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남 편지 ( 제 31 신 )
여보! 당신에게
  비가 쏟아질 것만 같군. 오뚜기(헬리콥터)가 다녀 갔는데 당신 편지는 안 왔군. 오는 도중에 있는 모양이지. 아니면 아직 띄우지도 않았을 지도 몰라. 들 일 하느라고 바빠서---

  어쨌던 부모님들도 무사하시고, 시화, 미애도 잘 노나? 대구 남실이는 갔나? 아마 오래 있지는 못 할 것 같아 물어 보는 거야.
  그리고 당신 잘 있을 줄 믿지만
(지금 당신이 있는 시골이) 워낙 답답하고 달라진 환경이라 걱정이 되는군.

  여보!
(집안 식구들로부터) 점수는 좀 잃더라도 무리는 하지 말어. 몇 푼 어치 거들지도 못하고 앓아 눕는 판이 되면 큰 일이지 뭐야. 자꾸만 그런 생각이 드는군. (지금 내가) 너무 한가하니까 그런가 봐.

 
(나는)밥 맛을 돋구고 무료함을 잊자고 평행봉을 하나 세워서 조석으로 매달리는데 아직 여전히 체력은 남아 있군. 중대원들 중에서도 날 따라 올 친구가 없어.
  며칠 안으로 박대위
(박용원)와 문대위(문영대)가 있는 (맹호사단)사령부에 가 볼까 하는데 될는지 모르겠어.

  서울 정영이 한테서는 소식 없나? 어떻게 돼 가는지 퍽 궁금하군. 이원 소식은 듣고 있나? 일주일 전에 편지는 띄웠는데---- 진해 삼촌이 지금쯤은
(육군대학) 졸업 때가 돼 갈 텐데. 한 번 편지를 띄웠는데 회답이 없는 것을 보니까 공부에 몹시 바쁘신 모양이지? 졸업 후에는 어떻게 하실는지 모르겠군. 전에 파월하실 생각도 있으신 모양이던데.

  이런 것들은 큰 관심은 없어. 요사이는 시화하고 미애가 꿈에 종종 보이는군. 그 재롱 부리는 양을 보고싶어서 그런가 봐.

  점점 날씨가 더워 질 텐데 아이들 건강을 잘 돌봐줘. 그리고 바쁘더라도 시화 나가 노는 것을 자주 찾아 봐야 할거야. 시골의 비온 후 물은 아주 무서워. 큰 물은 말 할 것도 없고 조그만 골짜기 물도 마찬가지야. 요사이 호두가 알이 들어 가겠군. 시화도 손에 호두물이 새까맣게 들지 않았나? 모심기는 이미 끝났을 거고, 보리타작은 좀 남았겠지.

  여기는 모심는 철이 따로 없으니까. 한 쪽은 모를 심는가 하면 저 쪽은 벼를 베니까 계절에 대한 감각이 전연 없군. 이렇게 한가한 곳에 귀양살이를 하니까 그런지 7월은 무척 긴 것 같군. 건기의 중턱에 왔으니 7, 8월만 지나면 우기라니까 좀 감각이 달라지겠지.

  여보! 당신과 시화, 미애가 보고싶을 땐 으레 사진을 꺼 내 보는 게 버릇처럼 되었지. 그것도 없었더라면 어떻게 할 뻔 했지? 지난 번 30신은 그것도 못 적었군. 좀 심통이 나 있어서 그랬나 봐. 제발 기쁜 소식 자주 줘서 식욕을 돋궈 주도록 부탁이야.
  오늘은 이만 그칠래. 여보! 그럼 안녕.
미애 아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