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남 편지 ( 제 33 신 )
옥이 당신에게
  조금 전만해도 날씨는 건기의 한 중간의 (더위가) 기세를 부리는 듯 가만히 앉아 있어도 속에서 찌는 듯 하더니 이제 건기답지 않게 아니 우기처럼 소나기가 한바탕씩 하는군.

  하두 한가한 날만 보냈더니 이제 며칠 바쁘게 됐군. 왜냐구? 고보이 평야에 나와 있는 간이 베이스를 옮기래. 예측은 하고 있었지만 너무 갑작스런 일이라 허둥지둥 하겠구먼.

  여보! 잘 있었다니 나를 위해서 큰 다행이야. 모도 다 심었을 거고, 이제 농촌이라도 숨 돌릴 수 있을 거야. 부모님도 무사히 계신다니 다행이지. 그리고 시화, 미애가 잘 논댔지?
  당신이 써 보낸 토막 소식을 이어서 내 머리 속에서는 연속극이 이뤄지고 있는 거야. 귀에 들리는 듯 하고, 눈에 보이는 듯한 텔레비 연속극이지.
  정영이가 뜻 데로 됐다니--- 지성이면 감천이란 말이 생각나는군. 그래도 당신이 내게는 유일한 소식통이야.

  그럼 여기 얘기 좀 할까. 고보이 평야는
(우리나라) 호남평야에 비교할 정도로 넓고 비옥한 땅이라 호지명군도 몹시 침을 삼켰다나 봐.
  맹호들이 상륙할 때만 해도 이 평야는 푸캇산과 더불어 완전히 월맹 정규군의 소굴로 그들의 식량 조달처로 아주 중요한 몫을 하던 곳인데 맹호가 상륙하면서 수없이 많은 작전으로 지금부터 2년 전 그러니까 67년도에 완전히 몰아냈데.

  그 때 모든 가옥이 파괴되고 아주 황폐해진 들판에 잡초만 키를 넘고 피난민은 다 고향을 버리고 안전한 지역으로 나갔는데 이제 미애, 시화 아빠 같은 든든한 맹호들이 와서 버티고 앉아 있으니 그들
(고향을 떠난 피난민)도 고향에 돌아 와 집을 다시 짓고, 밭을 가는 등 재건하고 있는거야.

  지금까지 있던 5개 마을에 주민이 입주해서 전쟁의 상처를 없앴고, 다음 제 2단계로 동쪽으로 약 3km 떨어진 곳에 또 시작하게 되는 거지.
  오늘
(주민)약 1,000명이 (와서) 자기들의 옛 집터를 그러니까 꼭 2년 만에 부서지다 만 집 뜰을 쓸어보고, (둘러보았는데) 내일부터 계속 들어 와 재건하겠다고 하고 오늘은 나갔지. 그래서 우리도 제2단계 지역으로 옮겨 그들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우리)임무야.

  월남전쟁의 최종단계가 여기서 이뤄지고 있는 거지. 전 월남지역이 이렇게 되다면 곧 전쟁은 끝나는 셈인데---
  고보이 모기와 싸우면서 우거진 잡초만 보며 울적했던 심정에 차츰 차츰 소생하는 마을의 생기를 보면서 보람을 느끼게 되는군. 비록 말이 잘 안 통하기는 하지만 맹호들을 믿고 일들을 하는 걸 보면 또한 자랑스러움을 느껴.
  새로 갈 곳에 자리를 잡아 두고 오늘 가서 작업을 했고, 내일 더 한 후에 모래는 옮겨야지.

  여보! 미애가 버릇이 없는 모양이지? 오빠한테 지지 않고 달겨든다니 말야. 기집애--- 아직도 젖을 빨고---
 여보 나도
(당신과 아이들을) 보고싶어. 그럴 땐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 보면 잠이 들고, 꿈도 꾸고. 당신과 미애, 시화를 말야. 그렇지만 더 반갑게 만날 날을 생각하면 참을 수 있겠어. 당신도 참어. 하는 수 없지만. 울질랑 말고.

