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남 편지 ( 제 19 신 )
옥이 당신에게
  여보! 날씨가 무척 덥군. 월남 기후에 건기로 접어든지도 이미 한 달이 넘었으니 본격적인 건기 기후지. 마침 바닷가 높은 곳에 위치한 (중대)베이스라서 하루 종일 바람이 불어주니 그래도 숨은 돌릴 수 있어서 좋아. 아직도 건기 기후를 지나자면 6, 7월 두 달이 고비라는데 걱정이군. (월남에)오기 전에 듣기는 하루에 한 차례씩 스코-올(쏘나기)이 있다고 그랬는데 그건 거짓말이야. 월남 온지 4개월이 다 되어가는데 비다운 비는 한 번도 안 왔으니 말이야.

  대대를 떠나 중대로 나왔다니까 멀리 간 줄 알았나 봐? 대대하고 같은 위치에 있어. 그래서 안쾅도 여전히 가까이 있고, 내가 맡은 전술책임구역이야.

  그 동안,
(중대장) 불과 한 달 동안 대소 작전 9회나 실시 했지만 각급 지휘자들(소대장, 선임하사, 분대장 등)이 내 뜻을 100% 이해하고 우리 병아리들(중대원들)이 잘 들 해 줬기 때문에 한 마리의 병아리도 잃지 않고 오뚜기(헬리콥터)에 어미닭 마냥 품고 돌아오곤 했어. 당신이 멀리서 염려해 준 덕택인지도 몰라.

  그러나 이번 작전에서도 마찬가지로 개선했건만 Base에 돌아 와 보니 슬픈 일이 기다리고 있군. 이것이 나의 덕이 부족해서 인가 봐. 다름 아니고 작전 중에 대대 대항 축구, 배구 시합을 위해서
(대대 선수들이) 연대로 가던 차량이 중간에서 (베트콩에게) 당했군 그래. 하필이면 내 병아리들이 말야.

  어제 하루 종일 맥없이 지나고, 분을 참지 못해 이런 저런 생각을 다 해 봤지만 결론은 월남전이 어려운 것이 바로 이거라고 생각했어. 어느 것이 Viet Cong이고 어느 것이 양민인지? 총을 멘 놈이 월남 지방군인지 아니면 적인지 알 수가 있어야지. 군사작전에 우선 가는 대민관계, 월남 주민의 회색적인 태도, 월남 지방군의 소극적인 전의, 이런 것이 진흙탕 속에서 미국을 허덕이게 하는 중요한 원인인 것 같애.

  이러다 보니 월남전에 대한 논문이나 쓰는 것 같군. 어쨌던 내 병아리
(중대원)를 잃고 보니 눈이 뒤집히는 것 같애. 그럴수록 정신차려 지휘자의 도를 찾아야겠지?

7nbsp; 여보! 당신 내가 보고싶다고 했지? 나도 그래. 당신도 보고싶고, 시화, 미애도 빨리 안아 주고 싶어. 아빠처럼 새까맣게 끄으렀겠지. 미애는 아직까지 젖을 떼지 않았다고? 짜-식, 복도 많다. 할아버지, 할머니 덕이구만. 그렇지 않으면 벌써부터 시화처럼 지금쯤은 당신 젖이 사랑스러워서 만지기는 할지언정 먹으려고 생각은 않을 텐데.

  여보! 힘들지? 아이들 한테도 아빠가 못 주는 정까지 다 기울이자니 더욱 힘들겠지? 그리고 산골에서 답답하고--- 지금은 봄누에가 나온다고? 집집마다 참 분주할 때가 됐군.

  엊저녁에는 사단에서 박용원대위
(육시 18기 동기생) 한테서 전화가 걸려 왔더군. 아사달(육사동창 소식지)이 왔는데 당신한테 부쳐 주겠다고 주소를 묻는군. 참 좋은 친구야. 그리고 사단에 있는 동기생 셋도 모두 잘 있다는군. 문대위(문영대)도 말야. 한 번 찾아 갈래도 틈이 나나? 그래도 중대장이라고 어미 닭 마냥 병아리들을 떠날 수가 있어야지.

  그리고 기지에 돌아 온 후에는 시간이야 많지만 전쟁터에서 일어나는 가지 각 색의 일들 때문에 펜을 들 심적인 여유가 없군. 친척, 친지들에게
(편지를) 자꾸 쓰면 그만치 점수는 얻겠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니 안타깝군. 내 대신 당신이 소식 전해 주구려. 그 대신 당신에게는 열심히 쓸 것을 약속할게.
  자- 그럼 이만 안녕
월남에서 당신의 영 씀

고국 편지 ('69. 6. 5)
보고싶은 당신에게
  누에 똥 가리기에 바쁜 손을 멈추고 당신의 19신을 받은 기쁨이 그리움과 함께 몰아오며 글월을 읽었군요. 그런데 작전은 무사히 마쳤으나 돌연 습격을 당했던 모양이죠. 병사를 잃었다니 말입니다. 무어라고 말을 해야 좋을지---

  정말 골치 아픈 전쟁터, 더구나 요사이는 무더운 건기의 기후라고요? 당신은
(원래) 더위를 지내려면 무척 애를 먹는데. 정말 걱정이야요.

  이곳 고국에는 작년과는 달리 비가 자주 옵니다. 산천이 녹색의 싱싱한 푸르름과 아직 무덥지 않은 생활에 알맞은 기후, 그러고 생각해 보니 월남보단 살기 좋은가 봐요. 가 보진 않았지만---

  부모님께서도 안녕하시고, 다른 사람들도 다들 안녕하세요. 시화, 미애도 잘 놀아요. 요사이는 뽕나무에 매달려 뽕나무열매
(오디) 따 달라고 손을 내미는 미애, 시화 얄밉군요. 시화는 감나무 밑에서 감꽃 주워 꿰기가 재미있나 봐요.

  어젠 아빠 편지 왔다니까 “사진도 왔어?”하고 사진이라도 보고싶은 모양이죠. 어쨌던 잘 노니 다행이에요. 요사이 옥인 몹시 바쁘군요. 눈으로 보고 안 할 수 없고. 그래도 멀리서 당신이 걱정해주고, 또 기다림 속에 사니까 고달픈 줄 모르고 지내요.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고 말입니다. 지금도 빨래 삶은 것 가지고
(냇물로) 빨러 가야겠군요. 그리고 점심도 해야겠고. (답장) 미루다간 자꾸 늦겠고. 바쁘나마 몇자 적어야만 마음이 편할 것 같아 쓰는 거예요.

  여보! 그러면 다음에 틈 있는 데로 곧 쓸께요. 무더위 속에 안녕히---
고국에서 당신의 옥이가 6.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