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남 편지 ( 제 36 신 )
옥이 당신에게
  무척 기다리던 편지였는데 오늘은 한꺼번에 두 통이 날아왔군. 아이들도 잘 놀고, 당신도 무사히 가장 바쁜 이종을 마쳤다니 다행이지만 본래 볼이 홀쭉한 당신이 더 홀쭉이가 안되었나 몰라?

  난 계속 무사해. 식욕도. 내가 여름철마다 당신을 속상하게 하던 걸 생각하면 이상할 정도로 좋아. 얼굴이 새까맣게 광택이 나서 그렇지 내 자신이 생각해도, 또
(중대) 아이들이 그러는데도 얼굴이 좋아졌나 봐.
  더구나 이렇게 고보이평야에 나와 오늘이 한 달 3일째 쉬는 편이니 그럴 수 밖에. 작전에 나가 좀 피곤하거나 물고기들
(중대원들) 때문에 좀 신경을 쓰면 입술이 좀 터는 정도지. 별 거 아니야.
  부모님도 동생도 다 무사하다니 또한 다행이야. 농사철에---

  여보! 내가 월남에 온 것이 꼭 당신에게 시집살이 시키는 것만 같애. 당신에게 그렇게 애만 타게 하니 말야. 여보! 아마 내년 4월 중에 중대장 1년 마치고
(당신에게) 가도록 될꺼야. 그렇게 되도록 되어야지. 아마 9월이면 결정될꺼야.
  어떻게 그렇게 되느냐고? 당신에게는 9월이나 되서
(결정이 나면) 얘기 할려고 생각했는데 간사스런 펜이 자꾸 써라고 그러는군.

  다름 아니고 원래
(우리 동기는) 내년에 진급이 될 대상이 안 되지만 군인사법에 ‘우수자에 한해서 1년 단축해서 진급심사를 할 수 있다’ 는 조항이 있는데 우리 18기생이 이 조항의 혜택을 금년에 받게 되나 봐.
  몇 %나 될는지 두고 봐야 알 일이지만 나 자신 우수자 크럽에 들지도 못하면서, 또 똑똑하고 훌륭한 다른 동기생들이 많은데 큰 기대는 걸지 않아. 다만 행운이 있어 이번 혜택이 내게도 행운을 가져 올는지 모르기 때문에 한 번 기다려 보는 거지 뭐. 너무 큰 기대를 했다가 실패하면 실망도 그만큼 클 테니까 아예 조그맣게 기대 해 보자구.
  전쟁터에서 차라리 안 보고 맘 편하게 지내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 행운이 있어 되거나, 안 되거나 중대장 1년은 해야지. 안돼도 내년에야 되겠지. 이런 지론으로 내년 4월에는 당신을 곁에 할 수 있고, 시화, 미애를 안아 줄 수 있게 될 거라는 거지.
 
(이것이) 당신에게도 또 내게도 더 없이 기쁜 소식이 될는지 몰라. 실패 될 경우 당신에게 마저 실망을 안겨 줄까 봐 지금껏 말하지 않았는데 이 요사스런 펜이 자꾸만 쓰자고 만 하는군.

  시화가 미애를 잘 데리고 노는 모양이지? 때리지는 않나? 아이들 체중도 못 재 주지? 잘 놀더라도 몇 달에 한 번씩은 병원에 데리고 가서 건강진단을 해 봐. 송금 찾으러 나갈 때 데리고 가면 되잖아.
  짜-식들! 왜 안보고 싶겠나. 하루에도 몇 번씩 사진을 들여 다 보는지 몰라. 사진 보다는 훨씬 컸겠지? 얼굴은 빠지지 않았나? 그건 당신이 있으니까 별로 걱정 안 하지만
(당신이) 농사일에 쫓기다 보면 소홀할지도 몰라서 걱정이지. 골목길들이 험해서 마을 간다고 다니다가 도랑에 떨어질라---

  장마비로 홍수가 났나 봐? 내 어릴 적에도 많이 보아왔지. 특히 논이 물 건너에 있는 우리집은 항상 애태우고 무너지는 논두렁을 건너 다 보면서 걱정만 하고 있은 적이 많아.

  정영이 하고 정희 결혼 문제에 있어서는 나도 정영이 생각을 동의해. 점잖은 양반 체면에
(동생을) 둘씩이나 먼저 시집을 보낸다는 것은 옛날 사람들에게는 생각도 못 할 일인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옛날이 아니잖아?
  기반이 그래도 입에 풀칠을 할 수 있어야지 돼지 않겠나? 남들이 욕한다고, 체면을 세운다고 고집을 할 때는 아니라고 생각해. 여자야 혼기를 놓지면 큰 일이지만 남자야 뭐 큰 걱정이야. 나도 편지로 아버님께 이해하시도록 노력할게. 당신도 협력해서 아버님을 이해 시키도록---, 성급하면 실패하니 서서히 하도록 해 봐. 덮어놓고 결혼만 해서는 도회지생활에는 곤란하다는 점을 얘기 하라구---

  ‘천불생무녹지인’이란 옛날 글귀에서나 찾아 볼 수 있는 말이지. 어디 지금 그 말이 통할 수 있나?
(정영이) 저도 고생도 했고 하니 앞으로 2-3년의 기간을 둔다면 다소의 기초는 이룰 수 있을 거야.

