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남 편지 ( 제 54 신 )
옥이 당신에게
  (제 53신은 번호가 누락된 듯)
  전쟁을 하는 데는 예측과 판단이라는 게 필요한데 당신에게 편지 쓰는 데도 필요 하구먼--- 지금쯤 당신이 휴가(?)로부터 귀대했으리라고 믿고 봉투 주소를 썼는데 맞을런지?
  당신이 그렇게 기다린다는 이 잘 난 글을 하루라도 빨리 당신 손에 들어가게 하기 위해서---
  여보! 당신과 아이들 잘 있고, 어머님 안질도 차츰 낫다니 참 다행이야. 당신이 없는 동안 부모님들 다 부고하시겠지?
  편지라는 게 한정 한 장씩 제 시간에 받는 게 재미지 뭐. 여기 오는 신문들처럼 한꺼번에 한 뭉치 받으면 뭘하나. (편지를)쓴 자신도 싱거워서 다시 읽어보지 않고 봉하는데 ---
  여기는 우기가 시작 될려고 날씨가 용을 쓰는군. 아직 우기를 당해 보지는 않았지만 들은 말에 의하면 비가 오는 게 아니라 바겟스로 물을 들어 붓는 거래. 그렇지만 시원한 맛에 살만 하다누만. 그러고 보면 날씨로 봐서 힘든 월남생활은 다 지낸 셈이지?
  오늘이 9월 중간 날이니 추석도 꼭 열흘 남았군. 추석이면 가을이란 말 아냐? 거기도 참 좋은 시절이 왔네. 더구나 시화, 미애 한테는 과일 속에서 아빠 생각도 잊겠는데? 이 글 받을 때 쯤은 꼭 추석이겠구먼. 추석이란 말이 나오니 어리던 시절로 돌아가누만.
  추석쯤에 알암 주어 모으겠다고 망이란 뜨고--- 추석과 운동회를 위해서 고목나무 감을 따서 (침담그기 위해) 동이에 담던---
  여보! 올해는 호두와 감이 많이 열렸나? 또 꽂감을 깎아야지. 여보! 가을도 농촌에선 초여름 못지 않게 힘드는 때인데--- 올 여름 홍역을 치룬 당신이 또 해 낼 수 있을는지? 그래도 추수라는 (한 해의) 푸짐한 성과를 안아 들이는 일이라 고되면서도 신이 난다고--- 그것도 농사가 남 못 지 않게 잘 되었어야 그렇지. 일전에 정희 편지에 의하면 지금까지 봐서는 잘 되겠다는데. 마지막까지 봐야지.
  여보! 당신이 꿈에 날 봤다고? 밤낮 걱정해 주고 지켜 봐 주니까 그런 모양이지? 당신이 그렇게 염려 해 주는데 내게 뭐 이상이 있겠나? 정글을 뚫고, 뙤약볕에 땀을 샤워 하듯 하곤 하지만 언제나 중대원의 선두에 설 수 있는 체력이 내는 아주 보배야. 한창 혈기 왕성한 젊은 맹호들도 내가 산 타는 걸 보곤 혀를 내 두르지. 하기야 나도 젊었으니까 자신이 있고 또 지휘관이라는 책임감 때문에 그럴거야.
  강한 지휘자 밑에 약졸이 있을 수 없지. 모두들 잘 하고 또 애쓰고 있으니까. 어떻게 생각하면 지금 내가 중대원을 이끌고 나갈 수 있는 이 체력이 곧 나의 어린 시절 벽촌 산골에서 길러졌는지도 몰라.
  여보! 내 자랑만 늘어 놨지? 여보! 당신은 자식 자랑만 하더라. 당신 자랑 좀 하구려. 여보! 더 이뻐지고 또 뭐, 뭐 라고. 당신 자랑 좀 써 보내란 말야.
  월남에서야 항상 우리가 주인이 되어 주도권을 쥐고 있으니까--- 적어도 맹호가 있는 곳은 말야. 늘 전쟁터 치고는 조용해. 월맹에 Mr. Ho(호지명을 말 함)가 죽었건 말건 관계 할 바 아니야. 우리의 힘이 있으니까. 상대의 눈치를 볼 필요 있나/ 우리는 군인이기에 적이 있으면 섬멸하는 거야.
