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남 편지 ( 제 25 신 )
옥이 당신에게
  여보! 건기의 한 중간인가 봐. 몹시 덥군. 그래도 우리 기지는 시원한 바다 바람과 함께 확 트인 바다 전경의 혜택을 많이 보는 셈이야.

  이제 막 작전이 끝나 돌아와 거울을 보니 수염이 1cm가 넘도록 자랐구먼. 꼭 보름 전 심각한 표정과 각오로 기지를 출발했는데 오늘 물고기
(병사) 한 마리도 이상 없이 돌아왔어. 각자 각자가 잘 하고, 나도 역시 잘 했기 때문이겠지. 그러나 멀리 고국에서 당신과 같이 매일 매일 그들의 무사함을 빌어주는 사람들의 덕분으로 봐야지.

  그런데 보름간 작전기간 중에 꼭 한 장 밖에 편지를 못 띄웠지만 당신 편지는 한 장 조차도 못 받았어. 기지 내 방에 와 있으려니 기대를 걸었지만 그것 조차도 헛일이니- 시골 생활이 힘들고 바빠서 편지 쓸 틈도 없나 봐? 아니면 당신 1년에 한 번쯤은 앓아 눕는 성질이라 혹시 환절기라 앓고 있는 건 아닌지 몰라. 전자이리라고 혼자 해석해 보지만 아무래도 개운치 않는군.

  그래도 이번 작전지역은 정글은 여전하지만 골짝마다 물이 흐르고 있어서 큰 다행이었어. 건기 철엔 밥보다 물이 더 중요하니까. 물론 물도 밥도 오뚜기(헬리콥터)로 잘 실어다 공중에서 던져 주지만 그것 가지고는 부족하니까.

  지난 번 말했던가? 5월 분 수당 150$을 송금했을 텐데 지금쯤 받았겠지? 6월 분은 110$ 부치도록 했으니까 그렇게 알어. 그리고 지난 3월부터 인상된 호봉에 따른
(국내봉급) 추가금은 아직 소식이 없는지? 그렇다면 당신이 가지고 간 책자, 경리안내서인가 그것대로 신청을 해 봐. 3, 4, 5, 6월 분만 신청하는 게 좋을 거야. 7월부터는 봉급이 인상되니까 인상에 따른 추가금을 타야지.

  여보! 시화, 미애는 잘 놀아? 보지는 못할 망정 노는 모양은 당신의 펜을 통해 듣고싶군. 그리고 당신도 궁금하군. 편지가 없으니 더욱 더---
  부모님과 동생들 소식도. 정영인 서울에서 추진하는 일 돼가는지? 이제 한 달쯤 지나면 여름 방학이 되겠구먼. 누에 길러서 고치는 좀 했나? 아마 지금쯤 보리 베고 모심기가 시작 될지도 모르겠구먼.

  여보! 여긴 더운 나라니까 작전을 나가도 편리한 게 많아. 난로도, 침구도 필요 없어. 그저 판초우의와 간단한 홋이불이면 되거든. 이슬이 내려도 비가 와도 별 것 아니야. 오히려 시원해 하니까.다만 모기약은 철저히 준비해 가지고 다녀야지.

  우리가 이렇게 편리한건 좋지만 적에게도 마찬가지야. 월남이 고전을 면치 못하는 원인이 바로 그거야. 의, 식, 주, 아무것도 크게 걱정할 게 없으니까.

  어제는 마을 작전을 했지. 상당히 큰 마을인데 방송으로 주민들을 철수시켰더니 아이들까지 포함해서 약 800명이 피난을 나왔다가 작전이 끝난 다음 도로 들어갔는데 다시 들어갔다가 들에 일하러 나오는 사람마다 칭찬이 자자하더군.
  한 건의 민폐도 끼치지 않았으니까. 오히려 같이 데리고 다니는 월남 군인
(안내) 들이 과일을 따 먹으려는 것을 못하게 하면서 감독했으니까.
  피난민들의 통계를 보니 남자보다 여자 숫자가 월등히 많은데 이것이 이 나라가 전쟁 중이라는 것을 증명해 주는 것 같애.

  내일부터 중대는 또 나가야 돼. 작전이라기 보다 월남 평정작업 지원을 위해서 고보이평야
(옛날 주민들이 철수하여) 황폐한 곳에 주민이 다시 들어가 입주할 수 있도록 보호해주는 게 있는데 우리 중대가 나갈 차례야. 거기 가서는 편지 쓸 수 있을 테니까 염려 말아.
  그럼 오늘은 이만. 안녕
월남에서 영

고국 편지 ('69. 7. 5)
영, 당신에게
  바쁘게 펜을 듭니다. 구질게 내리는 비를 맞으며 모내기에 바쁘군요. 오늘은 2마지기 반 정도 남은 모내기를 한다고 모두 나갔고, 옥인 집에서 못밥(모심믐 일꾼들의 점심밥)을 하기로 하고 지금 곧 새(새참)도 해야 하지만 펜을 들지 않고는 안되겠군요. 왜냐구? 당신이 그리워서겠지. 항상 보고싶지만-

  여보! 먼저 당신의 안부를 물어야지. 작전을 나갔다가 무사히 돌아 왔다고요? 어제 당신의 25신을 받았어요. 기다렸던 참에 아주 기쁨의 눈물이 나오고--- 바쁜 일손을 놀리며 그리워 했죠. 여보! 빨리 세월이 가야지.

  집안 식구들은 다 무사해요. 큰도련님이 밥벌이를 하게 되어서 기쁘군요. 먼저 이야기 하던 우체국에 되었어요. 자기 살 도리는 자기가 하겠다고 고생도 좀 했으니 잘 할꺼에요.

  옥이는 당신의 염려 덕인지 건강해요. 시화, 미애도 잘 놀고. 가끔 둘이 싸우는 꼴. 미애 계집애가 안 질려고 대드는 것을 보면 웃음이 나는군요. 미애는 펜을 드는 순간에도 앞에서 젖을 먹으며 바라보고 있군요. ‘엄마가 무슨 생각을 하나?’ 하는 양 바라 보는군요.

  당신이 떠날 때보단 많이 컸겠지. 그 땐 12달이 이제 17달이 되었으니--- 옥인 매일 보니까 잘 모르지만--- 감나무 밑에 가면 할아버지 부르는 꼴이란 혼자 보기엔 너무 아까워. 말
(마실)도 잘 다니고, 아주 혼자도 잘 놀아요.

  시화는 냇물에 가 살고요. 당신 보단 더 까말지도 몰라요. 아주 촌놈이 된 것 같아요. 당신이 빨리 와야 좀 촌놈을 면 할 텐데. 바빠서 그만 써야겠어요. 빨리 모심는데 새
(새참)를 해가야지. 곧 또 쓸께요.
  여보! 안녕.
당신의 옥이가 7.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