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남 편지 ( 제 26 신 )
옥이 당신에게
  이렇게 고보이 들판에 비가 줄줄 새는 움막을 짓고 둘레에는 진지를 구축 해 놓고 있는 간이 베이스(기지) 생활도 오늘이 사흘째구먼.

  오늘은 연대
(본부)에 위문공연 쑈가 왔다기에 중대원을 보내고 잔류병력과 함께 집을 지키고 있으면서 라디오 다이얼을 여기 저기 찾아 보다가 이제 막 오뚜기(헬리콥터) 편으로 온 당신의 편지를 읽고 또 읽고 이렇게 펜을 들었어.

 
(보낸지) 이미 보름이 넘은 편지 이기에 혹시 그 동안이라도 부모님, 당신 그리고 시화, 미애도 잘 있는지 궁금하군.

  건기 철에는 좀처럼 비가 안 온다는데 엊저녁에는 갑자기 비가 쏟아져 매복 나간 사람이나 기지에 남아 있는 인원이나 하나 같이 물에 빠진 생쥐가 되었었지. 그래도 쑈 구경이라고 그 옷을 그대로 입고 가면서 좋아 들 하는군.

  하기야
(지금까지)당신 한 테는 큰소리 못하게는 되었었지. 여름 철마다 밥 못 먹고 쩔쩔 맸으니까 말야. 그렇지만 지금은 달라. 나도 이상할 정도로 식욕이 있고, 건강해. 모두가 당신이 걱정 해 주는 덕분이겠지.

  누에가 자라서 고치를 지으러 올라가고, 감 꽃이 마당 가득히 떨어진 것을 시화, 미애가 주워
(실에) 꿴다고 정신이 없고, 조금 더 있으면 떨어진 감을 주워 꿰어 염주처럼 만들곤 하겠군. 보리는 다 베었나? 모심기가 한 창이겠군.

  여보! 힘들어? 옆에서 보면서 안 할 수도 없을 거고, 약혼 때 삼선교 종고모님인가 하던 말이 생각나는군.(농촌에 가 일 할려고 서울까지 와서 공부시켰겠소?) 소가 송아지를 낳았다고? 암송아지가 원래 더 환영을 받는데. 잘 됐잖아?

  병원에 갔다 오신 후로 아버님 병환은 어떠신가? 힘 든 농사일에 무리를 하시면 재발 할는지 아나? 잘 하셔야 할텐데.

  여긴 모기가 많은 곳으로 월남에서도 유명한 곳이래. 미리 알고 모기장, 모기약을 착실히 준비 해 왔으니 다행이야. 호남평야를 무색케 하는 넓은 들판에 이곳 특유의 잡초가 키를 넘고, 가는 곳마다 전쟁의 상처만 남아 있군. 우리가 여기 온 것은 이런 아까운 들판을 조속히 주민이 (복귀) 입주하여 재건할 수 있도록 그들을 보호하기 위해서야.그야말로 우리가 월남을 도와주는 본래의 목적을 수행하고 있는 셈이지. 월남 지방군도 있고, 민병대, 청년단 모두 가까운 거리에 있지만 우리 한국군이 가장 믿음직스러운가 봐.

  넓은 풀 밭에 물소와 황소가 흩어져 또는 떼로 몰려 풀을 뜯는 풍경이 마치 평화스런 목장의 사진을 보는 것 같애. 월남 사람들은 대부분이 소고기를 먹지 않는데도 소를 무척 많이 길러.
(이곳 시골)사람들은 마르고 볼 품이 없지만 소들은 모두가 기름지게 살이 쪄 있어. 수 십 마리 소 떼 뒤에 목동 한, 둘이 따라 다니는 걸 보면 (소들이) 무척 순한가 봐. 코도 꿰지 않은 것들이 말야. 원래 계획은 6월까지니까 한 일주일 남았지만 또 몰라. 연장해서 있게 될지도---

  여보! 당신이, 시화, 미애가 아빠를 보고싶듯이 나도 마찬가지야. 그럴 땐 사진을 들여다 보고, 또 당신이 적어 보낸 짤막한
(편지) 문장들을 연결해서 그들의 모습을 상상해 보곤 한다고---

  그럼, 오늘은 이만 줄일레. 시화에게 아빠가 올 때는 좋은 장난감 잔뜩 사 가지고 온다고 기다리라고 그래.
월남에서 영 씀
고국 편지 ('69. 7. 8)
영, 당신에게
  2, 3일 전부터 내린 비가 아직까지 밖엔 마구 쏟아지고, 앞 냇물도 많아 못 건너겠군요. 이젠 우리집도 모심기, 콩 심기 모두 끝이 났고, 또 무슨 일이 있겠지. 익숙하지 못 한 생활에 짜증도 안나는 바는 아니지만 어쩔 수 없겠지. 정말 바뻤어요. 당신은 상상이나 할는지--- 여보! 짜증내서 미안---

  대민지원을 나갔다고요? 무사히 돌아 왔는지요? 무더위 속에 많은 생명들을 지휘하는 지휘관으로 골치 아픈 일도 많겠지. 편지라도 자주 해 위로라도 했어야 하는데 바빠서 자주 못 썼다면 화 낼지? 그러나 마음 만은 바쁘면 바쁠수록 더 당신을 생각했답니다. 밤이면 펜을 안 든 적이 적지만 간 것이 얼마 안 되어서 그렇지---

  집안 식구들은 다 무고해요. 시화, 미애도 잘 놀고. 오늘은 비가 와 밖에도 안 나가고 방에서 말성만 부리고있군요. 미애는 젖만 먹을려고 애를 쓰고. 다른 사람들은 피곤한 몸을 잠에 실고, 옥인 이렇게 펜을 들고---

  아침엔 아버님이 당신 한테 편지를 쓰는 것 같은데 혹 돈 이야기 안 썼나 몰라요. 아마 쓴 것 같기에 한마디 쓸까 해요. 옥인 하고 싶지 않은데. 큰도련님이 쓴 돈
(취직금)은 살림 내 준 셈 치고 갖고 갔고, 가을이면 토지라도 팔아 시집도 보내고, 장가도 드릴 모양인데 큰도련님은 3년 내에 장가 안 가겠다고 하는데 아버님이 우기시는군요.

  우리 돈은 건드리지 않기로 했으니 걱정은 말아요. 우리는 우리 대로 살 길을 찾아야지 부모님께 의탁하지 말고요. 할 것도 없지만. 아버님은 아버님대로 남은 자식들 한테 할 수 있는 데까지 하시도록 하고, 남아서
(우리에게도) 주면 받고, 없으면 할 수 없겠지? 여보! 우리는 우리대로 잘 해요. 부모님께서도 이해하고 계시니까.
  여보! 바뻐? 이만 쓸께요. 오늘도 안녕히---
고국에서 당신의 옥이가 7.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