동나우 같은데 아주 작은 수제비 같은 열매가 열어 익어서 터지면 목화송이가 나오는 거야. 울타리 가에 한번 심어서 키워 보구려. 혹시 제2의 문익점이 될지 아나?

  오늘은 이만 간단히 줄일래. 당신과 시화, 미애가 아빠를 보고싶듯이 아빠도 그들이 몹시 보고싶군. 그럴 때마다 사진을 들여다 보며 혼자 뭐라고 중얼거리곤 하지. “짜-식들!” 하고.
  그럼 안녕
월남에서 영 씀
고국 편지 ('69. 5. 23)
시화 아빠에게
  14신의 답도 안 썼는데 이번에 15, 16신이 같이 왔군. 어디서 숨어 있다가 왔는지. 어쨌든 반가운 일.
  여보! 그간 안녕? 여러 자식들을 걱정하듯이 중대원들이 많으니 마음적으로 많이 신경 써야 되겠지요. 더구나 당신 말 같이 초년생 지휘관이니까 더 하겠지요. 그러나 옥인 당신의 빈틈없는 계획 아래 잘 해 낼 것으로 믿어요.

  당신이 모아보낸 목화씨도 들어 있는데 봉투를 뜯었더군요. 혹시나 무엇인가 하고 뜯었나 보죠. 잘 심어 봐야지. 기후나 토질 등 조건에 맞아 잘 클는지 의문이군요.

  지금 이곳은 따뜻한 초여름이라고 할까요. 모도 이제 파릇파릇 하고. 오늘은 피 가리기에 모두 나가시고, 미애, 시화는 밖에서 떠들며 놀고 있군요. 아주 까맣게 되어가지고 노는 것이 아주 얄밉군요.
  시화는 들로, 산으로 안 가는 곳이 없이 다니며 놀고, 저녁이면 고단한지 밤새도록 깨지 않고 자곤 하는군요. 미애는 마당에서 이리 저리 다니며 아주 잘 놀고, 옥이 역시 잘 있지만 누에 밥주기, 밥짓기 등 집안 일에 바빠서 돌아 다니다 보면 저녁이면
(저녁밥) 먹기가 무섭게 피곤과 잠에 곤히 자곤 합니다.

 
(보리 논에 까는)풀도 이젠 거의 다 베었고 또 한 달쯤 있으면 보리 거두기에 모심기로 바쁠 것 같군요. 가만히 앉아 있는 것 보단 이리 저리 다니다 보면 하루 해가 아니 시간 보내기에는 더 낫군요. 사람 꼴이 안돼서 그렇지.

  여보! 당신은 작전을 마치고 휴양 기간이었다고요? 수상스키도 탔다고요? 참 재미 있었겠네요. 옥이도 한 번 해 봤으면- 그러나 망상?

  오늘이 23일 당신이 떠난 지 4개월이 가까웠나 봐요. 1년의 3분지 1은 지나갔나 본데. 남은 시간이 빨리 가야 할 텐데.

  그리고 큰도련님은 대기상태로 지금 며칠간 집에 와 있는데 풀베기 등 일을 거들지만 곧-28일- 올라가나 봐요. 맨 먼저 말하던 우체국엔 될 것 같이 하던데 알 수 없습니다. 되겠지요.

  그리고 먼저 번 편지에 시화 습진 이야기를 했는데 캄비숀 사다 바르니까 나았어요. 산골에 있으니 일부러
(김천에) 나가지도 못하고 있었더니 고생만 시켰나 봐요. 많이 아팠던 것은 아니지만 이젠 나았으니 깨끗하군요.
  여보! 그럼 또 쓸께요. 안녕.
고국에서 당신의 옥이가 5.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