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남 편지 ( 제 51 신 )
옥이 당신에게
  제50신을 오늘 부쳤는데 또 써야겠군. 마침 전령이 휴가를 얻어 가게 되어 인편에 부쳐 또 (국내) 우편으로 가게 되겠군. 앞의 편지보다 빠를 거야.
  오늘이 9월 6일이니 당신이 이원에 간 지도 보름이 지났는데 혹시 집으로 갔는지 걱정도 되는군. 아니 그건 이 편지가 당신 손에 못 들어 갈까 봐 해서 좁은 생각이었고, 어머님 안질 수술이 잘 진행되어 쉽게 됐다면 지금쯤이라도 당신이 시골루 돌아 갈지도 모르잖아. 오히려 그렇게 되갈 바라지만---
  여보! 오늘 저녁에는 영화를 두 개나 연거푸 감상했군. 한 편은 ‘Dark of the Sun’이란 외국 영화는 전우애를 주제로 했나 봐. 그리고 또 한 편 방화 ‘소라의 꿈’은 여성의 희생정신을 주제로 했더군.
  시시한 영화 얘기는 집어치우고--- 여기 안쾅 휴양소의 밤은 전쟁하는 나라 같지 않아. 철썩이는 파도소리만 밤의 고요를 흔들어 놓는군. 이따금 밤고기를 잡으러 나갔다가 바람이 심해서 돌아오는 고기잡이 통통배가 지나가는 소리, 어디 선가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먼 곳에서 마치 횃불놀이나 하는 듯 조명탄을 올리는 품이 전쟁터의 여운을 남기는 것 같아.
  이렇게 조용할 때면 나도 모르게 이미 내 손에는 사진 몇 장이 들려 있게 되는군. 이 얼굴, 저 얼굴 번갈아 보다가 눈을 감으며 망막에 새겨진 그 영상을 찾으려고 생각은 이미 당신과 시화, 미애 곁으로 달려 가는군. 여보! 보고싶어. 아니 꼭 껴 안고 당신의 따스한 체온을 느끼며 당신과 함께 잠들고 싶어. 참고 기다려야지. 멀지 않을거야.
  여보! 시화가 귓물이 났었다고? 너무 물에 가서 놀았나 부지? 빨리 낫우어 줘야지.병원엘 가던지 약을 사서 넣어 주던지---
  여보! 요즈음은 별다른 작전 계획이 없이 이렇게 한가하게 휴양이나 하고 있으니까 더 좀이 쑤시고, 날자가 안 가는군. 그렇지만 다음에 언젠가 있을 전투를 대비해서는 착실히 힘을 길러야지. 땀은 곧 피를 예방할 수 있으니까.
  그런데 월남의 분위기는 시시각각으로 변하는군. 물론 전황은 변함없이 여전한데 내무반에 흐르는 분위기는 자주 변동되는군. 국가재건에 이바지 하라고 송금 80% 이상을 하라고 어제까지만 해도 성화였는데 또 국산품 애용으로 국가경제에 기여하라고 외국산 뭐는 못 가져 간다, 뭐다 하는 것들이 (내무반 분위기를) 그렇게 만드는군
  또 뭐가 잘 못 돼 가는지 송금은 60%만 해라. PX 물품은 안 나온다. 도대체 (150명의 부하를 거느린) 중대장이 불평을 해야 될 판이니 병사들이야 말 해 뭣 해. 누구나 월남에 오면서 무슨 큰 돈을 벌겠다고 온 사람이 있겠나? 하기는 저 뒷 구석에서는 그런 친구가 많다지만---
  그래도 저마다 평생을 두고 외국 전쟁에 참전했던 대가로 TV 한 대 가지고 살아 보겠다는데 그것도 안 된다니--- 얼마나 국가경제를 발전시키려고 그러는 건지는 모르지만--- 지금은 TV 정도가 아니라 숫제 전기용품 전부라나--- 몰라 난 별 생각 없어. 그저 말단 지휘관으로서 전쟁터에서 맘 껏 (부대를) 지휘 해 보고, 나의 능력 한계를 찾아 보고, 가는 거 그거야.
  그렇지만 시화, 미애 장난감 선물은 잊지 않을게. 그것도 한 번 기회가 있을 사이공(전투관광)에나 가야 살 수 있나 봐.
  송금이 60%로 한정 지어져서 아마 9월부터는 덜 송금하는 병사의 이름을 빌려서 당신에게도 송금될 지도 몰라. 세상 참----
  자- 그럼 이만 불평 늘어 놓고 그만 자야지. 자- 안녕
월남에서 당신의 영 씀
고국 편지 ('69. 9. 23)
보고싶은 당신
  일주일이 넘도록 편지가 없어 궁금해 죽겠군.
  지금은 새벽입니다. 저녁엔 맥을 못 추고--- 여보! 보름 전의 소식을 들을려고 그렇게 편지를 기다리는데 어디에 틀어 박혀 있다 오는지 모르겠군. 남의 속을 태우게--- 그러나 옛날 통신기관이 없었던 때를 생각하면 그것도 고맙게 생각해야 하겠지만--- 그래도 우주시대라고 하는데--- 여보! 오늘은 (당신의 편지가) 오려니 하고 기다려야지.
  여보! 당신의 편지를 받을 옥이를 생각 좀 해 봐. 바쁘게 부엌에서 불을 때다 부주깽이 들고 편지를 받아 읽을--- 얼마나 반가웁겠는가. 내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사람이니까 그렇기도 하겠지만---
  여보! 혹 얼마 안 남았다고 마음 놓지 말아요. 항상 조심--- 가서 3달, 오기 전 3달이 제일 중요하다는 말을 들었는데---물론 당신이야 잘 하리라 믿지만---
  여보! 여긴 다 편해요. 이제 콩 잎을 다 따고, 바쁜 일 철로 접어들지만 오곡을 거둬들이고, 이제 농촌은 농사보람을 찾으며 거둬들여야 할 때인가 봐요.
  추석도 3일 남앗군. (추석이) 큰 사람에겐 귀찮은 명절이지만 아이들 한텐 즐거운 명절이 되겠지--- 우리 시화는 외할머니 한테서 추석치레 하나 얻어 입고--- 미애도 한 가지 얻었지.
  어제는 가을 누에 (고치를) 따서 팔아 왔는데 7,836원 했다나--- 어디로 가는지 모르게 쓸 데가 많겠지.
  여보! 일년이란 세월이 지나고 보면 짧았던 것 같은데 기다리기란 멀군. 달력을 바라보면 이 해가 3장이 남았구나 생각하면 반가운데 기다릴려니 먼 것 같아.
  여보! 4월까지 있을려고 하지말고 빨리 와요. 부항 우체국에 당신 친구분 인기라는 사람, (그) 동생도 맹호 사령부 군악대에 있는데 당신과 같은 날, (‘69년) 2월 1일에 갔다고 하는데 (‘70년) 2월 2일 날 나온다고 하는데--- 여보! 당신도 그 때가 되면 꼭 와요.
  여보! 보고싶어. 옆엔 시화, 미애가 세상 모르고 자고 있군. 당신도 지금쯤 곤히 자겠지. 고단하다기보다 더 힘든 임무를 마치고---
  여보! 조심해요. 당신이 돌아오는 날을 생각하며 이런 생각, 저런 생각 꽃을 피웁니다. 밖엔 날이 훤히 밝아 옵니다.
  여보! 그럼 또 쓸게요. 보고싶지만 참아야지. 안녕---
당신의 옥이가 9.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