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남 편지 ( 제 27 신 )
옥이 당신에게
  여보! 하루의 작열하던 불볕도 이젠 기울어지고 그래도 하루 중에서 가장 좋은 때인가 봐. 시원한 바람과 함께 아직 모기가 출동을 하지 않으니 나처럼 (모두들) 좋아하는 사람에게 편지를 쓰거나, 라디오의 볼륨을 높이고 고향의 무슨 소식이 있나 하고 귀를 기울이거나, 아니면 (지금) 막 유행하려는 대중가요를(?) 고창하는 등등 간이 베이스(기지)의 풍경은 활기를 띄우는 때라고---

  당신의 편지에 모내기가 한창이고, 몹시 바쁜가 봐. 편지도 쓰기가 힘드는가 봐. 눈 앞에 보면서 안 할 수는 없겠지만 시골생활에 익숙하지 못한 당신이기에 혹시 무리나 할까 봐 걱정이야.

  시화는 고물 자전거 사 가지고 동네 아이들 한테 재는 모양이지? 미애가 말을 배운다고? 여보! “아빠” 소리를 열심히 가르치라고--- 먼저 귀국한 반대위
(반준석) 편지에 작은 딸이 며칠 간이나 ‘아저씨’라고 불러서 꾀 섭섭했던가 봐. 그리고 아이들 완전히 촌놈 만들지 말고, 옷도 깨끗이 입히도록 해야지. 물론 당신을 100% 믿지만 ‘바쁘고 또 (당신의) 저축심 때문에’ 하고 노파심에서 말 한 거야.

  부모님들도 무사하시다니 당신을 위해서도 큰 복이라. 더구나 얼마 전에 수술을 하신 아버님이 재발하지나 않을까 걱정인데 무사하시다니 다행이야.

  서울서 정영이 한테서 계급장과 병과 뺏지가 새겨 왔더군. 편지는 한마디도 쓰지 않아 어떻게 됐는지 알 수가 없군. 대구 시화 고모에게 몇 번 편지를 보냈는데
(그의)주소를 어떻게 알려 줬길래 난 (답장을)한 장도 못 받았다 말야. 편지야 어떻던 잘 있으면 됐지 뭐.

  송금에 관해서는 당신이 말 한 데로 밖에 할 수 없어. 중경단에 45$ 의무적으로 해야 되기 때문에 가정 송금은 105-110$ 밖에 할 수 없어 당신이 걱정 안 해도 되겠어. 지난 5월 분은 계원의 착오로 150$을 송금했나 봐. 6월도 다 간 모양인데 모래면 6월분 송금이 있겠군. 110$ 송금하도록 하고 나왔으니까 그렇게 될꺼야.

  여보! 농촌 경제라는 게 바로 그런 거야. 학비나 농자금이나 모두 빚으로 충당하고, 가을에 갚다보면 농사 지은 보람도 없이 다 나가니 말야.

  난 여기 전쟁터니까 돈이 별로 필요가 없군. 아직 초년생이니까 그런지 모르지만. 박대위
(박용원) 한테서 아사달(육사 동창 소식지)이 왔더라고? 참 고마운 친구로군. 지척에 두고 한 번 만나 보지 못 했으니 이런 게 바로 전쟁터인가 봐.

  편지 쓴다는 게 참 힘드는 일이야. 기껏 펜을 들면
(편지를) 가장 목마르게 기다리고 있을 당신에게야 안 쓸 수 있나? 한 장 쓰고 나면 더 계속하기가 힘드는군. 그래서 펜을 던지다 보면 편지 안 한다고 섭섭해 할 사람이 많으니 큰일이군.

  오늘은 몇 장 쓰겠다고 맘 먹고 시작했는데 몰라--- 써 봐야지 알지. 자 이만 그칠래. 당신한테는 열심히 쓸 테니까 당신도 약속 해 줘. 그럼 안녕.
월남에서 미애 아빠 씀
고국 편지 ('69. 7. 17)
여보! 당신에게
  궁금 속에 당신의 편지를 기다립니다. 몇일 전에 맹호부대와 치열한 싸움이 벌어졌다는 라디오의 소식이 궁금증을 더해가는군요. 여보! 안녕? 갈 수 있는 곳이라면 뛰어가 한 번 보고 왔으면---

  며칠 전엔 정기
(박용원대위 아들)엄마 한테서 편지가 왔군요. 박대위님의 ‘하늘과 땅 사이 만치 사랑한다’는 편지를 매일 두 통씩 받는 다나요. 가끔 보내는 당신의 편지도 그에 못 지 않으리라는 신념에(을 갖고) 옥이도 잘 있어요. (정기 엄마도) 무척 박대위님이 보고싶은가 봐요.

  옥이 역시
(당신이) 아주 많이 보고싶단 말이에요. 미애가 (당신) 사진을 보고 가끔 “아빠, 아빠”하고 부를 땐 무척 보여주고 싶군요. 지금 시화는 새 새끼 한 마리를 다른 아이들 한테 얻어 가지고 파리 잡아 먹이기에 바쁘군요.

  어제 저녁은
(우리)할아버지 제사였답니다. 잘 차리지는 못했지만 (제사 음식 장만 하느라고)저녁 늦게 서야 잤어요.

  미애는 조금 전엔 샘 가에서 다라
(프라스틱 물통)에 물 장난을 하고 놀더니 이제 (내) 옆에서 젖을 빨다가 자는군요. 오늘은 당신의 편지가 오려니 기다리는 마음. 꼭 와야 할 텐데. 그리도 15일이면 도착하는 수당이 16일이 지났는데. 오늘은 올는지 모르겠군요. 그게 어떤 돈인데. 20일 지나도 안 오면 서울에(가서) 열람을 해 봐야지요.

  들은 푸르러 있고, 더위와 함께 김매기에 바쁘답니다. 부모님은 무고하시고, 큰도련님도 우체국에 발령을 받아 우체부아저씨로 활약을 하는 모양입니다. 자기 살 도리는 해야 할 텐데. 시화가 이웃 아이들과 아빠 사진을 가지고 “우리아버지, 미애, 시화, 엄마”하고 가리키며 자랑을 하고 있군요. 파리를 파리채로 세 마리 잡았다고
(좋아하며) 잘 노는군요.

  옥이의
(손 발이) 부지런하게 놀린 덕인지 다른 집 보다 이종(모내기)이며, 보리 등 다 빨리 거둬 들였답니다. 열심히 일 했으니까요. 당신을 생각하며--- 다른 사람들은 밀이 싹이 나 못 먹게 됐다고 하지만 우린 비 한방울 안 맞혔습니다.

  여보!
(내가) 당신의 편지를 받으면 얼마나 좋아 하는지 (당신은) 아는 지 몰라? 지난 음력 5월 23일은 내 생일이었는데 당신도 아마 까맣게 잊고 생각 안 했겠지. 섭섭하게---

  여보! 내일은 아버님 생일이에요. 조촐하게 집안식구끼리 지날 것 같아요. 성의 껏 없는 찬이나마 밥도 해 올리고 기뻐게 해 드리도록 해야지. 당신이 오면
(귀국하면 그 때는) 다 같이 축하 해야지---

  여보! 그러면 이만--- 보고싶어. 세월이
(빨리) 흐르도록--- 당신을 만나게---
당신의 옥이가 고국에서 7.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