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남 편지 ( 제 62 신 )
옥이 당신에게
여보!  (편지가) 거꾸로 됐건 어쨌던 자꾸 받으니까 좋다. 어제 작전에서 철수 해 오니까 3장이나 있더니 오늘 또 한 장이 날아 왔군. 더 먼저 썼던 건데---
  여보! 전쟁터에서 부하에게 명령을 내리기 전에 그러니까 결심을 하기 전에 부하로부터의 건의는 기꺼이 받아 들이고, 또 부하의 의견도 물어보곤 하지만 일단 결심이 돼서 명령 한 것은 부하로서는 왈가왈부 할 수 없는 거야. 다만 명령을 내린 지휘관이 결심을 변경하여 새로운 명령이 내려 지기 전에는 그 명령은 곧 실천만이 있을 뿐이야.
  여보! 난 이런 속에서 9개월을 살아왔군. 내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은 곧 당신을 부하로 생각하고 하는 말은 아니야. 여보! 낸들 왜 당신이 보고싶지 않고, 또 시화, 미애를 안아 주고 싶지 않겠나? 하지만 여보! 내가 월남을 와서 뒤늦게 중대장을 한다고 이러고 있는 건 파월한 제1의 목적에 뜻을 굽히지 않고 해 내자는 거야. 여기서 이겨내지 못하는 연약한 인내로는 앞으로의 군 생활은 물론 어떤 사회 생활에서도 낙오하고 말 꺼야.
  여보! 난 중대장 1년을 마치고 내년 4월 초순에 돌아가는 것이 맘 속에 이미 결정된 사실이니 괴롭고 힘들더라도 참아야지. 나도 당신도 시련을 달게 받고 극복할 수 있는 강한 자가 되자 말야.
  여보! 당신은 현명하니까 이해 해 주지? 자꾸 당신이 4월까지 기다리지 말고 돌아 오라고 하니 자꾸 결심이 흔들리는 것 같애.
  여보! 나보다 더 늦은 친구가 있어 퍽 위안이 되는구먼. 황원탁대위라고 동기생이 역시 중대장을 못 마쳐 지금 왔군. 오늘 연대에서 만났는데 10중대장으로 부임한다면서 같은 오뚜기(헬리콥터)로 왔지. 전장에서 동기생을 만나 회포를 풀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아 질 것을 생각하니 얼마나 반가운지---
  여보! 미애가 말을 제법 잘 한다고? 기집애--- 재롱 피우고 한창 귀엽고 이뿔 때가 다 지나 갈까 봐 걱정이야. 내년 4월쯤에도 밉지 않겠지? 하기야 내 새끼인데 미울 때가 있을라고--- 김천 (시화) 고모가 그러는데 시화는 계속 부끄럼이 많고 촌놈이 돼 간다면서? 날 닮아서인가 봐.
  작전에서 돌아오니까 9월분 수당은 당신 앞으로 50$ 부쳤나 봐. 그러면 다음 달에도 그 정도 될 꺼야. 당신이 알아서 해 줘. 월곡에 있는 군인은 아직 귀국하지 못했군. 아마 늦어질 것 같애.
  모시고 있던 대대장님(육사 11기 안교덕 중령)이 곧 임기가 끝나고 귀국하시게 되고 하니 어째 맘이 좀 어수선하다. 전투지휘관으로서는 참 훌륭하신 분이신데--- 잘 하시고 금의환향(錦衣還鄕) 하시는 그분의 앞길에 축복을 비 뿐---
  인접 3대대장님에 박희도 중령님(육사 12기)이 오셨는데 당신도 이름은 알걸? 삼촌하고 친하신 분 말야. 그 분이 우리 2대대장에 삼촌을 추천하더라는 걸 오늘 저녁 대대장님으로부터 들었어. 결국 다른 사람으로 결정되었지만--- ‘만약 그렇게 되었더라면’ 하고 생각 해 봤지. 장단점이 있겠지. 안 오게 된 것이 내게는 나은 지도 몰라. 뒤늦게 중대장 하느라고 쩔쩔 매는 걸 보이기는 싫으니까. 또 삼촌과 조카가 대대장, 중대장을 한다고 해 봐. 유명해 지겠지?
  여보! 사진만 들여 다 봐서는 맘에 안 찬다. 사진도 작전 나갈 때나 언제나 호주머니에 넣고 다니니까 비에 젖기도 하고 (해서) 많이 낡아졌어. 비록 수 만리 떨어져 있지만 항상 당신과 시화, 미애는 내 곁에 있다는 느낌으로 (사진을) 항상 품고 다니지. V.C를 잡고 보면 품 속에서 가족 사진이 나오는 것을 종종 볼 수 있어. 그 때마다 맘이 안됐더군.
