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남 편지 ( 제 47 신 )
옥이 당신에게
  불과 사흘 전에 작전 나간다고 46신을 띄웠는데 아득한 옛날만 같은 느낌이군. 이유야 많지. 당신이 보고싶기 때문이기도 하고, (이번) 작전이 그렇게 만들기도 했겠지. 무사히 돌아 왔길래 이렇게 펜을 든 것 아냐?
  그리고 지금 (편지를) 쓰고 있는 이 만년필이 무슨 인연이기에 이렇게 내 손에 쥐어져 당신에게 편지 쓰는데 사용되고 있는지 몰라. 왜냐구? 이 만년필이 3일 전만 해도 어느 공산주의 미치광이 손에 들려 있었을 텐데 말이야. 그 놈이 천당엘 갔기 때문에 내 손에 온 거지.
  여보! 전투라는 건 참 힘드는 거야. 적과 나, 죽음과 삶 양극을 택일하는 것이 전투이니까. 여보! 나도 내 부하 하나(김후기 일병)를 잃고 돌아왔어. 남들은 전투에서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하며 오히려 많은 사람들로부터 축하의 말들을 많이 들었는데--- 내 지금 심경은 축하를 받아야 될지 욕을 먹어야 될지 모르겠어.
  내 자신은 사흘 사이에 얼굴이 검다 못해 빨갛게 익었고, 입술이 부르트다 못해 헤어졌지만 무사히 이렇게 돌아왔잖아? 당신의 욕심 때문이겠지? 어떤 성인은 백마리 양보다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이 더 중하다고 했는데 돌아오지 못한 그 녀석을 생각하면 그런 생각이 자꾸 드는구먼. 고쳐 생각해 보면 지금 무사히 데리고 돌아 온 병아리(병사)들도 만약 돌아오지 못했다면 곧 잃어버린 양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드는군. 이런 쎈치한 생각들은 떨쳐버릴까---
  남들이 (내게) 축하한다는 내용은 (이번 작전에서) 전과가 많다는 거지. 난 전과 즉 전투 결과보다 전투의 경과가 더 중요한 거라고 생각해. 우리 중대의 병아리들은 이제 병아리가 아냐. 곧 사자요 곧 맹호들이라는 걸 알았으니까. 남들은 이번 사흘 동안의 작전 결과가 적 사살 17명, 포로 1명, 적 무기 노획 11정, 적 무전기 1대란 근래 없던 성과라고 찬사를 보내 주지만 (나는) 그것보다 내가 데리고 이끌고 나가는 부하가 허약한 노루떼가 아니라 사자의 무리요 곧 맹호의 무리라는 것을 실감했을 때 (내가 중대장)부임이래 땀 흘린 보람을 느끼는군.
  여보! 이렇게 당신의 남편은, 시화, 미애의 아빠는 보람을 느껴가면서 전장의 주인공으로 등장하고 있다는 걸 당신도 자랑스럽게 생각하겠지? 나 역시 장교로서, 지휘관으로서의 참 된 보람을 지금 와서야 느끼는 것 같애.
  지휘관이 이런 보람을 느낄 때는 부하의 얼마 만한 피와 땀이 따른다는 것을 다른 제3자는 모르는 거야. 진흙 바닥에서 ‘이전투구’의 형상이 벌어지고 적과 1m도 안 되는 간격을 두고 서로 총을 겨누는 아슬아슬한 순간이 있다는 것을 남들은 상식 정도로 알는지 모르지만 피부로 느끼지는 못하는 거야.
  여보! 내 얘기만 늘어 놓았군. 당신도, 시화도, 미애도 잘 있고, 집안도 무사하다니 다행이지만 전쟁에 나간 남편의 후렴을 없이하기 위한 말은 아니겠지?
  여보! 낸들 왜 당신이 보고싶지 않겠나? 내 새끼들을 품에 꼭 껴안고 싶지 않겠나? 그러나 지금은 내가 데리고 있는 부하들의 튼튼한 보호자가 되고, 따뜻한 어머니가 돼야지. 이것만이 임무가 끝난 후에 더 착실한 당신의 남편이 될 수 있고, 시화, 미애의 더 좋은 아빠가 될 수 있는 길이라는 걸 나는 배웠어.
  여보! 그래도 당신과 아이들이 보고싶어. 한 삼일 꼬박 (밤을)새웠더니 좀 피로하군. 나도 자야지.
