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남 편지 ( 제 39 신 )
옥이 당신에게
  기다리던 편지였는데 그것도 못 받고 한 나흘 후에나 읽을 뻔 했지. 바람이 심해서 오뚜기(헬리콥터)가 못 나와 출동이 하루 연장된 때문에 (당신의 편지를 읽고) 이렇게 펜을 들 수 있군.

  시화, 미애 잘 놀고, 당신도 건재하다니 안심이야. 난 이종
(모심기)기간에 무슨 탈이나 나지 않았나 퍽 걱정되더니--부모님들도 무사하시다니 다행이야. 지금쯤 학생들이 방학을 하고 들어 왔을 텐데.

  난 잘있어. 고보이 임무를 마치고 기지로 돌아 와 다음 임무에 머리를 짜느라고 펜을 못 들었군. 오늘이 팔월 들어서도 나흘째니 (월남에 온지도) 꼭 반년이 됐나 보군.

  고국에도 더위가 한창이겠다? 여기야 뭐 꼭 같지만 요사이 한 일주일 간 바람이 심하군. 더구나 우리
(중대)베이스는 바다가에라 지붕이 들썩들썩 하는군. 이제 좀 잠잠해 지는 것 같애.

  이번 임무는 푸캇산의 정상에서 며칠간 살다 오는 거야. 높이 890m이니 이 근방에서는 최상봉이야. 정글은 하두 낙엽제를 뿌려서 좀 덜한 편이지. 꼭대기에서는 맹호의 활동구역이 거의 한 눈에 다 보일 수 있는 곳이야. 맹호부대에 근무했다면 최소 한 번은 정복할 만한 곳이지. 내일 출발할 꺼야.
고국에는 비가 많이 온 모양인데 고향에는 뭐 피해는 없나? 산골 물이라 쉽게 붓고, 또 주니까.

  여보! 우리도 달나라에 가는 것이 꿈이라고? 거기 뭘 하러 가나. 풀도, 물도, 공기도 없는 곳에--- 암스트롱은 역사적인 일을 했지만 많은 고통을 느꼈을 꺼야. 뭐니 뭐니 해도 내가 사는 지구가 제일 좋고, 내 나라가 제일이야. 그 뿐인가. 마누라도 내 마누라가, 새끼도 내 새끼야. 부하도 내 부하가 내게는 제일이지 뭐.

  인공위성이 달 표면을 찍어 오고, 우주인들이 달 표면을
(걸으면서) 생방송 하면서 달은 점점 (우리들의 추억에) 가치가 없어지나 봐.
  옛날 미인을 표현해서 花容月態(화용월태:
꽃의 용모와 달의 자태)라 했고, 동산에 뜬 달을 보고 동심에 젖어 노래했고, 고향을 그리며 달을 노래하고 하소연 했지만 (우주인들이) 사진으로 찍어 보낸 달은 멋대가리 없는 곰보가 되어있고, 풀도, 나무도, 물도 없는 사막으로 알려졌으니 아주 달을 망쳐 놓은거야.

  너무 흥분했나 보군. 지금쯤 고국에는 아니 구대 내에는 회오리바람이 불 때군. 여기도 약간 영향이 있는 걸 보니--- 왜냐구? 진급이 눈 앞에 아물거릴 때니 말야. 눈 앞에 안 보니 좋군. 행운이 내게도 있을는지 모르지만 아예 기대하지 마는 게 좋겠지? 그렇다고 자포자기 하는 건 아니야.

  내가 맡은 임무 즉 내일부터 푸캇산 골짜구니를 살피고 뒤지면서 적을 찾고 잡는 거야. 내 물고기들
(병사들)은 한 놈도 잃지 않고---

  정영이한테서 편지가 왔군. 7월 1일부터 영등포우체국 통신과에서 근무하게 됐다는군. 착실히 잘 할 줄 알지만 너무 고생이 많겠어.

  올해 삼
(대마)농사를 했다고? 그것도 돌아가실 때 입는다고? 참 별 말씀들을 다 하시네. 하기는 삼배옷도 좋아. 시원하고--- 나도 한 벌 해 입었으면 좋겠다. 여보! 삼베옷 해 입으면 당신한테 등어리 끍어 달라는 소리 안 할 꺼야. 여기 중대원 중에서도 종종 삼베 내의를 입는 친구가 있어.

