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남 편지 ( 제 30 신 )
미애 엄마에게
  소나기 한 줄기가 지나간 저녁 녘이 되니 월남도 살만한 곳이군.
  오늘 하루도 어제와 그제와 같이 별다른 일 없이 지나가는군. 아니, 적어도 두 가지 일은 있었군. 하나는 당신의 편지, 하나는 소 먹이던 계집 목동아이가 불발탄을 밟아 심한 부상을 입고 부랴 부랴 신청한 오뚜기
(헬리콥터)(병원으로) 실어 보낸 것.
  오뚜기로 띄어 보내면서 무사히 나을 것을 중대원들이 모두 빌었지. 전쟁의 불꽃이 지나간 땅이기에 어디서나 인간의 생명을 노리는 것들이 산재 해 있는 거야.

  그건 그렇고 지금쯤 다른 중대는 정글 속을 뒤지는 작전에 들어갔을 텐데 우리는 이번은 빠졌군. 다들 좋은 성과를 거두고 무사히 돌아와야 할 텐데.

  여보! 힘들지? 보리 베고, 보리타작 하고, 모 심고, 안 하는 일이 없군. 밥 해 대는 것 조차도 힘들 텐데 들에까지 나가나? 안 해 본 당신이기에 걱정되는군. 별로 거들지도 못하면서 앓아 눕는 것 아냐? 내가 생각을 잘못했는지도 몰라. 서울쯤에 있을려고 하던 당신 생각이 맞는 건지도 몰라.

  대구 남실이가 왔다구? 잘 있었데? 편지는 한 번도 한하고, 몇 번이나 했다고 했지? 주소가 잘 못 됐으면 회송이라도 될 텐데. 애기는 건강하던가? 잘 놀고? 남실이 건강은?

  시화가 그렇게 깜둥이가 됐나? 이 담 만나면 부자 간에 비슷하겠군. 혼자 맘대로 나가 놀다가 무슨 일이나 생길라. 아무리 바쁘더라도 잘 돌봐야겠어.보리 베고, 보리타작 하는 것보다 아이들의 뒤를 장 돌보는 게 당신의 주 임무일거야.
  미애가 대구 애기에 비하면 다 큰 셈인 모양이지? 고모 앞장서서 걸어 다니는 것이 눈에 보이는 듯 하군. 기집애, 불안하기도 하군.

  여보! 어쩐지 오늘은 심통이 나는군. 왜냐구? 편지 쓸 시간도 없이 들일 하러 나가야 하나? 혹시 당신이 집에서 눈치나 뵈지는 않는 거야? 이런 말은 안 할려고 했는데 아마
(내가) 너무 한가한 나날을 보내니 짜증이 나나 봐.
 
(대대는 작전을 나가는 모양인데) 이번 작전에 (우리 중대도) 여기에 안 나와 있었으면 나갈 수 있었을 텐데. 분하군.

  역시 군인은 전투를 해야 하나 봐. 잡념 없이 생각하는 건 오직 두 가지. 내 부하를 안 상하고 적을 때려 잡는 것 뿐이니까.
  요사이 중대원들 중에 본국 휴가 가는 사람이 많은데 당신이 서울 있다면 가 보고 오라고 할 수도 있겠지.

  오늘 하루는 그래도 보람 있는 일을 했다고나 할까.
(월남)소녀가 병원까지 갈려면 몇 시간이 걸릴 텐데 불과 (다친 후) 10분 만에 퀴논 병원으로 실어 보냈으니까.

  월남 사람들은 이상한 점이 하나 있어. 아무리 아프더라도 울지 않고, 신음하지 않는 거야. 그 소녀도 오른 족 겨드랑이에 파편이 박히고, 팔목에도
(파편을) 맞았는데 눈하나 깜짝 안 하는군. 베트콩이 총 맞아 죽어가면서도 신음소리 하나 내지 않아. 독종이라서 그런지도 모르지.

  월남에는 소가 굉장히 많아. 특히 지금 이곳은 넓은 고보이 들판이니 물소, 황소가 수 십 마리씩 풀을 뜯고 있는 것을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어. 사람은 조그맣고 홀쭉이인데 비해 소는 기름지게 살이 쪘어. 소고기를 먹지 않으니 소의 천국이라 할까.

  여보! 말 하지 않아야 할 말도 썼나 봐. 나도 보고싶어. 아이들을 꼭 안아 주고 싶어도 참아야지? 그래 꾹 참고 기다려야지. 오늘은 이만 쓸래. 그럼 안녕
월남에서 미애 아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