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남 편지 ( 제 32 신 )
옥이 당신에게
  여보! 원래 맹호는 정글 속에 서식하는 맹수였나 봐. 여기 따이한 맹호도 역시 그런 것 같애. 변화 없는 한가한 하루 하루를 지내니 아주 몸부림들이야. 어제는 마치 장마처럼 짖궂게 (비가) 내리니 건기 치고는 이상기후 속에 다른 중대 작전의 둘러리로 조그마한 작전 하나 하고 조금 전에 돌아 온 거야. 물론 아무 이상 없이---- 장소는 역시 고보이평야 내의 폐허가 된 몇 개의 마을들이야.

  흠뻑 젖은 몸도 조그만 천막 속에 담고 누우면 체온으로 점점 따뜻해 오거든. 그 때부터 보초를 믿고 꿈나라로 가는거야. 참 꿈이란 좋은 거야. 당신도, 시화도, 미애도 다 만나 볼 수 있으니까.그러다가 “쿵, 쾅”하면 그 때부터 ‘우리 병아리(병사)가? 몇 놈이나?’ 갖가지 걱정과 기대가 엇갈리며 무전기를 잡는거야.

  “우리 병아리는 이상 없습니다”라는 답을 듣고는 안도의 숨을 돌리며 “짜-식들 참 잘 해”속으로 중얼거리곤 하지. 그것도 작전이었다고 오늘 저녁은 훨씬 기분이 전환 된 것 같애.(7월 19일 매복작전에 성과가 있어 7월 20일자 윤필용 맹호사단장의 치하문을 받음: 아래 치하문)

  오늘 낮에 작전지역으로 다녀간 오뚜기
(헬리콥터)가 대구 남서방 편지와 함께 당신의 편지를 전해 주고 갔군.

  바쁘고 힘든 농사철에 그래도 집안이 모두 무사하시다니 다행이야. 그런데 여보! 당신 베겨 내겠나? 당신의 체력으로 해 내겠느냐 말야? 여보! 당신이 약혼식 날 들은 평
("시골서 농사일 하기는 좀 약하겠다")을 꺾어 보려고 이를 악물고 무리하는 거 아냐?

  여보! 그러면 안돼. 잃어버린 건강이라는 게 그렇게 쉽게 되 찾을 수 있는 게 아니니까. 여보! 미애, 시화 노는 양을 적어 보내주니까 눈에 보는 듯 싶기는 해도 진짜로 보고싶어 지니 좋지 않군.

  대구 남실이가 6월 18일에 와서 열흘 만에 돌아갔다는 걸 남서방 편지에서 알았어. 바쁜 때에 와서 일만 싫도록 하고 갔겠군. 지금쯤 모는 다 심었겠고, 보리타작은? 이것만 끝나면 조금 낫지. 논 멜 때 밥 해 대느라고 좀 힘들지만--- 또 가을 추수 할 땐 또 정신 없이 바빠지거든.

  여보! 시화가 냇물에 가서 살다시피 한다고? 깊은 물에 들어가면 어떡 하려구? 나의 기억에도 아물 아물하는 어린시절 물 때문에 혼난 적이 몇 번 있어서 걱정부터 앞서는군. 미애가 사진을 보면서 아빠를 가려 낸다고? 기집애. 그러다가도 이 다음 만나게 되면 ‘아저씨’라고 부르겠지?

  박대위
(박용원) 한테는 일전에 중대부관(부중대장)을 시켜서 안꽝 (물)고기 좀 하고 편지를 보내서 인사는 했는데 나도 여기 조용할 때 한 번 가 봐야지.

  그래도 여기
(고보이) 오니까 라디오 앞에 앉을 때가 있군. 고국의 친지, 친척들의 육성을 녹음해서 들려주는 프로가 있고, 희망의 구름다린가 희망곡을 신청하는 등등 프로들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됐지. 그렇지만 그런 건 저 후방에서 지금 나처럼 한가한 족속들에게 필요한가 봐. 여보! 당신은 라디오를 들을 시간도 없지? 지금 연속극 ‘장보고의 딸’이 시작되는군.
  이만 그칠래. 끝으로 아이들과 당신의 건강을 빌면서--- 그럼 안녕.
월남에서 미애, 시화 아빠
윤필용 맹호사단장 치하문과 봉투
고국 편지 ('69. 7. 28)
보고 싶어. 여보!
  몹시 더워지는 날씨. 오늘은 유두날(음력 6월 15일)이라나요. 바쁜 일손을 놓고 오늘은 좀 한가한 한나절. 집안 식구들도 오늘따라 어제 장만한 음식을 옆에 놓고 잠으로 피로를 풀게 되나 봐요.

