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남 편지 ( 제 63 신 )
보곺은 당신에게
  여보! 그간 안녕. 아마 지금쯤은 (내) 편지가 없다고 몹시 궁금해 하고 있을 당신의 모습이 또 오르는구려. 더구나 작전 나간다는 편지만 받았을 테니 말야. 앞으로 며칠 후에야 무사히 돌아 왔다는 소식이 갈 테니까---
  여보! 너무 걱정 하지 말어. (나는) 당신이 믿듯이 아무일 없을 테니 말야. 백 수 십의 부하, 그것도 맹호들을 거느린 강한 사람이라고---
  오늘 낮에는 이규완 대위-당신이 기억할는지 모르지만 보병학교 교육통제실에서 같이 근무하던- 중대장 이취임식에 갔었어. 남의 일 같지 않고 내가 코허리가 시큰한 것을 느꼈어. 더욱이 그가 눈에 고이는 눈물을 감추기 위해서 선그라스를 썼지만 그의 음성에는 지난 일년을 회고하면서 울고 있음이 분명했어. 재임기간 중에 유명을 달리 한 부하들의 이름을 뇌일 때는 정말 지휘관으로서의 쓰라림을 느끼겠더군.
  여보! 군인은 특히 지휘관은 부임하면서부터 두 가지의 상반된 그 무엇을 느껴. 하나는 많은 부하를 갖는다는 든든함과 또 하나는 어깨가 기울어지는 것만 같은 책임을 느끼지. 마찬가지로 이임하면서도 역시 두 가지의 상반된 무엇을 느끼나 봐. 그 한가지는 자기의 몸을 제하고 모든 것을 잃는다는 허전함과 또한 무거운 짐을 벗는 것만 같은 홀가분한 맘을 갖게 되나 봐. 곧 시원 섭섭하다는 표현이 될까.
  그는 용케 1년을 훌륭히 끝냈지만 곧 그의 가족 곁으로 돌아 갈 수 없게 됐나 봐. 군대의 명령이니까. 사이공에서 근무하게 될 꺼야.
  여보! 당신은 아들 자랑, 딸 자랑이 늘 그게 그것 같겠지만 자꾸 듣고싶다. 오늘도 속마음으로 꽤 기다렸는데--- 하기는 그저께 (당신 편지를) 받았지만. 내일 모래가 추석을 지난지 꼭 한 달이니 지금쯤 추수에 정신 없겠다. 타작하느라고 온 집안이 먼지 투성이고, 아이들 꼴이 말이 아니겠군.
  그렇지만 농촌에서 가을은 맘이 흐뭇한 계절이지. 감이 붉게 익어가고, 마당에 오곡 더미가 쌓이고--- 이런 것 자꾸 생각하니 당신이 보고싶고 빨리 돌아가고싶다. 정말 지나간 날들은 빨리도 지나갔는데 앞으로 카렌다가 여섯 장이나 더 넘어가야지 맘 놓고 당신 곁으로 돌아 간다는 걸 생각하니 아득하군.
  아! 여보! 보구싶다. 된장국 찌개를 구수하게 끓여 들고 들어오는 당신의 모습이 이렇게 내게는 소중할 줄은 미처 몰랐다. 당신의 오이김치 맛은 나만 감탄 한 건 아니 잖아. ROTC 5기생을 월남에 와서 셋이나 만났는데 만나는 친구마다 (당신의 오이김치) 얘기 하더군.
  여보! 미애가 똥싸기 한 후로 아주 축나지 않았나? 시화랑 잘 싸우면서 잘 논다니 다행이지만. 아이들 보다 1년에 한 통씩 하는 당신이 힘든 농촌에서 어떻게 잘 배겨 내는지 아무래도 궁금하군. 당신이 내가 잘 있다는 소식을 잘 안 믿듯이 말야. 정말 난 내가 생각해도 모를 일이야. 아주 식욕도 좋고 건강해. 역시 저녁 늦게까지 잠이 안 오고, 아침은 여덟시가 다 돼야 일어나는 습성은 여전--- 그러나 바쁜 때는 그런대로 일찍 일어날 수 있어.
  그저께 연대에 나간 길에 사단에 전화를 걸었더니 문대위(문영대)는 귀국 준비로 마음을 진정시키느라고 일에서 손을 뗐다는군. 박대위(박용원)는 헬리콥터 관계를 맡아 보느라고 매일 정신 없고, 잘 있다는군.
  작전에서 돌아오니까 10월 수당에 당신 앞으로 50$ 부쳤다는군. 난 부치지 말라고 했는데. 다음 달도 같을 거야. 내 계산이 거의 맞잖아?
