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남 편지 ( 제 55 신 )
  옥이 당신에게
우기가 시작되면서 맑게 개인 날이 없구먼. 덥지 않아서 좋긴 한데--- 구름 속으로 지는 달이 반쪽은 됐으니 아마 추석이 일주일쯤 남았나 봐. 비가 와서 메말랐던 논들에 물이 괴니 개구리들이 제 세상 만난 듯 울어재끼는구먼. 꼭 (고국의) 초여름 같이.
  여보! 그 동안 잘 있었어? 또 내가 (당신 곁으로) 갔던 꿈은 안 꾸었어? 시화, 미애두 잘 놀고? 그리구 부모님들도 무사하실테지?
  당신이 지금쯤은 귀대(?) 했으리라고 생각했는데 (이원) 어머님의 눈이 아주 악화되지만 않는다면 말야. 추석이 가까워 오니 말야.
  오늘은 벼르고 벼르던 끝에 사단사령부에 갔었지. 촌사람 서울구경 하는 기분으로--- 문대위(문영대), 박대위(박용원)는 아주 잘 있어. 문대위는 여전히 털보로 월남에 온 것 같지 않아. 박대위는 얼굴이 더 흰 것만 같애. 내가 너무 검으니까 비교가 돼서 그런 모양이지. 얼굴들을 보니까 근심 걱정 없이 잘 지내는 것 같애.
  참 8개월 만의 상봉이니 얼마나 반가웠는지 몰라. 뭐니 뭐니 해도 동기생이 최고야. 진심으로 건강도 걱정 해 주고, 고생하는 것도 걱정 해 주니 말야. 시간이 없어 오래 있진 못했지. 그들과 같이 공병중대장으로 있는 서기호대위를 방문했어. 그러니까 원주에서 결혼식 때 갔던--- 여보! 기억 나나? 그 친구는 아주 배가 나온다니까. 넷이 점심 같이 하면서 세상 물정 돌아가는 것 등을 얘기 했지.
  여보! 나는 돌아오는 차 안에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들더군. 그들 말 같이 매도 일찍 맞는게 낫다고. 난 이제 뒤늦게 이게 뭐야. 새까맣게 돼 가지고 마치 어린애들 병정놀이 하는데 대장처럼---
  아니야. 그들보다는 내가 더 보람 있는 월남의 일년을 보내는 거야. 그들도 귀국하면 월남 얘기 할 꺼야.뭐 꽁가이(처녀)가 어떻고, V.C가 어떻고--- 하지만 내 앞에서는 말문이 닫기겠지. 몸과 몸으로 적과 붙어 싸웠으니까. 월남서의 생활이 목표가 아니라 남은 생활이 목표가 될 게 아냐? 지금 (내가) 경험하는 것이 앞으로의 내 생활에 푸라스가 되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되잖아/
  여보! 이런 것들이 못난 이의 푸념일까? 어쨌던 다른 것은 몰라도 임무기 끝나고 귀국하는 날에는 당신을 좀 더 아끼고 사랑하게 될 것 같애. 그리고 시화하고 미애에게도 더 착실한 아빠가 되고---
  여보! 이제 가을 기운이 완연하겠지? 가을이 가고, 겨울이 가고, 봄이 되는 날엔 늦더라도 만날 것 아야. 모르지 빠르면 겨울에라도--- 여보! 난 지금부터 (당신을) 만나는 장면을 그려보곤 한다고--- 시화, 미애에게 뽀보 해 주고 그리고 당신에게도---
  요사이 책들이 많이 할당되어 열심히 독서하는 편이야. 벌써 한 4일 됐는데 소설 세 권을 덮었으니까--- 좋은 책들도 많아. 어디다가 쳐박혀 뒀다가 이제서야 중대에 내 줬는지 몰라. (그 동안) 무료하게 지낸 시간들을 생각하면 아까운 생각이 들어---
  문대위는 11월 초순에 가니 이제 한 달 남짓 남았군. 그 누구는 좋겠지? 박대위는 나보다 늦게 왔으니까 내가 중대장 1년을 채우고 가도록 연장된다면 같이 가게 될 꺼야. 정기(박대위 아들)네 하고 같이 부산에서 만나게 될지도 몰라. 서로가 참 반갑겠지?