  여보! 이곳의 더위는 아무것도 아니겠지? 더위가 더해 가니까 여름이면 맥을 못 추는 당신 생각이 더 나는군. 30, 31신을 받기도 전에 32신을 받고, 곧 이튿날 31신도 받았는데 30신은 아직 도착이 안되었군요.

  부엌에서 땀을 흘리고, 먼지를 뒤집어쓰고 바뻐 있다가도 당신의 편지를
(우체부가) 주고 갈 땐 짜증도 다 사라지고 몸도 가벼우니 일요일을 빼놓고는 항상 기대해 보는 당신의 편지.

  당신도 옥이의 편지를 그리 기다린다고요? 매일 써 보내지 못해 안타깝군요. 될 수 있는 데로 자주 보낼께요.

  어제는 방학이 시작되었다고 김천 학생도 들어오고 김천
(자취하는 집) 안집 여학생들도 같이 와 놀고 있군요. 한참 좋을 때. 꿈을 싣고 살아가는 여학생들. 호젓한 촌락의 여름 밤에 냇물에 가 어딘지 모르는 꿈을 일깨우며 노는 양이 나도 그런 때가 있었지 하며 그 때를 그려 보기도 하게 되는군요.

  어제 밤에는 냇물에 가 목욕을 하고 시원하게 바위에 앉아 어릴 때 달을 보고 감상에 젖었던 때 같이--- 그 위에 당신을 생각하며 잠시 몸을 식히고 돌아왔어요.

  당신과 같이 캠핑이나 갔으면
(하고) 생각도 했고--- 이제 당신이 오면 우리 귀여운 미애, 시화 데리고 (캠핑을) 꼭 가야지. 라디오에선 요사이 피서라고 날마다 (방송) 하지만 지금 이곳엔 그런 말은 통하지 않고---

  미애는 지금 옆에서 볼펜을 줬다 뺏었다 하면서 무엇을 열심히 그리고 있어요. 시화는 석희 고모하고 놀러 간다고 나갔어요. 목욕하겠지요. 미애는 아주 깍쟁이가 되어갑니다. 옆집 아이들이 오면 우리 물건은 한 가지도 못 만지게 야단이에요.
(마치) 선희네-옥이 사촌- 집 미희같이 누가 우리 물건 안 만지나 보기(감시)나 하고---

  부모님도 안녕하셔요. 미애, 시화가 재롱을 부리는 것 보시고 고단한 몸도 웃음으로 풀으시고 하시는 것 같아요.

  이원에서 편지가 왔는데 다 평안하시다고 합니다. 그리고 당신이 말하던 것보다 많이 틀리네요. 인상된 봉급이라고만 써 있어요.
(그 돈으로)무엇을 해야 할까 궁리 중인데 송아지라도 한 마리 사 놓을까---
  여보---! 한 번 입 속으로 불러 봤어. 보고싶어--- 그럼 또 쓸께요. 더위와 위험 속에--- 안녕.
고국에서 당신의 옥이가 7. 28.
  위에 그린 것은 미애가 그렸어요
고국 편지 ('69. 7. 31)
여보!
 갑자기 어제 저녁엔 정말 호우가 내렸고, 아침부턴 무더운 날씨가 시작된 것 같아요. 물론 당신이 있는 곳 보단 못 하겠지만---

 여보! 그간도 안녕? 어젠 한달 전에 쓴 편지가 이제 도착했으니 어디 숨어 있다가 왔는지. 그것도 28신. 32신까지 받았는데---

 여기는 무사해요. 소나기가 쏟아질 것 같은 날씨를 피해가며 어제는 보리타작을 했군요. 겨우 5가마니를 했는데--- 그제도 했고 오늘은 맥을 못 추겠군요. 오전엔 아침 먹고 푹 잠으로 지냈군요. 이제 일어나 펜을 들었어요. 시화는 부속품이 다 망가진 버스, 트럭(장난감)을 가지고 놀다가 이제 막 들어왔고, 미애는 내 옆에 와서
(드러누워 있는데) 젖을 먹다가 잠이 들어 자고 있어요.

 이젠 제법 말을 많이 해요. 음을 따지요. 아빠 소리는 잘 하고, 고모 소리를 “모모”라 하고, "시화" 소리도 잘 해요. '오빠'라고 하라 해도 "시화"라고 하는군요. 아주 귀엽게 잘 놀아요. 글 솜씨가 있어야 보는 것 같이 적어 보낼 텐데---

 그리고 인상된 돈 찾아 아직 저금해 놓고 있는데 만 오천원은 집에서 달라고 하는군요. 어쩔 수 없겠지.

 간단한 말이나마 적어 보내지 않고는 마음이 걸리는 것 같아 간단히 나마 적었어요. 또 바로 쓰기로 하고 점심을 하러 나가야지. 여보! 안녕
당신의 옥이가 7.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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