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남 편지 ( 제 40 신 )
옥이 당신에게
  여보! 세 통의 당신 편지 답장을 한 번에 쓰니 편하긴 하지만 미안한 생각이 드는군. 편지가 한꺼번에 몰려왔나 봐. 더구나 푸캇산의 왕자 놀이를 하느라고 한 5일 만에 돌아오니까 늦을 수 밖에--- 그 대신 앞으로 자주 펜을 들면 될 거 아냐?

  다들 무고하시고? 당신도, 미애도, 시화도 잘 있다니 반갑군. 한편 고맙고. 후렴이 없이 소신껏 부대를 지휘할 수 있으니까--- 그러니까 전쟁터에선 나의 용기와 의지와 능력의 반은 곧 뒤에 있는 당신과 시화, 미애가 그리고 부모님들이 담당하는 셈이야.

  이번 푸캇산 정상(980m)을 비롯해서 골짜기 마다 뒤지고, 적을 찾겠다고 눈에 불을 켜고 다녔지. 중대장인 내가 마지막 판에는 입술이 텄으니 우리 병아리들(병사들)이야 오죽했겠나. 심한 정글과 급경사의 악산, 바위 덩어리의 동굴 속--- 그래도 하나 낙오 없이 3-4일분 먹을 식량, 탄약, 물을 다 지고 다녔으니까. 확실히 맹호야. 그것도 아주 억센--- 너무 자랑이 심했나?

  여보! 당신이 아무 탈 없이 해 보지도 않은 농사 일 그것도 연중 가장 힘든 이종기를 남보다 빨리 해냈다니 참 장하군. 나도 관상 아니 사람 볼 줄 아나 봐. 농촌에서는 농촌 생활을, 도시에서는 또 거기서의 생활에 익숙될 수 있는 당신을 내게 주신 하나님이랄까 그 무엇에 무한히 감사 드려야지.

  그렇지만 여보! 고생이 많지? 아이들에게 시달리고, 익숙치도 않은 시골생활이 힘에 벅차고--- 여보! 그래도 참아야지? 얼마 안 남았 잖아. 난 지금 계절감각이라고는 전연 없지만 가을이 오고, 겨울이 지날 때쯤은 기다림도 끝나겠지. 당신이 그렇게 원하는 시화, 미애의 재롱도 같이 웃으며 볼 수 있고---

  혹시 그 때 시화는 밉상을 부릴지도 모르겠군. 괜찮아. 교육만 잘 시키면 미운 게 어디 있어. 내 새끼들인데-

  미애가 그렇게 깍쟁이 짓을 하나? 기집애--- 모전여전인 모양. 보나 마나 당신도 꼭 그랬을 거야. 그게 벌써 네 것, 내 것을 알고--- 많이 키웠다. 당신이 고생했지 뭐.

  박대위
(박용원대위) 부인 한테서 위문 편지가 왔더라고? 참 고마운 사람들이야. 박대위가 그렇게 ‘하늘과 땅처럼 사랑한다’니 난 뭐라고 해야 하나? 그 친구 하루에 (편지를) 두 통씩 띄운다면 근무는 언제 하나? 순 공처가(?)로군. 내 생각이 틀렸나?
  아마 편지 길이 좋아서 잘 가나부지. 나야 박대위
(박용원대위) 있는 데서도 한 참 내려오는 말단이니까 그럴 수 밖에---

  여보! 당신도 걱정 말어. 뭐라고 표현하나? 어쨌던--- 좋아 박대위
(박용원대위) 보다는 조금 더 하다고 자랑해도 좋아. 여보! 못 믿겠어? 그러고 보니까 종종 (당신한테) 신경질 낸 게 걸리는군. 그리고 쪼들리는 셀러리맨으로 지금껏 당신을 고생시킨 것도--- 하기야 지금은 더 하지만---

  여보! 이 다음 만난 후에는 그 보상을 하면 안 되겠나? 하기는 5. 23이 당신의 생일인 줄도 몰랐어. 전쟁하는 사람이 언제 그런 것까지 기억하고 있나? 아버님 생신도 마찬가지야.

  여보! 그게 당신을 덜 사랑한다는 증거일까? 천만에 현재 내게 주어진 어깨가 뿌듯한 임무를 성실히 그리고 훌륭하게 완수하고 웃으며 금이환향 하는 날을 당신도 학수고대하고 있다는 걸 난 잘 알고 있어. 마찬가지로 내가 맡은 부하들의 부모형제들도---
  여보! 이 다음에 캠핑 가자고? 좋아 대 찬성이야. 당신이 프랜을 잘 짜 놓아야지.

  여보! 당신 편지와 함께 옥란이 편지도 와 있구먼. 당신이 자주 편지 않나 부지? 어머님 무사하시고 지우대 고속도로에 들어간 밭은 매매했고, 서울 고모님 댁이 경기도 광주로 이사를 했다는 등등 짤막한 소식---

  여보! 자주 편지 해 줘. 이원에 말야. 그리고 바쁜 농사철 지내거든 다녀도 오고. 아마 부모님들께 말씀드리면 곧 허락 해 주실거야.

  인상된 봉급이 송금되어 왔다고? 43,670원이면 내 계산하고 많이 틀리 잖아? 그 친구들이 틀렸나 내가 틀렸나? 좋아 송금표에 영수증이나 무슨 증빙서류가 있거든 남겨두고. 이 다음에 확인할 수 있게--- 아마 3월부터 호봉 승급 된 것은 계산에 안 넣었던 모양인가?
  증빙서류가 없으면 중앙경리단으로 문의 해 봐.
(중경단의) 주소는 잘 모르겠는데 군우 151-501 중앙경리단 봉급과 쯤 되겠지.내 군번은 아나? 18285. 내 인적사항과 송금된 금액과 3월 1일부로 대위 2호봉에서 3호봉으로 승급 괬다는 것 등등 적어서 위의 금액 계산서를 부쳐달라고 해 봐.

  그리고 여기 장교들의 귀국 문제가 불확실 해. 혹시 나도 중대장 1년 못 채우고 파월 1년으로 가게 될 지도 몰라. 그러니 당신 예비금으로 저금하는 게 좋을 거야. 때에 따라서는 송금을 못 할 때도 있을 테니까 말야.

  자- 오늘은 이만 그칠래. 또 쓰면 될 꺼 아냐? 그럼 안녕. 여보---! 나도 그저 한 번 불러 봤어.
월남에서 당신의 영으로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