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남 편지 ( 제 34 신 )
여보!
  며칠간은 무척 바쁘고 열심히 일했지. 간이 베이스지만 새로 건설하자니 퍽 힘드는구먼. 중대장 이하 전원이 벗어 부치고 한 바탕 했지. 아직 완료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거의 다 된 것 같애. 해 놓고 보면 맘에 안 드는 게 있고----

  여보! 잘 있었겠지. 시화도, 미애도 그리고 부모님들도 말야. 항상 더운 때
(계절)만 격고 있으니 도무지 계절 감각이 없어. 지금쯤은 뭘 하는 지? 유두 고사 날이 지나 갔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어. 그래도 어쩌다가 내일이 호적상의 내 생일(7월 20일)이란 것은 생각이 나는구먼.

  여보! 난 잘 있어. 당신이 그렇게 밤낮 생각해 주는데 그럴 수 밖에. 그래도 요사이는 이 넓은 고보이 평야가 조금씩 조금씩 재건 돼 가고 있는 걸 보면서 보람 같은 것을 느끼고 있어. 건강하고, 식욕도 왕성하고---

  여보! 시화, 미애가 잘 논댔지? 아빠 보다도 더 까맣게 탔다고? 시화야
(사내니까) 괜찮겠지만 미애는 그렇게 까맣게 되어서야 되겠나? 짜-식들- 정말 보고 싶구먼. 물론 당신도---

  곧 반년이 되 가는군 그래. 지나간 날은 빠른 것 같은데 다가 오는 날은 무척 느릴 것 같애. 이렇게 편하게 놀기만 하니까 더 그런가 봐.

  그저께
(맹호) 사단(사령부)에서 박대위(박용원)한테서 전화가 왔었나 봐. 중대 베이스로--- 당신 앞으로 아사달 57호를 보냈나 봐. 별것도 없지만 그래도 고맙지 뭐야.
  거기에 김정조 대위-내가 보병학교 ROTC 중대장 때 구대장 하던 20기생, 중간에 파월했었지- 부인의 글이 실렸더군.

  여보! 시화하고 미애 사진을 들여 다 보다가 생각 난 건데 아이들 1년에 한 장쯤 명함판 사진 하나 찍어 주는 게 이 다음 커서 좋은 기념이 될 꺼야. 미애는 돌사진 찍었으니 내년에 찍어주면 될 꺼고, 시화를 올해 하나 찍어 줘야지. 여보! 김천 나가는 길에 꼭 데리고 가서 한 장 찍어 주구려.

  여보! 이 다음 편지엔 아이들 노는 모습을 좀 자세히 써 보내 줘. 오늘은 이만 쓸래. 더운 곳에서도 비가 오니까 울적하구먼. 그럼 안녕.
월남에서 미애 아빠가
간이베이스 고무나무에 설치한 간이 담력훈련장 시범(왼쪽)과 훈련(오른쪽)

중대장(나)이 직접 시범을 보이고, 훈련간 나무 위에서 감독하고 있다.
고국 편지 ('69. 8. 5)
시화, 미애 아빠!
  여보! 그간 안녕? 30일부터 내린 비가 8月5日까지도 끝이 안 났으니 큰 장마인 것 같은데 이젠 좀 그쳤으면 좋겠군요.

  어젠 뜻하지 않은 편지가 와 누군가 하고 뜯어보니 당신 중대에 있는 왕상열이란 사람이 휴가차 귀국했다고 안부 편지를 해 왔어요. 반가우면서 그 집 가족들을 부러워 했어요.
(당신에 대한) 많은 찬사를 보내 왔어요. 당신이 훌륭히 잘 하신다고요---, 좋은 지휘관을 가져 중대원들이 기뻐한다고---

  옥이도 당신의 빈 틈 없는 계획에 잘 하리라고 자부했었는데-- 편지 좀 당신한테 많이 해 주라나요. 많이 할께요. 틈 있는 대로---

  집엔 다 편해요. 아버님은 오늘 황간 5촌 집에 아들이 아프다고 가보러 가셨고, 집엔 아가씨들, 시화, 미애가 넓은 마루에서 오이를 먹으며 놀고 있군요. 울타리 가에 심은 오이나무에 꽃만 떨어지면 따 먹곤 해요. 꽃이 피어 있는 것을 보면 오이가 컸나 하고 하루에도 몇 번을 가 보는지---, 지금도
(미애는) 새끼손가락 보다 작은 것을 보고 와 등어리에서 미애와 싸움. 올 핸 아이들 과일 하나 먹이지 못하는군요.

  여보! ‘사랑’이란 정의를 내가 하나 내려 볼까? ‘목숨보다 더 한 것’이라고. 어느 누군가도 그랬지만--- 새삼 더 생각이 들어요. 옥이도 부모 밑에 있을 땐 부모를 그리 걱정하고 애타고 염려하지 않았던 것을 생각하면 내가 편하면 그만이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으니 말이에요.
(지금은 내가) 편하면 편할수록 (더) 당신 곁으로 가게 되니 말입니다. 마음이나마---

  왕상열 군인이 말하길 당신은 옥이의 편지가 안 오면 사진을 보며 위로한다고--- 여보! 미안---. 옥이도 보고싶어. 귀여운 아이들과 같이 행복에 찬 나날을 보내고 싶고--- 여보! 오늘도 무사히
(그리고) 계획시대로 잘 지내기를 바랄게. 내일도, 모래도, 항상, 올 때까지---

  왕상병으로부터 편지를 받으니 한 번 만나 자세한 이야기도 듣고 싶지만 언제 가는 날자도 모르겠고, 지리 관계도 그렇고, 애만 타--- 서울에 있었으면 한 번 만나 이야기라도 들을 텐데---

  당신이 내년 9월이나 귀국하게 된다면 설이나 지나고 서울에 가 있었으면 좋겠군. 방이나 한 칸 얻어 아이들과--- 여보! 안 할 말을 썼나 모르겠군.

  여보! 어쨌든 건강히 몸조심 해요. 언제 아이들 데리고 사진이나 하나 찍어 보내야 될텐데. 보고싶은 사진이라도 보게요. 여보! 그럼, 안녕. 또 쓸게
당신의 옥이가 8.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