  모레부터 조그마한 작전이 하나 있겠는데 그렇다고 적을 얕보거나 그렇진 않아. 만전의 대책을 강구해서 최소의 희생으로 최대의 성과를 거둘 수 있도록 머리를 쥐어 짜야지. 또한 당신이 그 새까만 눈동자로 또릿 또릿 지켜보고 있는데 무슨 일이 있을라고. 적어도 내가 이끄는 그들이 푸짐한 성과를 안고 돌아 올 수 있을 꺼야. 기분이 그래. 물론 진흙탕에 개처럼 되겠지.-泥田鬪狗(이전투구)- 그래도 좋아. 그것이 전장에서의 낭만이랄까. 말로만 듣고는 몰라---
  여보! 거울을 들여 다 보면 그리고 중대원들을 보면 얼굴이 까맣게 탔는지 몰라. 새로 온 친구를 보고서야 이 얼굴도 귀국한 후에 (다시) 희어질까 걱정도 되누만. 또 당신이 싫어하지나 않을까도--- 그렇지만 건강해. 팔 뚝에 유난히 돋는 핏줄도 여전하고---
  시화가 여름이라 시원하게 머리를 짧게 깎았겠구먼. 가을이 되면 기를래나? 미애는 머리를 파월 할 때 사진처럼 양쪽으로 잡아 매는 게 더 이쁜 것 같애. 머리통이 아주 동글동글 한 게--- 돌 사진(주)도 잘 됐어. 뭐가 겁이 났나 왜 입은 벌렸었지? 여름에는 초미니(치마)를 입혔나? 그러고 지금도 할아버지를 그렇게 잘 따르나? 시화는 다리통이 축구 쎈타포드깜이야. 미애하고 자주 싸우지 않나? 물론 피해자는 미애 편이겠지? 여보! ?표(물음표)가 많이 들어가지 않게 많이 좀 써 보내라고. 이거 어디 토막 줏어 모아 연속극이 되나?
  엊저녁은 소설 한 권 다 보느라고 너무 늦게 자서 오늘은 일찍 자야지. 또 당신처럼 잠을 자야 꿈을 꾸고 당신을 볼 수 있지 않을까?
  여보! 가을철 환절기에 몸조심--- 그럼 안녕
월남에서 당신의 영 씀
고국 편지 ('69. 9. 30)
여보! 당신에게
  그간 어떻게?
  여보! 작전을 나갔었다고 어제 54신을 받았어요. 집에 오곤 ?이원에서 와- 처음 편지를 받았군. 15일 동안을 궁금 속에 기다렸더니 추석 이튿날 이원에서 편지를 부쳐왔더군. 이원에 온 것을 그렇게 애타게 기다렸나 봐.
  여보! 지금은 밤 12시가 넘었어. 잠꾸러기 내가 이렇게 오래 있으니까 웬 일인가 싶겠지. 왜 아니겠어요. 초저녁에 초벌 잠을 자고 깼으니까 그렇지.
  지금은 대구 남실이네가 와 있어요. 남서방은 오늘 갔고, 부모님도 안녕하시고, 옥이도 여전히 잘 있고, 미애, 시화도 잘 놀지요.
  미애, 시화는 요사이 당신 말같이 감, 호두, 밤, 먹을 것이 많군. 감이야 집에 있으니 홍시 떨어지면 주워 먹지. 미애도 아주 잘 먹지만 얼마나 깔끔한 척을 하는지 남이 먹이는 것은 안 먹고 제 손으로 먹고 나서 제 손에 묻은 것을 꼭 닦아 줘야만 해. 계집애라 그런지 털털한 것 보단 좋아요. 시화는 어린양은 많고 할머니 할아버지 사랑 속에 잘 놀아요.
  요사이 추석을 지나고 비가 내려 너무 많이 오는 것 같아요. 벼도 풍년이라고 했는데 좀 죽었는가 봐요. 우리만이 아니라 다른 모두가--- 그래도 우린 잘 지은 셈---
  여보! 내 자랑 좀 하라고? 뭐 (자랑할) 것이 있어야지. 밥 잘 먹고, 건강하다고 자랑이나 할까. 아이들 잘 키우고--- 그것이면 됐지요?
  여보! 오늘이 9월 30일, 당신이 간지도 8개월이 됐군. (날자가) 빨리 가야지 달력이 한 장 넘어 가고, 이 해 달력이 빨리 떨어져야지--- 정말 기다림이란 왜 이렇게 길게만 느껴질까.
  여보! 보고싶어. 명절이라고 내와가 아이들과 (함께) 귀향하여 지내는 것을 보니 더 보고싶다. 참아야지. 몇 달 후 당신의 검고 튼튼한 그 팔에 꼭 안길 날까지--- 여보! 꼭 안아줘. 여보---!
  양 옆엔 우리 미애, 시화가 조용히 잠자고 있군.
  오늘은 뜻하지 않게 중앙경리단에서 추가 봉급이라고 7,420원이 왔군. 먼저 인상액 붙일 때 당신 계산과 틀리더니 그것인가 봐.
  여보! 이제 자야겠군. 1시가 넘었나 봐.
  그럼, 여보! 안녕--- 이 밤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