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남 편지 ( 제 35 신 )
옥이 당신에게
  여보! 오늘은 꼭 펜을 들어야겠군. 왜냐구? 글쎄 서둘지 말고 천천히 들어 봐. 오늘이 내 호적상의 생일이라는 것을 어제 편지에 썼던가? 실제 생일이 아니니까 별 생각 없이 엊저녁에 잤는데 글쎄 새벽 꿈에 휴가를 갔잖아. 꿈의 내용은 기억이 안 나고 ---
  어쨌든 즐거웠는데 깨고 보니 너무 허망하기도 하고, 잠을 청해도 오질 않아 이 생각, 저 생각 하면서 날이 새고--- 길몽일까? 하는 의아심으로 있었는데,
  아- 글쎄 날이 새면서 무전으로 날아 든 소식이 베이스에 남겨두고 온 2소대가 엊저녁 매복에 나가 우리 중대와 철천지 원수가 된 V.C 놈들을 세 놈이나 때려 잡고 총 2정까지 노획했다는 기쁜 소식이 아냐!

  그 놈들은 나 이전의 중대장을 저격해서 전사케 했고, 얼마 전에 작전에서 돌아 오니까
(연대에 대대 선수로 운동경기 가던)우리 병아리들(병사들)을 앗아간 얘기를 했잖어. 그 외에도 눈 안에 가시처럼 미운 놈들이라 각 중대가 공히 그 놈들을 때려 잡을려고 가지 가지 수단을 연구하곤 했지만 하두 약은 놈들이라 헛수고였는데 비록 전부는 아니지만 시원하게 때렸다는 소식이니 기뻘 수 밖---
  그러면서도
(꿈 얘기를 하면 안 좋다는 미신 때문에) 하루 종일 꿈 얘기는 입 밖에 내지도 않고---(8월 8일자로 이 매복작전 성공에대한 윤필용 사단장의 치하문을 받음: 아래 치하문)

  오늘은 처음으로 새로 입주하는 마을을 포함해서 2년 전에 사람이 비운 이후 인적이 없던 마을들을 수색하면서도 꿈 생각은 계속이었지. 어떤 흉몽이나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하면서 말야.
  그런데 하루가 다 간 이 시각까지 아무 이상 없고, 베이스에서 부관
(부중대장)이 보내 온 닭고기로 소대장들을 모아 놓고 맥주 잔을 기울였고,
  그 동안 여기 새로운 베이스 건설도 거의 끝 나 병아리들(병사들)에게 맥주도 나눠 주고 인심을 썼지. 이상하게도 오늘은
(나의) 생일 날로 연결되어 기쁜 날이 됐군.

  여보! 그런데 오늘도 당신 편지는 없었군. 다른 병아리들은 싱글벙글인데--- 난 겉으로는 태연한 척, 속으로는 멀리 사라져 가는 오뚜기
(헬리콥터)를 보면서 좀 섭섭했다 할까---

  여보! 편지는 없더라도 당신과 시화, 미애가 아무 일 없이 잘 있어야 할 텐데. 농사일이란 시작되면 눈이 쌓일 때
(초겨울)까지 끝이 없는 거니까--- (편지가 안 오는 것은) 지금도 너무 바뻐서 인가? 여보! 체력에 과분한 것을 오기로 무리 하진 말라 말야.

  여보! 뭣하면 내년 일찍 돌아가게 될 지도 몰라. 중대장 1년만 꼭 끝내는 4월에 말야. 좀 두고 봐야 알겠지만 말야.

  그러고 작전 나갔던 대대가 오늘 철수했는데 아주 좋은 전과를 안고 개선했다니 기쁘면서도 여기
(고보이평야에) 나와 있느라고 (작전을) 따라 나가지 못한 게 좀 섭섭하기도 하군. 그렇지만 우리(중대)도 쳤으니까--- 더구나 미웁던 놈들을 말야.

  내 얘기만 정신없이 지껄였군. 무슨 고향 소식이 없나? 시화, 미애가 노는 모습을 당신의 펜으로 쓴 것을 상상해서 단편극을 연속극으로 머리 속에서 각색 해 보는 것이 가장 즐거운 시간이야.

  부모님들도, 동생들도 다 무사하겠지? 오늘은 이만 쓸래. 그럼 안녕---
월남에서 미애, 시화 아빠가
윤필용 맹호사단장 치하문과 봉투
고국 편지 ('69. 8. 7)
미애 아빠, 시화 아빠!
  지긋지긋하던 장마가 그쳤는지 오래 만에 오늘은 햇볕을 보겠군요. 이런 비를 당신이 더워 허덕일 때 내려 줬으면 다 좋을 텐데---

  여보! 더위에 어떻게? 34, 35신이 한꺼번에 들어 와 내 입이 확 열리게 해 주어 감사--- 더구나 미운 V.C를 잡았다니 반가워요. 인명 피해를 보았던 중대를 생각하니 마음이 아찔--- 마음이 자꾸만 쓰이는군요. 여보! 더욱더 조심해요. 설마 하는 마음을 갖지 마시고요.

  여보! 옥인 잘 있어요. 부모님도 아가씨들도 다들 잘 있어요. 시화도 잘 놀고, 비가 많이 와 냇물에 못가겠다고 걱정을 하는 꼴, 웃음이 나와요. 요사이 미수가루를 좀 했더니 심심하면 미수가루 못할 일---

  미애는 잘 놀아요. 말도 한 마디씩 늘어가고, ‘고모’, ‘엄마’, ‘아빠’는 사진을 보고, ‘시화’, ‘삼촌’ 등 음을 따며 부르는 꼴이란--- 귀엽기만 합니다.
  여보! 당신한테 보여주고 싶지만 혼자 귀염을 부릴 땐 더욱더 당신의 생각이 간절---
(당신이 이를 보면) 얼마나 좋아할까? 하고--- (미애) 머리는 한 묶음으로 예쁘게 (잡아) 맸고, 초미니(치마)를 입고--- 그래도 미애는 그늘에서 놀아서 그리 까맣지 않아요. 내 새끼라 그런지 예뻐. 시화 하는 대로 흉내내며 따라 다니는 꼴이란---

  여보! 당신이니까 마음 놓고 자식 자랑이구먼요. 장마로 인해 김매기, 보리타작이 쳐저 이젠 날이 맑기 시작하니 빨리 해야지--- 너무 옥이에 대해서 걱정하지 말아요. 좀 힘드는 일이라도 당신이 그런 걱정을 해 주니까
(피로가) 다 없어지지만---

  여보! 어쨌든 보고싶어. 어제 저녁에는 가만히 시화, 미애를 옆에 누여 놓고 당신 생각을 더 했나 봐. 당신을 그리다가 어떻게 잠이 들었는지 모르겠군. 일찍이 저녁
(밥)을 먹었으니 잠들기엔 시간이 많았나 봐. 그리고 편했고. 좀 힘드는 날은 들어 누우면 어떻게 자는지도 몰랐는데---

  여보! 편지를 그렇게 기다리게 해서 미안해. 요사이는 자주 쓴다고 쓰는데 모르겠군--- 오전엔 빨래를 했고, 이젠 점심이나 해야지. 지금 시원한 마루에서 시화는 바퀴도 없는 차를 가지고 놀고 있고, 미애는 내게 엉겨 붙을라고 야단이군. 또 바로 쓸께요. 그럼 안녕히. 여보!---
고국에서 당신의 옥이가 8.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