  시화가 장난감 많이 사 오라고? 그럼. 다른 건 못해도 그건 많이 많이 사 간다고 해. 비행기도, 기차도, 또 뭐든지. 대신 땡깡 안 부리고 아빠 올 때까지 잘 놀고, 잘 커야지. 정말 새끼들 보고싶다. 물론 당신도--- 한 6-8개월 남았으니 참고 견디어야지. 더 반가움을 위해서---

  오늘은 이만 쓸래. 한 나흘 후에 또 쓰지. 그럼 안녕!
)월남에서 당신의 영이
)사진 1매 보낸다
중대기지에서 (1969년 7월)
뒤 먼 산이 푸미반도 북부, 오른쪽 물이 안쾅만을 통해 들어 온 동지나해 바다물,
기지 아래 비포장 길이 안쾅에서 나가는 유일한 신작로
고국 편지 ('69. 8. 19)
여보! 시화, 미애 아빠!
  이젠 가을이 가까워지는 것 같아요. 새벽이면 추워지고, (샘)물을 뜨면 따뜻하니 말이에요. 나락(벼)도 올벼는 패기 시작하고---

  여보! 그간 어떻게--- 빨리 가을이 오고 겨울도 와야지. 다음은 봄이 오게--- 봄과 함께 당신도 오게--우리는 잘 있어요. 시화도 잘 놀고, 미애도 잘 놀아요. 예쁘고 귀엽게, 내 새끼라 그런지---

  그저께는 옥란이와 어머니가 우리 집에 왔다가 엄마는 오늘(8월 18일) 가셨고, 옥란이는 아직 안 갔지. 외로운 엄마가 딸네 집이라 왔지만 별다른 대접은 못했지만 반가웠고, 가시니 섭섭하군. 곧 옥이가 이원엘 가야겠어요.
  어머니 눈이 아프다는 것이 좀 더해 가는 것 같아 병원에 가서 수술을 하든지 해서 나아야지. 미애, 시화도 데려가야 되려나 봐. 시화가 나를 떨어지지 않을 것 같고---
  수술하든지 해서 잘 나아야 할텐데. 걱정이 되지만 현대 의학을 믿고 안심해야지. 모래나 가야지. 그 동안 당신 편지 못 받을 것 같아 꺼림직 하군. 정성껏 간호하고 일찍 와야지. 집안은 다 안녕들 하셔요. 아가씨들도,

  위 글은 어제 저녁에 쓰다 말고 이젠 돈 찾으러 우체국에 왔다가 우체국 내에서 펜을 듭니다. 샛차
(새참 때 들어오는 버스) 미애의 배웅을 받으며 나를 안 떨어질려고 입을 삐죽거리며 고모 등어리에 업힌 것을 눈에 그리며 쓰고 있어요. 오전엔 종손집에 혼자 가서 잘 놀다가 고모가 데려왔더군요. 시화는 냇물에 놀러 갔는지 없고--- 물이 적으니까 당신 걱정하지마.

  수당은 30,030원 찾았어요. 내일은 이원에 가서 빨리 병원에 가 봐야겠군. 시화도, 미애도 데려갈 수 밖에 없어. 안 떨어질려고 하고, 나도 안 보고 못 살겠고---

  4일간의 작전에 간다고 했는데 무사히 돌아 왔는지요. 우리에게
(하느님의) 은총이 내리사 무사히 돌아 오셨을 것을 빌고 안심해야지.

  여보! 오늘은 8월 19일, 이제 당신이 중대장 한지도 약 4개월이 가까웠지요. 아직도 8개월이 남았으니 1/3 밖에 안 갔군. 여보! 항상 조심, 설마 하는 생각은 버리시고 당신의 찬찬한 마음에 믿음직 하지만---

  여보! 보고싶어. 시화, 미애도 보여 주고싶고. 이원 어머니는 미애가 많이 컸다고 하시는군. 옷을 한 벌 사 오셨는데 올해는 겨우 맞겠는데 내년엔 적겠군.
(미애가) 작은 줄 알았더니 많이 컸다고---

  여보! 놀러 갈 데가 많아졌어. 지우대
(고향)에 우리 밭도 수영장 만든다고. 고속도로를 경계로 강물 쪽은 다 수영장이 된다나? 건물도 짓고 한대. 우리 당신 오면 한 번 가야지.
  그리고 작은 고모네가 포도가 내년에 많이 열릴 거라고 포도 먹으러 오라는 소식. 봄에 안 가 봤더니 보고싶은데 안 왔었다고 섭섭해 하시더라고 하시는군요.

  그리고 작은어머니
(선희)네는 숙부는 전방에 계시고, 숙모는 서울에서 아이들과 있다 나 봐. 고모(기수)네는 경기도 광주로 이사 했대. 집을 짓는다 나 봐요. 자세한 소식은 모르지만. 기순이네도 그 곳으로 차차 갈 모양인 것 같다고 하나 봐.
  기수는 작은 아버지 한테 돈 좀 줘서 좋은 곳으로 할려고 한 것이 잘 안되었다고 하더라는데 아마 숙부가 또 골탕 먹었나 봐요. 잘 할려던 것이 잘 안되면 뒤집어 쓰기 마련.

  어제는 석희 아가씨가 대구 갔다 왔는데 큰아가씨집 다 편안한데 돌도 지나지 않고 또 2째를 가졌다나. 너무 빠른 것 갔군.

