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남 편지 ( 제 20 신 )
옥이 당신에게
  당신이 보낸 편지도 순서가 뒤바뀌어 도착하는군. 그렇게 편지를 기다리게 해서 미안---
  그런데 월남에 와 있는 나는 통 모르는데 먼 곳에 있는 당신은 월남 정세를 더 잘 아는구려. 여보!
(신문이나 라디오의) 월남 정세 때문에 우리들을 (나와 중대원을) 걱정할 필요는 없어. (적들이) 그 정도의 발악도 못 해서야 전쟁의 상대가 되나? 정말 전쟁이래야 전쟁하는가 싶지도 않고--- 정말 지루한 전쟁이야. 그래서 인내심이 적은 미국 사람들이 초조해 지는가 봐.

  여보! 난 잘 있었고 또
(앞으로도) 잘 있을 거야. 당신과 시화, 미애가 보고 싶을 때는 사진을 들여 다 보며 당신이 써 보낸 아이들의 (근황을) 생각하면서 재롱이 점점 늘어간다는 미애를, 거므스레하게 튼튼한 개구장이 시화를 그려보면서 남 모르는 미소를 지어보곤 한다오.

  오늘은 위문공연 쇼가 왔다는데 나는 대대 박격포 선수들을 이끌고 사격대회에 갔다 왔어. 이겼냐고? 물론--- 하지만 분통 터지게 단독 우승을 못하고 1대대와 동점으로 공동우승을 했지.

  여보! 중대장을 생각 외로 일찍 나와서 일찍 귀국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가급적이면 내년 9월 말이나 갈래. 물론 나도 빨리 돌아가서 당신도 보고, 시화, 미애도 안아주고파. 그렇지만 진급전쟁에는 자신이 없으니 말야. 눈 앞에 보지않으면
(진급이) 되던 안되던 속 상하지는 않을 것 아냐? (내가 진급전쟁) 공포증에 걸려 있는지도 몰라. 그건 그 때(귀국문제 결정 때) 가서의 일이고----

  지금 고향에서는 누에를 기르고, 풀 벨 때가 된 모양인데 그러니까 초여름이겠군. 여긴 항상 여름이니 계절 감각이 있어야지. 요즈음 부쩍 더 여름 기분이 나는구먼. 건기의 한 중간이라서 그런가 봐. 비도 안 오더니 그저께부터 연 사흘 비가 조금씩 내려 주니 풀, 나무도 사람도 생기를 얻는 것 같애.

  아마 며칠 후 좀 큰 작전을 나갈 것 같은데 나가기 전에 또 한번 쓸게. 당신이 내 편지를 기다리듯이 월남에 와 있는 모든 사람들은 모두가 ‘파랑새’
(편지를 말하는 은어)를 기다리고 있어. 난 당신의 파랑새만 있으면 돼.

  넓은 기름진 들판에 그대로 놓아 먹이는 소들이 풀을 한가히 뜯고, 잔잔한 바다 위에 고깃배들이 유유히 떠 있는 이 평화스런 것 같은 풍경이 월남전을 구렁텅이로 몰고 가는 원인지도 몰라. 차라리 전부 적이든지 아니면 아군이든지 하면
(월남전)은 일찍 해결될 수 있을 텐데.

  여보! 다음 편지엘랑 미애, 시화가 재롱을 부리고, 튼튼히 잘 크는 모습들은 좀 구체적으로 알려줘. ‘과자 안 사먹고 장난감 사 달라’는데 겨우 15원 짜리 물총이야? 아빠가 돌아 갈 때는 멋있고 좋은 장난감을 많이 갖고 갈게.

  그럼 오늘은 이만 그칠레. 부보님과 당신, 그리고 아이들의 안녕을 빌면서---
월남에서 영 씀

고국 편지 ('69. 6. 10)
여보! 당신에게
  어젠 누에가 올라갔고, 내일은 모를 심는다고 해요. 요 몇일 새는 무척 바빴습니다. 누에치기도 꽤 힘이 드는군요. 이렇게 바쁘다 보니 편지 쓸 시간도 없군요.
  여보! 무더위에 고생이 말이 아니지? 전번 며칠 전에 당신이 말 한데로 박대위(육사 18기 동기생 박용원) 한테서 아사달(육사 동문 소식지)이 왔어요. 참 고맙군요. 받고 편지라도 할려고 했으나 아직 틈이 없어 쓰지 않았으나 곧 고맙다는 인사라도 해야겠군요.

  여보! 자주 나가는 작전에 어떻게 몸을 지탱해 나가시는지 무척 궁금--- 조심하세요.
  지금 미애는
(내) 치마 꼬리를 잡고 울며 매달리는군요. 정희 아가씨는 남의 집 모 심으러 가고, 어머님은 피 가리, 아버님은 논에, 옥인 이제 팬을 놓으면 점심 준비, 시화는 이웃 아이들과 자전거 가지고 나갔고--- 이젠 날씨도 좀 더워지는 모양이군요.

  여보! 이런 말은 편지로 할려고 하지 않았는데 할게 화내지 말아요. 앞으로 수당 타시는 것 말이에요. 지금 적금 들은 액수 정도만 붙여주세요, 나머지는 중앙경리단이나 다른 곳에 예금을 직접 당신이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집엔 가만히 보면 ‘한강에 돌 던지기’인 것 같아요.
  다른 때는 몰라도 당신의
(목숨을 건) 수당 만은 잘 모아 보람 있게 하고 싶어요. 그렇다고 지금 집에서 여기 붙인 돈을 내 놓아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빚이 많다 보면 자연히 없어지는 것은 우리 돈인 것 같고. 아직까지는 혹 빚이 져도 우리 돈 안 쓰고 논이라도 팔아 갚는다고 하지만---

  너무 당신도 마음 쓰지 마시고 이러하다는 것이나 알고 잘 해 주시라는 거에요. 우리가 나중에 부모님 재산은 물려 받을 것도 없는 것 같고---그러니까 수당 만은 잘 간수하잔 말입니다.

  여보! 돈 이야기란 것을 당신이 싫어 하는 것을 알면서도 생각하고 생각한 끝에 썼으니 용서해요. 나중에 쓰더라도 당신이 오고 나서 쓰게 말입니다. 여기 온 돈은 아직 다 적금에 넣고 있으나-

  여보! 용서! 무더위 속에 오늘도 정글을 뚫고 있을는지? 만일에 당신이 그 곳에서 하는 방법이 없으면 이원 어머니한테 부쳐주세요. 한 푼도 안 떼고 잘 간수 할꺼에요. 110불 정도면 여기는 됐어요. 주제 넘는 소리인지는 모르나 어쨌든 돈 이야기 해서 미안---

  여보! 미애가 사진을 보면 “아빠-” 하고 불러요. 이젠 말을 할려고 제법 흉내를 내고, 귀엽게 말입니다.
  여보! 미애가 울며 매달려 더 못쓰겠군요. 여보! 안녕---
고국에서 당신의 옥이가 6.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