  여보! 안녕
월남에서 격전을 치룬 당신의 영으로부터
전진 제21호 작전(’69.8.23-26)
전진 제21호 작전 출전전 중대원 일동(1969년 8월 22일, 비호연대 본부에서)
전진 제21호 작전에 참가한 분대장 이상 간부들(1969년 8월 26일)
전진 제21호 작전에 참가한 중대장, 소대장, 소대선임하사관(1969년 8월 26일)
뒷줄 가운데가 중대장 나, 오른쪽으로 1소대장(김일랑? 중위), 2소대장(이? 중위), 왼쪽으로 포병FO(박함수? 중위), 3소대장(강? 중위), 앞줄 왼쪽으로부터 1, 2, 3소대 선임하사관



고국 편지 ('69. 9. 8)
여보! 당신에게
  여보! 그간 안녕?
  오늘 아침은 쌀쌀한 바람이 불고, 하늘은 맑고 푸르기만 하고, (햇빛이) 따뜻한데 앉으니 앉을 만 해.
  여보! 지금 미애, 시화는 아빠 사진을 바라보며 놀고 있어요. 옥이가 (당신이)보고싶어 사진을 볼려면 아이들 성화에 다 뺏기는군요. 여보! 아이들도 아빠가 보고싶은 게지. 그럴 테지.
  여보! 펜을 들면 보고싶단 말이 제일 쓰고싶은 말이야. 한 장에도 빼놓게 되지가 않아.
  지금 편지 쓰는데 옆에서 시화가 (당신) 사진을 보면서
  “배 타고, 비행기 타고, 미애하고 엄마하고 시화하고 월남 아빠한테 가면 좋은데” 하며 (당신이) 무척 보고싶은가 봐. 이제 말하는 것도 큰 아이 같고--- 아이들이 잘 때 두 놈들을 누여놓고 보면 대견스럽기도 하고, 귀엽고 예뻐. 내 새끼이니까 그럴 테지---
  어젠 어머니 병원에 다니시는데 시화는 집에 떼어 놓고 미애와 갔었어요. 치료 결과가 좋아 곧 끝나겠다고 하는데 아직 어머님은 대전 외가에서 다니시면서 집에 안 오셨답니다. 빨리 났겠다니 반갑습니다.
  아이들 잘 놀아요. 옥이도 편안히 있고. 이 곳은 할 일도 없고 너무 심심하고 갑갑해. 방안에 가만히 있자니-
  여보 한 목에 4장의 (당신) 편지를 본 후 편지를 못 보아 궁금하고 답답하군. 집에 가야 편지를 볼 텐데 아직 일주일이 있어야 (부항 시골) 집엔 가겠는데--- 아버지 제사가 음력 8월 2일인데 왔으니 몇일 안 남았는데 지나고 가야 할 것 같군요. 집엔 누에 때문에 무척 바쁠 텐데--
  시화는 어제 외할머니에게 추석 치레로 한가지 얻어 입고 좋아서 벗을 줄을 모르는 군. 더운데도 긴 소매를 입고 땀을 흘리며 자랑하고 다니는 것이 웃음이 나와 죽겠군--- 떼어 놓고 대전 갔다 왔더니 올 때쯤 옥란이와 멀리 마중을 나와 나를 보고 쫓아 오는 것이 귀여워 높이 안아 줬지요. 뽀뽀도 해 주고---
  여보! 당신이 옥이 편지로 용기를 얻듯이 옥이 역시 마찬가지에요. 아마 꼭 같을 거에요.
  9월 14일은 (부항 시골) 집에 가야겠군요. 제사 나는 날이니까. 이제 가서 열심히 가을 일 돌봐야지. 더위 속에 싸우는 당신을 생각하면서--- 여보! 조심해요.
  여보! 어제 일요일의 대전 거리는 당신을 더 생각하게 했어. 가족끼리 쇼핑이다, 어딘지 한가히 다니는 가족을 보고 우리도 아빠가 오면 즐겁게 지낼 텐데 하며 생각도 했지만---
  여보! 어쨌든 빨리 와. 가을이 오고, 겨울이 와도 춥지 않을 것 같아. 계절이 빨리 오면 봄도 빨리 오겠지. 당신도 함께---
  여보---! 불러보고 싶다. 그러면 오늘은 이만 끝일께요.
고국에서 당신이 사랑해주는 옥이가 9.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