  요사이 며칠 가뭄이더니 유리창 밖 하늘이 검은 구름으로 덮이기 시작하네. 여보! 그러면 안녕. 보고싶지만 참을게. 이원 거서도 틈 있는 대로 쓸게. 빨리 버스가 와야 내 배도 채우고, 우리 미애 젖도 줘야지?
고국에서 당신의 옥이가 8. 19
고국 편지 ('69. 8. 22)
여보! 시화, 미애 아빠!
  여보! 이원에 온 것이 내게는 휴가 온 셈이나 되겠지. 머저 편지 항 대로 20일 이원에 왔답니다. 마침 김천장이라 아이들 데리고 좀 고생은 되었지만 잘 왓답니다. 빨리 어머니 눈 때문에 병원에 가 봐야지. 잘 나아야 할텐데---

  여보! 당신 편지가 집엔 혹시 왔을 텐데--- 몇일
(편지를) 못 보아 궁금합니다. 집에서 매일 매일 편지 기다리는 마음에 살았는데--- 이젠 편지 하는(쓰는) 마음에 지내야지. 여보! 그간은 어떻게? (어머니 모시고) 병원에 가 봐야 옥이도 집에 갈 날자를 알겠군. 경과를 봐서--- 지금 내가 보기에는 간단히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는데 모르겠군요.

  지금 미애, 시화는 마루에서 옥란이와 감 홍시 먹는다고 하는데---미애와 싸움을 하고 야단--- 먹기가 아직 빠른 것 같은데--- 다른 아이들 먹는 것 보고--- 이길 수가 없군.
 
(고향)집에서 냇물에 다니더니 시화는 귀속에 물이 들어갔는지 귀가 좀 아프다고 하더니 이젠 좀 나았나 봐요. 아이들을 안아주고, 볼 때마다 당신을 더욱 생각케 해요.

  집에서 올 때 집엔 다 편했어요. 학생들도 집에서 일손을 돕고--- 큰도련님은 8월 달만 지나면 돈은 못 모아서 그렇지 머고 사는 것은 걱정 안 해도 되겠는데. 쉬운 줄 알았더니 돈 벌기란 힘들더라나--- 자기 앞은 자기가 알아서 하겠지.

  내게는 빨리 세월이 흘러 당신이 빨리 오는 것이 제일 좋아. 여보! 보고싶지만 할 수 없지. 기다려야지. 여보! 안녕. 또 쓸게.
고국 이원에서 당신의 옥이가. 8. 22
고국 편지 ('69. 8. 27)
여보! 시화 아빠!
  바빠서 몇 일간 펜을 들지 못했다고 할까요. 여보! 그간은 어떻게? 여기(이원)에 와 있으니 당신의 소식을 들을 수도 없고--- 기대도 안 했지만--- 마음은 집에 가 있군. 편지가 그 동안 몇 통 왔을 텐데. 오기 전 작전(4일간) 나간다고 한 4일 못 쓸 꺼라는 편지를 받고 왔는데---

  여기
(이원)에는 우리 세 식구로 떠들썩--- 3일 전부터 어머니는 안과에 다니는데 첫날 나도 같이 가 이야기를 들었는데 눈물주머니가 염증이 생기고 눈물구멍이 막혀서 그런데. 치료하면서 눈물구멍을 뚫어야 한다나 봐요. 한 일주일 치료해 봐야 한다나 봐요. 만일에 그래도 안되면 눈물주머니를 떼어내야 한다나 봐요. 어제 대전에 가셨는데 외가에서 몇일 계실 것 같군요.

  지금 방 안엔 옥란이, 시화, 미애가 한 덩어리로 장난을 치며 재미있게 놀고 있답니다. 집에 있을 때 시화는 냇물에 가 살더니 귀에 물이 들어 가 귀가 아프다고 하더니 이젠 다 나았습니다.

  여기에 오니 미애가 많이 컸고, 예쁘다고 하는군요. 어릴 때보다 아주 예뻐졌어요. 미애 아빠가 보면 귀여워 하겠다고 하면서 정말 내 보기에도 컸나 봐요. 봄에 못 신던 신을 지금은 맞으니까---
  벌써 고무신이 하나 떨어졌어요. 말도 한 말, 한 말 늘어가고---어머니 병원에 갈 때는 시화, 미애를 데리고 갔는데 미애가 아주 빠르게 돌아다녀서 조금만 한눈을 파면 잃어버릴 정도로 아주 깍쟁이 같이 돌아다니는 꼴이 귀엽고 얄밉군요.

  시화는 보는 것 마다 사 달라고 집
(이원)에 오는 길에 미애, 시화 옥이 셋이 사진 한 장 찍었는데 잘 되었는지 몰라요. 미애, 시화나 찍어 줄까 하다가 나도 한 몫 끼었지. 당신한테 보낼 셈이었지만 --- 나오는 대로 한 장 보낼 께요.

  여보! 집에 가서 당신의 토막 소식을 빨리 봐야겠는데 왜 이렇게 시간이 안 가는지 모르겠네.
  여보! 그럼 내일이라도 사진 찾으면 바로 또 쓸게. 여보! 안녕.
고국에서 당신의 옥이가 8.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