  그런데 무슨 발령이 나는데 또 돈이 드나? 빌어먹을 놈들--- 참, 엽전은 하는 수 없나 봐. 돈! 그 마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눈이 어두운 친구가 월남에도 많아.
  사돈 팔촌이라도 걸리기만 하면 뭐 좋은데로 빼 돌리려고 하는 정실인사! 전쟁터에서 한심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야. 똥만도 못한 친구들---

  공연히 흥분했나 봐. 세상이 다 그런지는 모르지만 세상의 가치관이 자꾸 바뀌니까 내가 생각하는 모든 것이 시대에 뒤떨어지는 지도 모르지.

  시화가 땡깡을 잘 부리는 모양이지? 감자 구워달라고 조르고. 아이들 한테 두들겨 맞고 돌아오는 건 아냐? 정말 보고싶다. 사진만으로는 안 되겠어. 하지만 내친 걸음, 참아야지. 오직 전장에선 군인으로서 군인의 참다움을 체험하고, 앞으로의
(군인)생활에 활력소가 되도록 노력해야지.

  끝으로도 익숙하지 못한 농촌 생활에 당신과 아이들의 건강이 계속 좋아야 할 텐데. 그럼 오늘은 이만 펜을 놓을래. 안녕.
월남에서 당신의 영이

 (주) 天不生無祿之人 地不生無名之初(천불생무녹지인 지불생무명지초): 하늘은 녹(녹봉, 먹고 살 것)이 없는 사람을 낳지 않고, 땅은 이름 없는 풀을 낳지 않는다는 뜻으로 우리말로 하면 ‘사람은 다 제 먹을 것을 타고 난다’는 뜻
고국 편지 ('89. 8. 10)
  여보! 당신을 그리며 펜을 듭니다. 그간도 안녕?
  지긋지긋한 장마가 가신지 2일째. 햇볕이 무척 뜨겁지만 그곳보단 못하겠지. 지금 막 목욕을 하고 와 양쪽엔 시화, 미애를 누여놓고 당신을 그립니다. 여기 당신도 옆에 누워 있다면 하고 아쉬워져요.

  가만히 누워 생각을 하다 보면 눈에 나도 모르게 잠이 오는 것 같군요. 여보! 지금쯤은 무엇을--- 무거운 책임 속에 잠이나--- 혹시 정신없이 바쁜 일--- 전쟁터이니까 긴장 속의 밤--- 어쨌든 고단한 밤일 테지. 옥이를, 시화를, 미애를 그리며--- 여보! 쓸 때마다 보고싶단 말 밖에 안 나오네.

  여긴 다 편해요. 건강들 하고요. 당신이 걱정하는 옥이도, 시화도, 미애도--- 저녁 땐 시화가 오이 나무에 열린 것이란 다 따먹고서 당신을 생각했는지 “이제 아빠 오면 오이 따 줘야겠다”고 하면서 이야기 하는군요. 아빠가 그리운가 봐.
  낮에는
(동네) 아이들이 저희들 대로 아버지가 무엇을 사다 줬다고 하니까 (시화는) “우리 아빠는 기차, 코로나택시, 별의 별 것 다 사다 준다”고 하면서 좋아서 자랑하고 야단. 또 아이들이 “너희 아빠 어디 갔냐?”고 하니까 “월남 갔다”고 의기 양양하게 이야기 하는 모양이 웃음이 나왔어요.

 
(나는) 정말 그렇게 아빠가 시화를 기쁘게 해 줄 꺼라고 생각하면서 혼자 말없이 당신을 그렸답니다. 미애도 잘 놀아요. 그런데 (저녘)밥 할 때 날이 저물면 나한테 안기고 싶어 야단 칠 땐 가엽기도 하지만 작은 키로 포도송이를 따려고 포도나무 밑에 매달리는 것을 보면 귀여워 죽겠군요.

  여보! 이젠 내일을 위해 자야지. 그러면 이 밤도 안녕히. 여보! 몸조심. 또 바로 쓸께. 여보!
  참! 36신은 받았는데 당신이 4월이면 올 수 있단 말이 내게는 제일 기쁜 소식. 빨리 세월아 가거라---
고국에서 당신의 옥이가 8.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