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남 편지 ( 제 43 신 )
옥이 당신에게
  어제 쓴 편지를 오늘 띄웠는데 또 펜을 들어야겠군. 짤막한 당신편지가 날라왔으니 내가 한가하면서 당신에게 손해를 보일 수가 있나? 아니 손해고 이익이고 간에 내게는 지금 두 가지 생각 밖에 없는데 하나는 현재 내게 맡겨진 임무 수행이고, 또 하나는 당신 생각---
 
(그러니) 틈이 있으면 펜을 들어 소식을 전해야지. 이렇게 갈겨 쓴 편지가 당신에게 기쁨이 될 수 있다니 말야. 이틀에 한 번 오는 우체부아저씨를 그렇게 기다린다니---

  지금 우리 중대가 맡고 있는 책임구역은 무척 넓어졌어. 당분간 다른 중대가 작전에 나갔기에 다 맡아야 하기 때문이야. 오늘은 여기 저기 둘러 보다가 3대대
(재구대대)에 들렸지. 부대대장님이 새로 오신 선배님이라 길래 인사도 할 겸--- 아닌 게 아니라 보병학교에 있던 이성택 소령님이잖아. 당신도 기억할는지 모르지만 14기생으로 안경 쓰고--- 가만 있거라 당신은 모르던가? 어쨌던 같이 있다가 또 가까이 오니 무척 만갑더구먼. 그리고 김광현 중령(12기생 선배)도 파월해서 기갑연대 대대장으로 왔다나--- 별 호감은 없지만 그래도 반갑긴 하군. 이런 얘기들은 모두 시시해.

  여보! 미애가 그렇게 깜찍스러워? 말 배우겠다고 한창인 모양이지? 기집애두--- “아빠”소리를 긓렇게 똑똑하게 한다구? 암, 그래야지. 누구 딸인데--- 그런데 왜 아직까지 젖을 먹이나? 하기는 여름철에 젖을 잘못 떼다가 병이라도 나면 큰 일이지만--- 당신이 잘 먹지도 못하는 판에 그렇게 시달리면 되겠나 싶어서--- 밥 많이 먹고 돈이 좀 들더라도 영양가 있는 것을 사다 먹이면서 차츰 떼도록 하는 게 좋겠어.
  당신이 보리타작을 하나? 어떻게?
(농사) 일 중에서 가장 힘드는 일이고 지저분하게 귀찮은 일인데--- 하기야 보면서 가만히 앉아 있진 못하겠지. 그러나 전번에도 말했지만 무리하진 말어. 일꾼을 사서라도?

  여보! 당신이 시골에 박혀서 고생 많아. 공연히 시골에 있게 했나 봐. 여보! 돈 때문에 너무 맘 썩히지 말어. 집에 급한 사정이 있으면 그런대로 해결 해야지 뭐.현명한 당신에게 알아서 처리하리라고 믿어.

  여보! 농사 일에 바쁘고 고단하겠지만 아이들 잘 돌봐야 해. 여보! 내게는 당신과 아이들이 가장 귀한 거야. 그걸 빼 놓으면 다른 어떤 것도 내게는 의미가 없어.
  나도 당신과 아이들을 위해서도 몸 건강히 그리고 내가 맡은 임무를 성실히 수행하고 임기가 끝나는 날 즐거운 맘으로 당신과 아이들에게로 돌아가야겠다고 몇 번이고 다짐하면서 모든 면에 신중을 기한다고---

  여보! 보고싶어. 그렇지만 참고 견디어야지.
  오늘은 이만 그칠래. 그럼 또 쓸게. 안녕
월남에서 당신의 영으로부터
고국 편지 ('69. 8. )
여보! 당신에게
  29일, 이원에 와 이렇게 펜을 들었습니다. 와 보니 그 전과 같이 어머님과 옥란이는 지내고 있군요. 어설픈 살림 속에서 저녁에는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오래까지 놀다 한 밤이 되서냐 자는군요.
  옛날 고향을 생각하며 고향 소식도 듣고, 또 우리-당신-들이 서울에서 지냈던 이야기 등을 했답니다.

  여보! 이렇게 이원에 오고 보니 집에 당신 편지가 와 있을 텐데 하는 마음에 마음이
(시골) 집에 가 있군요. 어떻게 지내고 있나 궁금히 생각하면서 말입니다. 여긴 라디오, 신문도 없으니 더 어둡군요. 물론 아무 일이 없기를 바라면서 말입니다.

  여보! 우리 미애, 시화도 잘 놀아요. 여기 오니 옥란이와 잘 어우려 동네로 돌아다니며 잘 놉니다. 미애는 계집애 같이 예쁘게 생겼다고 야단들이군요. 다행입니다. 당신 새끼니까 그럴 수 밖에---
  당신이 갈 때 보단 아주 약아졌죠. 지금도 사탕을 까 가지고 깨 주니까 깨 준다고 낑낑거리며 잘 받지 않으려고 하는군요.

  기권이도 오늘 와서 거름 져 낸다고 와 거름을 져 내고 있군요. 다 져 내면
(기권이동생과 함께) 오랫 만에 고향에나 갔다 올까요. 기권이가 있으니 아이들 데리고 가기가 좋을 것 같군요.
  여기 올 때는 이원에만 왔다 잠간 있다 갈려고 했더니--- 왜냐구요? 나중에 당신 오면 다 함께 갈려고 그랬지요. 마음에 내키지도 않고 해서요. 당신이 오면 또 가가기로 하고 잠간 갔다 올까 합니다.

  27일 한 편지가 들어갔는지요. 그리고 집에서 올 때 집엔 다 무사하고요. 큰도련님이 당신 있을 때와 같이 있다가 다른 데로 옮길려고 하는가 봐요. 약수동 영옥이 그 집에도 아무 소식이 없는 것 같고요. 이번엔 될 것 같이 하는데 되겠지요. 걱정은 마세요.
  그래서 나와 같이 기차 타고 오다가 난 이원에서 내리고 도련님은 서울로 갔습니다. 아버님 병환도 이젠 많이 나았고요. 옥이도 여기에 잠간 있다가 빨리 가 밥 한 솥이라도 거들어야지요.

  여보! 항상 걱정이 당신입니다. 지금은 어떻게 지낼까? 하고 말이에요.
  오늘도 무사하기를 빌며 이 밤도 안녕히---
고국에서 당신의 옥이가

  (9월)10일 경에 (시골) 집에 갈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