  집에서는 (동생들) 학교 시킨다고 어떻게 해 나가는지 궁금하군. 빚을 많이 지겠지. 그리고 정영이와 정희 결혼 문제는 어떻게 돼 가나? 바쁜 때니까 생각할 틈도 없겠지만 추수를 마치면 뭐든지 하나는 될 것 같지 않아?
  부모님들이 어떻게 지내시는지. 일 철이니까 그런대로 일 하시겠지만--- 일년 동안에 퍽 노쇠하셨지?
  여보! 또 말하지만 너무 힘에 겹게 무리하지 말어. 뭣을 해 놨대두 당신의 건강에 이상이 있다면 모두 싫으니까. 바쁜 때일수록 아이들 잘 돌보고. 그럼 안녕.
월남에서 당신의 영으로부터
고국 편지 ('69. 11. 5)
여보! 시화 아빠
  타작만 하면 가을 일이 다 끝나는 것 같더니 타작을 했어도 잠시 앉아 있을 시간이 없군. 집에 있어도 할 일들이 많군. 덕석(멍석)에 나락(벼) 말리기, 감 따서 깎기 등--- 많이 많이 잔손이 필요하군요.
  여보! 그간 어떻게?
  요사이 며칠은 겨울 날씨를 연상하는 쌀쌀한 날씨. 더웠던 때를 생각하면 춥다 소리 하지 말아야지--- 곱게 물들었던 감나무도 낙엽으로 다 떨어지고 앙상하니 아직 못 딴 감이 붉게 예쁘게 붙어있군. 아마 올 가을 곶감은 한 15접(1접은 100개) 쯤은 깎은 것 같아요. 어제저녁에도---
  가을 날씨이니까 손도 거칠어지고 감을 깎으니 더 한 것 같군요. 나야 보기 싫어 짜증이 나지만 당신이 옆에 있으면 등 긁어주기 좋겠군.
  여보! 시화, 미애는 잘 논답니다. 시골 때가 묻은 것 같지만--- 시화는 며칠 전에 석희 고모 따라 김천에 갔어요. 갈려고 애를 타서 보냈더니 허전하고 섭섭하군. 아마 모정이겠지. 어머님이 눈이 아파 며칠 치료하는 동안 할머니가 계시니까 가고싶어 야단이군. (어머님은) 이제 많이 나았다고 해요.
  지금 논보리 갈기에 바쁘군요. 2, 3일이면 끝이 날 것 같아요. 추수는 약 30석은 되는 것 같아요.
  옥이도 건강히 잘 있답니다. 마음 속으로 빨리 시간이 흐르기를 기다리며, 당신이 오는 날을 기다리며---
  여보! 그리고 아바님은 많은 일에 너무 시달리나 봐. 노쇠해 가는 몸, 많은 일들--- 저녁 때 어둠 속에 (집으로) 들어오시는 것을 보면 좀 안됐군요. 옥인 이런 부담도 당신에게 주고싶지 않지만--- 더구나 전쟁터에 있는 당신한테--- 아버님 보신 좀 해 드려야 할까 봐요. 그곳에 혹 녹용이 구하기 쉽다는 여러 사람들의 말이 있는데 어디 구할 수 있으면 구해 보세요. 이런 부탁 같은 건 하고싶지 않지만 아버님이 원하시니---
  집에 대한 걱정은 마시고 빨리 당신의 임무를 끝마치고 건강한 몸으로 개선장군처럼 돌아 오시기를 빌 뿐이에요.
  여보! 미애는 까만 시화 나이론 쓰봉에 빨간 세타를 입고, 예쁘게 맨 머리를 나풀거리며 놀고 있군. 따뜻한 양지에 마당엔 벼 덕석(멍석)이 널려 있고, 옥인 무엇을 먼저 손대야 될 지 모르겠고--- 여보! 빨리 당신이 와 이런 환경도 탈피하고 싶고, 아이들과 함께 재미있게 지내고 싶다. 빨리 시간이 흘러야지---
  오늘이 11月 5日, 또 날자를 세어봅니다. 여보! 여기 소식만 늘어 놓았어요. 당신이 있는 곳, 상상만 하고--- 보고싶을 땐 아무도 몰래 사진을 꺼내 보지만 그것 가지고는 흡족하지 못하네요. 여보! 보고싶군. 보고싶어---
  그럼 이만 쓰고 또 쓸게요. 그리고 이원에서 어제 편지가 왔는데 덕조네 살던 집을 45,000원 주고 샀다나요. 11월 15일경에 이사한다고 합니다. 추수는 아직 들여오지 못했지만 다 편하시다고--- 옥이도 이 곳에서 설이나 지내고 이원 가서 당신 올 때까지 있고 싶은데 당신은 허락 안 해 줄려는지?
  여보! 그럼 안녕---
사랑하는 옥이가 당신에게 11월 5일