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남 편지 ( 제 59 신 )
사랑하는 당신에게
  片紙(편지)라는 말이 오늘처럼 실감 날 때도 드물 거야. 해발 912m고지(Nui Honoc 혼녹산), 밀림 속의 조그마한 (개인) 천막 속에서 짓 굳게 내리는 빗소리와 지척을 분간 할 수 없는 안개 속에서 노-트 쪽을 찢어 전선의 사연을 몇 자 적으니 말야.
  물론 중대는 이상 없이 작전이 시작된 지 어언 8일이 지났군. ‘서부전선 이상 없다’는 레마르크의 작품에서 읽을 수 있듯이 수 많은 생명들이 없어지고, 피를 흘려도 전선이 무너지지 않는 한 최고 사령부에 올라가는 최종 보고서에는 언제나 “서부전선 이상 없다”라고 기록 된다는군.
  여기 월남 전선에도 이에 비유 될까. 지난 8일 동안에 난 중대원 1명이 부상을 입었어. 아주 중상은 아니고 불구자가 될 것도 아니지만 내 부하의 피를 내가 보는 데는 어쩐지 괴롭고 적개심에 가득 차는군. 하기는 적 5명이 내 부하의 손에 쓰러졌고, 4정의 적 무기와 무전기 등 많은 노획품이 있었으니까 상관(대대장)은 잘 했다고 하는군. 피도 피거니와 나도 부하들도 흘린 땀은 얼마나 될까?
  앞으로 얼마를 더 계속될는지 모르지만 자신이 있어. 물론 내 혼자서 큰 소리 치는 건 아니야. 내 부하 하나 하나가 전의와 자신이 가득 찬 눈동자를 하고 있으니까 그러는 거지.
  난 잘 있고, 건강 해. 내게 언제부터 이런 정글을 뚫는 힘이 생겼는지 내 자신 의심할 정도야. 그리고 적은 우리의 상대가 안 돼. 당신이 늘 걱정하는 위험은 걱정할 정도는 못 돼. 적과 살과 살을 맞대는 지금이 비록 작지만 지휘관의 긍지를 찾게 되는군. 내게는 백 명이 넘는 맹호가 있다는 자랑스러움은 누구나 맛보지 못 할 거야.
  여보! 내 얘기만 늘어 놨군. 당신이 이원에 가는 바람에 편지가 이원으로 서너 장 가느라고 당신 손에 늦게 들어가는 거지? 이원서 석 장 받아 당신에게로 보냈다고? 옥란이가 편지 했군. 어제 이 산 꼭대기에서 당신 편지-9.23발-와 같이 받았어.
  여보! 잘 지낸다니 다행이야. 시화도 미애도 잘 놀고? 일전에 미애가 똥싸기를 했다더니 어떻게 완전히 회복 됐나?
  전 번 편지에도 말했지만 내가 월남에 온 것이 뭐 돈을 벌러 왔나? 오직 바라는 건 중대장 경력을 필 하자는 건데 그게 잘 안되어 두어달 연장해야 되게 됐잖아. 여보! 나두 당신과 미애, 시화 다 보고싶고 빨리 돌아가서 꼭 껴 안아 주고 싶어. 하지만 여기까지 와서 오직 하나의 목적을 못 이루고 돌아 갈 수야 있나. 나도 좀 참고, 당신도 좀 더 참고 기다려야지. 여보! 할 수 있지? 연장해서 중대장 1년 채우고 갈래. 당신도 그렇게 알고 있어. 4월 중순경. 시절도 좋은 때 잖아---
  참 오늘은 이 험준한 정글 속에도 고국에서 보내 온 국민투표 용지가 왔군. 부재자 투표니까 열흘 먼저 해서 보내는 거지. 적을 겨눈 총뿌리를 잠간 늦추고 붓대롱 대신 탄피에 인주를 묻혀 잠시 국가의 앞 날을 생각 해 보고 결심이나 한 듯 도장을 누르는 병사의 얼굴엔 대한민국의 국민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 같애. 그리고 잠시나마 향수에 젖어 생각은 고국의 고향집으로 달리는가 봐.
