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남 편지 ( 제 37 신 )
여보!
  오늘따라 퍽 시원한 날씨군. 내일이 유두고사날(음력 6월 15일), 모내기를 끝내고 풍년 기원제일)인가 봐. 뭣하면 떡도 하고, 음식을 장만해서 고사 할 텐데. 그런데 ‘유두고사 음식은 잘 먹어야 본전’이란 말이 있어. 시화는 좋아라고 먹다가 배탈이라도 나면 고민이야. 당신이 어련히 하랴마는--- 논밭이 새파래지기 시작하면 열무김치가 밥맛을 돋구겠군.

  마침 사진을 찍은 것이 있어 석 장 보내는데 보면
(내가 건강한 것을)알잖아. 새까맣게 감둥이가 돼서 그렇지. 건강 하잖아? 팔뚝의 힘 줄은 여전---
  뒤에 보이는 집은 절이야. 월남에는 마을마다 조그마한 절이 하나씩 있는 게 특징인데 전쟁 바람에 모두 부서졌지. 지금 우리가 간이기지로 차리고 있는 여기도 하나 있는데 전쟁의 자국이 굳데 군데 있지만 그래도 고보이 들판의 마을 치고는 아주 많이 남은 셈이지.

  잎이 넓은 나무가 뭐냐구? 당신도 알꺼야. 한국에서는 파초라고 그러면서 정원에서 귀염을 받고, 여기서는 바나나나무가
(식량으로) 한 몫 단단히 한다고---
  풍경사진에 오른 쪽에 큰 나무가 바로 목화나무야. 1년에 한 번씩 목화가 주렁주렁 열지. 풍경은 아름답지만 폐허에 잡초만 키를 넘는 한심한 곳이야.

  뭣을 생각하느냐고? 적어도 이 때만은 V.C고 뭐고 없고 당신을, 고국을, 아이들을 생각하지. 멀지 않아
(이 사진이) 당신 손에 들어갈 꺼니까.

  중경단에서 송금이 있을 텐데 아직 아무 소식 없나? 사진을 넣어니 너무 부피가 클 것 같애. 오늘은 이만 간단히 줄이래. 그럼, 안녕---
월남 고보이 들판에서 당신의 영
월남 고보이 평전작전 추억 사진(1969년 7월)
가운데가 나, 왼쪽이 전령 이한영 일병?, 오른쪽이 중대무전병 오교철 상병
나의 독사진
고국 편지 ('69. 8. 13)
보고싶은 당신에게
  여보! 오늘은 타작 마당에서 당신의 37신을 받고 반가워 모든 더위도 잃어버리고 좋아서 어쩔 줄 몰랐어요. 더욱이 걱정스럽던 건강도 사진으로는 괜찮은 것 같지만--- 정말 건강하셔야지--- 지금 편지를 쓰다 약간 졸았군. 저녁밥 먹으면 맥을 못 추는 나, 당신도 상상하겠지?

  여보! 당신의 사진을 보니 당신이 더 보고싶군. 부모님도 안녕하시고 옥이도 잘 있어요. 시화, 미애도 잘 놀아요. 시화, 미애는 당신 사진을 보고 “아빠-“하고 사진을 보고 좋아하고---

  시화는 당신 사진을 보고
(아빠가) 보고싶은지 “아빠, 아빠”하면서 무어라고 작사, 작곡하며 노래를 부르며 마루에서 딩굴고 있는 것이 정말 아빠가 보고싶은 모양--- 총 가지고 있다고 좋아하면서 “엄마! 아빠가 나도 이런 것 사 온데?” 하고 묻는군요.

  미애는 당신 사진을 보고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아무도 사진을 못 갖게 하고--- 여보! 옥이도 무척 당신이 보고싶어. 당신의 억센 팔에 안기고도 싶고---여보! 4월이면 꼭 와--- 꼭, 꼭. 여보! 사진을 찍으면서 무엇을 생각했어? 우리의 귀여운 새끼들? 옥이?

  여보! 당신이 정성껏 모아 보낸 목화
(나무)씨는 싹이 안 나와요. 토질이 다르니까 그런가 한 나무도 안 나오네요.울타리 가 고추 밭에 모두 심었는데 안 나오네요. (나의) 정성도 아랑곳 없이--- 없어졌군요.

  여보! 옥이 졸립다. 꾸벅꾸벅 졸았군. 여보! 그만 쓰고 자야지. 여보! 그럼 안녕
당신의 옥이가 8.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