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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남 편지 ( 제 29 신 )
여보! 당신에게
  총총한 별들 가운데 당신이 볼 수 없는 남십자성을 쳐다보며 여기가 남국이라는 걸 밤에는 알게 되는군. 북두칠성은 여기서도 뚜렷이 보이는군. 지금도 마찬가지겠지만 난 어릴 때 북두칠성을 찾으며 그 자루가 선산날맹이(시골집 서남쪽 5개 봉우리가 나란히 있는 곳)를 향하면 쌀밥을 먹는다고 좋아들 하면서 가난한 농촌사람들의 전설을 들으며 자랐지.
  바로 지금 당신이 일년이 천년만 같이 여기며 지내고 있는 그기서 말야. 견우, 직녀의 얘기를 듣는 게 퍽 흥미로웠지만 여기선 찾아보기가 힘드는군.

  여보! 잘 있었어? 고달프지? 모내기는 웬만치 끝났나? 부모님도 평안하시고, 시화 미애도 잘 놀아?

  오늘은 연대
(본부)에서 쑈가 있다고 모처럼 오랜만에 귀양살이에서 외출했지. 본국에 있을 때보다 (쑈를) 자주 보는 편이라 별 흥미로울 게 없지만 늘씬한 육체미(?)를 가지고 흔들어 대는 게 여기 볼 품 없는 꽁가이(처녀)에 비해 자랑스러움을 느꼈지. 따이한은 남자도 잘 생겼지만 꽁가이도 훨씬 낫다고 말야. 웃고 떠들며 두 시간쯤---
  그러나 지금은 다시 맡겨진 임무에 돌아와 매복도, 베이스 경계도, 한 가지도 게을리 할 수 없는거야.

  고국의 아가씨들이
(눈에) 비치고 돌아가서 그런지 당신이 오늘 따라 더 보고싶구려. 시화, 미애도--- 당신 말같이 지금쯤 미애 재운다고 들어 누웠다가 잠이 들었겠지. 또 입을 벌리고 자지는 않나 몰라. 옆에 있으면 밉도록 꼬집어 줄 텐데. 시화도 낮에 나가 노느라고 지금쯤 피곤해서 잘까? 뭣하면 할머니 한테 갔는지도 몰라.

  먼저 번 편지에 6월분 110$을 부쳤다고 했는데 오늘 확인 해 보니까 당신한테 100$ 밖에 안 부쳤군. 중경단으로 50$---
  7월부터 인상된다는 국내봉급 명세표가 나왔군. 먼저 3월부터 호봉 인상액이 월 980원(18,870-17,890), 6월까지 4개월이니까 총 3,920원,
  7월부터 봉급 인상액이(호봉승급 포함) 월 8,670원(26,260-17,890), 12월까지 6개월 총 52,020원인데 공제액(기여금, 보험금)이 올랐는데 월 920원 더 공제해야 하니까 12월까지 5,520원.
  그래서 7월부터 봉급인상(승급포함)으로 인해서 12월까지 추가 수령할 수 있는 것이 46,500(52,020-5,520), 3월부터의 호봉승급을 합치면 50,420(46,500+3,920).

  그래서 7월 20일까지 지정한 수령인에게 추가액을 송금하도록 됐다는군. 그러니까 7월 하순경에 50,420원(계산이 정확하다면)이 중경단에서 당신한테 송금될 거야. 당신이 알아서 처리 하구려. 매월 송금은 맘에 드는 물건이 있으면 못 할 때도 있을지 몰라. 그러니까 1-2회분
(적금의) 예비금은 당신이 확보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애. 또 골치 아프게 돈 얘기군.

  어쨌던 봉급이 올랐다니 반가운 일이야. 더 헤프겠지. 물가도 오를 테니까. 세부 내용은 다음 장에 적을 테니 위에 계산을 당신의 수학적인 머리로 계산 해 보구려. 심심하거든 말야.

  당신이 말 했듯이 돈보다는 당신이, 시화, 미애가 몇 백배 좋구려. 몸과 맘이 편하니까 더 생각나는가 아니면 쑈를 구경해서일까. 좋아, 어쨋던 꾹 참고 그 날을 기다리는 수 밖에--- 그 날자는 나도 몰라. 내년 2월? 4월? 9월? 셋 중에 하나가 되겠지.

  여보! 당신의 건강이 자꾸만 약해지는 것만 같은 환상이 떠 오르는군. 조심해. 당신을 밭메게 하려고 데려 오지 않았으니 말야.