  여보! 물론 내게도 한 장 왔더군. 귀중한 한 표를 정성껏 눌러 보냈지. 뒷바라지 하느라고 정신없이 오뚜기(헬리콥터)에 급조된 투표함-마대-을 실어 보내면서 “후유---”하는 한 숨을 내 쉬었지. 아직 도착하지 않은 병사들 것은 내일이나 오겠지. 여보! 당신은 지금부터 열흘 후에 그 행사를 치루겠지?
  여보! 참 지난 번 전진21호 작전 결과 훈장과 표창이 가결된 모양인데 우리 중대에는 많이 쏟아졌군. 중대장인 내가 뭘 했다고 화랑무공훈장이 결정 되었데. 그리고 인헌무공훈장이 6명 유공 포장이 7명, 군사령관 표창이 3명---
  여보 당신도 기뻐 하겠지? 전장에 나선 군인이 얻을 수 있는 최고의 영예가 비록 쇠붙이로 만들고, 종이 쪽지 한 장(훈장증)에 불과 하지만 명예에 살고, 죽는 군인이기에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이야. 다른 사람들이 보면 우습기도 하겠지---
  우기이고 높은 고지라서 밤에는 야전잠바와 동내의가 꼭 필요하군. 백 수 십 명의 부하를 가진 내게는 불편한 것 없으니 안심하고 추수에 바쁘고 고단할 당신이나 몸조심 해---응.
  그럼 이만 안녕.
월남전선 고지에서 당신의 영 씀
고국편지('69. 10. 27)
여보! 미애 아빠
  밤도 깊었지만 오늘도 또 펜을 들지만 끝이 날라나 이심 속에 펜을 듭니다. 여보! 옥인 잠꾸러기니까 그럴 수 밖에 없나봐. 그저께 저녁에도, 어제 저녁에도 10시까지 감을 깎은 뒤 잠자리에 들어 펜을 들었지만 다섯 줄도 못쓰고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군. 오늘도 의심스럽지만 (펜을) 들어 봅니다.
  여보! 당신의 안부부터 물어야지. 59신은 그저께 받았지만 (답장을) 그 날 저녁 쓰다가 잠이 들었고--- (편지를) 받았을 때의 옥이 모습 상상해 볼 수 없을 거에요. 기다렸던 차 부엌에서 점심을 안쳐놓고 불을 사르는데 배달부가 좋은 낯으로 ?항상 당신 편지를 보고 좋아하니까- 웃으면서 주더군요.
  나는 나락(벼) 베는데 발리 점심을 가져가야 했지만 모든 것을 팽개치고 당신의 편지를 뜯었답니다. 부주깽이는 한 손에 들고 당신의 기쁜 소식을 듣고 먼지에 쌓여 일하지만 용기가 나고 기뻤답니다.(어제 쓰고--)
  어제 못다 쓴 펜을 오늘 들었어요. 오늘도 바쁜 일 손으로 한 날이 갔나 봐요. 오늘은 나락 걷기를 했어요. 나야 밥 해 주기도 바뻤읍니다. 세수 할 시간도 없이--- 시화, 미애는 흙장난에, 가을 바람에 피부가 좋지 않군요.
  여보! 지금 농촌은 너무 바뻐. 소득도 없는 것이--- 모두가 ‘아름다운 가을’이라지만 아름답구나 하고 느낄 여유도 없이 추수를 해야하고 저녁이면 피로에 지쳐 나 뒹굴러야 하고, 눈 뜨면 들로 나가야 하니---
  여보! 눈을 감고 당신의 얼굴을 그려봅니다. 피로했던 몸을 이불 위에 아무렇게나 두러 누어 당신을 그려 봅니다. 무엇을 하고 있을까? 또 작전을 나가지나 안했는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당신을 생각합니다.
  여보! 보고싶어. 당신의 품에 안겨 응석이라도 부리고 싶어.
  10월도 거의 다 갔다 하지만 적어도 5개월은 더 있어야 할텐데---
  쓰다 만 글이지만 이만 부쳐야겠군. 여보! 배달부가 밖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그럼 안녕.
당신의 옥이가 10.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