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남 편지 ( 제 57 신 )
미애 엄마에게
  (제57신 편지 번호가 중복 되었음)
  여보! 미애가 똥싸기를 앓았다고? 그것 참. 반 쪽이 되지 않았나? 어쩌다 그렇게 됐나? 낫고 있다니 안심이지만. 잘 돌 봐야겠어. 그리고 완전히 낫는 대로 잘 먹이고 해서 완전히 회복해야지.
  여보! 힘들지? 아이들 데리고---그것도 아무렇게나 노는 개구장이들이니 말야. 한 사람 자기 몸도 돌보기 힘드는데 여름철을 지내느라고 고생 많았지? 부모님들도 무사하시고, 김천 학생들(석희, 무영)은 이미 나갔겠군.
  난 잘 있어. 몇 줄 안 되는 당신 편지가 오니 어제 비하면 맘이 한결 유쾌 해진 것 같애. 미애가 아팠다니 자꾸 가엾은 생각이 들어. 당신은 왜 편지를 그렇게 간단하게 쓰지? 쓸 것이 없으면 아이들 노는 모양, 재롱부리는 모양을 적으면 되잖아? 매일 한 통의 녹음테푸가 와도 시원치 않을 판인데.
  전쟁터에서는 승리가 제일이지. 잘나고 못 나고는 곧 전투의 성과가 결정하는 거야. 그렇지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전투의 성과가 좋다는 것은 곧 아군의 피를 절약할 수 있어. 사기 백배한 군대는 피해를 피할 수 있으니까---
  지난 그 작전은 우리 중대가 상승할 수 있는 기반을 튼튼히 한 거야. 그리고 앞으로 멀지 않아 더 큰 것(포상)이 있을 것을 예상하고 열심히 땀을 흘리고 있어.
  훈장 얘기가 나왔으니 말이지 이미 월남 동성훈장은 탔고, 화랑무공훈장을 상신 중인데 재결 통보를 아직 못 받았어. 우리 중대는 작년에 훈장을 보고 내가 부임 할 때까지 한 사람도 없던 것이 부임 후 이미 수령자가 5명, 상신 중에 있는 자가 13명이야. 병사들은 화랑훈장 이상 타면 본국에 휴가가 20일---
  그러나 훈장이 전부가 아니란 것도 잘 알고 있어. 전투하는 사람에게는 지고의 명예랄 수 있지. (그러나) 내게는 부차적인 것이야. 월남에 오면서 주된 목적이 전투경험을 얻고, 중대장 경력을 마치는 거 아냐? 사람에 따라서는 돈을 벌겠다는 자도 있겠지만 그건 중대장에겐 당치도 않는 말---
  내년 4월까지 연장 근무 해서라도 중대장 경력을 마치겠다는 생각은 변동 없어. 그게 곧 내가 월남에 온 주 목적이니까. 다른 부차적인 것은 다 못 이루더라도 그것만 성공하면 난 파월한 목적을 달성하는 거야.
  ‘전쟁은 곧 지고의 예술’이라고 얘기 한 사람이 있는데 예술가가 작품에 전 생애를 바치는 거와 같이 군인에게는 전투에 승리한다는 것이 곧 (예술가가) 예술품을 창조하는 거와 같다고 해서 그런 말을 한 것 같애.
  여보! 미애가 많이 앓았나? 정말 당신도, 시화도, 미애도 보고싶다. 고 이쁜 게 앓아서 얼굴이 쪽 빠졌으면 어떡하나. 이젠 날씨가 서늘 해 졌을 테니 좀 낫겠지. 겨울에는 또 감기에 조심하도록 해야지.
  여긴 우기를 대비해서 막사도 완전히 정비했고, 걱정 없어. 월곡(고향 시골집 이웃마을) 사는 병사가 난 지난 번에 귀국 했는 줄 알았는데 아직 안 했구먼. 대대 본부중대에 있어. 자주 만날 수 있지만 뭐 별로 도와 줄 게 있어야지. 아마 다음 제대에 귀국 할런지도 모르는데, 10월 중순께 집에 도착할 꺼야. 이수식이 동생 이수암이라고 하면 어머니는 알 꺼야. 가게 되면 과자 좀 보내지. 시화, 미애에게 아무것도 못 사 줄 텐데---
  여보! 송금 문제에 대해서 몇 가지 알아야겠어. 즉 귀국 준비래야 별 것 없지만 시화, 미애에게 약속한 선물이라도 준비해야 되잖아? 그것도 기회가 적어서 미리 준비를 해야 한다누만. 그러자면 송금이 곤란한데 당신 지참금이 얼마나 되는지 알아야 몇 개월이나 안 부쳐도 되는지 알지. 10월 분은 못 부칠 거야. 9월 분은 100$ 부쳤으니까 그렇게 알고---
  자- 그럼 이만 쓸래. 곧 또 써야 될 테니까. 안녕
월남에서 미애 아빠가
고국 편지 ('69. 10. 18)
여보! 당신에게
  여보! 그간은 어떻게? 작전을 나갔었다고? 오랫동안의 작전인가 본데--- 라디오를 통해 2주일 간의 작전이었는가 보다 하고 알고 있어요. 라디오엔 좋은 성과를 거둔 것 같이 보도가 나오는데 맹호가 20여명의 V.C를 잡았다고--- 무사히 돌아 오셨기를 하느님께 축원이나 해야지.
