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남 편지 ( 제 61 신 )
옥이 당신에게
  여보! 당신이 목을 빼고 편지를 기다리고 있을 생각을 하면 어쩐지 측은한 생각이 드는군. 물론 그렇게 기다리지 않도록 자주 편지를 쓰면 되겠지만 그렇게 되지 않으니 안타까울 뿐이군.
  지난 10월 1일에 기지를 출발, 작전에 들어갔던 것이 오늘 열 아으레 만에 (기지로) 다시 돌아 왔으니.그 중 한 번인가 편지를 쓰긴 했지만 그것이 들어 갔는지도 모르겠고--- 우기 철에 비에 젖어 종이도 봉투도 모두 못쓰게 됐으니까 더 쓸 수가 있어야지.
  그것도 그렇거니와 심적인 여유도 없었어. 낮에는 백 수 십 명이 정글을 수색해 나가는데 어디서 어떤 일이 일어 날는지 무전기에 귀를 기울이며 조마조마하게 기다리다가 한 쪽에서 (전투가) 벌어지면 온 신경이 모두 (그 쪽으로) 쏟아지고--- 마침 희소식이라도 전파를 타고 보고 되어 오면 좋아서 담배 한대, 초조하면 또 그래서 담배 한대, 정말 답답하고 하면 (중대) 본부 이끌고 그 쪽으로 가서 잘 알지도 못하면서도 자신 있는 듯 소대장을 격려하고, 조언하고, 응원하는 거지. 그러다가 우리의 피해라도 생기면 후회와 애석함에 입술이 바싹 마르고--- 하지만 적은 퍽 약해. 쥐가 고양이에게 마지막 발악을 하는 격이랄까---
  특히 이번 작전지역은 해발 900m나 되는 험준하고 밀림이 울창한데다가 우기라서 비와 안개 때문에 경우에 따라서는 봉사 놀음이요, 보급지원의 두절로 한 끼쯤 굶고 보급을 받을 수 있는 데까지 처량한 철수도 있었고---
  또 밤이면 내일의 작전을 위해 이리 저리 궁리하다 보면, 그러다가 잠들 때쯤 당신과 시화, 미애 얼굴이 떠 오르곤 하는데 그것도 잠깐, 또 낮에 사살한 V.C의 시체와 얼굴이 떠 오르고---
  어쨌던 무사히 중대를 끌고 돌아 온 것은 우리 병사들이 잘 했고, 또 멀리서 당신이 안타깝게 기다리며 기원 해 준 덕일 꺼야.
  여보! 당신이 보낸 편지도 그 동안 한 장 밖에 못 받아 봤더니 (기지에) 돌아 오니까 넉 장이나 기다리고 있구먼. 집안 무사하고 농사를 잘 지어 추수 한다니 반가워. 시화, 미애 그리고 당신도 잘 있다니 내게는 더 없이 희소식이야.
  그리고 시화, 미애가 무척 많이 자랐나 봐. 사진과 어떻게 달라졌을까? 하고 생각해 보지만 잘 생각이 안 나는군. 시화는 굵은 알밤도 주워서 아빠 주겠다고 한다니 그런 효자가 또 있나? 앞으로도 계속 그래야 할 텐데.
  여보! 당신은 내가 잘 있고 건강하다는 것이 당신을 안심시키기 위한 말로만 생각되는 모양인데 그건 정말이야. 식욕도 너무 왕성해서 작전 간에 배가 고플 지경이라 병사들도 버리는 C-레이션의 비스켓도 먹으니까 그리고 정글을 뚫는데도 병사들이 못 따라 올 정도니까. 이번 작전은 순전히 비 속, 안개 속, 정글 속에서만 살아서 그런지 나 뿐만 아니라 모두가 얼굴이 몹시 희어 진 것 같애.
  여보! 오늘 돌아와서 거울을 보니 수염이 1Cm는 훨씬 넘겠어. 그리고 멋있는 것 같애. 이다음 나이 많아서 수염을 기를 때 되면 멋있을 것 같애.당신도 좋아 할 것만 같고. 모두들 사진 한 장 찍어 놓으라는 걸 그만 뒀지.
  여보! 머리털이 길고, 수염이 텁수룩하게 되니까 그 모양이 다른 작전을 나가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퍽이나 장하게 보였나 봐.
  산에서는 늦가을 장마 때만 같더니 내려오니 역시 여름이구먼. 지금쯤 나락이 베어지고 있겠다? 바쁘고 힘들 텐데. 여보! 농촌 힘든 일 속에서 당신이 더 이뻐지기야 했겠나 만 축이 나 있으면 안 돼. 여보! 내게는 당신이 제일 소중하니까 . 여보! 약속 할께 이 다음 만나면 꼭 껴 안아주고 말고---
  날씨가 쌀쌀 해 질 텐데 아이들과 당신의 건강에 조심하고 내 걱정은 너무 하지 말어. 당신이 걱정하는데 비하면 남 좀 미안할 정도로 잘 있으니까.
  날씨 때문에 한가하던 어느날 종이가 없어 V.C한테서 나온 노-트 쪽에 소식을 전하려고 몇 자 썼던 것이 결국 못 보내고 수첩 속에 끼어 있군. 늦었지만 당신을 향해 쓴 것이니까 동봉할게 읽어 봐.
  그럼 기지에 와 있는 동안에는 매일 쓰도록 약속하지. 그래야 (당신에게 진 빚을) 갚는 것 같애서---
월남에서 당신만을 그리며 영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