  9월분 수당은 100$ 붙였어. 미리 귀국 준비(?)를 서둘러야 된다고 들 충고를 하는데 어떡하지? 되는대로 보는 수 밖에--- 10월 수당은 못 부칠지도 몰라. 안 부쳐도 되겠나? 당신 현재 비상금이 얼마쯤 되지? 한 달쯤 그냥 넣을 수 있나?
  또 돈 얘기군. 여보! 잘 자. 나도 잘래. 그럼 안녕.
월남에서 미애 아빠가
고국 편지 ('69. 10. 7)
시화 아빠
  콩 타작도 하고 얼마 있으면 나락(벼)도 베게 되니 가을이 왔나 봐요. 서리도 내렸고, 아침 저녁이 제법 싸늘하고---
  여보! 그곳은 우기로 비가 많다고? 건강에 조심해야지요.
  어젠 당신의 55신이 도착했군. 퀴논의 (맹호) 사령부에 동기생들을 만나 반가웠다고요. 문대위(문영대)님은 좋겠구먼요. 한 달 밖에 안 남았으니 박대위(박용원)님은 잘 있다고---
  옥이도 이제 당신이 귀국 준비를 서서히 해야 한다니 반갑지만 그래도 아직 먼 것만 같아서--- 자꾸만 손가락을 꼽아보지.
  지금 옆에서 두 새끼들이 펜을 뺏고싶어 야단이군. 날 닮아서 그런지 새벽 잠이 없어 저녁엔 맥을 못 추고--- 옥이도 이렇게 새벽에 펜을 들었어요.
  여보! 미애가 제법 말을 하기 시작해. “비껴”, “안 먹어”, 산토끼 노래한다고 음을 따는 것을 보면 웃음이 나와 죽겠군. “젖 좀” 하며 달려들고--- 이제 젖도 떼어야겠어요. 어제는 약을 발랐다고 먹으라니까 안 먹는데 견뎌낼지 몰라. 약을 아주 싫어하니까.
  시화는 밤 따다 놓은 송어리(밤송이) 까 가지고 먹기가 일수고, 미애를 못 견디게 짓굳게 장난을 치면 미애는 죽겠다고 아우성--- 어쨌던 둘 다 잘 놀아요.
  지금 시화는 미에 등어리에 엎어져 짓누르고 있으니까 (미애는) 싫다고 야단이군. 편지 쓰는데 들여다 보며 아빠한테 뭐라고 쓰는지 감시하는 건지---
  여보! 당신이 부산에서 (우리들을) 만날 날을 그려 보듯이 옥인 더 목이 길게 기다린답니다. 당신 품에 꼭 안길 날을---
  여보! 빨리 날자가 흘러야지--- 여보! 당신이 건강하다고 늘 써 오지만 정말 그런지 걱정이 가. 여보! 까맣게 탄 것은 걱정하지 마. 건강하면 그것은 문제가 되겠어요.
  여보! 어쨌던 몸조심하시고 빨리 돌아 올 날을 기다립니다. 여보---! 자꾸만 부르고 싶다.
  인상 봉급 차액이 있었는지 7,800원이 중앙경리단으로부터 붙여왔군. 지금 가지고 있는 돈이 적금 2달치는 넣겠어요. 당신이 2월초에 귀국한대도 1월 달은 한국 봉급으로 조금만 보태면 넣을 수 있지 않겠어요. 오늘은 돈 온 것 찾으러 가야지. 부항우체국으로---
  그리고 여기 부모님은 안녕하셔요. (대구) 큰 아가씨도 어제 깄고, 서울 큰 도련님도 잘 있다고 편지왔고---
  여보 이만 날도 밝았고, 그만 일어나야겠군요
  그럼 안녕.
고국에서 당신의 옥이가. 10.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