  여보! 지금 이곳은 아직 나락(벼) 베기는 시작 안 했고, 밭에 밀, 보리 갈기가 한창이에요. 밭 곡식은 흉년인 것 같아. 그래도 우린 먹을 것은 되겠고, 나락은 좀 죽었지만 작년 보단 났겠지. 누구나 할 것 없이 좀 죽었군. 2, 3일만 있으면 벼도 벨 것 같군요.
  지금 시화 미애는 따뜻한 마당에서 아이들과 어울려 잘 놀아요. 흙장난에 얼룩진 얼굴을 하고---
  가끔 홍시를 따 아이들 간식 그리고 고구마도 캐서 겨울 동안의 아이들 간식으로 겨우 하겠군.
  미애는 장날 어머님이 코고무신을 사다 줬더니 좋다고 아무도 못 만지게 하고, 아이들이 건드리면 야단이군. 예쁘게 생겼군. 가을이라 살결이 거칠어지지만 쌀밥 먹고 또 아빠가 오면 예뻐지겠지.
  여보! 아이들 걱정 하지마. 살갗은 까맣게 되어도 건강하면 되겠지. 옥이도 까맣기는 해. 당신이 오면 예뻐질꺼야. 많이 많이 사랑해 주면---
  어젠 투표를 하고 왔고, 오늘은 집안일 자질구레한 일들이 왜 그리 많은지 잠시 쉴 사이가 없군.
  며칠 전 박대위(박용원) 한테서 아사달이 왔군요. 감사하게 (아사달이) 나올 때마다 부쳐 주셔서---
  요사이 바쁘다는 핑계로 정기(박용원 대위 아들) 엄마와 편지 연락도 못하고 있군. 그리고 돈이 왔어요. 28,890원. 20일 날은 나가 봐야겠군.
  오늘이 18일인데 아직 월곡에 있다는 이수암이란 병사는 소식이 없군. 어머님 한테 그 집에 가 물어 보라 해야겠군. 오늘이 외할머니 제사라고 하는데 월곡에 가실텐데 한 번 직접 만나 자세한 소식 좀 들어야지.
  여보! 왜 이렇게 날자가 안 가는지 몰라. 정말 지난 시간은 빠른 것 같은데 남은 시간을 손꼽아 보면 아직도 많은 것 같으니---
  어제 저녁엔 밥을 하며 시화가 부엌에 들어와 불을 때면서 당신 이야기를 하는데 아빠가 오면 장난감, 과자 등을 많이 사가지고 온다고 했더니 그리고 부산에 아빠 올 때 가자고 했더니 “아빠 빨리 왔으면 좋겠다” 하면서 아쉬워 하는군. 보고싶으냐고 물으니 “응 보고싶어” 했어요.
  여보! 정말 옥이도 보고싶어. 요사인 작전을 갔었다는 소식을 듣고 더 마음을 쓰이게 해. 여보! 조심, 조심---   편지 올 때마다 당신의 자신과 용기에 찬 글월이고, 빈틈없는 당신이기에 믿음직도 하지만--- 여보! 옥이도, 미애, 시화도 꼭 껴 안아 줄 날이 빨리 와야지--- 정말 당신이 올 땐 당신이 원하듯이 예뻐져야 할 텐데---
  여보 작전에 나가 찍은 사진을 보니 반가우면서도 고생을 말하는 모습이기에 가슴 아팠지만 그러나 승리의 기쁨에 찬 (사진) 촬영이었을 거라는 데 기쁘군.   여보! 자꾸만 불러보고 싶군. 미애가 말도 많이 늘었어요. 밥도 달라고 제법 말하고, 눈치가 여간 빠르잖아요. 빨리 당신이 와 오손 도손 재미있게--- 아이들도 예쁘고 귀엽게 기르고--- 저녁이면 아빠 오기를 기다리며 깨끗하게 예쁘게 해 놓으면 내 자식 자랑도 할 만 하겠어--- 못난이 축에 들어갈 지 모르지만---(자식 자랑 팔불출의 하나?)
  정말 (농사일을) 눈 앞에 보니 안 할 수 없고, 하자니 좀 힘도 들고, 꼴도 좋지는 안겠지. 그러나 건강해. 여보! 건강하면 되잖아? 당신이 오면 예뻐질 테니까---
  부모님도 안녕 하셔요. 어머님은 눈이 좀 나쁜 것 같아 어제 병원에 가셨는데 오늘은 돌아 오실꺼야. 아버님은 밭 갈러 가셨고, 큰 도련님도 잘 계신가 봐요. 계도 10여만원 들고, 밥 벌이는 하는가 봐. 고생이 많겠지. 자취생활을 하는가 본데 3명이 어울려--- 고생을 했기에 잘 하겠지.
  여보! 이만 그치고 틈 나는 데로 또 쓸게.
  여보! 안녕---
당신의 옥이가 10.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