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남 편지 ( 제 57 신 )
사랑하는 옥이 당신에게
  별 일도 없으면서 좀 기분이 우울한 것 같애. 그 조그만 이유가 당신의 편지 때문인 것 같애. 추석 준비에 바빠서 쓸 틈도 없었나 봐? 지금쯤 당신이 (이원서) 돌아 온 후에 쓴 것도 도착 할 때가 됐는데---
  어쨌던 그간 안녕? 시화, 미애도 잘 놀구? 날씨가 서늘해져서 아이들 놀기가 퍽 좋겠다. 여름 동안 많이 끄을은 시화는 올 겨울도 잘 지내야 될 텐데--- 요사이 고국에는 코레라가 유행한다는 신문 보도도 있었던 것 같은데---
  난 잘 있어. 중대원들의 잘하고 못하는데 따라 내 기분이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지만 모두 성실한 부하를 둔 덕분에 잘 들 하고 있어. 그 동안 틈틈이 (그리고) 열심히 훈련 시켰는데 멀지 않아 좋은 결과를 자져 오리라고 생각하지만 지금으로 만족해서야 되나. 땀은 곧 피를 대신 할 수 있다는 게 전쟁터에서의 진리이니까---
  여보! 요사이는 어떻게 지내나? 좀 자세히 적어 보내 줘. 시골 일이야 훤히 알지만 당신 너무 고생만 하고 낙이라는 게 없지 않나 싶어 마음이 초조해.
  부모님들도 무고하시겠지? 뒤 늦게 영남지방에 물난리로 농사에 많은 피해가 있다는데 고향에는 어때? 붉게 물들어가는 감나무, (들판이) 누렇게 익어가는 고향 풍경을 생각하기도 하지만 그런 것 보다는 요사이 당신이 어떤가 하는 것이 더 알고 싶어. 고생과 기다림으로 1년이 한 5년쯤 된 것 같이 변하지 않았나 몰라? 아이들에게 시달려서 두 살이나 더 나이 많아 보이지나 않나 말야.
  여보! 빨리 만나 내 눈으로 확인하고 싶다. 건강하고 맑은 까만 눈동자를 들여 다 보며 꼭 껴 안고 싶단 말야. 여보! 미애가 어떻게 재롱을 피우나? 이뿌지? 이 담에 커서 골치 아플 일은 안 생기겠나?
  요즈음 미국 소설 두 권을 읽으면서 내가 어떤 방향으로 아이들을 키워야겠다는 것을 결정했어. 아이들에 대한 부모들의 관심은 어떤 교육보다 중요한 것 같애. 올바른 길로 인도하고 자립정신과 정상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사물을 판단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전 적으로 부모들의 책임인 것 같애.
  사진을 아무리 들여 다 봐도 나무랄 데가 없는 것 같애. 시화는 혹시 운동신경이 둔하지나 않을까 걱정이야. 키우면서 취미와 개성을 살릴 수 있도록 해야 할 텐데---
  여보! 당신 사진 두 개를 아무리 비교해도 좀 야윈 것 같애. 지난 겨울보다 말야. 여름을 지내느라고 그렇겠지만 또 당신은 사진이 잘못 돼서 그렇다고 했지만 몽매에도 그리는 그 새까만 눈동자의 빛이 이 담 만날 때도 해여질 때와 꼭 같아야 돼.
  여보! 누구나 말하지만 월남은 십년을 있어도 정이 붙질 않을 것 같애. 난 종종 황폐한 선인장 밭을 보며 ‘신에게 버림 받은 땅’이란 생각이 들어. 나무도, 풀도, 꽃도 좋은 게 하나도 없어. 가시 투성이거나 고약한 냄새를 풍기고 있으니까. 그런대로 야자수나 바나나나무-파초-는 좋은 풍경을 이루고 있어. 그래서 월남이란 땅은 이 두 가지 나무가 없었다면 살풍경이었을 꺼야.
  여보! 지금쯤 뭘 하고 있나? 초저녁 잠이 많은 당신이니 추석 이튿날도 마찬가진가? 나도 자야겠다. 저녁에는 잠이 안 오고, 아침은 늦잠자고. 어쩌면 그렇게 당신과는 반대지? 아마 그런 때문에 당신과 인연이 맺어졌나 봐. 서로 공생하라고---
  그럼 안녕. 건강은 당신에게 바라는 유일한 염원이야.
월남에서 당신을 보고파 하며 영이
고국 편지 ('69. 10. 14)
여보! 당신에게
  (편지가) 올 땐 어디에 있다가 한꺼번에 2, 3장씩 오는데--- 어떻게 우편물이 취급되는지 모르겠군요. 토요일 ?10월 10일- 3장, 어제 2장이 왔군. 얼마나 좋았는지 몰라. 당신의 무사한 소식과 더불어 당신이 전심 전력을 기울이고 임무의 덕으로 훈장을 탔고, 그러나 그 훈장에는 너무도 크고 힘 든 고충이 같이 했을 거라는 데 가슴 아프지만 ---여보! 당신이 옆에 있다면---
  여보! 여긴 요사이 무척 바쁘군. 그러나 당신의 사랑 편지에 모든 것을 참고 견디어야지.
  모든 생물은 환경의 지배를 받기 마련인 것 같아. 옥이도 시골 생활에 처음 보단 익숙하다고 할까, 물이 들었다고 할까. 빨리 당신이 와서 시골 때를 벗어야지. 여보! 너무 걱정 하지마. 힘 써 노력--- 당신에게 어설프지 않게 노력할게.
  오늘은 오래 못했던 빨래를 하여 삶아 놓고 방에 들어와 당신에게 펜을 들었어요. 시화, 미애는 방 수리하느라고 (지게로)모래 져다 놓은 데에서 차놀이, 흙놀이에 정신이 없군. 잘 노는데 못하게 할 수가 없군.
  여보! 당신 말같이 좀 훌륭한 아이들로 길러야 할 텐데. 우리들의 부모가 (우리를) 기른 것 보단 더 낫게---
  여보! 편지 쓸 데마다 보고싶다고는 빼 놓을 수가 없어. 그리고 빨리 오라는 말과--- 시화가 아이들 한테 “우리 아빠 월남에서 오면 서울로 이사한다”고 자랑이군. 내가 추울 때, 눈이 올 땐 아빠가 온다고 했더니 조금 추우면 “아빠 언제 와?”하고 묻는군. 아빠가 보고싶은가 보지. 여보! 편지가 오면 “아빠 편지 왔어?”하며 묻기도 하고--- 여보! 정말 1년이 너무 긴 것 같아.
  시골이고 농가인 만치 아이들이 촌 물이 들은 것 같을 땐 속도 상하지만 그러나 아빠를 돕는 일이라 생각하고 아빠가 오면 예쁘고 깨끗하게 또 아빠의 사랑을 받을 테니까 하고 혼자 위로를 하지.
  여보! 옥인 건강 해. 혹 까맣고 거칠어졌을지 모르지만 당신이 귀국해 애껴주고 하늘, 땅 만치 사랑해 주면 예뻐 질 거야.
  여보! 우체부가 올까 봐 빨리 펜을 놓아야 할라는가 봐. 저녁엔 방 바르고 불도 뺏겨 못썼고 (지금) 바쁘게 쓰는군. 부모님은 장에 가셨어요.
  낮엔 고모와 시화, 미애 4식구가 밥을 먹겠군. 여보! 당신 뜻에 모든 일이 잘 되고 건강하기를 바라면서 난필을 놓을게,
  여보! 그럼 안녕. 또 틈 있는 데로 쓸게
당신이 사랑해 주는 옥이가 10.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