  본국에서 군대 내무반에서 들리는 건 제대 얘기, 논산 훈련소 얘기가 90%를 차지하는데 여기서는 하나 더 늘어서 귀국얘기까지 덧붙는군.
  또
(좋아하는 여자로 부터의) 편지 한 통이 맥주 몇 박스 보다 더 좋은 사기앙양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배웠어. 제발 맥주 값 많이 들지 않게 편지들 많이 해서 중대장을 도와 줬으면 좋으련만--- 그럼 오늘은 이만 그칠래. 또 쓸게.
월남에서 미애 아빠로부터
參考(인상후 국내 봉급 명세표, 대위 3호봉)
총액26,560원, 소득세2,515원, 기여금920원, 군인보험200원, 저축보험1,000원, 공제 계4,635원 수령액21,925원
# 1. 파월전 수령한 국내봉급은 2호봉 17,890에서 기여금, 군인보험, 저축보험을 공제한 것을 수령했음(소득세는 공제하지 않음)
# 2. 3월부터 3호봉으로 승급
# 3. 7월부터 인상된 대위3호봉으로 수령할 수 있음
# 4. 해외 파견자의 국내 봉급은 소득세를 공제하지 않음
# 5. 가족수당은 변동 없음
고국 편지 ('69. 7. 24)
미애, 시화 아빠!
  오늘이 중복이라서 그런지 아침부터 몹시 더운 날씨군요. 지루한 장마가 지났는지 어제부터 햇빛을 보는 것 같아요.

  여보! 그간 어떻게? 제일 먼저 묻고싶은 말이니까. 아무리 한국이 덥다지만 그곳만은 못 하겠지. 여기 부모님도 무고하시고, 미애, 시화도 잘 놀아요. 미애도 옆에서 나 쓰는 것 보고 연필로 그리고 있고, 시화는 연필 없다고 나 쓰는 것 달라고 울며 뺏으려고 궁글며 짜는군요. 밖에서 할머니가 무엇을 갖다 주었는지 밖으로 나가는군요.

  집엔 밭매기, 논매기가 한창이에요. 시화는 냇물에 가 살고, 미애는 항상 나와 같이
(있으면서) 잘 놀아요. 내가 일을 하면 혼자 여기 저기 다니며 잘 놀아요. 이웃 마실도 가고. 한 번 나 한테 붙으면 안 떨어질려고 안간 힘을 쓰고. 아마 (내가) 저를 떼어 놓고 일한다고 다니니까 그런가 봐요.

  빨리 세월이 흘러야 당신이 미애를 안아 줄 텐데. 아주 얄밉게, 이제 시화를 부르고 쉬운 말을 합니다. 아빠를 아는지 모르는지 “아빠 어디 있니?” 하면 사진을 가리키는 것이---

  이제 방학이 시작되어 김천 학생들도 집에 들어 오겠군요. 22일은 수당 온 것 찾아 적금을 했어요. 간 길에 토마토 사다가 시화를 줬더니 좋아서 어쩔 줄을 몰라요. 한 관에 40원. 여기서는 아무리 싸도 사 줄 수가 없고---

  당신의 30신이 올 때 때도 되었는데 오늘은 올려나? 아무리 힘들고 바빠도 당신의 편지를 보고 잊어버리는데 파월 병사들과 같이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의 서신이 사기를 돋구듯이 내게도 마찬가지에요. 농촌은 항상 바쁘군요. 곧 아버님 새
(새참)도 해 드려야 겠군요.

  그리고 며칠 전엔 서울 정기
(박용원대위 아들) 엄마 한테서 2통의 편지가 왔군요.
  박대위
(박용원)(월남에)간 후로 시간이 왜 이렇게 안 가는지 모르겠다나. 역시 나도 그러 하지만. 난 더 한 것 같아. 서울에서는 보는 것 많아 못 살겠다면서 이렇게 텁수룩하게 있는 내가 부럽다나? 기가 막힐 노릇. 그런 사람이 있다니 다행일런지요. 여보! 어쨌던 내게는 당신이 빨리 오는 것이 제일 좋아. 여보! 그러면 몸조심 해요. 밖에 나가 봐야지. 시간 있는 데로 또 바로 쓸게. 항상 당신을 그린답니다.
  여보! 안녕---
당신의 옥이가 7. 24.
편지에 미애가 마구 그렸나 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