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남 편지 ( 제 28 신 )
여보!
  본격적인 건기의 중간에 왔나 봐. 저녁에는 텁텁한 날씨에 모기가 총공격이니 말야. 낮에는 땡볕에 그늘 찾기에 바쁘군.

  여보! 모도 심어보고, 농사일에 무척 힘들지? 그렇지만 잘 있다니 다행이야. 더구나 당신이 적어 보낸 ‘시화, 미애가 무럭 무럭 자라고, 귀엽게 애교가 늘어가는 모습’은 멀리 월남에 와 있는 내게도 충분히 상상 할 수 있게 해 주는군. 다른 사람이 읽어보면 별 흥미 없는 편지 한 장 일런지도 모르지. 그러나 내게는 천금 같은 구절들이야.

  여보! 시화가 혼자 냇물에 가서 목욕을 하나? 그렇게 물에 안 들어 갈려고 했는데. 큰 물에 들어갈까 봐 걱정이군. 아무리 바쁘더라도 자주 자주
(시화를) 찾아 봐야겠어. 앵도가 익었겠구먼. 시화가 매일 그 밑에서 매달린다고?

  미애가 할아버지를 부르면서 따라 다니나 봐? 기집애--- 깜찍할 꺼야. 이웃 아이들과 싸움도 한다고? 안 지는 건 날 닮아서 일 꺼야. 아무리 저녁밥이 바쁘더라도
(미애가) 혼자 똥구멍을 쳐들고 엎드려 자도록 해서야 되나? 점점 더워 질 텐데 아이들 건강 관리에는 극히 조심해야 할 꺼야. 물론 농촌 생활을 반 밖에 모르는 당신도 조심하구.
  나야 늘 여름인 곳에서도
(여름이) 1년에 한 철 돌아오던 그 전보다 건강하다고--- 내 자신도 이상할 정도야. 아마 당신이 늘 걱정하고 있는 때문이겠지. 부모님도 무사하시다니 또한 다행이지.

  요사이는 고보이평야 한 복판에서 하루에 한 번 물과 식량을 실어다 주는 오뚜기
(헬리콥터)가 유일한 연락 수단이고, 교통수단이야.

  내년 9월에 귀국하느냐, 2월에 하느냐, 4월에 하느냐 하는 문제는 아직 모를 일이야. 월남전쟁이 언제 끝나느냐 하는 것이 아무도 예측하지 못하는 것과 같이 내 자신의 처신인데도 예측이 곤란 해. 다만 생존경쟁과 진급경쟁이 극심한 곳
(본국을 말함)에서 수단이 부족한 나인지라 눈 앞에 아예 안 보는 게 편하지 않겠느냐는 거지 뭐.

  그저께 정영이 한테서 편지가 왔군. 취직 문제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없어 잘 모르겠고, 약수동 종헌이
(육사 동기생 김종헌 대위) 누님 댁이 이웃으로 6월 10일 이사를 했다는군. 정영이도 가서 거들어 줬나 봐.

  7월에 접어 든지도 이틀이 지났으니 지금 쯤은 모내기도 다 했을 것 같은데 모 밥 해 대느라고 고생 했겠다. 모 못 심는다고 쫓겨나지는 않을 테니까 익숙하지도 않은 솜씨에 무리하진 말어. 누에고치도 땄겠군.
(돈을) 얼마나 했나?

  사진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정글 뚫고 다니다가 한가이 이렇게 귀양살이를 하니 그것도 안되는군. 베이스에 들어가는 데로 찍어 보낼게. 이제 파월도 신참을 면했으니 곧 카메라라도 하나 사서 자주 찍어 보내야지.

  요사이는 중대 병력을 여기 저기 깔아 놓으니 무척 신경이 쓰여지는군. 다들 맡은 바에 충실하지만 그래도 부하를 가진 자 곧 어버이 심정이랄까---

  다음에 또 쓸게. 그리고 당신 편지에 이번 같이 시화, 미애 노는 모양을 좀 구체적으로 적어 주길--- 더위와 농사일에 모두 모두 건강하길 빌며.
월남에서 시화, 미애 아빠가
고국 편지 ('69. 7. 21)
여보! 당신에게
  지금은 10시가 조금 넘었군요. 저녁만 먹으면 맥을 못 추는 옥이가 이렇게 당신을 그리며 펜을 들었습니다. 여보! 그간 안녕? 타---

  윗줄은 어제 저녁 쓰다가 못쓰고 오늘 다시 이 줄부터 시작합니다. 지금 시화, 미애는 샘 가 다라
(프라스틱 물통)에 물장난 하느라고 바뻐 있고, 어제도 샘에 신발을 집어 넣어 쳤는데 (샘 물을 퍼내고 청소함) 오늘은 병아리가 빠져 죽어 또 샘을 첬군요. 시화, 미애는 (도랑에) 물이 많이 내려가니까 좋다고 야단이군요.

  옥이는 건강히 잘 있어요. 당신이 나의 건강 걱정을 했는데 걱정 안 해도 돼요. 아마 시집살이에 무서운지 아픈 것이 달아났나 봐요. 지금 정희아가씨나 어머님, 아버님은 삼(삼베 재료, 대마)을 하러(베러) 가셨군요. 돌아가시면 그냥 묻을가 봐 그러시는지 돌아가실 때 입을 옷(수의) 해야겠다면서 올해나 하고 (다음해부터는) 하지 않겠다는군요. 나는 처음 보는 것이라 이제 질삼(길삼)도 배우게 됐군요.

  들에는 모가 땅 내를 맡았다나요.
(뿌리를 내렸다) (벼 줄기가) 새까맣게 나풀 나풀 올라 온 들이 파랗군요. 더위는 이제 중복을 눈 앞에 두고 몹시 덥고, 요사이는 오랫동안 장마로 타작, 밭매기 들이 아직 남아 있군요. 오늘은 아침에 비가 오더니 점심 때가 가까우니 햇볕이 보이기 시작하는군요.

  여보! 지금 시화는 편지 쓰는 것 보고 있군요. 글씨도 모르는 것이 아빠한테 장난감 많이 사오라고 하라나요. 그리고
(미애는) 나 쓰는 볼펜 달라고 울며, 짜며 있군요. 무엇을 그리고 싶은 모양---

  쓰다 말고 새
(새참)를 해 드리고 (다시) 펜을 들어요. 당신의 수당이 도착되어 오늘은 못 가고 내일이나 김천 가야지.

  오늘은 세계적,역사적 순간인가 봐요. 지금 바로 전에 미국의 암스트롱이 달에 첫 발을 디딘 순간인가 봐요. 고국에서도 오늘은 임시 공휴일로 모든 은행이나 관공서에 휴일이니까 ---

  돈은 28,470원(100$)을 받았어요.
  여보! 우리도 달나라에 여행 갈 수 있는 꿈이 아니겠어요. 누가 알 수 있나. 우리도 갈지.

  여보! 이제 곧 점심을 해야 돼. 다른 사람은 삼
(대마) 익힌다 고 하니까 (삼 곶에 불을 때서 돌을 달군 후 삼 단을 세우고 멍석으로 덮은 후 물을 부어 김을 나게 하여 삶기게 하는 것).

  오늘은 편지가 오려나 곧 올 배달부를 기다리며 이만 쓸게요. 여보! 안녕히
고국에서 당신의 옥이가 7. 21. 12: 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