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남 편지 ( 제 45 신 )
옥이 당신에게
  여보! 오늘은 갑자기 오뚜기(헬리콥터)가 와 부랴부랴 서둘러 탔더니 중대장 1일 퀴논 외출이 지명된 모양이야. 촌놈 서울구경 가는 셈이지. 별로 내키지 않으면서도 처음 외출이라는 데서 기대가 컸다고나 할까. 그러나 돌아와 펜을 든 내게는 즐거웠다기 보다 다시는 나가지 않고 기권하겠다는 맘 뿐이야.

  하기는 오래 만에 한국요리 점심을 먹었다는 것 등 있지만 바다와 육지와
(푸미)반도를 한 눈에 내려다 보며 (이곳 월남) 생활 필수품 중의 첫째 가는 선풍기도 필요 없이 시원한 바다바람에 심호흡하며 해뜨는 아침바다를 보며 하루를 시작하는 우리 (중대)베이스가 최고란 걸 절실히 느꼈지.

  그래서 사람은 여행을 해야 된다고 했나 봐. 우물 안 개구리처럼 있으면 비교의 대상이 없기 때문에
(지금 자기의)진가를 모르는가 봐.
  퀴논 시내는 남국의 무더운 열풍과 불볕, 전기사정 때문인지 집집마다 -물론 관공서나 음식점 등 큰 건물- 돌리는 발전기 소음, 선풍기 소음, 도대체 머리가 아플 지경이야.

  그리고 또 하나는 당신을 아니 난 당신 만을 사랑하고 또 해야 한다는 자신을 재 발견했다 고나 할까. 여보! 엊저녁에는 ‘닥터 지바고’ 영화를 또 한 번 보게 되었지. 당신과 함께 본 적이 있지만 참 좋은 영화야. 그 때는 잘 이해가 안 됐지만--- 물론 스크린에 펼쳐지는 씬도 좋지만 줄거리에 흐르는 진실한 사랑의 아름다움이라 할까, 아무튼 당신과 함께 다시 한 번 더 보고싶은 영화야.

  난 진짜 전쟁을 하기 위해서 월남에 왔나 봐. 불과 4시간 동안의 퀴논 시가지 구경이었지만 너무 길었던 것 같애. 돌아오는 길에 오뚜기가 푸캇산 위를 지날 때 난 오늘 일은 모두 잊어버리고 우리 아이들
(중대원들)이 다치지 않나 조바심을 태우며 또 정글을 뚫고 나가는 나로 돌아 갔던 거야.
  여보! 난 당신이 곁에 있기 때문에 모든 어려운 것도 참고 견딜 수 있고, 용기를 내어 소신껏 부대를 지휘해 나갈 수 있으리라고 자신을 가졌어.

  여보! 힘들지? 모든 것이 말야. 여보! 난 좀 힘들고 어려운 때면 우리 가족 사진을 꺼내지. 그리고 새까만 눈동자 여섯 개를 맘 속에 느끼며 용기를 내곤 한다고---
  오늘이 중대장 나온 지 만 4개월이 되는군. 넉 달을 내 딴은 일념으로 적과 부하를 생각했다고 자부할 수 있어. 앞으로도 그렇게 될거야.

  여보! 시화, 미애 얘기를 듣고싶다. 사람에겐 상상할 수 있는 기능을 주었기에 당신이 써 보내는 고것들의 토막 얘기를 나는 눈으로 보는 것처럼 연속 얘기로 엮을 수 있단 말야.
  여보! 그런데 요사이 당신 편지가 매우 뜨다? 아마도 몰려서 오나 부지? 오늘은 이만 쓸래. 삼복 더위에 당신과 아이들의 건강이 걱정되는군.
  그럼 안녕.
월남에서 당신의 영으로부터
고국 편지 ('69. 9. 2)
미애, 시화 아빠!
  여보! 그간 안녕?
  사진을 찾으면 바로 쓴다 던 편지가 이렇게 늦었군요. 조금씩 미루다 보면 늦어진답니다. 저녁마다 쓰겠다고 생각하다가 아이들 재운다고 누우면 그냥 잠이 들곤 합니다.
  여보! 미애나 시화가 예쁘고 귀엽게 놀 때나 더 예쁘게 보일 땐 당신에게 보여주고 싶은 마음에 더 당신을 생각케 한답니다.

  정말 친정이 좋다고 하지만 지금 내게는 갑갑하고 지루한 하루 하루 같아. 왜냐고? 매일 매일 당신의 소식을 기다리며 하루 하루를 보낼 수 있었는데 여긴 그것 마저 없으니까 궁금해 죽겠군. 부항보단 여긴 일거리도 없고 편하긴 하지만 지금 내게는 좀 고되더라도 매일 기다리는 편지가 더 좋아. 당신이 가까이 있다면 더욱 더 좋겠지만 지금은
(그것은) 바라지도 못 할 일이지만---

  어머니 병환은 치료를 하러 매일 다니시는데 집에서 못 다니고 대전 외가에 가서 다요. 이제 일주일이 되었는데 아직도 한 일주일 안으로 끝날까 몰라요.
 
(이원) 집 때문에 부항 집엔 못 가겠고 빨리 완치되기를 기다려야지. 집엔 가을 누에가 나왓을 텐데. 어제 어머니는 대전 병원에 치료하러 가셨는데 몇일 치료하고 오실 거에요.
  여긴 시화, 미애, 옥란, 종권, 옥이 5식구가 있군요. 지금은 미애, 시화의 그림 그리라는 성화에 또 같이 놀아 줘야지.

  여보! 더위에 말 할 수 없이 힘들지? 조심하세요.
(그것 외에) 내게는 더 바랄 것이 없어. 당신이 무사하다는 소식이면--- 여기 아이들은 당신이 곁에 없으니 더욱 더 건강에 조심한답니다. 예쁘고 건강한 아이들을 (당신에게) 보이는 것이 당신이 귀국할 때 좋은 선물이라 생각하고---

  여보! 아이들 보고싶지? 미애가 많이 컸어요. 아주 잘 걸어 다니니까--- 여름 동안 똥싸기 한 번 안 한 것이 내게는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군.
  낮에 당신을 생각하다 사진을 펴 볼라면 시화, 미애가 앞에 나서 더 볼려는 성화에 찢어질까 봐 가만히(몰래) 볼 수도 없군.

  여보! 보고싶어. 이제 들에는 벼 이삭이 패기가 한창인데 빨리 패서 쌀밥도 먹고 시간이 흘러야지. 지나고 보니 지난 시간은 빠른 것 같은데 남은 시간은 아직도 멀다는 생각이 당신이나 나나 같은가 봐.
  보낸다 던 사진은 어머니가 찾아 왔는데 잘 안 됐군요. 이원에서 찍은 것인데--- 사진보단 시화, 미애가 더 예쁘다고 생각하면 돼요. 옥이도 사진 같이 헐건 하진 않아요. 혹 걱정은 말아요. 당신이 사진 보고 속상핳까 봐 보내고 싶지 않은데 보낸다고 했으니--- 옥인 밥 잘 먹고 튼튼하니 정말 걱정하지 말아요. 사진이 잘 안돼서 그러니까.

 
(왼쪽) 옆에 글씨는 시화가 그린 것인가 봐. 아빠 써 보라니까 그려 놓았어요
  여보! 또 쓸게. 더위와 위험한 전쟁터에서 조심조심.
  여보! 안녕
고국에서 당신의 옥이가 9. 2
시화 낙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