 7월분 수당 105$을 송금하도록
(중대 기지에) 연락했어. 여기 나오니까 연대하고 가까워 가 보지는 못하지만 무전기로 낮 익은 목소리들을 듣게 되는군. (보병학교 특별)보수반 때 아침 저녁으로 같이 출퇴근하던 양대위(일반장교, 이름 ?)가 연대 상황실에 있으니까 말야.

 여보! 끝으로도 보고싶어. 여름철이니까 아이들 건강을 자주 돌봐야 될 꺼야. 당신이니까 어련히 하랴만. 시골 물이라 시화가 냇물에 가서 산다니 걱정이 되는구먼. 이만 그칠래. 그럼 안녕
월남에서 시화, 미애 아빠로부터
고국 편지 ('69. 8. 4)
여보! 시화, 미애 아빠!
  지루한 장마가 아직도 가시지 않고 오늘도 여전히 어두운 하늘에 구름--- 농촌은 비도 와야하지만 이젠 날이 개어야 할 텐데.

  여보! 그곳은 건기로 매우 덥다고? 당신이 이상하게 더위를 안 타고 건강하시다니 더 반가울 바 없지만 그래도 내 눈으로 안 보니--- 33신까지 받았어요. 막사를 다른 곳으로 옮긴다니 매우 바빴겠군요.

  이곳은 다 편해요. 논도 다 매고, 비가 와서 아직 밭은 덜 맸으나
(농사)일이 잘 진행해 순조롭게 됩니다. 아직 밀 타작, 보리 좀 하고 남았는데 날이 좋아야지---

  김천 학생들도 집에 와 집안이 떠들썩. 시화와 삼촌은 장난이 똑 같이 심하군요. 미애도 한 축에 끼어 우는 소리, 웃는 소리, 요란해요. 지금 시화는 할머니 삼 째는데 놀러 갔고, 다른 사람들은 어디 갔는지 모르고, 지금 미애는 젖을 먹다 딩굴다 하며 놀고 있고--- 좀 한가한 편이군요.

  좀 전애 미애가 아빠 사진을 가리키며 “아빠, 아빠” 하며 불러 봤어요. 아주 잘 해요. 쉬운 말, 눈, 코, 입 등 신체의 부분을 물으면 다 가리키고, ‘시화’ 소리, 고모, 삼촌 등 음을 따며 귀염을 부리는 것이 내게는 참 귀엽군요. 다른 사람들은 보통이겠지만---
  나도 그렇지만 당신이 옆에 있다면 더 좋아할 텐데--- 항상 그런 생각을 해요.
(당신이) 미애, 시화를 보며 옆에 있다면 얼마나 귀염을 받을까? 하고. 나도 옆에서 보면서 행복에 찬 얼굴로 바라 볼 텐데 하고. 그리고 다른 것 등등 모두를---
  밥을 하면서도, 미애 젖을 먹이면서도 항상 생각에 젖으며 빨리 세월이 흐르기를 바랄뿐--

 오늘이 8월 4일, 당신이 한국을 떠난 지 만 6개월이 지나 2일째이군. 아직도 반년 밖에 안 갔으니--- 8월 2일엔 57회 아사달이 도착. 아마 당신이 붙인 것 같이 주소를 썼는데---
  글씨가 아닌데 아마 박대위
(박용원)남이 부쳤나 봐요. 감사하게--- 얼마 전에 정기(박용원 아들) 엄마 한테 편지 했는데 곧 답이 오겠지. 오가는 말이래야 군인 부인들의 푸념일지 모르지만---

 가끔 이런 생각을 해요. 다들
(동기생 부인들) 문화 도시에서 발돋움 하며 살아가는데 천년이 가도 항상 똑 같은 생활만 하는 시골에서 너무 뒤떨어지는 것 같아 걱정도 되는군요. 그렇지만 도시 사람들의 이면을 생각하면 또 위로도 해 보곤 합니다.

  여보! 빨리 와---응. 비가 너무 많이 오나 봐요. 지금 막 쏟아지는데---
 그리고 옥인 건강해요. 당신을 건강한 몸으로 맞기 위해 건강에 조심해요. 여보! 더위에 몸조심 해요. 그럼 안녕--- 보고싶지만 참을게
당신의 옥이가 8. 4
인상된 봉급액 중에 한 15천원은 집에 빌려 줘야 할라나 봐?-그게 그것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