  사진 얘기가 나왔으니 말이지 어떻게 시화 사진 한 장 찍어 줘야지? 1년에 한 장씩은 말야. 대대장님도 딸 하나 있는데 돌 사진도 안 찍어 주도록 무관심했던 것을 몹시 후회하시더군. 미애의 돌 사진과 백일 사진 그리고 올 때 찍었던 것과 당신이 이원서 찍어 보낸 사진을 들여다 보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든 거야.
  여보! 쌀쌀해지는 날씨와 바뻐지는 추수 계절에 당신도 무리하지 말고 아이들 건강에 유의 해 줘.
  여보!--- 그럼 안녕
월남에서 당신을 그리며 영 씀
(주) 이원서 찍은 아내와 시화, 미애
고국 편지 ('69 11. 3)
사랑하는 당신에게
  여보! 그간도 안녕? 3통의 편지를 받고 이제 펜을 드니 큰 죄를 지은 것 같군. 정말 어떻게 바빴는지 모르겠군. 짜증이 나도록--- 그러나 아무 탈 없이 지낸 것이 다행이지만---
  이제 타작도 끝이 났고, 보리나 좀 갈면 큰 일은 끝이 나는가 봐요. 당신이 항상 걱정해 주니까 그런지 아직은 건강히 잘 지냅니다. 앞으로도 그럴 거에요.
  부모님께서도 일에 힘은 드시지만 그런대로 안녕하십니다. 요사이는 저녁이면 곶감 깎기가 바쁘고--어제 저녁에도 많이 깎았어요.
  바쁜 땐 치마 꼬리를 잡으며 울고 따라 다녔던 미애도 될 수 있으면 울리지 말아야지.
  여보! 옥이가 빨리 오란다고 화났어요? 아내가 남편을 전쟁터에 보내고 위험한 곳에서 아끼고 사랑하고 또 보고싶은 마음에 한 말이라 생각하시고 화내지마--- 정 당신이 그런 의사라니까 수긍도 가지만 따를 수 밖에 더 있겠어요. 임기가 끝나는 날까지 하느님께 무사하기를 빌께요.
  미애, 시화는 요사이 감으로 간식을 잘 합니다. 미애도 이제 말을 좀 붙여 해 보겠다고 중얼거리는데 어느 나라 말인지 잘 모르겠군. 시화도 잘 놀아요. (동네) 아이들과 어디서 놀다 오는지 모를 정도로 잘 놀아요. 그런데 촌에 사니까 아이들 꼴이 꼴 같지 않아요. 이제까지는 바뻤다고 하고 (이제부터는) 좀 손을 대야지. 여보! 걱정하지마.
  시화는 아빠 오면 서울로 이사 간다고 하면서 좋아하는 꼴이 우스워 죽겠군. “아빠 언제 온대?” 하고 묻는 것이 보고싶은 모양이에요. 지금 펜을 든 옆에서 두 새끼들이 잠이 깨어 달겨들고 장난치며 놀고 있군요.
  서울 도련님은 잘 있데요. 많은 액수는 아니지만 5,000여 원을 보내 농비로 쓰라고 왔군요. 자기도 지내기 넉넉지 못할 텐데 고맙군요.
  대구 남실이네는 토지를 80만원 주고 사고, 대명시장 입구에 집을 60여 만원 주고 짓는다고 하더군요. 그 동안 돈 많이 벌었나 보더군--- 반가운 소식입니다.
  타작을 하면서 당신 생각을 했어요. 아마 내 꼴이나 같았던가 보다 하고--- 목이 빠져라 하고 기다렸던 편지를 받으니 마음이 편하고 매사에 능률이 오르는 것 같아요. 바쁨에 쫓기고 산골이라 보는 것, 듣는 것은 없이 사회에 너무 뒤떨어지는 것 같아 걱정이지만 앞으론 신문이라도 열심히 읽어 봐야 겠군요.
  밤에 감을 깎아서 그런지 펜을 든 손이 저려 펜을 들다 말고 풀어야 쓰겠군요. 이젠 대충 바쁜 일도 끝이 났으니 자주 편지 쓸께요. 또 쓰기로 하고 이만 안녕!
  여보! 보고싶지만 참고 기다릴께---
고국에서 당신의 옥이가 11.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